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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엄청 북적이네.”

       

        완벽히 일상으로 돌아온 평일의 아침.

       

        ‘승천전’ 참여 신청을 위해 방문한 센터 건물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아니, 정확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줄부터 명절 전 시장에 가까웠다.

       

        “밀지마!”

        “뭐? 이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몰린 만큼, 트러블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순서.

       

        “죽고 싶어? 어?”

        “보자보자 하니까 이 자식이……!”

       

        “……괜히 왔나?”

       

        여기저기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승천전. 부와 명예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이렇게 현기증이 절로 이는 참가신청은 내 계획이 없었다고.

       

        “임혜성 님, 오셨군요!”

        “……?”

       

        괜스레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내적 갈등이 한참인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박 사무관 님?”

       

        일전에 병원 면회를 왔던 협회 소속의 박 사무관. 그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부탁했던 승천전 참가 신청 현장에 온 덕분일까? 박 사무관은 더 없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조금 피곤하네요. 차라리 승천전 참가 자격을 포기할까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 이번 승천전이 많이 과열된 건 사실입니다. 그 유명한 <원소술사>에 이어 <공간왜곡>도 참가의사를 밝혔으니까요.”

        “예상 대기 시간이 4시간이랍니다. 이건 진짜 너무한 수준이네.”

       

        나는 손을 들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박 사무관 역시 상상이상의 열기에 질린 건지, 괜스레 뒷목을 긁적였다.

       

        “아마 오늘은 야근 확정인 것 같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내가 여기서 친히 시간을 버리고 있는데, 협회 직원인 그가 퇴근을 할 수는 없지 않겠나?

       

        팔짱을 낀 박 사무관은 찬찬히 대기 인원을 살폈다. 적어도 그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없던 모양인지, 안경을 슥 올린 그가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임혜성 님. 잠시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

       

        따라오라고? 혹시, 이거 그건가?

       

        “그러죠 뭐.”

       

        의심조차 않고 저벅저벅 그를 따라갔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건물 뒤를 향해 걸어갔다. 승천전 참가 신청 인원들과 다른 출입구가 거기에 있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이건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합니다.”

        “당연하죠.”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장난기 가득한 박 사무관의 웃음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이건 그거다. 

       

        ‘대기 없이 참가 신청.’

       

        나도 협회 직원이라는 힘의 덕을 보는구나.

       

        그를 따라 건물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곧장 수많은 직원들의 시선이 날아왔지만, 내 옆에 걷는 사람을 보니 직원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박 사무관 님은 제법 직위가 높은 것 같네요?”

        “하하.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반 공무원 중에선 제법 높은 편일 뿐이죠.”

        “오호.”

       

        나도 눈과 귀가 달려있다. 

       

        겸손을 떠는 그의 모습과 달리, 지나치는 직원마다 군기 가득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 꽤나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띵!

       

        엘리베이터에 탄 나와 박 사무관은 6층에 내렸다. 

       

        “제 사무실에서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시죠. 오늘은 협회 건물 전체가 많이 시끄러울 겁니다.”

        “…….”

       

        과연, 제법 높은 직위일 것 같다는 내 예상이 맞았다. 

       

        이런 커다란 조직에서 개인 사무실을 가진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리가.

       

        끼익!

       

        박 사무관의 방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갈했다.

       

        [ 3급 박무진 사무관 ]

       

        “……?”

       

        그런데, 책상 위의 명패를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무원 쪽은 잘 모르지만, 3급은 엄청난 고위 공무원 아닌가? 사무관이라는 직위는 또 5급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내 시선을 알아챈 건지, 박 사무관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히어로 아카데미 출신이라 그런지, 과분한 자리를 얻었습니다.”

        “아하.”

       

        그저 인상 좋은 샐러리맨으로 보였는데, 그도 능력자인 모양이다. 어색한 웃음이 나름 잘 어울렸다.

       

        “여기 신청서입니다. 따로 제출할 필요 없이 탁자 위에 두고 가시면 제가 접수하겠습니다.”

       

        엄청난 특급 서비스다. 누가보면 내가 랭커라도 된 줄 알겠네.

       

        “박 사무관 님.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예. 언제든 시원스레 말씀해 주십시오.”

        “왜 이렇게 저한테 관심이 많으신 겁니까?”

       

        박 사무관이 시원스레 말하라고 했으니, 나는 정말 브레이크 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어어…….”

       

        그도 당황한 걸까?

       

        내 노빠꾸 질문에 그가 말을 더듬었다.

       

        “웃기잖아요? 저는 D등급 능력자인데, 협회 소속인 박 사무관 님이 직접 찾아와 승천전 참가 제안을 하는 것도 웃기고.”

       

        박 사무관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내 맞은편에 슬며시 앉더니, 더 없이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현상거절> 임혜성 님이 가진 힘을요.”

        “……어떤 힘이요?”

       

        슬쩍 그를 떠보기 위해 대답을 회피했다.

       

        도대체 이 남자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흠흠, 임혜성 님은…… ‘랭커’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시지 않습니까.”

        “……?”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딱히 힘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이런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낭중지추.”

        “그러니까, 제가 주머니 속의 송곳이다?”

        “그렇습니다. 민망한 말이지만, 저는 임혜성 님의 행적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

        “첫 기록이 남은 것은 얼마 전입니다. 빌런 토벌을 위해 나선 학생회장 한유리 님과 미지의 공간으로 사라지신 것.”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인데? 그걸 알아냈다고? 그냥 하룻밤 해프닝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다음 기록은 더욱 충격적이죠. 죽은 자를…… 살리는 장면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요.”

       

        아, 송수아와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거다. 히어로 타워의 최상층에는 CCTV가   있으니 이해 못할 건 없었다.

       

        “마지막 기록은…… 랭커인 <신속>과 트러블이 있던 장면입니다.”

        “아니 잠깐만. 그것도 알고 있었다고?”

        “하하! 임혜성 님은 협회를 너무 모르시는군요. 물론, 정보 통제가 제 특기인 덕에 아는 사람은 지극히 적죠.”

        “생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네요. 박무진 사무관 님.”

       

        내 칭찬 아닌 칭찬에 박 사무관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안경 실눈캐. 원작에서 언급된 적은 없었지만, 이 사람도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제가 임혜성 님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 간단합니다. 저는 팬이거든요. 당신께서 그 압도적인 힘을 세계에 알리길 기대하는.”

        “…….”

       

        팬이라니, 이거 괜스레 낯뜨거운 얘기를 들어버렸다.

       

        랭커…… 아니, S급의 상위권만 되어도 자연히 생기는 게 ‘팬’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히어로를 동경하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란 소리다.

       

        그런데… 겉으로는 D등급인 내 팬이라. 꽤 재밌네.

       

        “괜히 민망하네요.”

        “하하! 저도 참 민망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강한 자를 동경하는 것이 수컷의 본능인 것을.”

       

        금테 안경을 고쳐쓴 박 사무관이 크게 웃었다.

       

        팬, 팬이라. 뭐, 썩 나쁜 기분은 아니네.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협회 소속 직원은 승천전 참가자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이 금지되어 있거든요.”

        “네, 뭐.”

       

        짧게 답한 나는 펜을 들었다.

       

        승천전.

       

        드디어 내게도……  때가 온 것이다. 찬란한 날개를 펼칠 때가.

       

        * * *

       

        사흘이 지났다.

       

        히어로 아카데미는 물론,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올해 승천전을 뜨거운 환호와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수만 명은 간단히 수용할 거대한 스타디움에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린다.

       

        “엄청 뜨겁네. 개막식.”

        “당연하지! 특히 올해는 쟁쟁한 사람들이 많아서 더 심해.”

       

        랭커에게 주어지는 VIP 관람석.

       

        프라이빗 룸 통유리 너머의 과열된 분위기를 본 송수아가 다리를 흔들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냐고? 송수아에게 직접 연락해 부탁한 덕분이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좌석에 앉기는 싫고, 시합이 코앞인데 집에서 대기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의외다. 송수아, 너는 승천전에 별 관심 없을 줄 알았더니.”

        “헤헹! 나는 매해 참가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련하면 그것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잖아!”

        “…….”

       

        귀여운 녀석. 거 말 참 이쁘게 하네.

       

        “그래서, 혜성이는 출전이 언제야?”

        “대진표를 보니 D급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이야.”

        “와아! 그럼 금방 토너먼트에 참가하겠네?”

        “이기면 그렇겠지.”

       

        내 짧은 대답에 송수아가 방긋 웃었다.

       

        네가 탈락하지 않을 걸 알고 있다. 라고 말하려는 듯, 해맑은 미소에 나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혜성이랑 결승전에서 붙으면 재밌겠다!”

        “그건 좀 힘들지 않아?”

       

        올해 승천전에 참여한 랭커는 총 4명이다. 원작에서는 안젤리카 한명만 참여했다는 정보를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한 사람 때문에 스토리가 뒤틀린 건가?’

       

        송수아.

       

        그녀는 본래의 스토리 상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다. 그 작은 변화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게 아닐까.

       

        “흐으으음.”

        “……?”

        “사실! 잘 모르겠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모르는 송수아가 다리를 파닥거리며 말했다.

       

        “뭐가?”

        “이번에 처음 참여한 두 사람. <원소술사>와 <공간왜곡>. 랭커 중에서도 특히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거든. 변수가 너무 많아!”

        “그건… 그렇네.”

       

        송수아의 목소리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왜곡>은 나름 합리적인 능력을 가진 녀석이다. 시나리오의 중반부 즈음에 출연하는 캐릭터니, 이 시기에 나타난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원소술사>는 궤가 다르다. 

       

        뭐라고 할까, 비유하자면 이 세계관에서 가장 ‘신’에 근접한 사람이라고 할까. 원작 기준에서도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가 시나리오의 최후반에 등장하고.

       

        “다치지만 않으면 좋겠다.”

       

        VIP 관람석 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힌 나는 중얼거렸다.

       

        만약 송수아와 <원소술사>가 붙는다면?

       

        ……필패다. 

       

        <원소술사>는 그런 존재다. 송수아가 부르는 기상의 힘을… 그는 손가락 하나로 다룰 수 있으니까.

       

        “우음, 그럼…… 우, 우리 내기할까?”

        “내기?”

       

        괜한 걱정을 하고 있자니, 대뜸 송수아가 제안을 건네왔다.

       

        내기? 내기라니. 뜬금 없이 무슨 내기?

       

        “하자! 내기! 우리 둘 중에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사람에게 진 사람이 소원을 하나 들어주는 거야!”

        “…….”

       

        노골적인 속내가 보이는 제안에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송수아는 ‘랭커’다.

       

        자연히 승천전의 폐막식이 가까운 마지막에 전투를 치르고, 나는…….

       

        “당장 내일부터 쉬지 않고 대전을 치를 텐데?”

        “시, 싫어?”

        “아니… 뭐. 싫은 건 아니긴한데.”

       

        소원, 소원이라.

       

        내가 이 녀석한테 빌 소원이 따로 있던가?

       

        최근 주머니 사정이 궁핍하니 돈좀 줘라. 뭐 이런 걸 요구할 수도 없고.

       

        “그래. 하자, 내기.”

        “저, 정말?”

       

        대수롭지 않게 승낙의 뜻을 내비치니, 송수아의 얼굴이 단박에 밝아졌다.

       

        설마…… 엄청난 걸 요구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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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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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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