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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크라슈가 에벨아스크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서에 의해서였다.

   어느 날 창공의 세대가 머물던 막사에 데려온 에벨아스크.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녀는 모든 이들을 어려워했다.

     

   정정하자.

   정확히는 모든 이를 피해 다녔다.

   그녀는 막사 밖으로 절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창공의 세대는 세계 침식자인 그녀를 좋게 취급하지 않았다.

   아서가 데려왔으니 쓸모가 있을 거로 생각해 옆에 뒀을 뿐.

     

   크라슈 또한 초반에는 그녀와 거의 대화한 적 없었다.

   단지, 세상에 딱 하나 있는 네크로맨서라는 것만 알 뿐.

     

   하지만 어느 날 크라슈도 그녀와 대화를 텄다.

     

   「너는 나보다도 저주 받은 몸이구나? 약골이네.」

     

   에벨아스크 특유의 우쭐거리는 말을 시작으로 말이다.

     

   크라슈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남자.

     

   그는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의 12호 시체였다.

   그런 그의 가슴 팍에는 까마귀 문신이 하나 박혀 있었다.

     

   ‘제국 뒷면의 세계를 지배하는 가문이라더니.’

     

   실상은 그저 시체로 이루어진 집단이었을 줄이야.

   하긴, 어찌 보면 네크로맨서야말로 암살에 가장 용이할지도 몰랐다.

   

   시체는 암살자와 달리 잡힌다 한들 아무런 정보도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밤 까마귀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 때문이었군.’

     

   시체를 주워 먹는 까마귀.

   네크로맨서인 에벨아스크를 딱 지칭하는 말이었다.

     

   “네이밍 센스하고는.”

   “어, 응?”

     

   12호가 돌아보자 크라슈는 손을 휙휙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행동했다.

     

   12호는 떨떠름한 반응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는 지금 크라슈를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크라슈는 자기 어깨 위에 있는 크림슨가든을 힐끗 보았다.

   크림슨가든은 에벨아스크와 같은 세계 침식자다.

     

   그녀라면 에벨아스크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크림, 넌 에벨아스크를 몰라?”

   [ 난 나보다 약한 놈은 모른다. ]

     

   오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크라슈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안다.

     

   ‘하긴, 세계 침식자는 애초에 같은 동료 같은 게 아니니까.’

     

   모를 만도 했다.

     

   “다 왔어.”

     

   그러는 순간 12호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낡은 문과 건물이 있었다.

     

   세계 유일의 네크로맨서가 머무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건물이었다.

   그 순간 안쪽에서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12호가 문을 열었다.

     

   이윽고, 펼쳐진 것은 과할 정도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바깥 외견과는 전혀 다른 내부였다.

     

   허영심이 그득해 보이는 방을 보던 크라슈는 혀를 찼다.

     

   ‘어차피 방 한구석에서 나오지도 않는 녀석이.’

     

   단순히 멋지고 큰 집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이렇게 해놓은 거겠지.

   예나 지금이나 참 변함없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크라슈는 12호의 안내를 계속 따라갔다.

     

   그리고 어느 방 앞에 도착한 순간 12호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데려와 줬으니까 이제 말해줘. 내 심장을 어떻게 되찾아오겠단 거야?”

     

   12호의 입을 빌려 말하는 에벨아스크를 보고, 크라슈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내 말을 제대로 안 들었냐? 금붕어도 아니고.”

   “그, 금붕어?”

   “내 스킬은 널 직접 만나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을 텐데. 문 부수기 전에 열어라.”

     

   크라슈는 두 번 말하게 말하지 말라는 양 와락 인상을 구겼다.

   왜냐하면 그녀가 지금 자신을 들이기 싫어서 이러는 거란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 성격 나쁜 녀석 같으니. 흰병아리 아이에게는 그렇게 친절히 구는 녀석이 누가 보면 다른 사람인 줄 알겠어. ]

     

   그러자 옆에서 크림슨가든이 키득 거리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에벨아스크는 강압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것은 크라슈가 당시에 철저히 깨달은 것이었다.

     

   이 녀석은 좋게 말하면 본인이 위에 있는 줄 알고 우쭐거린다.

   그 꼴은 보기 싫었다.

     

   “히잉, 힉.”

     

   문 안쪽에서 움찔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방문이 아주 살짝 열었다.

   크라슈는 그사이로 손을 확 집어넣어 문을 열어버렸다.

     

   답답한 건 질색이었다.

     

   “꺄악!”

     

   그 순간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 뒹군 여성이 곧바로 바닥에 널려 있던 담요 사이로 머리를 박았다.

   크라슈는 그런 그녀를 보다가 옆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텁하니 앉았다.

     

   방 꼴은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저기 먹은 음식들이 치우다 만 채 널려져 있고, 방안 가득 쌓아 놓은 책은 위태위태했다.

     

   깨끗한 바깥 복도와는 다른 처참한 방을 보며 크라슈는 경멸한 표정을 지었다.

     

   “좀 치우고 살아라.”

   “나, 남이사!”

     

   자기 방을 보였다는 것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사람 눈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운 듯 곧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그에 따라 검은색과 주홍색이 섞인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얼마나 머리를 정리 안 했는지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거기다 옷은 쓸데없이 부풀어 올라 있는 가슴 탓에 목이 다 늘어난 셔츠는 덤이었다.

   

   

   

   

     

   참,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 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세계 유일의 네크로맨서.

   에벨아스크 베나포치였다.

     

   그리고 그녀가 저런 폐인 꼴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이 원해서였다.

     

   “됐고, 고개나 좀 들어봐.”

   “무, 무슨 짓을 하려고?”

   “말했잖아. 내 스킬은 직접 봐야 확인 가능하다고.”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제비꽃 색깔인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초조한 듯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게 무척이나 거북하다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곧 무언가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눈이 작으니까, 눈을 안 보는 거 같아.”

     

   아무래도 크라슈의 변장 탓인 듯하였다.

   쓸데없는 소리를 무시하고, 크라슈는 블랙 후드를 발동 시켰다.

     

   ‘대상은 심장.’

     

   본래라면 그녀에게 있어야 할 심장이다.

     

   그 순간 크라슈의 눈앞에 다섯 개의 다이얼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즉시 크라슈는 역시라고 확신했다.

     

   ‘심장의 본 소유주는 에벨아스크니까.’

     

   제국 황실이 그녀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진짜 소유주는 결국 에벨아스크기에 블랙 후드가 발동된 것이었다.

     

   그 말은 즉 다이얼을 풀면 에벨아스크의 심장을 블랙 후드로 가져오는 게 가능했다.

     

   “어, 어떤데?”

     

   에벨아스크는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국 황실에 잡힌 지 천년.

     

   그들의 도구로서 제멋대로 굴려진 그녀는 언제나 심장을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심장을 되찾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일하기 싫으니까.

     

   제국은 방을 마련해주고, 편의를 봐줬지만, 그녀는 일하기 싫었다.

   그냥 책만 읽으며 방에서 뒹굴거리는 게 그녀의 소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에벨아스크는 선뜻 크라슈를 들였다.

   왜인지 자신을 다 꿰뚫고 있는 소년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모른다면 그냥 시체로 만들어 암살조에 넣을 뿐이었다.

   마침, 어깨에 까마귀도 있으니 그야말로 딱이었다.

     

   ‘그런데 까마귀 너무 노려보지 않아?’

     

   까마귀와 눈이 마주친 에벨아스크는 고작 새한테 밀릴 생각이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까마귀가 그녀를 보고, 코웃음 치며 날개를 펼치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 까마귀도 무서웠다.

     

   “가능해.”

     

   그 사이 크라슈가 그녀가 원하던 대답을 들려줬다.

     

   “저, 정말로?”

   “그래, 대신 에벨아스크 네가 나에게 심장을 양도해 주겠다는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

     

   다이얼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공법, 다이얼의 조건을 따라 해지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상대의 허락을 맡는 법, 상대가 온전히 마음마저 전부 허락한다면 다이얼은 전부 사라진다.

     

   ‘그러나 이건 생각보다 까다롭지.’

     

   상대가 말로 허락한다 한들 심적으로 완전한 허락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이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심리적인 부분이 생각보다 걸림돌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자기 뜻대로 조종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허락, 어떻게 허락해? 허락할게!”

     

   에벨아스크는 서둘러 그리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다이얼은 여전히 다섯 개다.

     

   자기 심장을 양도한다는 말이 내뱉기야 쉽지 진짜로 주는 건 어려우니 말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네가 진심으로 그리 여겨야만 한다.”

   “어, 어어, 진심으로?”

   “그래, 진심으로.”

     

   에벨아스크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며 크라슈는 쯧하니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 텁하니 앉았다.

     

   크라슈와 바로 앞에서 마주하게 된 그녀가 당황하는 사이 크라슈는 그녀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에벨아스크, 지금부터 잘 상상해봐라.”

   “어, 으응.”

   “넌 일하기 싫지?”

   “당연하지!”

     

   이제껏 중 가장 힘찬 목소리로 에벨아스크가 대답했다.

   역시나 그녀다웠다.

     

   “네가 심장을 되찾게 되면 너는 매일 이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지낼 수 있어. 시체들에게 네 수발을 맡겨 놓고 말이야. 적당한 온도의 방에서 책도 한가득, 밥도 아무거나 먹으며 허송세월할 수 있지.”

     

   에벨아스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줄곧 그런 미래를 원해왔던 그녀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심장을 되찾지 못하면 넌 평생 제국 황실의 일을 도와야 해. 매일 같이 일하고, 또 일해야겠지.”

     

   그리고 그녀의 낯빛이 나빠졌다.

   천년을 겪어 온 일이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토하고 싶어.”

     

   상상만으로 메스껍다는 듯 그녀는 그리 반응했다.

     

   “그렇게 매일 일하는 생활로 계속 살 거냐?”

   “시, 싫어. 난 이제 더 이상 일하기 싫어.”

   “그럼 나한테 심장을 진심으로 양도해야 해. 네가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서.”

     

   크라슈가 속삭이자 에벨아스크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러곤 그녀는 조심스레 크라슈를 올려다보았다.

     

   이 소년에게 심장을 건네주면 자신은 영원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

   최소한 지금과 같이는 살지 않을 거다.

     

   남의 명령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그녀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 생각한 그녀는 크라슈에게 말했다.

     

   “내 심장을 양도할게.”

   “더 확실하게.”

   “내 심장을 양도할게!”

   “더, 네가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확실히 말해.”

     

   크라슈가 한 번 더 재촉하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머리까지 숙였다.

     

   “제발 제 심장을 가져가 주세요!”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던 모든 다이얼이 일순간 풀려나갔다.

     

   “됐군.”

   “되, 된 거야?”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올려다보자 크라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녀석 같으니.’

     

   마음 여는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운 과정인데 에벨아스크 녀석의 일하기 싫다는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 어서 당장 돌려줘!”

   “내가 왜?”

     

   하지만 정작 크라슈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였다.

   에벨아스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크라슈는 기막힌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거래야. 에벨아스크, 내가 네게 심장을 되찾아주는 건 일이 다 끝나고 나서라고.”

     

   물에서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니 뻔뻔하기는.

     

   “일이라니. 또 일하라고? 이 악마! 나쁜 놈! 싫어! 난 일하기 싫다고!”

     

   그러자 그녀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그러고 있는 꼴은 그야말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꼴을 길게 봐줄 생각이 없는 크라슈는 오러를 담아 바닥을 쿵 찍었다.

   그제야 움찔거린 그녀가 눈치 보며 구르기를 멈췄다.

     

   “어리광도 적당히 부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들어 주고, 너는 내가 원하는 걸 들어 주면 돼. 그럼 거래는 끝이야. 넌 자유라고.”

     

   이 간단한 것을 왜 모르냐고 크라슈가 쏘아보자 그녀는 양 주먹을 꾹 쥐었다.

     

   “원, 원하는 게 뭔데?”

     

   그녀는 뭔가 깨달았는지 자신의 가슴팍을 가렸다.

     

   “서, 설마! 어린애는 취향이 아니야! 더 커서와!”

   [ 깔깔, 음탕한 년이구나. ]

     

   크라슈는 그녀를 경멸하는 눈으로 보았다.

     

   “맨날 관능 소설이나 보니 저딴 소리를 하지.”

     

   에벨아스크의 어깨가 굳었다.

     

   “그, 그런 거 안 보는데!”

   “네가 깔고 앉은 소설 제목이나 숨기고 말해.”

   “꺅!”

     

   그녀는 허둥지둥 소설책을 담요 안에 밀어 넣었다.

   그 꼴을 한심하게 보던 크라슈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거래는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야. 시그린이 네게 말한 계획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저지하는 걸 돕는 것까지. 그거면 너도 심장을 되찾고 자유다.”

     

   더는 헛짓거리 하지 말라는 듯 크라슈는 에벨아스크를 향해 말했다.

     

   “그러니 시그린이 너한테 뭘 시켰는지나 말해.”

     

   크라슈의 말을 듣고, 에벨아스크는 잠시 머뭇거렸다.

   시그린은 황실에 대대로 내려오던 자기 심장을 찾아 제 손에 쥐었다.

     

   그런 이상 그녀는 심장을 되찾기 전까지 평생 시그린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벗어나려면 크라슈의 도움은 꼭 필요하리라.

     

   “세라 베텔라.”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서 시즐리의 수행원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녀를 죽여 줄 테니 그녀의 시체를 이용해 시즐리 에파니아를 죽이라 했어.”

     

   그리고 생각보다 더 터무니없는 계획이 튀어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쁜넘들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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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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