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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씨발 버러지같은 새끼가, 우리 오빠를 건드려?”

         

         

       살벌하게 뻗어나가는 서늘한 음성.

         

       귀여운 외모와 상반되는 소녀의 거친 입담은, 주변의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아리엘이 누구인가.

         

       평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기로 소문난 아카데미의 인기인이 아니던가.

         

       욕은 커녕, 남에게 상처되는 말조차 꺼려하는 학생.

         

       그런 그녀의 입에서 걸쭉하기 그지 없는 날 것의 욕설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이들은 멍한 얼굴로 아리엘을 응시했다.

         

       특히 라이덴과 레이첼은 눈까지 커다랗게 떠가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지금 우리 애가 무슨 말을 한거야?’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두 사람.

         

         

       허나 아리엘은 그런 둘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라이덴 너머에 있는 앨런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이빨을 거세게 갈며 말했다.

         

         

       “너… 지금 네가 누구한테 검을 겨누고 있는지 알기는 하는 거야?”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닥쳐.”

         

         

       말 같지도 않은 변명에 더욱 분개하는 아리엘.

         

       앨런의 변명이 사실이건 아니건 상관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자신의 오빠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애새끼와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는 오빠만이 보일 뿐이었다.

         

         

       “감히……”

         

         

       아리엘은 중지와 엄지를 모아 강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손가락 간의 파열음이 울림과 동시에, 소녀를 중심으로 강렬한 겨울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세만을 뿌리고 있던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본격적으로 대기의 마나들이 격동했다.

         

       아리엘은 여름이 내린 겨울을 배경으로, 고고히 한 줄기의 영창을 피워냈다.

         

         

       “헌드레드 스피어즈(Hundred Spears).”

         

         

       분명 작게 읊조린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머금은 소녀의 목소리를 고요를 타고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쿠드득, 쿠구구구…!!

         

       아리엘의 주변을 따라 허공으로 백 자루의 얼음창이 생겨났다.

         

       표독스럽게 벼려진 서릿발들은 금발의 소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광경에, 라이덴을 제외한 근처의 모두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리엘은 공중에 떠있는 창들 중 하나를 잡아들며, 새파란 창끝을 앨런에게로 겨눴다.

         

         

       “감히 리시트 공작가를 적대한 죄… 너의 목숨으로 사죄해라.”

         

       “고, 공녀님… 진정하심이…!”

         

         

       앨런은 급하게 아리엘을 설득하고자 했지만.

         

       그의 몸 속에 내제되어 있는 용사의 마나가 그 상황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위험한 분위기가 감지되자, 자동으로 찬란한 금빛의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앨런의 육신.

         

       아리엘은 그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숨을 토해냈다.

         

         

       “하… 진짜 한 번 해보자는 거지?”

         

       “잠시만요, 이건…!”

         

       “원래는 한 대 정도만 쥐어박아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어디 한 곳 정도는 부러트려야 성이 풀리겠다.

         

       그리 중얼거리며 자세를 잡는 적발의 소녀.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처럼 위태로운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아리엘은 ‘서리 폭풍’의 시전을.

         

       앨런은 ‘화염의 파도’의 시전을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있던 그들의 사이를 막아선 것은……

         

         

       “다들 거기까지.”

         

         

       방금까지만 해도 아리엘의 뒤에 서있었던 흑색 머리칼의 소년이었다.

         

         

       “블링크(Blink)×7.”

         

         

       덤덤한 영창과 함께 점멸하는 그의 몸.

         

         

       -파직…!

         

       스파크와 함께 사라진 소년은, 서로를 적대하던 두 사람의 사이로 이동되었다.

         

       순식간에 무대 위로 등장한 라이덴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아공간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달칵…

         

       그리고는 비탄의 검집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비탄이여, 찢어발겨라.”

         

       -마나 디스펠(Mana Dispel)-

         

         

       소년이 시동어를 중얼거리자 사납게 울부짖는 비탄.

         

         

       -키이이이익!!!

         

       고막을 쑤시는 듯한 비명은 텅 빈 하늘 위로 메아리가 되어 울려퍼졌다.

         

       날카로운 소리의 파동은 공기를 타고 날아가, 주위로 존재하는 마나들을 전부 찢어발겼다.

         

       그리고 그 마나에는 당연히 아리엘과 앨런의 마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어라?”

         

       “갑자기, 이게 무슨…?”

         

         

       갈무리하고 있던 마법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당황하는 두 사람.

         

       다시금 술식을 전개해보려 해도 사방으로 흩어져나갈 뿐이었다.

         

       마치, 마나가 그들에게 응답해주지 않는 것처럼.

         

         

       “마나가…”

         

       “모이질 않아…?”

         

         

       그렇게 몇 번이고 마나를 응집시키는데 실패하자.

         

       앨런과 아리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소년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흑발의 소년은 살짝 지친 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

         

         

       “비탄이여, 찢어발겨라.”

         

       -마나 디스펠(Mana Dispel)-

         

         

       시동어를 읊자, 손에 쥐여진 비탄의 검신이 부르르 떨려온다.

         

       나는 녀석이 멋대로 폭주하지 못하도록 꽉 힘을 주며 자세를 고정시켰다.

         

       검면에서 울리는 공명은 점점 더 심해지고.

         

       마침내 팔이 비탄을 따라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쯤.

         

       비탄이 떠는 것을 멈추고는, 귀가 찢어지는 듯한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키이이이이익!!!

         

       “윽…!”

         

         

       귀가 잠시 먹먹해짐과 동시에 눈을 찌푸리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으로 몇 개의 푸른창들이 떠올랐다.

         

         

       -띠링!

         

       [신물 ‘비탄’의 고유 스킬 2번, ‘마나 디스펠(Mana Dispel)’이 발동됩니다.]

         

       [앞으로 30초 동안 주변 대상들의 마나 사용이 억제됩니다.]

         

       [스킬의 재사용 충전 시간은 48시간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47시간 59분 51초]

         

         

       대상을 가리지 않고 30초 동안 마나의 사용을 억제하는 스킬.

         

       충전 시간이 조금 아쉬웠으나, 효과만큼은 발군인 기술이었다.

         

       거기다 디스펠(Dispel)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니, 더욱 메리트가 있다고 해야겠지.

         

         

       “후우……”

         

         

       나는 저릿한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대형 사고를 칠 뻔한 꼬맹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서로의 필살기를 꺼내들더니 충돌하려고 하던 녀석들.

         

       하마터면 둘 다 크게 다칠 뻔 했다.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했으려고.

         

       아니, 내가 없었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시발…

         

         

       ‘퇴원하자 마자 이게 뭐하는 짓인지…’

         

         

       순간 몰려오는 피로감에 마른 세수를 하고 있으면, 아리엘의 어벙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오빠… 이거, 오빠가 한거야…?”

         

         

       이거, 라는건 디스펠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아리엘의 물음에 말 대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붉은색 눈동자 위로 놀라움의 감정이 서렸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마치 참치캔을 발견한 고양이를 보는 듯 했다.

         

         

       ‘……그래, 저런 아이한테 화를 낼 수는 없지.’

         

         

       따지고 보면 기특한게 아닐까.

         

       사고를 칠 뻔하기는 했지만, 어쨌건 나를 위해서 나서준 거였으니까.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한 번 내뱉고, 이번에는 앨런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녀석은 뒤늦게 정신이 든 것인지, 검을 내린 채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한 번 짚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하지, 둘 다 너무 과열된 것 같군.”

         

       “……죄송합니다.”

         

       “알기는 아는군 그래.”

         

         

       감히 일개 자작가의 삼남 따위가, 공작가의 장남에게 검을 겨누다니.

         

         

       “라인하르트 영식. 방금 그대의 행동은 제국에 거대한 혼란을 초래할 뻔 했다.”

         

       “예? 그게 무슨…?”

         

       “주변을 둘러봐라.”

         

       “……아.”

         

         

       자신의 옆에 서있는 일행들을 보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듯이 헛숨을 흘리는 앨런.

         

       녀석의 주위로는 제국의 황녀들과 성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황실과 교단이 리시트 가문을 적대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뻔했다.

         

       제국이 겨우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에, 이런 정치적인 불화가 일어난다면 정세가 어수선해졌겠지.

         

         

       “아리엘이 흥분했던 것은 인정하나… 그대가 검을 겨눈 그 시점부터, 잘못은 그쪽에 있었던 것이다.”

         

       “……예.”

         

       “격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한다면, 스스로부터 격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망나니였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양심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해줘야겠지.

         

       네가 이런 미숙함들을 이겨내고, 끝내 진정한 용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참아야하는 거겠지.

         

         

       ‘그래, 그게 맞는거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를 그리도 경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과 사는 단호히 구분하도록 해라.”

         

         

       마음이 가라앉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씁쓸한 감정들을 애써 지워내며, 무표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너무나도 익숙한 몰골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아서.

         

         

       “이 일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치르게 하겠다.”

         

         

       나는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다시금 침묵이 시작되고, 불편한 분위기가 일렁이던 와중.

         

       타이밍 좋게 마차 한 대가 정류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차가 오고 있군. 귀한 분들을 모시고 먼저 가도록 해라. 우리는 다음 차를 탈테니.”

         

         

       내가 그리 말하며 한 발자국 물러서자, 앨런은 일행들을 데리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이 마차에 몸을 실고 있던 때.

         

       가장 마지막으로 마차에 오르고 있던 루시와 시선이 마주쳤다.

         

         

       “……”

         

         

       소녀는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섬뜩한 무언가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한껏 겁에 질려있는 눈이었다.

         

       그녀는 흠칫 몸을 떨며 내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이 마차에 올라탔다.

         

         

       -털컥…

         

       마차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매정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녀가 단절해낸 관계의 문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히히힝!

         

       사람이 모두 탑승하자 힘차게 출발하는 마차.

         

       나는 마차가 한참 멀어질 때까지도 그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골목에 접어들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즈음이 되어서야.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하나의 물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왜.”

         

         

       대체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너는… 분명 내가 구해준 사람인데.

         

       내가 온몸을 던져, 피투성이로 만들면서까지 구해줬던 사람인데.

         

       왜 전생의 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까.

         

       대체.

         

       어째서.

         

         

       “……”

         

         

       당연하게도 메아리치는 물음에 돌아오는 답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잔잔한 울림에 남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를 두려움에 젖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한 쌍의 푸른 눈동자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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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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