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

       

       대배우 박선웅.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만 3편.

       거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일일연속극의 주연.

       

       시청률이 40%까지 갔던 드라마를 2편이나 찍은, 말하자면 흥행의 마술사.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실패를 모르는 사나이였다.

       

       단순히 연기력만을 떠나.

       작품을 보는 눈.

       특히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난 편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손수 배역에 맞는 배우를 감독에게 추천할 만큼.

       

       ‘저 아이가 주서연.’

       

       그런 박선웅이 바라보는 주서연은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나이는 일곱 살.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나이인 주제에 묘하게 조용하다.

       

       보통 아역 배우들은 또래에 비해 성숙한 경향이 있는 경우가 많다.

       우선 대사나 연기도 해야할 뿐더러.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사회라는 걸 보다 빠르게 경험하게 되니까.

       

       그의 아들인 박정우 역시, 그런 부분이 있었다.

       또래보다 많이 어른스럽고, 지닌 바 능력도 뛰어났다.

       

       ‘그래서 내심 걱정이었는데.’

       

       사춘기에 가까워져서 일까.

       그의 아들은 스스로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르다, 라는 의식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흔히 오만방자하다는 말에 딱 맞는 아이다.

       

       단지 말수가 많지 않아서 티가 나지 않았을 뿐.

       당장 최근 있었던 태숨달의 메이킹 필름만 보더라도 그런 태도가 드러났다.

       

       그래서 매번 한 마디 했지만, 박선웅 본인이 워낙 바빠 자주 말하기 힘들었다.

       아내는, 아들을 너무 좋아해서 싫은 소리도 잘 하지 않는 편이었고.

       

       ‘그런데.’

       

       그런 잘난 아들의 콧대를 제대로 박살 내준 아이가 나타날 줄이야.

       그래서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오늘 윤종혁이 마련한 자리를 흔쾌히 승낙한 것이다.

       

       “정우가 굉장히 분한 모양입니다.”

       “음.”

       

       선웅은 윤종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지금만 봐도 서연의 주변을 맴돌며 신경 쓰고 있지 않은가.

       

       정작 서연은 어떤가 하면, 굉장히 불편해 하는 느낌이다.

       표정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말이다.

       

       “정우의 입장에선 이기고 도망가는 느낌일 테지.”

       

       1화 2화에서는 서연이 정우와 정면에서 연기력으로 맞붙은 장면은 없었다.

       오디션에서 1인 2역으로 찍었던 그 부분.

       

       딱 그 한 장면을 제외하면.

       그리고 그것이 바로 3화에 삽입된 장면이었다.

       

       어린 이혜월이 마지막으로 윤서일과 인사하고 떠나가는 장면.

       

       “그렇겠죠. 아, 우선 갑시다. 슬슬 시간이네요.”

       

       윤종혁은 그리 말하며, 수아와 서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 있을 태양을 숨긴 달 3화.

       그것은 윤종혁의 입장에서도 꽤 기대되는 부분이었으니까.

       

       ***

       

       “시작합니다.”

       

       KMB의 드라마국.

       하태오 PD의 말에 모두가 긴장된 얼굴이 되었다.

       태양을 숨긴 달, 3화.

       

       가장 자신이 있는 화였다.

       그렇기에,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화였다.

       

       어린 이혜월의 성장을 암시하는 화였으니까.

       

       여기서 제대로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4화에서 시청률이 큰 폭으로 깎이게 될 확률이 크다.

       

       ‘아역 파트가 짧은 이유도 그런 이유지.’

       

       이건 모든 매체가 그렇다.

       갑자기 환경이 변하거나, 주인공이 교체되는 부분.

       이렇게 연령을 갑자기 올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드랍되는 시청자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붙잡기 위해선 이 3화에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4화를 향한 기대감을 주어야 한다.

       못한다면, 4화의 성적에 분명 안 좋은 영향이 갈 터.

       

       “아시죠? 여기는 무난하거나, 꽤 괜찮은 정도로는 안 됩니다.”

       

       무조건 대박이 나와야 하는 구간.

       마침 오늘 라이벌이던 MDC의 액션왕은 다소 힘을 빼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태숨달의 입장에선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률이 나와야 했다.

       

       “현재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시청률은 아직 안정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훌륭했다.

       

       그만큼 2화의 임펙트가 시청자들에게 크게 다가갔던 거겠지.

       일부 스태프들은 시청률만이 아닌, 커뮤니티의 반응도 살피고 있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반응도 중요했다.

       드라마 커뮤니티를 비롯해 SNS라는 것이 슬슬 대두되기 시작한 시점.

       

       이곳에서 입소문을 타야, 그만큼 크게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방송국 스태프들의 생각처럼, 3화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SNS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 3화 시작함

       – 내가 볼 때 2화가 고점일 듯

       – 오늘이 아역나오는 거 마지막인가??

       – 지난 화부터 분위기 꽤 괜찮은 것 같은대.

       – 조영대군이 다 살렸지.

       

       현재까지 반응은 괜찮았다.

       방송국에 마련된 드라마 게시판의 반응도 아직은 우호적이었다.

       

       – 아 발암

       – 윤서일 뭐하냐

       – 애초에 애가 여기서 뭘하겠음

       – 캬 그래도 연화공주 호위무사 개멋있네 얘가 남주하면 안됨?

       – 연화공주랑 나이 차가 몇인대…

       – 그게 맛있는 건데…

       – ㅇㅈㅇㅈ

       

       반응이 엇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연화공주가 궁에서 빠져나오며 어린 윤서일과 엇갈리게 되고.

       

       윤서일은 계속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애초에 아이인 윤서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이미 궁은 조영대군의 차지가 된 상태.

       

       윤서일의 아버지도, 이번 일에선 조용히 있으라고 당부했을 정도니까.

       밖에 나가지 마라. 

       그런 말이 있었기에 윤서일은 계속 고민했다.

       

       떠나는 연화공주를 배웅할지.

       아니면 아버지의 말처럼 조용히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일지.

       

       그런 윤서일을 움직인 건, 언제나 윤서일과 함께 다니던 시종이었다.

       

       ‘도련님, 정말 이렇게 끝내실 거요?’

       

       언제나 윤서일에게 골려지던 시종의 진지한 말.

       그 말에 어린 윤서일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어기게 된다.

       

       연화공주가 귀양을 떠나는 자리.

       호위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돌보았던 보모와 함께 떠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달린다.

       

       – 드디어 가나?

       – 어휴 답답에 뒤지는 줄

       – 그래도 연기 진짜 잘한다

       – 이번화는 윤서일 시점이 더 많네

       – 연화공주 보여줘

       – 연화공주 어디있는거임?

       

       점차 SNS에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어린 윤서일이 움직이고, 드라마가 클라이 맥스가 돌입하기 시작했다.

       

       음악도 점점 긴박해지며, 달리는 윤서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아이라 볼 수 없을 정도의 감정 연기.

       

       평소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던 박정우였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더욱 대단했다.

       달리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절로 사람들의 시선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와, 서연 양도 서연 양이지만.’

       ‘확실히 이게 제대로 배운 아역이라는 건가.’

       

       이미 몇 번 이 장면을 본 스태프들도 입을 벌렸다.

       감정 연기만이 아닌, 이 자연스러운 동작, 몸을 쓰는 기술.

       

       연기라는 게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성인 연기자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

       

       필사적으로 어린 윤서일이 달려가며, 시청률도 함께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하태오가 급히 말했다.

       

       “현재 시청률이 어느 정도죠?”

       “30%입니다. 추가적으로 갱신 되진 않았고요.”

       

       30%는 절대 적은 수치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대박이라 할 수준은 됐다.

       

       하지만 이전 화가 29%까지 올라갔던 걸 생각하면 애매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2화의 순간 시청률은 이겨야 할 텐데.

       

       하태오는 간절히 바랐다.

       3화는 어린 이혜월의 마지막 등장 장면이다.

       

       하태오는 이미 그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이 어떨지는 모른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태양을 숨긴 달, 3화가 클라이 맥스에 돌입했다.

       

       ***

       

       「저하.」

       

       숨을 헐떡이며 윤서일은 말했다.

       연화공주는 이미 떠났다고 했다.

       

       이미 쫓아가도 늦었다고,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윤서일은 후회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자신이 빠르게 결심했다면.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한탄이 나왔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단 말인가.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숨을 죽이고 입을 막고 숨어있었단 말인가.

       

       「공주 저하!!」

       

       

    달리고, 또 달린다.

       이미 떠나버린 연화공주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윤서일은 무작정 달렸다.

       막연히.

       어쩌면.

       오직 그런 마음을 품은 채 달렸다.

       

       높은 언덕.

       궁이 한 눈에 보이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연화공주가 있었다.

       그녀는 언덕 아래로 보이는 궁을 바라보며, 태양을 마주한 채 그렇게 서 있었다.

       

       ‘와.’

       

       순간 그 장면을 보던 시청자들은 그런 연화공주의 모습에 감탄했다.

       마치 그림 같은 장면이다.

       오직 등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연화공주의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청자들 중에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한선아가 있었다.

       

       그녀는 벌써부터 감성이 충만해져서 핸드폰을 열심히 눌렀다.

       

       – 연화공주 ㅠㅠㅠㅠㅠ 너무 불쌍해 ㅠㅠㅠㅠ

       

       그런 한선아의 마음을 대변하듯, 비슷한 반응이 SNS에 연달아 올라왔다.

       그리고.

       

       “영빈아, 저기 드디어 서연이 나왔다 야.”

       

       친구들과 함께 모여 주영빈은 딸의 연기를 보았다.

       이미 촬영본을 받아본 수아나 서연과 달리, 영빈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등을, 영빈은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정말 괜찮겠니? 괜히, 엄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지?”

       

       태양을 숨긴 달.

       그것이 화제가 됨에 따라, 서연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이미 CF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고.

       공정태나, 하태오 PD를 통해 드라마 제의를 해오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예능까지.

       만약 서연이 마음 먹는다면 이 파도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아뇨. 이건 제 결정이에요.”

       

       서연은 생각했다.

       고민했다.

       

       사실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차차 배워가며 하면 된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맞아요.”

       

       서연은 자신의 양손을 보았다.

       지난 촬영에서 상처 입은 손은, 다행히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깔끔하게 나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서연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녀에게 감정은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것.

       그런 서연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감정 연기였다.

       

       특히 메소드 연기.

       하지만, 결국 메소드 연기는 연기의 한 갈래에 불과하다.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됐다.

       서연은 아직 부족했다.

       

       기술적으로, 감정적으로.

       

       분명, 자신은 앞으로 몸도 마음도 더 자라게 될 테지.

       

       이 감정도, 어쩌면 더 커지게 될지 모른다.

       솔직히 서연은, 그 감정의 고삐를 제대로 잡을 자신이 없었다.

       

       아마 그건 전생의 기억과 몸이 남긴 괴리 때문일 것이다.

       서연에겐 그 흔적을, 오롯이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괜찮아요.”

       

       서연은 그리 말하며 영빈에게, 그리고 수아에게 웃었다.

       

       “정말로.”

       

       배우고 싶은 게 많았다.

       연기를 배우고 싶다.

       성우 학원을 다니며, 발성을 배우고 싶었다.

       

       시간이 된다면, 노래도.

       전생에 감정이 부족하여 못해본 것들 전부 해보고 싶었다.

       배우를.

       그리고 버튜버도.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결국 욕심 많은 자신의 꿈이었으니까.

       그러니 서연은 앞을 본다.

       

       배우들 틈에 끼어, 수아의 품에 안겨.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거대한 TV의 화면에 비친 자신을 본다.

       

       등을 돌린 연화공주.

       수족관을 부수고, 감정의 바다에 풍덩 빠진.

       감정에 적셔진 주서연, 자신의 모습을 본다.

       

       「……오셨네요.」

       

       서연, 그리고 연화공주 이혜월의 물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서일.」

       

       연화공주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서글픈 미소를 머금은 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아침에 갑자기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별건 아니고 그냥 복통이었읍니다… 근데 아침에 가니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없이 시간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근데 연재 시간이 아침이라 그런가 가끔 불규칙적이네요…

    제가 늦잠을 자버리면 늦어버려요…
    저녁에 옮기면 제가 쓰기 어려워서 낮으로 하는데 좀 고민이긴 합니다.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I Want to Be a VTuber

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