Switch Mode

EP.29

   ​

    “머리는 남겨줘.”

    “……무슨 헛소리를-.”

    ​

    에이트의 말을 들은 뮤는 그가 농담을 지껄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세를 부리는 거거나. 

    ​

    보통 그런 허세는 실물을 보게 되면 사라지게 되는 법. 뮤는 제 부하들을 향해 턱짓했다.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수인들은 그 즉시 레비탄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난도질했다.

    ​

    날카로운 날붙이가 몸을 푹푹 찔러대는 가운데, 레비탄은 입을 악 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거나 그에 관련된 훈련을 받아서는 아니었고, 그저 이 상황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

    자신을 믿고 있던 동료를 배신하고 위험지대까지 데리고 온 이 상황이. 설령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렇다.

    ​

    푸욱-!

    ​

    레비탄을 마구 찔러대던 수인들은 비명 한 번 내지르지 않는 그녀를 보며 놀랍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곤 뮤를 돌아보며 물었다.

    ​

    “이 년 이거 비명 한 번 안 지르는 데요? 어떡할까요?”

    “……뭘 그런 걸 물어. 하여간 짐승 새끼들.”

    ​

    부하에게 잔소리를 내뱉은 뮤는 그대로 부하가 들고 있던 단검을 뺏은 뒤 레비탄의 눈두덩이를 찍어 눌렀다. 과연 이것마저도 참을 수는 없었는지, 레비탄은 미약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

    “으, 으으윽…….”

    “─에이트 씨. 머리는 남겨달라고 하셨죠? 이거 어떡하나. 당신이 안 나오면 머리도 없어지게 생겼는데.”

    ​

    뮤는 그리 말하며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미약했던 레비탄의 비명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과연 그 모습엔 에이트도 표정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고어한 모습에 얼굴 찌푸리는 게 사람이었다. 

    ​

    코앞에서 실제로 고통 받는 동료가 있거늘 어찌 태연할 수 있을까.

    ​

    “……에이트, 나가지 마.”

    “알아요. 안 나갑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

    비라는 그런 에이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멈춰세웠다. 물론 에이트는 그녀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

    다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저 녀석들이 레비탄을 아예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

    당장 레비탄이 고통 받는 저 모습을 보아라. 그녀의 배신이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음은 명확히 알 수 있다. 무언가 협박을 받거나 최면 세뇌를 당했다는 뜻…….

    ​

    그렇다면 배신한 대가는 지금 당장 치르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중에. 그러니까 본부로 돌아가 사정청취를 모두 끝낸 이후에 하는 게 맞았다.

    ​

    “비라 씨. 여기서 본부까진 거리가 얼마나 되죠?”

    “못 해도 수백 킬로…… 그건 왜?”

    “아뇨. 아무튼 그래서야 금방 지원이 오는 건 꿈도 못 꾼단 소리네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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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Z 시에 있는 히어로가 우리들을 구하러 오는 걸 기대해봐야 하는 걸까.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

    이 Z 시는 빌런들의 도시로. 히어로는커녕 경찰도 제 일을 하지 않는 슬럼가라고 한다. 뒷세계에 발을 담그고 불법적인 일을 서슴치 않으니 돈이야 많겠다만은 사람 살기엔 좋지 않은 동네.

    ​

    E 시에서는 심심하면 인종 차별 당하던 수인이 여기엔 잔뜩이요 그들을 차별하던 인간은 한 명도 보이지 않던 이유가 있었다.

    ​

    “증원도 못 와, 히어로도 없어…… 우리 큰일난 거 아닌가요? 비라 씨.”

    “내가 그래서 아까 도발하지 말랬잖아……!”

    “그렇네요. 괜히 도발했나……?”

    ​

    에이트가 방금 전 했던 말을 후회하는 가운데, 둘의 이야기를 듣던 레비탄이 칼에 찔려 신음하면서도 소리쳤다.

    ​

    “─비라! 절대 능력 풀지 말앙-! 알았징-?”

    “이 년이! 넌 빨리 저 놈들이 이쪽으로 오게 만들 것이지!”

    “꺄하앙-!”

    ​

    가벼운 신음과 함께 레비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이제 죽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신은 살겠지만 마음과 정신이 죽겠지.

    ​

    Z 시의 연구소에서 탈출한 이후, 쭉 억눌러왔던 그녀의 생체 인자가 천천히 깨어난다. 레갈리아가 내린 왕명에 의해 봉인되었던 힘이.

    ​

    ─자네는 앞으로 ‘동료를 위해서만’ 이 힘을 쓸 수 있네.

    ​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을 쓸 수 없지만.

    동료를 위해서라면 아주 가벼운 일에도 쓸 수 있는 힘.

    물론 결코 쓸 리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

    ‘응. 나 같은 배신자보다 너희가 사는 게 더 좋은 일이니깡.’

    ​

    레비탄은 그리 생각하며 발작하는 제 생체 인자를 해방했다. 목줄 풀린 생체 인자는 그녀의 몸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며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그 증상은 금세 겉으로 드러났다.

    ​

    그녀를 십자가에 묶고 있던 쇠사슬이 툭툭- 강제로 끊어진다. 평범한 여성에 불과했던 레비탄의 몸이 근육질로 뒤덮이고, 더 나아가 부풀어오른 살점 따위가 십자가마저 집어 삼켰다.

    ​

    “저게, 무슨…….”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뮤는 침음성을 삼켰다.

    변화한 레비탄의 모습이 그가 아는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L-시리즈.

    레비아탄Leviathan 계획의 실패작들.

    ​

    분명 실패작들의 폭주로 인해 연구소가 폐쇄되고 연구는 그 뒤로 종결된 줄 알았거늘 어찌?

    ​

    “성공작이라고?”

    ​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할 정도로 뮤는 미련하지 않았다. 폭주한 레비아탄은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폭탄. 모든 걸 파괴하는 파괴신이었으니까. 

    ​

    슬쩍- 안경을 치켜세운 뮤는 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

    “─후퇴한다. 이곳에서 최대한 빨리 도망치도록.”

    “예? 이사님. 그렇지만…….”

    “어차피 저 괴물 앞에선 그 누구도 무사할 수 없어. 저 두 놈년도 곧 있으면 도망칠 거다. 우리는 멀리서 포위망을 유지하다가 도망치는 녀석들을 잡으면 그만이다. 여기 있으면 개죽음이야.”

    ​

    뮤를 포함한 수인 일행은 그리 말하며 순식간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발휘하자 정말이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

    그리 수인들이 모조리 떠나고, 변신을 끝마친 레비탄은 이 자리에 남은 에이트와 비라를 바라보며 침을 뚝뚝 흘렸다. 그녀의 침이 닿은 사막이 융해되어 지글지글 끓기 시작했다.

    ​

    “……비라 씨? 저거 버틸 수 있겠어요?”

    “어…… 맞아봐야 알 거 같은데. 아마 버티지 않을…….”

    ​

    콰아아앙-!

    레비탄의 주먹이 배리어를 내려치고, 비라의 배리어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비라는 살짝 식은 땀을 흘리며 레비탄을 바라보았다.

    ​

    이성을 잃은 그녀는 괴물이 되어서 침을 질질 흘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비탄이 먼저 이성을 되찾고 자신들을 지켜주리란 희망은 갖다 버리는 게 나을 듯 했다.

    ​

    “못 버텨요?”

    “버틸 수, 있어…!”

    “사실대로.”

    “……30분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알았어요.”

    ​

    그 말을 들은 에이트는 그대로 비라의 품에서 벗어나 배리어를 빠져 나왔다. 그 행동에 화들짝 놀란 비라가 다시금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에이트는 괜찮다는 듯 비라를 물렸다.

    ​

    배리어에서 빠져 나온 에이트는 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

    ‘아, 드디어 전파가 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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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리어가 전파 따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간섭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는지, 저 배리어 안쪽에서는 스마트폰을 쓸 수가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확인한 에이트는 우선 본부 쪽에 응원 요청을 보내고서 제가 미리 만들어둔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

    솔직히 말해서 프로그램은 전공 교양으로만 배웠기에 제대로 작동할 지 자신은 없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선 뭐라도 해봐야지.

    ​

    【군사 위성 해킹 중…… 완료】

    ​

    머리 위에 떠 있는 수백 수천 개의 위성. 그 중에 몇 안 되는 군사 위성이 때마침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 지나가는 위성을 해킹, 이쪽이 이용한다.

    ​

    ‘물론 사용했다는 걸 숨길 수는 없겠지만…….’

    ​

    뭐 어쩌겠는가. 목숨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에이트가 그리 생각하며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제 앞에 아무런 방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인간을 발견한 레비탄이 손을 내뻗었다.

    ​

    괴물의 손아귀가 에이트의 몸을 붙잡기 일보 직전,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새하얀 빛줄기가 그대로 레비탄의 손을 녹여버렸다.

    ​

    ─쿠, 오오오오오-!

    “이런, 많이 아픈가 보네.”

    ─크아아아앙-!

    “괜찮아. 다 고쳐줄 테니까.”

    ​

    지이이이잉-!

    다시 한 번 내려온 빛줄기가 레비탄의 반대손을 불태운다. 순식간에 양팔을 잃어버린 레비탄이 미친 듯이 발을 구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한 흔들림 앞에서도, 에이트는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레비탄을 응시했다.

    ​

    “지금은 좀 참아.”

    ​

    잠시 후, 수십 발이 넘는 빛줄기가 지상을 강타했다.

    ​

    ​

    ​

    “─과학자 씨!”

    ​

    에이트의 응원 요청을 듣고서 위치크래프트Witchcraft를 타고 곧장 달려온 아일레는 엉망진창이 된 사막과 대체 뭔지 모를 걸레짝을 들고 앉아 있는 에이트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

    날아오는 아일레를 발견한 에이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녀를 반겼다. 그녀가 타고온 위치크래프트라면 이곳에서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으리라.

    ​

    “여, 아일레. 빨리 왔네.”

    “과학자 씨가 부르시는 데 당연…… 그보다 그건 뭔가요?”

    “이거? 레비탄.”

    “……네? 뭐라고요?”

    “레비탄이라고.”

    ​

    아일레는 에이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대체 저 걸레짝이 어딜 봐서 레비탄이라는 말인가? 차라리 도축한 돼지를 몽둥이로 마구 매질하고 짓밟은 거라고 하는 쪽이 신빙성 있었다.

    ​

    그러나 에이트가 이런 농담을 제게 건넨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바. 아일레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실 저 고깃덩어리를 계속 보고 있기에도 조금 그랬다.

    ​

    “……뭐, 알았어요. 일단 빨리 본부로 돌아가죠. 보스가 지금도 걱정하고 있다니까요?”

    “그래. 돌아가자. 가서 할 말이 많으니까.”

    ​

    에이트는 그 길로 곧장 본부로 복귀했다. 하늘을 나는 위치크래프트를 타고 도망쳐버리니 주변에서 에이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오메가 인더스트리의 수인들은 닭 쫓던 개마냥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무사히 본부에 도착한 에이트는 곧장 제 연구실에 레비탄을 데려다놓은 뒤 회장실로 향했다. 도착한 회장실에선 레갈리아가 분노에 휩싸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

    어린 소녀의 분노였지만 전혀 우습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에이트는 보스에게 이런 면모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

    “─그래. 오메가 녀석들에게 공격당했다고.”

    “예. 그 과정에서 레비탄 씨가 배신하긴 했는데…… 본의가 아닌 듯 했습니다. 이건 제가 치료한 이후에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를 납치한 후엔 레비탄을 고문까지 했고?”

    “제가 아프진 않았지만요.”

    “후후, 그래. 그렇단 말이지.”

    ​

    웃음을 터트리는 레갈리아를 보며 에이트는 그녀의 화가 벌써 풀렸나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분노하면 오히려 냉정해진다고 했던가.

    ​

    레갈리아가 딱 그런 상태였다.

    ​

    그녀는 곧장 수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무어라무어라 지시를 끝마친 레갈리아는 통화를 끊은 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여의 부하를. 악의 조직을 건드리는 게 무슨 의미인지 똑똑히 알게 해주겠네. 과학자? 자네는 레비탄의 치료를 우선시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보스.”

    “그럼 나가보게나. 후후, 후후후- 짐승들 피눈물이나 쥐어 짜는 천것이 감히 여를 건드려……?”

    ​

    후후거리는 보스를 뒤로 하고서, 에이트는 제 연구실로 돌아왔다. 약에 깊게 담가둔 레비탄의 신체는 어느새 조금씩 재생하고 있었다.

    ​

    그러나 이대로 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했던 행동이나 뮤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어떤 연구소의 실험체요, 그 실험체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영영 노예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

    ‘유전자 단위의 치료…… 조금 힘들겠네.’

    ​

    그렇지만.

    이것도 모두 동료를 위한 일이다.

    에이트는 그리 생각하며 메스를 들어올렸다.

    ​

    ​

    * * *

    ​

    ​

    “─실패했다고?”

    “죄송합니다. 보스.”

    ​

    오메가 인더스트리의 사장이자 Z 시를 지배하는 주인. 오메가는 뮤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실패한단 말인가?

    ​

    그가 제 부하에게 허락한 금액은 일개 연구원이 거절할 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설령 그 금액으로 스카우트하는 게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과학자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

    그런데 감히 제 명령을 실패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왕에 대한 항명이었다.

    ​

    하지만, 뒤이어 이어진 말을 들은 오메가는 그의 실패를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

    “Z 시까지 납치하는 건 성공했습니다만, 실패한 줄 알았던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대뜸 나타나는 바람에…….”

    “……L 시리즈의 성공작?”

    “예, 그렇습니다.”

    “그게 성공했을 줄이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L 시리즈가 성공했었단 말을 들은 오메가는 뮤의 실패를 인정해주었다. 아예 사라진 줄 알았던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나타났다는 소식의 기쁨이 뮤의 실패가 가져다주는 분노를 내리눌렀기 때문이다.

    ​

    흠흠- 헛기침 몇 번 내뱉은 오메가는 다음 번에는 실패하지 말라고 근엄하게 명령했다.

    ​

    “이미 한 번 실패한 이상 경호는 지난 번 이상으로 강해졌을 거다. 어떻게든 이를 뚫고서 그 녀석을 데려오도록. L 시리즈의 성공작도 될 수 있으면 데려오고.”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가보도록.”

    ​

    뮤를 내보낸 오메가는 제 여자들이 따라주는 와인을 훌쩍였다. 설마 L 시리즈의 성공작이 나타나다니? 그 계획이 성공했다는 뜻은 지금이라도 재연구를 시작해서 자신의 힘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

    이딴 구석진 Z 시가 아니라, 모든 도시를 제 손아귀 아래에 둘 수 있다는 뜻…… 모든 도시의 주인. 황제. 그 감미로운 단어에 오메가는 취하고 또 취했다.

    ​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악-!

    ​

    그러나 그 취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오메가의 심기를 거스르는 잡음이 귓가를 가득 지배한 것이다. 오메가가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제 부하에게 눈짓하는 것보다 빠르게, 그가 있는 방의 문이 단번에 박살나며 안으로 휘이익-! 날아 들어왔다.

    ​

    그 모습을 본 오메가는 인상을 파악 찌푸리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수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표정을 굳혔다.

    ​

    “……가, 갈름?”

    “오랜만아구나. 털 달린 백수 새끼야.”

    “네가 어떻게…… 분명 회복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

    오메가가 놀라서 소리치는 가운데, 갈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

    “회복했지. 보스의 도움으로.”

    “말도 안 돼. 네 몸은 부상이나 질병이 아니라 그저 녹슨 걸 텐데-! 바꿔 끼우기라도 하지 않는 한 고칠 수 없어!”

    “있더라고. 바꿔 끼우지 않고서도 나를 고칠 방법이.”

    ​

    갈름은 그리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와 술, 약으로 가득한 방은 예전의 오메가가 가장 혐오했던 모습이었다. 

    ​

    “─너나 나나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구나. 은퇴하고나서도 편히 쉬지 못 하고, 서로 이런 꼴이나 봐야 한다니.”

    “허-! 못 쓸 만치 녹슬어서 은퇴한 너랑 나를 비교하는 거냐? 나는 너처럼 못 쓰게 되어서 은퇴한 게 아냐. 내 스스로 거길 기어 나왔지.”

    “왜? 쥐새끼마냥 이런 음침한 곳이 네 취향이었냐?”

    “거기 있는 건 내게 족쇄를 채우는 짓이었으니까!”

    ​

    오메가는 그리 말하며 제 부하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아무리 목청 터져라 소리쳐도 그의 부하가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

    의아함에 잠시 멈칫했을 무렵, 갈름은 제 허리춤에서 머리통 하나를 휙- 집어 던졌다. 익숙한 얼굴. 하관이 뜯겨 나간 뮤의 머리였다.

    ​

    “─그 거북이 새끼. 껍데기는 튼튼하더군. 그러나 내 발톱을 막을 만치 튼튼하진 않았고.”

    “……다 죽였나?”

    “글쎄다- 우리 보스가 사람 죽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하- 인종차별자라는 말을 참 돌려서도 말하는 군.”

    “먼저 사람을 문 짐승 새끼는 도축해야한다고 하시더군.”

    ​

    갈름은 그리 말하며 제가 여기까지 온 용건을 꺼내들었다.

    ​

    “─오메가. 너는 우리 악의 조직을 건드렸다. 그 대가를 똑똑히 치러라. 이게 보스의 전언이다.”

    “내가 언제 너희를…….”

    “기억이 안 나나? 당장 오늘 있었던 일인데?”

    ​

    갈름의 말을 들은 오메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까 전 뮤에게 들었던 보고를 떠올렸다. 이블스 사의 과학자와 L 시리즈의 성공작.

    ​

    대체 어째서 실패했나 했더니만…… 이런 뒷사정이 있었나.

    ​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깨달은 오메가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휙- 내던졌다.

    ​

    “하, 으하하하-! 그래, 갈름! 현역 때부터 너랑은 한 번 붙어보고 싶었지!”

    “선배라고 불러야지. 건방진 백수 새끼야.”

    “네가 전성기의 힘을 회복했다고 한들, 혼자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모든 생물의 끝이자 종점! 오메가다아아아!”

    ​

    오메가가 그리 소리치며 갈름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하늘에서 빛줄기가 쏘아져 내렸다. 강렬한 에너지 파동에 휩쓸린 오메가가 바닥을 구르는 가운데, 구멍난 천장으로부터 마법소녀가 사뿐히 내려왔다.

    ​

    “─미안하지만, 혼자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거든.”

    ​

    갈름은 그리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악의 마법소녀는 그런 갈름의 뒤를 엄호하며 조심스레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

    “갈름 씨. 빨리 끝내도록 하죠. 1분 1초도 더 있기 싫은 동네라.”

    “그러지. 간다. 건방진 후배야.”

    ​

    “……망할.”

    ​

    바닥을 구르던 오메가는 저를 향해 달려오는 갈름이요 악의 마법소녀를 보면서 제 미래를 직감했다. 사라져가는 의식 속으로, 그는 자신이 누굴 건드렸는지에 대해 깨달았다.

    ​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악의 조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말 푸짐하게 넣어드렸습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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