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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29. 위험한 마수

       

       

       

       

       『……?』

       

       놈은 나에게 카운터 따귀를 맞으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해서 당황했는지 잠시 멈춰있다가,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하고 갑자기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따귀를 때린 내 쪽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유저 정보]

        성명 青木 比三朗 (아오끼 히사부로)

        연령 만 33세

        마력 N/A

        각성 N/A

        상태 보통

        [▷메인 화면]

       

       ‘각성자가 아니라고?’

       

       나는 눈 앞에 뜬 상태창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체 접촉을 통해 분석이 완료된 놈의 능력치는, 각성하지 않은 비각성자였던 것이다.

       

       ‘비각성자가 엽사 노릇을?’

       

       그렇게 황당해하고 있는데, 한참을 웃던 녀석은 다시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두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너는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하며,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권총을 빼어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놈이 빼어든 것은 권총이 아니었다. 아니, 권총이 맞긴 한데, 일본군 제식권총에다가 손잡이 위쪽으로 길다란 일본도 검신을 달아놓은 물건이었다. 

       

       ‘저건 대체 뭐야?’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피스톨 소드라고 해야 할까—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칼날이 바로 나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나는 급히 교도를 빼어들어 막았다.

       

       쨍-!

       

       ‘……크윽!’

       

       강기를 힘껏 불어넣었지만 맞부딛힌 칼을 통해 전해진 충격으로 손목이 시큰거렸다. 나는 내심 놀랐다.

       

       ‘비각성자가 이 정도로?’

       

       물론, 21세기에서도 각성자가 전부 헌터가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비각성자 헌터도 드물게 있기는 있었다. 각성 여부와 관게없이 몬스터만 잘 잡으면 그만이기에.

       

       그리고 그것은, 각성하지 않았음에도 본인의 능력이 각성자를 상회할 때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정밀 각성을 얻은 능력자보다 사격을 잘한다던지, 어지간한 근력강화 각성자보다 힘이 세다던지.

       

       그리고 저 녀석의 능력은 아마도…… 검술일 터.

       

       각성능력치는 낮지만 21세기에서 익힌 검술과 지식으로 커버치고 있는 나처럼, 저 녀석 역시 각성능력이 없음에도 본연의 검술만으로 마수를 베어 온 놈이리라.

       

       『센진노구세니 겟꼬 야룬다나(선인 주제에 제법 하는군).』

       

       놈 역시 조선인 짐꾼에 불과한 내가 검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중얼거렸다.

       

       『불사의(不思議)한 검술을……』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예리하게 쇄도해 들어오는 놈의 검격. 그런데, 놈이 검격을 펼치는 속도는 아무리 봐도 비각성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빠르다?’

       

       나는 놈의 검에 주목했다. 놈이 들고 있는 착검권총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정신나간 무기였지만 얼핏 우스운 모양과는 달리 검신만큼은 제대로 된 물건이었고, 검을 맞대었을 때마다 저쪽으로부터 은근한 마력이 전해져왔다.

       

       ‘아무래도, 저 검이……’

       

       놈의 비정상적인 쾌속으로 미루어봤을 때, 신속성을 높여주는 효과라도 부여해주는 아티팩트인 것일까? 여러모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테인레스 교도와는 천지차이인 물건이었다.

       

       그런 효과에다가 놈 본연의 능숙한 검술까지 합쳐지니, 나로서는 놈을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곤란한데.’

       

       이기지 못할 것은 없었다. 다만, 놈에게 아무 상해도 입히지 않고 제압할 자신은 없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은 저쪽이었지만 내가 일본인 엽사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내가 아무리 시마즈 구미의 위세를 업고 있다지만, 조선인인 내가 일본인 엽사를 다치게 하거나 실수로라도 죽여버린다면 렌까도 나를 실드쳐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상대하며 다치지 않게 제압해야 하는데, 저 놈은 막무가내로 내지르던 무라사끼와는 달리 방어에도 역시 빈틈이 없어, 무라사끼에게 역날로 했던 것처럼 다치지 않게 제압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막무가내로 내지르던 무라사끼와는 달리 저 놈은 확실하게 내 급소만을 노리며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놈의 예리한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하다가는 결국 내가 먼저 지쳐 떨어질 것 같았다.

       

       슬슬 이런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냥 팔 하나 잘라버릴까?’

       

       

       

       ***

       

       

       

       ‘베어버리세요, 시라바야시 상!’

       

       백철연이 아오끼와 검을 맞대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바위 뒤에 숨어있는 렌까였다.

       

       백철연이 부탁한대로 수통과 벤또를 가지고 돌아왔더니, 백철연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상대는 무려 아오끼 소좌.

       

       사정은 모르겠지만 백철연과 아오끼가 서로 검을 맞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

       

       더 놀라운 것은, 백철연이 그 아오끼 소좌의 검을 여유롭게 막아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생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오끼 소좌에 비견되는 검술의 실력자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정말로 아오끼 소좌의 검을 받아내고 있다니?

       

       ‘어쩌면…… 시라바야시 상이 이길 수도……?’

       

       렌까는 내심, 간절하게 바랬다.

       

       ‘그래서 아오끼 소좌가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렌까를 옭아매던 약혼의 주박 역시 사라진다. 

       

       십칠 년 평생을 아버지의 뜻대로, 한 번의 반항이나 의심조차 없이 따르며 살아온 렌까였지만, 아오끼 소좌, 저 사내와의 결혼만큼은 결코 따르기 싫었다.

       

       그렇다고 렌까가 아오끼 소좌에게 손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기량으로는 아오끼 소좌와의 승패는 장담할 수 없었고, 만약 실패한다면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약혼자를 죽이려 한 악녀가 되고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만 운명에 순종하며, 애써 잊어두었던 약혼 사실이 이따금씩 떠오를 때면, 배게를 눈물로 적시며 차라리 그가 전쟁터에서 눈먼 총알을 맞고 죽기를 바라던 때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백철연이 이긴다면. 

       그가 아오끼 소좌를 격파해낸다면.

       그래서 아오끼 소좌가 죽게 된다면.

       

       게다가, 여기서 아오끼 소좌가 살해당해도 증거 따위는 남지 않는다. 마침 이곳은 화산동굴 지대. 아오끼 소좌의 시신 따위야 곳곳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에 던져넣으면 그만이다. 

       

       ‘베어버리세요! 팔이든! 다리든! 목이든 관계없으니까!’

       

       렌까는 바위 뒤에 숨어 속으로 외쳤다.

       

       ‘방어만 하지 말고! 공격! 공격! 시라바야시 상!’

       

       하지만 그런 렌까의 간절한 마음이 닿지도 않는지, 백철연은 줄곧 방어 일변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시라바야시 상……’

       

       검술의 기량이 비슷해도 체력적으로 더 뛰어난 것은 아오끼 소좌였다. 백철연이 저렇게 방어만 하다가는 결국 먼저  체력이 소진되어 치명타를 허용하게 될 것이 뻔했다.

       

       ‘……안돼.’

       

       렌까는 문득, 백철연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다치면 안 되죠. 안 되고 말고요, 시라바야시 상. 아직 당신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이 많으니까.’

       

       그래서 백철연이 지쳐가고 있음을 본 렌까는, 결국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둘의 싸움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바위 뒤에서 일어서서 아오끼 소좌를 향해 외쳤다.

       

       『아오끼 소좌!』

       

       

       

       *** 

       

       

       

       『이런, 아가씨. 이 곳에는 무슨 일이신지.』

       

       렌까가 외치며 나타나자, 놈은 검격을 멈추고 렌까를 향해 고개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놈의 오른팔을 베어내려고 각을 잡고 있었던 나 역시 멈추고 둘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쩐지 서로 아는 사이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렌까는 나를 힐긋 보더니, 놈에게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 자는 저의 짐꾼입니다. 그런데 검을 겨누시다니 무슨 일이지요?』

       『이런. 아가씨의 짐꾼인 줄은 몰랐군요……. 저는 그저 주인 없이 홀로 있는 짐꾼이 있기에 주인이 어디있냐고 물었던 것 뿐이었는데, 말이 싸움이 되어서 검을 맞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놈 역시, 나를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며 렌까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가씨야말로 과도하게 강한 짐꾼을 쓰시는군요. 놀랐습니다.』

       『저희 시마즈 구미에서는 보통입니다만.』

       

       렌까는 그렇게 맞받아쳤다. 두 사람이 서로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내는 빙글빙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반면 렌까는 시종일관 차가운 태도로 응수하고 있었다.

       

       렌까는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아오끼 소좌는 왜 여기에 있죠? 여긴 조선인 구역입니다만.』

       

       하고 물었다. 이건 나도 궁금하던 차였다. 일본인인 저 놈이 왜 여기에? 그것보다, 잠깐. 렌까가 저 놈을 부를 때의 호칭이……

       

       아오끼 ‘소좌’라고?

       

       소좌면, 대충 한국군으로 치면 소령 계급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군인, 그것도 장교란 말이잖아?

       

       『아아. 저는 동척 요문개발부의 기미쓰 부장의 요청을 받아서 왔습니다, 아가씨.』

       『기미쓰 부장이요?』

       『예. 조선인 엽사 실종사건에 대해 조사중이었죠. 위험한 마수가 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조선인 구역에 위험한 마수가 있다—나도 들었던 소문이었고, 내가 렌까를 대동하고 조선인 구역에 몰래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저 아오끼라는 녀석도 그걸 알아보려고 했던 건가? 하지만, 렌까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태도로 물었다.

       

       『왜 경찰이 아닌 군인인 당신이 그걸 조사중이었죠?』 

       『아가씨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경찰이 붙으면 마문의 소유주나, 마문 안에서 사냥하는 엽사들에게 여러모로 지장이 생기는지라……』

       

       아오끼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기미쓰 부장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에 제가 요청을 받은 것입니다. 마침 그는 중앙 막사에 있으니 가셔서 직접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

       

       렌까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마땅히 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아오끼는 빙긋 웃으며,

       

       『아무튼 그렇습니다. 조선인 구역은 위험하니 아가씨도 부디 일본인 구역에서 사냥을 즐기시지요.』

       

       하고는, 그 말을 끝으로 렌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

       

       

       

       잡아 둔 마수로부터 마석을 모두 채취하고 베이스 캠프로 되돌아가는 길. 마석 꾸러미를 짊어진 채 앞장서서 걸어가던 나는, 뒤따라 걷는 렌까를 슬쩍 돌아보았다.

       

       아오끼라는 놈과 마주쳤던 이후로 렌까의 표정은 줄곧 어두웠다.

       

       아무래도 렌까와 아오끼가 좋은 사이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여유가 있었던 쪽은 아오끼였고, 렌까는 날이 서있으면서도 뭔가 위축된 듯한 느낌이었다. 

       

       화족인 시마즈 가문 당주의 딸이자 엽사조합 시마즈 구미의 경성분조 분조장인 렌까가 저렇게 위축되어있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렌까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까 그 사람, 아는 사이야? 대체 누구야?』

       

       렌까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무미건조한 어조로 답했다.

       

       『아오끼 히사부로. 만주국 봉천(奉天) 주둔 관동군 7사단 11연대 특무장교. 계급은 소좌. ……그리고,』

       

       렌까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어딘지 시선을 피하며, 그러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의 약혼자입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모골이 송연해지고 내 머릿속에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시발, 나 좆된 건가?’

       

       일본제국의 군인들 중에서도 가장 위세가 드높다는 관동군 장교인데다가, 시마즈 가문의 영애이자 시마즈 구미 경성분조 분조장인 렌까의 약혼자였다니.

       

       아무리 정당방위였다지만, 그런 사람에게 따귀를 때리고 칼싸움까지 벌여버린 나는……

       

       진짜로 좃돼버린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미국런 각인가?

       

       그렇게 두뇌를 풀가동해서 미국 가는 방법을 생각하며 어느덧 베이스캠프에까지 다다랐는데,

       

       『시라바야시 상.』

       

       뒤에서 렌까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나는 평정심을 가장하며 되물었다.

       

       『어, 왜?』

       

       하지만 렌까는 나에게 화난 기색을 드러내기는 커녕,

       

       『다치신 곳은 없나요?』

       

       하고 걱정하듯 물어오는 것이었다. 

       

       『어? 으응.』

       『어제부터 눈여겨 보았지만, 시라바야시 상의 검술은 과연 굉장하더군요. 내지에서도 검술로는 손꼽히는 아오끼 소좌의 검을 막아낼 정도면 말이죠…….』

       

       그렇게 뜬금없이 내 검술을 칭찬하며 말을 이으며 또 물어온다.

       

       『하지만, 너무 방어에 치중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시라바야시 상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반격할 수 있지 않았나요?』

       

       ‘뭐지. 떠보는 건가?’

       

       겉으로 사이가 나빠보일지언정 약혼자는 약혼자. 만약 내가 자신의 약혼자를 해칠 의도가 있었다고 하면, 렌까는 언제든지 나를 묻어버릴 사회적 지위와 힘이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관동군 장교인데다가 네 약혼자라며.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공격해.』

       『……후후! 하지만, 검을 부딪힐 시점에는 몰랐던 사실 아닌가요? 충분히 공격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 나는 누굴 다치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가요? 하지만 남을 해치지 못하는 것 역시 남자로서는 실격인 것이 아닐까요?』

       『아니……』

       

       돌아보니, 렌까는 내가 쩔쩔매는 것이 재미있다는 듯 어느새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물어오고 있었다.

       

       ‘재밌나 이게, 시발.’

       

       나는 쫄려서 죽을 맛인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렌까는 내가 자신의 약혼자와 싸움을 벌였던 것으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는 것이었다.

       

       ‘약혼자라는 그 놈이랑 어지간히 사이가 안 좋은가보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마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렌까의 시선을 피해 베이스캠프를 둘러보니, 어제는 몰랐는데 나름 주변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당이나 휴게실, 거기다 샤워장까지.

       

       ‘생각보다 시설이 잘 갖춰져 있잖아?’

       

       하긴, 21세기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라면 몬스터들을 소탕하는 것만 해도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고, 몬스터 소탕이 끝난 이후에도 자원 채굴 등을 위해서 계속 인력이 상주하게 된다. 베이스캠프에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갖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그냥 하숙방에 돌아가서는 수건에 물 적셔서 몸 닦은게 전부라서 찝찝했지.’ 

       

       시설이 있다면 역시 이용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렌까에게 말했다.

       

       『렌까.』

       『무슨 일이죠, 요보 상-』

       『아니, 아무도 안 볼땐 그거 하지 말라니까. 아무튼, 저기 직원한테 샤워장 쓰는 거 허락 좀 받아줄래?』

       『……? 예?』

       

       아니, 당연히 너랑 같이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고.

       

       『조선인 짐꾼인 내가 샤워장을 이용하겠다고 하면 직원들이 허락해줄 것 같지가 않단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허락받아 달라고.』

       『……그런 것이었나요? 후후……! 그 정도야 물론, 저에게는 쉬운 일이죠.』

       

       결국 렌까가 동척 직원을 불러, 짐꾼이 샤워장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주었다.

       

       『오케이. 고마워. 아무튼 난 씻고 갈테니까, 너는 먼저 돌아가.』

       『……그러죠.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학교에서 뵙지요.』

       

       렌까가 마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것까지 보고, 나는 샤워장 천막으로 들어섰다.

       

       베이스캠프의 다른 시설들과 마찬가지로 천막으로 세워진 샤워장 역시 입구에서부터 조선인과 일본인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이것도 차별이네 싶었지만,

       

       ‘뭐, 일본놈들 안 보고 좋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들어가니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옷을 훌훌 벗고 돌바닥 위에 서서 물을 틀었다. 찬물이었지만 그나마 샤워시설이 있는 것이 어디냐.

       

       그렇게 나름 만족하면서 몸을 씻고 있는데, 조선인 욕실과 일본인 욕실의 가림막 역할을 하는 천막 너머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별 생각 없이 듣고 있자니,

       

       『아오끼 소좌! 폐가 되지 않는다면 같이 들어가시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오끼 소좌가 욕실에?’

       

       나는 호기심이 동해서, 잠시 샤워를 멈추고 물을 잠궈서 끈 채로, 가림막의 이음매를 조금 뜯어서 그 너머를 엿보았다. 조선인 욕실보다 훨씬 잘 갖춰진 일본인 욕실과 물줄기를 맞는 아오끼 소좌의 모습이 보였다.

       

       ‘시발거, 몸 존나 좋네.’

       

       중요부위는 수건으로 가렸기 때문에 안 보였지만, 지금의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장신에, 날렵하고 탄탄한 몸이었다. 사실, 인상이 좀 무서울 뿐 얼굴도 미남자라고 할 만 했다.

       

       ‘제발 꼬추는 삼센치……’

       

       그렇게 아오끼 소좌를 보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중요 부위만 수건을 두르고 알몸으로 따라들어온 중년 남성이 아오끼의 옆에 서며 은근하게 묻는다.

       

       『어제와 오늘, 도합 얼마나 해내셨습니까?』 

       

       아오끼는 말없이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중년이 물었다.

       

       『세 명……?』

       『삼십 명이오, 기미쓰 부장.』

       『오옷……!』

       

       아오끼의 말에 감탄해 마지않는 중년 남성. 그러고보니 ‘기미쓰 부장’이라는 이름 역시 들은 바가 있었다.

       

       ‘동양척식회사 요문개발부의 기미쓰 부장이었던가. 그게 저 사람이었구나.’

       

       『과연, 대단합니다! 아오끼 소좌! 그 정도면 조선인들이 겁을 먹을 법도 한데, 여전히 부나방처럼 달려든다니까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 흔적은 남기지 않았겠지요?』

       

       아오끼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아오끼 옆에서 기미쓰 부장은 연신 굽실거리며 내뱉었다.

       

       『하여간, 옛날이 좋았지요! 최근에는 조선 엽사가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내지인 엽사가 설 자리가 없다니까요.』

       『그래서 줄일 필요가 있는 것 아니오, 기미쓰 부장.』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아오끼 소좌!』

       

       그 광경을 엿보던 나는 깨달았다.

       

       ‘위험한 마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

       

       조선인 엽사들의 실종. 그것은 조선인 엽사 구역에 위험한 마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놈들이 마수였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부 답변드리지는 못하지만 여러분들이 달아주시는 댓글은 모두 확인하고 있습니당. 그런데 왠지…… 노벨쨩이 고생이 많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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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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