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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황녀 호위, 배신자 색출, 성국 구원, 그리고 이번 아카데미 침공 사건까지.

하나같이 큼지막한 공적이고, 내가 파티의 구심점인 건 맞지만. A급 모험가인 마리아가 거의 다 했을 거라며, 나는 묻히는 게 일반적이었을 거다.

실제로 전투에서 직접 활약한 건 마리아나 아스트레아의 역할이 컸기도 하니.

그러나 황실은 판단을 달리하여. 나랑 아스트레아, 둘 다 마리아와 같은 A급으로 올려다 놨다.

아무래도 료나를 구해준 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겠으나.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모험가 등급을, 과연 그거 하나만 가지고 조정했을까.

‘마침 시기상 곧 S급 모험가 승급 시험이었지.’

이건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밀어주는 거다.

당대는 제국 역사 최초로 황로가 넷이나 되는 역대급 황금 세대. 그럼에도 인재를 고파하는 건 일견 자연스러우나.

개인 특성을 개방하며 세운 추측이 있었기에. 마냥 가볍게 보기 어려웠다.

‘마왕, 정말로 부활하는 건가. 어쩌면 황실도 이 사실을 예측하고 있고···.’

어찌 됐든. 기왕에 받은 건 잘 챙겨 먹도록 하자.

원래는 마리아만 S급 모험가로 데뷔시키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계획 중이었는데. 일행이서 다 같이 도전할 수 있게 된 거 아닌가.

“마리아는?”

“아해는 따로 할 것이 있어,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했느니라.”

당장은 행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단순히 놀라고 준비된 게 아닌, 황실에서 내 입지를 챙겨주고자 계획한 일종의 정치극.

그런데도 편한 마음으로 즐겨도 된다면야. 잠시만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저씨 허수아비예요?”

말로는 주인공이 되어달라 들었다만. 정작 따로 뭘 하라고 배정받지는 않아, 아스트레아랑 거리를 둘러보던 중.

한 꼬마가 부모님과 함께 다가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단다.”

“근데 A급 모험가예요? 허수아비는 어엄청 약한데!”

단어 선택은 뼈아플지언정, 악의 없이 그저 궁금증에서 비롯된 질문.

여기에 마주 웃으며 답해주다 보면. 애가 좋아하니 별말은 안 하면서도, 떨떠름한 표정을 어쩌지 못하는 부모가 보인다.

“너도 허수아비 만 번쯤 때리면, 아저씨처럼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와아아!”

이게 황실의 노림수겠지. 이미 몬스터나 마족에게 데일 대로 데인 어른 대신, 아이들을 공략하는 것.

현재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배척해야 하는 적이 아니라, 단순히 좀 신기한 생물일 테니까.

철로 된 내 몸을 때리려는 꼬마를 가까스로 만류한 후. 가는 길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너구나! 아카데미 교수를 때려눕혔다는 게!”

“하하, 네. 자의는 아니었지만요.”

어린애들 못지않게, 모험가의 관심도 상당했다. 그것도 대부분이 아마추어를 벗어난 이들 위주.

릴리시스한테 들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교수 참교육이 그리도 마음에들 들었던 모양.

바로 옆의 거유 미소녀보다도 이목이 쏠리니 말 다했다.

“거기 자네, 가공할 양의 ‘마(魔)’가 느껴지는구나. 혹여 천마신교에 들지 않겠더냐?”

아니, 피할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얘가 한국에서 인상이 참 좋으시다 이런다고 대입해 보니 바로 체감이 됐다. 지금은 심지어 커피도 안 사주네.

“몰라보게 출세하셨군요.”

한편 황녀 호위 임무의 숨은 공신, 알렉산더와도 오랜만에 재회했다.

“저희를 믿고 맡겨주신 덕분이죠.”

악수를 나누는 손길에 시기나 원망은 담겨 있지 않다. 몬스터를 향한 적대감 또한.

분명 성공적일 거라, 릴리시스가 신신당부를 했었지. 기실 성공적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모험가들을 한 명씩 불러서 콩알탄은 왜 던지게 한 거죠?”

“어, 음···이게 설명하자면 긴데요···.”

이상한 오해를 당할 뻔했지만, 아무튼 성공적이었다.

“그대.”

“응? 왜 불러.”

“저기.”

슬슬 행사 부스들을 구경하거나, 직접 참여해 볼까 싶어 둘러보다.

문득 아스트레아가 어느 한 부스를 가리켰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모험가 초청 강연이었다.

“아해 아니더냐?”

그리고 아스트레아가 내민 손가락 끝.

익숙한 보라색 머리가 보였다.

“···마리아?”

* * *

달리 용무가 있어 합류가 늦는다더니. 부스 관리도 아니고, 애들 틈에 섞여서 직접 참여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가운데 맨 앞, 강연자와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딱히 제의를 받은 것도 없을 테고. 자발적으로 신청했다는 건데.’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 갈 때도 나를 문 앞에까지 데려가는 마리아다.

그런 애가, 우리랑 다니는 것도 포기하고 들을 강연이라. 절로 현수막 쪽에 눈길이 갔다.

[베테랑 모험가가 되는 법 (강연자:B급 모험가 폴 네스트)]

내용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다. 내가 알기론 초청된 모험가가 딱히 마리아랑 지인인 것도 아니고.

애초에 신청했다고 받아준 길드도 참 웃긴다. B급 모험가가 하는 강의에서 최연소 A급이 배울 게 뭐가 ㅇ···

‘···설마, 마리아 너.’

가능성 하나가 떠오르는 사이 초청된 모험가가 입장해 강단 위에 섰다.

“안녕, 어린이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코앞에서 마리아를 발견하곤 일순 벙쪘다.

‘네가 왜 여깄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여기선 마리아의 뒤통수밖에 안 보였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뻔히 그려졌다.

“···아스트레아. 일단 옆쪽으로 가서 좀 지켜볼까.”

“알겠느니라.”

이렇게 된 이상 보호자 대열에 합류하는 건 마땅한 수순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마리아만큼이나, 강연자의 당혹감이 더 잘 눈에 들어왔다.

“저는 오늘 어린이 친구들에게 베테랑 모험가가 되는 법에 대해 알려주러 온, B급 모험가 폴 네스트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나는 보았다. B급이 A급한테 베테랑 운운하며 가르친다는 게 되는, 미리 준비해 왔을 인사말을 그대로 말할지 말지 방황하는 찰나의 고민을.

끝내 그가 내린 선택은 정상 진행이었다.

꼬꼬마들 체험장에 생태계 교란종이 숨어있다는 건 그도 알고, 나도 알고, 여기 학부모 모두가 알지만. 눈을 반짝이는 저 모험가 꿈나무들은 아니니까.

“흐응.”

비웃기 직전까지 치달은 소녀의 콧소리에 확신했다.

마리아 쟤, 비틱하러 온 거다.

‘모의 대련 체험장에 안 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하마터면 애들한테 적당히 당해주던 양반들 냅다 실전 훈련 시켜줄 뻔했다.

···이미 도장깨기 하고 온 거 아니지?

“그럼···강연을 시작해 볼게요.”

이런 만화가 떠올랐다.

지하에서 강제 노역을 하는 빚쟁이가 일일외출권을 사용해. 양복을 차려입고 임원급인 척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러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반응을 안주 삼는 내용의.

물론 이건 맥락도 한참 다르고, 대상도 단 한 명이지만. 초래될 각자의 감정은 거의 같을 것이었다.

“이처럼, 고블린 주술사의 마법이 걸린 돌에는 사제의 도움이 필요해요. 동료가 힘을 합쳐,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거죠. 우리 친구들, 이해됐나요?”

““네에-!!””

“? 그거 그냥 마나로 찍어 누르면 되는데.”

‘와.’

내가 이 세계에서 잼민이의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를 육성으로 듣게 될 줄이야.

하물며 단순 악질 훈수라 치부하기 어려운, 현직 A급 모험가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마나량이 많은 A급 이상의 ‘대단한’ 모험가들은 자체 마나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런 최상위 모험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요.”

씨익- 마리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기 말을 인정해 줘서 그런지. 특히 강조된 대단하다는 부분 때문에 그런지.

이후로도 마리아의 비틱 행진은 종횡무진 계속되었다.

“B급을 달기 위해선 보통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딱하다는 눈빛)

“···.”

“오크는 정말 흉폭하고 위험한 몬스터지만-”

“오크가···?”

“움직임이 느리고 눈이 나쁘니 그 점을 노리면 됩느드···.”

“아저씨한테 질문할 거 있는 친구?”

“마리아.”

“···. 네, 질문해 주세요.”

“어떻게 하면 아저씨 같은 훌륭한 모험가가 될 수 있어?”

“마리아···부탁이니까 제발 그만해.”

애들 앞이라 꾹 참고 참던 폴이었으나. 결국에 항복선언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만하면 잘 버텼다. 보살에 준하는 멘탈임을 내가 인정한다.

마리아도 그쯤 되니 본인이 살짝 심했단 걸 깨달았는지, 더는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갔다.

강연 끝나기 5분 전이었다.

“이상으로 강연을 마칠게요. 모두들 들어줘서 고마워요.”

내내 시달렸다는 사실보다도 드디어 벗어날 수 있음에 기뻤을까.

폴의 마무리 멘트만은 홀가분해 보였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 나는 더 열심히 손바닥을 부딪쳤다.

우리 애가 미안합니다. 돌아가서 참새도 못 잡을 뻔하고 울먹인 걸로 놀려줄게요.

“오빠아.”

“요 녀석이.”

“우브으. 왜구래애.”

착하게 수업 마치고 돌아온 학생 행세를 하는 마리아의 볼을 마구 괴롭혔다.

바로 요 입이로구나. 절대로 가챠 게임과 커뮤니티를 동시 병행해서는 안 될 요망한 입이.

“···재미는 있었어?”

“응. 재밌었어.”

재미라도 있었다니 다행이구나.

그리 즐겨놓고 별로였다 그랬으면 이 자리에서 발을 간지럽히려 했는데.

“마리아 이제 모의 대련하러···”

“절대 안 돼.”

“우우.”

마리아를 허리춤에 낀 채. 모여드는 눈길을 받으며 부스를 벗어났다.

아직 행사는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의 말도 뭔가 비틱으로 채워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게 없네요. 기껏해야 저는 다음 화 안 기다려도 된다는 거? 내일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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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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