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

    네르는 깁슨의 호출을 받아 그의 방을 찾았다.

     

    -똑똑똑.

     

    사용인이 대신 그녀의 등장을 알린다.

     

    “가주님, 네르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라해라.’

     

    네르는 사용인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방이었다.

     

    한 명이 쓰기에는 커다란 방. 한 명이 쓰기에는 커다란 침대.

     

    마치 자신의 부인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깁슨은 편안한 복장으로, 창가에 놓인 탁자에 앉아 네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르가 방에 들어서자, 깁슨은 찻잔에 차를 따른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 떠난다고 들었다.”

     

    “…네.”

     

    “…와서 앉거라.”

     

    네르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눈치를 살피다, 천천히 그가 앉아있는 탁자로 다가섰다.

     

    깁슨의 맞은편에 앉으며, 깁슨과 김이 피어오르는 차, 그리고 창 밖을 번갈아 바라본다.

     

     

    깁슨은 오랜시간 아무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창 밖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회상하듯 차를 즐길 뿐이었다.

     

    네르도 굳이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거기에는 어색함도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가끔 자신을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을때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편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이별이겠구나.”

     

    한참을 그렇게 있던 깁슨이 끝내 말했다.

     

    차를 홀짝이던 네르는 그의 목소리에 그를 올려다본다.

     

     

    이별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내일 인족의 마을을 향해 떠나야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의식할때마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역시…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한들, 가족과 떨어지며 느껴지는 불안감은 있다.

     

     

    심지어는 기딘마저도 그리울 것 같다. 미운정이라도 박힌걸까.

     

    “…”

     

    네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깁슨이 묻는다.

     

    “…준비는 끝났고?”

     

    이번에도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짐을 챙겼다.

     

    언젠가 사랑할 사람을 위해 쓸 약재까지 포함해서.

     

    그녀 또한 미래의 그 상대를 가만히 기다린게 아니었다.

     

    의술을 공부하고, 주술을 외웠다. 웬만한 의원만큼의 지식을 갖춘 그녀였다.

     

    물론, 그 지식으로 누군가를 치료해본적은 없었지만…그녀로서는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깁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시한번 말을 반복하며, 마치 마음을 다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네르는 잠시 할말을 곱씹는다. 그녀 또한, 하고 싶은 말이 아예 없는게 아니었다.

     

    며칠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네르는 아버지의 방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걸 보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

     

    “말하거라.”

     

    “며칠 전…했던 이야기 있잖아요.”

     

    깁슨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르는 침을 삼키곤, 말한다.

     

     

    “…혹시, 배신 없이는 안되는 걸까요?”

     

    네르는 며칠 동안, 베르그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봐도 무방했다.

     

    잔인하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다. 그저 무뚝뚝해 오해받기 쉬운 사람일 뿐이다.

     

    외려 말했던 대로 잔인하고, 차가웠다면…그를 배신하는게 편했겠으나, 사실 그랬더라면 지금 더 큰 상처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찌됐든, 베르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낸 지금, 배신하기란 갈수록 거부감이 솟아난다.

     

    벌써부터 배신 같은건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르는 제 의견을 피력했다.

     

    “혹시, 블랙우드가 다시 일어서면…”

     

    그녀는 제 입으로 요구하기에 힘든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말한다.

     

    “…그러면, 제 몸값을 지불하고, 다시 데려와주실 수 없는 건가요?”

     

     

    깁슨은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작은 미소를 지었다.

     

    “…벌써부터 배신하기 힘들어졌나보구나.”

     

    네르는 굳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손을 뻗어 네르의 손을 잡았다.

     

    “…결론부터 말하면…불가능할건 없단다, 네르.”

     

    “정말요?”

     

    “우리 가문이야…아니, 나야 그럴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단다.”

     

    네르는 묘한 울림에 되묻는다.

     

    “그게 무슨 의미죠?”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야. 홍염단도 원해야만 해.”

     

    “…”

     

    “홍염단도, 부단장까지도 다 합의해야 해. 그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가지 앞선 조건들이 있어야할거고.”

     

    깁슨은 네르가 이해하기 편하도록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홍염단이 돈이 부족하다거나…혹은, 부단장이 널 보내고 싶을만큼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

     

    “일이 그렇게만 풀리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겠지. 너를 위해서라면 나 또한 돈을 아끼지 않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을 때가 문제란다. 홍염단이 끝까지 널 보내고 싶지 않아한다면…돈을 얼마나 준다하더라도 널 데리고 있겠다고 한다면, 너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할거야.”

     

    네르는 깁슨과 마주하고 있던 눈을 천천히 내렸다. 어째서인지 조건이 붙을수록 더더욱 힘들거라는 생각만 든다.

     

    생각해본다면, 홍염단이 재화가 부족할 일은 오지 않을것만 같았다.

     

    “…그러니 기억해두라는 이야기야. 그런 불상사가 나타날수도 있으니…약점을 찾아둬야만 해. 마음이 바뀔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대비해둬서 나쁠건 없지 않느냐. 너의 선택이란다. 이 아비는, 네가 어떠한 선택을 내리더라도 지원하겠다는 말을 전할 뿐인거고.”

     

    “…”

     

    “네르.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네가 거기서 행복을 찾길 바란단다. 벌써 부단장이 싫지 않다고 너도 느끼고 있지 않느냐.”

     

    “…”

     

    “어쩌면 그게 최선일지도 몰라. 정말 무책임하게 들리는 말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거짓하나 없는 진심이야.”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이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었다.

     

    더 이야기 할 것도 없었다.

     

    깁슨은 네르의 손을 놓고, 다시 차를 마셨다.

     

     

    네르는 차의 향기와, 창 밖으로 보이는 블랙우드 영지의 풍경을 기억에 담는다.

     

    내일부터 이곳을 떠나게 될거라는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멍하게 있자니, 깁슨이 말했다.

     

    “…네르.”

     

    네르의 고개가 돌아간다.

     

    깁슨은 무언가르 추억하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네 이름은 네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걸 알고 있느냐?”

     

    그 사실에 네르는 굳어있다, 고개를 저었다.

     

    “…몰랐어요.”

     

    깁슨은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으며, 가볍게 말할 뿐이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알아두거라.”

     

     

    그가 무엇을 전달하려한건지, 네르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라는 묘한 따뜻함과 함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출발!”

     

    아담 형이 소리를 지르자, 가장 앞서 있던 바란이 용병단을 이끌며 나아갔다.

     

    나와 아담 형은 용병대의 맨 뒤에서, 블랙우드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애초에 용병단의 규모가 큰만큼, 앞에서는 먼저 출발을 해두어야만 했다.

     

    시간이 그리 촉박한건 아니었다.

     

     

    아담 형이 깁슨과 악수를 나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인연이 닿아 기쁠 뿐입니다.”

     

    깁슨이 이번에는 내게 돌아선다.

     

    “…딸아이를 부탁하네.”

     

    “네.”

     

    나도 그와 악수를 나눈다.

     

    네르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슬픈 표정으로, 남을 가족들을 바라본다.

     

     

    네르는 전날밤, 깁슨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들었다.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는지, 둘은 시선을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별 다른 말은 주고 받지 않았다.

     

    기딘과 그의 남동생들이 다음이었다.

     

    “…조심히 가시길.”

     

    기딘이 조용히 말했다.

     

     

    고개도 살짝 숙여보인다. 그의 남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라안과 스완은 그 모습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기딘은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네르를 바라보다, 그저 살짝 고개만 끄덕였다.

     

     

    그들이 아무리 나를 인정했다한들, 나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이어서 기딘이 네르를 바라본다.

     

    “…”

     

    “…”

     

    둘은 잠시 어색한 시선을 나누었다.

     

    네르는 그와 마주하고 있기 껄끄러운지, 이내 몸을 돌리려했지만.

     

     

    기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툭.

     

    네르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네르는 놀라 기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게 끝이었다.

     

     

    기딘은 다시 손을 회수하고, 거리를 벌린다.

     

    남겨진 네르만이 놀라 멈춰있을 뿐이었다.

     

     

    점차 우리도 출발해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숀과 잭슨이 말 한 마리를 끌고 왔다.

     

    네르가 올라탈 말이었다.

     

     

    나는 굳어있는 네르의 등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네르. 이제 가야해.”

     

    “…아….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다…이내 앞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말을 보고 놀란다.

     

     

    “어…? 아…저…”

     

    네르가 순간 고개를 불안히 움직이다, 내 소매를 손으로 붙잡았다.

     

    나는 그녀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말 탈 줄 몰라?”

     

    네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네르가 올라탈 말을 쓰다듬다 말한다.

     

    “괜찮아. 온순한 말이야. 금방 탈 수 있을거야.”

     

    네르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불안함이 눈에 보인다.

     

    앞에 출발하는 마차로 계속해서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관 같은…물자가 가득 담겨 있는 마차들을 보며, 길을 잃은 듯 눈을 깜빡였다.

     

     

    나는 일단 네르가 시도해봤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네르. 일단 올라타봐. 어떨지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잖아.”

     

    네르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는 동안 깁슨과 기딘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네르는 말이 콧김을 뿜을때마다 움찔대며 손을 뒤로 뺐다.

     

    그 순진하고 겁많은 모습에 미소가 세어나온다.

     

    끝내 말에 가까이 붙는 네르.

     

     

    그녀는 등자를 보며, 나를 바라본다.

     

    허리 위쪽까지 올라오는 등자를 밟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녀에게 붙어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자. 고삐를 일단 꽉 붙잡아.”

     

    그녀는 말의 고삐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발을…”

     

    그녀의 다리로는 닿지 않을것만 같은 등자.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어주며 말했다.

     

    “손 밟아.”

     

    “네?”

     

    “반댓발로 밟고, 올라서며 등자에 발을 넣어. 고삐를 당기면서.”

     

    “…손….더…더러워지는데…”

     

    “괜찮으니까 얼른. 이제 우리도 곧 출발할거야.”

     

    네르는 계속해서 망설이다 천천히 발을 올렸다.

     

    나는 그녀의 발을 위로 들어올렸다.

     

    네르의 몸이 공중에 뜬다.

     

    그녀는 불안한 자세로 등자에 한쪽 발을 집어넣었다.

     

    “자, 이제 말 뒤로 발을 넘기면서…그렇지.”

     

    네르는 이내 말에 올라탔다.

     

    잠시 심호흡을 하는 그녀.

     

    그러다, 나를 또 바라본다.

     

    곧장 나를 바라보는게, 칭찬을 해달라는 아이같아 보여서 우스웠다.

     

     

    “잘했어.”

     

    그렇게 말하자, 네르의 꼬리가 미약하게 흔들리려다 말았다.

     

    그녀가 말에 올라타자, 아담 형과 숀, 잭슨, 그리고 나까지도 말에 올랐다.

     

    다시 뒤를 돌아보며, 블랙우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가보겠습니다.”

     

    아담 형이 말했다.

     

    “조심히 가게.”

     

    깁슨이 답했다.

     

     

    네르도 남은 가족들과 시선을 나누다…이내 고개를 돌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나는 네르의 말 옆에 바짝 붙어, 그녀에게 주의점들을 알려주었다.

     

    “긴장했다고 너무 고삐 강하게 잡지 말고. 편안하게. 네가 아무것도 안해도 알아서 갈거야.”

     

    “…네…네.”

     

    “허리는 펴고. 그래야지만 나중에 아프지 않아. 마체를 허벅지로 잡아둬야해.”

     

    “…알았어요.”

     

    네르는 곧장 하나둘 습득하며, 말을 몰았다.

     

    그녀는 꽤나 재능이 있어보였다.

     

    “잘타네.”

     

    내가 칭찬했다.

     

    “…조금 무서워요.”

     

    그녀가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나는 손을 뻗어, 네르가 올라탄 말을 토닥였다.

     

    “괜찮을거야.”

     

    그리고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귀환길에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윤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재밌게 봐주시는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이제 막 시작이네요.

    믐므므를그르므글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ㅋㅋ 힘낼게요. 오늘도 맥주한잔 해야하나 고민좀 해봐야겠습니다ㅋㅋ.

    1만 선작을 달성했군요. 연참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