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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29 – 신뢰의 맛>

     

    운이 좋았다.

    네 명 중에 네 명이 다 술래에 걸렸으면 좋은 전략을 지니고도 도망자를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꽤 들었을 텐데, 우리 팀은 딱 한 명만 술래에 걸렸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0점이었는걸요.”

     

    그게 바로 나야.

     

    “쥐방울 녀석. 애가 뭐 이리 착하냐? 요즘 것들은 다 약아빠진 줄만 알았는데. 가끔은 스스로를 좀 챙기기도 하고 그래야 인생 살기 쉽다, 이놈아.”

    “‘아기꽃사슴’ 챙기듯이요?”

    “…….”

     

    흥. 당신은 아무리 놀려도 자업자득이야.

    그쪽이 먼저 목마로 나 괴롭혔다고?

     

    “그래도 우리 작전은 네 명 전원이 최대한 많은 점수를 모은 뒤에 탈출하는 거였어. 오크노디가 얼른 도망자를 찾도록 도와줘야해.”

    “하. 그래서 방법은 있냐? 죄다 서로 접촉도 안 하려고 하는데. 누가 도망자인줄 알고?”

     

    술래잡기 보조과제를 의식해서인지 이전까지도 점수 때문에 서로 경계하던 응시생들이 이제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종적을 감췄다.

     

    [풍부한 숨기 경험 덕분에 은신지점 <큰 바위 밑>을 찾았습니다.]

    [관찰 경험치+1]

     

    [경험해본 숨기장소인 <나무 위>를 찾았습니다.]

    [관찰 경험치+1]

     

    [솜씨 좋게 덤불로 위장한 응시생을 발견했습니다.]

    [관찰 경험치+1]

     

    나는 덤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덤불로 위장한 응시생이 흠칫 놀랐다.

     

    “흠흠~ 으흠흠~”

    “오크노디양. 거기서 뭐하십니까?”

    “열매라도 있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넌 도망자니 술래니?

    간을 보려고 슬쩍 티켓시계를 찬 팔을 바로 옆 덤불에 뒤적거렸다.

     

    콩닥. 콩닥.

     

    심장 뛰는 소리가 다 들린다.

    덤불로 위장한 응시생의 눈에 비장한 각오가 어렸다.

     

    “얍!”

    “응 피했죠?”

    “헉, 오크노디양!”

    “어… 근데 이걸 말려야 되나?”

    “일단 지켜보지.”

     

    습격자는 재주껏 덤불 자른 조각을 가죽갑옷 이음매에 꽂아서 덤불로 위장했다.

    발상은 좋았다.

    시도도 나쁘지 않았다.

    위험하다 싶은 사람은 위장술로 피하고 만만하다 싶은 사람은 덮쳤겠지.

    그렇지만 저 정도의 실력으로는 나처럼 감이 좋은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너,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혼자만 달랐는걸요.”

    “크으읏, 분하다. 숲지기인 내가 이런 어린 아이에게 위장을 들키다니.”

    “위장은 나쁘지 않았어요. 제 실력이 더 좋았을 뿐이죠.”

    “처음이야. 내 위장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간파한 사람은. 악수, 받아주지 않을래?”

     

    씨익 웃으며 손을 내미는 덤불녀.

    손을 마주잡자 그녀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헤헹! 이 바보. 너희가 3차 보조과제를 치르러 들어갔던 모습은 아까 전에 봤다고. 악수도 ‘터치’의 일종. 넌 이제 술래야!”

    “풉. 언니 바보에요? 술래가 술래를 잡으면 어쩌자는 건데.”

    “뭐어어?!”

     

    술래는 도망자의 점수를 빼앗는다.

    여기서 <도망자>의 진짜 정체는 <검은모자 교관>.

    응시생이 응시생을 터치하면 술래가 술래를 터치하는 꼴이 된다.

    룰에는 명시되지 않은 히든룰.

    그때의 규칙도 동일하다.

     

    [점수변동 이전]

    <도로시 -82점>

    <오크노디 -25점>

     

    [점수변동 이후]]

    <도로시 -107점>

    <오크노디 0점>

     

    술래가 술래를 터치해도 점수를 빼앗는다.

    대신, 빼앗는 점수가 이미 마이너스였다면 마이너스가 늘어날 뿐이지.

     

    “아아악! 이게 모야!”

    “풉풉~ 완전 바보!”

    “이건 사기야! 술래면서 어째서 다른 응시생들이랑 태연하게 같이 다닐 수가 있냐고!”

    “우린 동료니까요?”

    “동료? 확실한 이권과 신용으로 묶인 귀족연합이나 용병연합도 아니면서 뭘 믿고 배신을 안 해?”

    “동료끼리 믿음에 이유가 필요해요?”

     

    이 사람들은 전부 바보에다가 호구라고.

    배신을 해도 내가 먼저 했지, 지젤이나 손오천, 이사벨이 나를 먼저 배신해?

    절대 그럴 일은 없을걸!

    도로시는 그런 당찬 내 대답에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완패야. 사람을 그렇게까지 신뢰할 수 있다니. 부러울 정도야. 내 동료들도 너희처럼 착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도로시 씨도 동료가 있었어요?”

    “배신당했어. 술래인 녀석이 숲지기 따위는 필요없다고 날 터치하고 나머지 애들이랑 같이 도망갔거든. 티켓시계를 찢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라나?”

     

    그건 꽤 억울하겠네.

     

    “고향에서부터 함께 해 온 친구라서 믿었는데 이 꼴을 당했어.”

    “안됐다.”

    “그러니 너도 조심해. 네 동료들, 출신도 제각각으로 보이는데, 고향친구도 배신하는 마당에 낯선 동료라고 배신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을 거야.”

     

    저 세 사람에 한해서는 그럴 걱정은 없지만 충고는 감사히 받아두었다.

    좋은 뜻으로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한테 악감정을 품을 이유야 없지.

     

    “그 배신자들. 어디로 갔어요?”

    “저쪽. 남녀 한 쌍에 아주 순 나쁜 놈들이야. 잡을 거라면 여자보단 남자 쪽을 잡아주면 좋겠어.”

    “왜요?”

    “걔가 내 고향친구거든. 여자는 우리 숲의 모피를 사러 오는 상단주의 자제인데, 모험에 도움을 줬던 착한 애야. 분명 그 멍청이한테 억지로 끌려 다니고 있을 게 뻔해.”

    “…상단이요?”

     

    상단출신 등장인물 중에 출현빈도가 높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캐릭터가 하나 떠올랐다.

    뭐, 보면 알겠지!

     

    “기억해둘게요. 그럼 답례로 저도 보너스 하나.”

     

    나는 도로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가서 입구 쪽에서 검은모자 교관을 찾아봐요.”

    “!”

    “포기하지 않고 운도 따라준다면 분명 어떻게든 통과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진짜라는 사실은 어떻게 믿어?”

    “저는 정보를 알려줬을 뿐이에요.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본인이 직접 판단하세요.”

     

    이렇게까지 온정을 베풀 이유는 없다.

    도로시는 이미 탈락이 확정에 가깝고 그녀를 구한다고 무언가 도움이 될 리도 없으니까.

    그렇지만 도로시의 사정이 마음을 움직였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

     

    고인물들의 이벤트에 대처하는 ‘편법’도 모두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노력과 연구의 부산물.

    도로시는 고향친구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버려지는 충격적인 일을 겪고도 시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근성을 높이 산 결과였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입구를 향해 떠나는 도로시.

    지젤이 호기심을 보였다.

     

    “정말로 교관이 입구에 있습니까?”

    “네.”

    “정보력이 대단하군요.”

    “이 정도야 기본이죠!”

    “후후. 아무래도 오크노디양의 도움이 되려면 제 노력도 훨씬 더 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벨도 말했다.

     

    “착한 아이.”

    “그럼 간식 주세요!”

    “모험가들이 즐겨먹는 간식, 알려줄까?”

    “알고 싶어요!”

    “이런 숲에서 식량을 찾기 힘들 때는 말이야. 색이 검은 개미를 주워 먹기도 해.”

     

    엑. 개미를?

     

    “개미산이라는 산성 액체가 신맛이 나는데, 작은 개체가 만드는 산은 적당히 맛있거든.”

    “거짓말!”

    “정말이야. 대신, 검지보다 큰 개미는 먹지 마. 산이 너무 강해지거든. 위험하기도 하고. 먹을 거라면 이 정도가 딱 좋아.”

     

    손가락으로 개미 한 마리를 쿡 찍어다가 내미는 이사벨.

     

    “너무 야만적이지 않습니까?”

    “으하하. 고용주 양반이 너무 곱상하게 자란 거 아닌가? 자연에서는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야지.”

    “오천아저씨도 개미 먹어봤어요?”

    “3살 때까지만. 그 뒤로는 덩치가 커져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질 않아서.”

    “헤에. 다들 먹는 거구나.”

     

    눈 딱 감고 이사벨의 손가락을 입 안에 쏙 넣었다.

    톡 쏘는 사탕처럼 신기한 맛이 났다.

     

    “조금 짠 것 같기도?”

    “그건 내 손가락의 땀 맛이야.”

     

    이사벨이 겸연쩍어하며 손을 뺐다.

     

    “앗. 시큼하다! 저 이 맛 알아요.”

    “개미는 먹어본 적은 없다고 하지 않았어?”

    “하늘색 사탕이랑 같은 맛이에요!”

    “…그래…”

    “먹을래요? 얘도 입에 넣고 굴리면 재밌는 맛인데.”

    “마음만 받아둘게.”

     

    방금 전까지 자기들도 오랜만에 개미를 먹어보겠다며 땅을 손가락으로 쿡쿡 찍고 다니던 손오천과 지젤이 숙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출발합시다.”

    “그래. 역시 개미로는 배가 차질 않아.”

    “엥. 좀 더 먹고 가면 안 돼요?”

     

    아직 요리도감 수집판정 안 뜬 거 같은데.

    개미산을 모아서 한 번에 가공을 하면 어떻게든 ‘요리’로 판정이 되지 않을까?

     

    “얼른 제대로 된 식재료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오크노디양의 점수도 걱정되고 말입니다.”

     

    실험욕구는 잠시 접어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날 위해서 갈 길을 서두르겠다는데 어쩔 수 없지.

     

    [선행그룹의 동선을 추적했습니다.]

    [추적 경험치+1]

     

    관찰이 필요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대규모 흔적.

    3차 보조과제를 치르지 않고 지나친 시험관과 선두그룹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도로시가 말한 방향도 이에 뒤섞였는데, 발자국이 너무 많고 겹쳐져서 도로시의 동료들의 흔적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깝네.’

     

    대신 다른 흥미로운 흔적을 발견했다.

    갈림길이 나타났다.

    늪 방향은 네 번째 보조과제를 치르러 가는 길.

    평탄한 방향은 시험관을 따라가는 길이다.

    세 번째 과제에서도 많은 인원이 보조과제에 도전한 흔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남은 선두그룹의 대부분이 늪 방향으로 향했다.

    점수압박을 견디다 못한 응시생들이 뒤늦게 행동에 나선 경우였다.

     

    “추가과제인가. 쥐방울아. 치러볼 테냐?”

    “싫어요!”

    “감점이 한 번 리셋되었어도 점수는 많을수록 좋지 않겠냐?”

     

    거듭 말하지만 이 숲은 점수가 문제가 아니다.

    중대사항은 따로 있다.

     

    “늪에는 모기가 많아요.”

    “얼마나 모기를 싫어하는 거야?”

    “아. 그건 나도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해.”

     

    이사벨이 내 뜻을 알아주었다.

     

    “살가죽이 두껍다고 자만하나본데, 댁은 오크노디가 아니었으면 호된 꼴을 겪었어.”

    “이 몸이? 고작 모기 때문에?”

    “숲 속의 습한 늪지대에는 모기가 수백 마리에서 수천 마리씩 모여 다녀. 댁이 살던 숲에는 그런 늪이 없어서 몰랐지?”

    “소름이 다 끼치네. 지옥이냐 저긴?”

    “비슷하지. 게다가 물리면 늪의 부패한 가스를 먹고 자란 모기들이 진화해서 질병모기가 되기도 하는데, 물리면 질병이나 독에 걸려.”

     

    지젤이 갑자기 나를 돌아봤다.

     

    “내성훈련…….”

     

    그 말에 손오천과 이사벨의 눈에도 동요가 어렸다.

     

    “이번엔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얼른 업히시죠, 오크노디양.”

    “와, 정말요?”

    “내가 길잡이를 할게.”

    “오, 오우. 그럼 힘쓰는 일은 이 몸이 맡아주지.”

     

    어째서인지 갑자기 팀워크가 급상승했다.

     

    “술래잡기에 도전한 응시생들도 다른 과제에 도전해서 리스크를 늘리느니, 이쯤에서 시험관을 따라가며 목적지를 파악하고 휴식시간을 가지려 할 겁니다.”

    “앗, 좋은 생각 같아요! 역시 지젤 씨는 만학도 치고는 머리가 좋은데요?”

    “…제가 오크노디양을 업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꿀밤을 먹일 손이 없어서 특별히 한 번만 봐드리는 거니까.”

     

    전속력으로 늪에서 멀어지는 이동속도를 보니 도로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든든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든든한 국밥 맛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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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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