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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황무지를 여행할 때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수분의 확보였습니다. 변이체가 어슬렁거리는 황무지라면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들은 생활 반경 내에 고약한 점액질을 남겨, 자연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일레인 일행이 세 번째로 발견한 물웅덩이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바위 뒤편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였는데, 그 수면 위로 탁한 검은색의 점액질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물통에 담긴 식수가 떨어진 지도 벌써 반나절이 흘렀습니다. 페로가 황무지를 빠져나갈 때까지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지만, 붉은 드레스 빼고는 있는 게 없는 미녀 한 명이 일행이 되었으므로 부족했습니다.

       

       두 사람이 우울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물웅덩이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는 이유였습니다.

       

       “마실 수 있을까요?”

       

       “음용 가능하냐고 묻고 계신 거라면⋯⋯ 걸러서 마셔도 보통은 배탈이 날 거예요. 가끔 환각이나, 몸이 뜨거워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마실 수 있을까요⋯⋯?”

       

       “먹을 만한 맛이냐고 묻고 계신 거라면⋯⋯ 생존자분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변이체 점액질을 마시느니 정어리 파이를 먹을 거라고.”

       

       “황폐한 세상이라고 들었는데, 파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건가요?”

       

       “설탕이랑 소금, 달콤한 딸기 잼, 고소한 버터가 빠졌긴 하지만, 만들 수 있어요.”

       

       “그런 걸 파이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일레인은 상처투성이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앓는 소리를 냈습니다. 다른 수원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였고, 그녀는 목이 말랐습니다. 오우거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강자라도 먹고 마시고 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탈수 증세보다는 배탈이 나으니까, 이⋯⋯ 어쩐지 꾸물거리는 점액질이 토핑으로 얹어진 흙탕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인데.

       

       “⋯⋯⋯⋯.”

       

       필요한 것을 알아도 하기 싫은 일이 있는 법이었습니다. 

       

       다른 수는 없을까, 평생을 맛 좋은 만찬만 먹어 온 고귀한 입을 이렇게 더럽혀도 되는 건가, 페로를 인간 정수기로 써먹는 건 어떤가⋯⋯ 같은, 현실도피를 위한 생각들이 일레인의 머릿속을 돌아다닐 무렵.

       

       페로는 손으로 흙탕물을 휘저어 최대한 점액질을 덜어낸 뒤에──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부분의 물을 수통에 담았습니다. 이어서 눈을 질끈 감고, 한 모금을 넘겼습니다.

       

       꼴깍.

       

       “⋯⋯으, 으읍⋯⋯.”

       

       페로의 안색이 새하얘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맛과 식감이 정말로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괴식이란 맛으로 한 번 찌르고, 또 향기로 한 번 찌르는 법입니다. 

       

       후폭풍으로 날아오는, 개구리를 솥에 넣고 삶는 것 같은 그윽한 비린내가 페로의 비강을 강타하고 나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조금 전, 일행은 사막 토끼를 구워서 귀중한 단백질을 보충한 참이었습니다. 소화가 다 끝나지 않았으므로, 지금 토해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건 생존자의 관점에서 막대한 손해니까요.

       

       이에 황녀가 나섰습니다.

       

       일레인은 서로를 위해서 ─그녀는 누군가가 토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고, 페로는 영양분을 잃을 위기 상황이니까─ 페로를 뒤에서 끌어안고, 단단한 손아귀로 소년의 입을 막았습니다.

       

       “⋯⋯⋯⋯!!”

       

       차라리 토하게 해 줘.

       

       페로가 펑펑 울면서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일레인은 홀드를 풀지 않았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 데다가, 이것이 이성적으로 맞는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레인은 비리고 물컹거리는 액체를 페로에게 억지로 먹였습니다.

       

       3분 뒤, 페로는 넋이 나간 얼굴로 드러누웠습니다. 수분도 섭취했고, 단백질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영혼은 지켜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일레인은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여상스럽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다지 목이 마르지 않네요.”

       

       “⋯⋯거, 거짓, 말이잖아요⋯⋯.”

       

       “기억을 잃어서 잘 모르겠네요.”

       

       “기억을 잃은 거랑은, 상관없잖아요⋯⋯ 치사해요 일레인!”

       

       페로가 분노에 차서는 볼을 부풀렸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쫙 펼쳐, 가로로 약 160cm의 공간을 가로막은 채 선포했습니다.

       

       “일레인도 마시기 전에는 못 지나가요!”

       

       “꼭 그래야겠어요, 페로? 저한테⋯⋯ 끈적거리고 냄새나는 걸 먹여야만 만족하시겠나요?”

       

       “그,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황무지를 함께 가로지르는 지난 이틀간, 일레인이 대화를 야시시한 쪽으로 끌고 가면 페로는 백기를 올리고 도망가기 바빴건만. 

       

       맛없는 점액질이 불러일으킨 분노가 그만큼 컸던 건지, 아니면 드디어 적응해 버린 건지. 이번에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실로 위대한 한 걸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레인은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화력보다 좋은 것은 더 큰 화력.

       

       야시시함이 안 먹힌다면 꺼내 들어야 하는 건, 더 야시시함이었습니다.

       

       일레인은 두 팔을 벌렸습니다. 반항기에 들어선 어린 소년에게 어른의 매콤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리드에게 사용한 이후로는 봉인해 두었던 성명절기── 『꼭 껴안고 빙빙 돌기』를 시전하려는 그때.

       

       툭, 투둑.

       

       “⋯⋯아.”

       

       “어머나.”

       

       비가 내렸습니다.

       

       ===============================================================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와,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황무지에서 작은 동굴을 찾는 법은 간단했습니다. 우선은, 맨손으로 바위를 도려낼 수 있는 강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적당히 커다란 바위를 정성껏 쓰다듬어주면, 신기하게도 작은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그 경이로운 탐색력에 페로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노곤노곤하게 만드는 온기,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 모닥불의 빛에 물들어 따뜻한 색이 입혀진 두 사람의 작은 공간. 일레인은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페로는 콧노래의 박자에 맞추어 고개를 흔들다가, 동굴 밖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비가 내려서 다행이에요, 마실 물도 잔뜩 생겼고⋯⋯ 비가 그치고 나면, 모래가 가라앉아서 하늘이 맑게 갤 거예요. 길을 찾기도 쉬울 테고요!”

       

       “그러네요, 페로. 마침 비가 내려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기분 나쁜 변이체 점액질을 혀에 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일레인은 어린 소년을 놀리는 데에 진심이어서 그랬던 거지, 정말로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무척이나 싫은 건 맞았지만, 생존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빛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마셨을 겁니다.

       

       누린내가 심하게 나는 변이체 늑대 고기를 씹었던 것도, 소년과 황무지를 돌파하며 낙원을 찾아 나서는 것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1황녀의 세계에서, 개인의 호오는 생존보다도 한참이나 뒤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모든 선택은 ‘무엇을 버릴까’로 귀결되었습니다. 인정을 버리고, 기대를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또⋯⋯.

       

       “──일레인, 일레인?”

       

       “⋯⋯?”

       

       어느샌가 페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페로는 일레인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붙이고는, 온도를 가늠했습니다. 그 대담한 스킨십에 일레인의 사고가 잠깐 멎었습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요? 불러도 대답이 없으셔서요.”

       

       “아뇨, 딱히요. 멀쩡하답니다.”

       

       “얼굴이 살짝 빨개요.”

       

       “⋯⋯모닥불의 불빛 때문이랍니다.”

       

       “정말요? 아픈 거라면 숨기지 말아야 해요. 제가 약초를 구해 볼 테니까요!”

       

       “다 알면서 그러는 건 아니죠?”

       

       “⋯⋯?”

       

       페로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일레인은 잠깐 입가를 우물거리다가, 말없이 거리를 벌렸습니다. 작전상 후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로와의 거리, 약 1m.

       

       배려심 넘치는 소년은 일레인의 행동을 ‘혼자 있고 싶어요’라는 사인으로 해석했는지, 모닥불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주었습니다. 일레인과의 거리, 약 3m.

       

       그게 좀 신경 쓰였는지, 일레인은 모닥불을 좀 더 가까이서 쬐려는 척을 하며 소년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페로와의 거리, 약 2m.

       

       그리고 양쪽의 이동이 멈췄습니다. 페로도, 일레인도, 2m의 거리가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먼 것도 아니고, 너무 가까운 것도 아니라서. 서로를 볼 수는 있지만, 서로의 냄새는 숨길 수 있는 거리라서.

       

       그렇게 두 사람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

       

       날이 개었습니다.

       

       시야를 가리고, 겸사겸사 피부도 긁고 지나가던 사나운 모래바람이 물을 잔뜩 먹고 늘어졌습니다. 여전히 대지는 황폐하고, 곳곳이 끔찍한 점액으로 뒤덮였을지언정, 하늘은 푸르고 쾌청했습니다.

       

       간만에 숨을 깊게 들이쉬었습니다. 상쾌한 공기가 폐에 가득 들어차고, 날숨과 함께 빠져나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신으로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페로는 일레인의 손을 잡아 신호하고, 지평선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저희, 생각보다 많이 걸었나 봐요!”

       

       “어머⋯⋯ 땅이 싱그러운 녹색이네요? 드문드문이지만.”

       

       푸르른 풀이라. 정말 간만에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황폐한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본 식물이란, 비쩍 마른 고목이나, 구석에서 징그럽게 피어난 버섯 다발, 아니면 회전초뿐이었으니까. 페로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목소리를 통해서 드러냈습니다.

       

       “황무지를 빠져나왔어요. 저 앞으로는 ‘만남의 평야’에요. 모래바람 때문에 출구가 코앞에 있는 줄도 몰랐네요⋯⋯ 헤헤.”

       

       “‘만남의 평야’⋯⋯라, 그런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있나요?”

       

       “변이체가 드물어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에요. 근방의 생존자들은 이 만남의 평야를 경유해서 동선을 짜죠. 그래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거든요!”

       

       “정착하는 사람들은 없나요?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라면, 거점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그건요⋯⋯ 평야라서, 숨을 곳이나, 엄폐물이 부족하니까⋯⋯”

       

       페로는, 잠깐 말을 끌다가. 옅게 웃으면서 내뱉었습니다.

       

       “여기를 거점으로 삼으려던 사람들은, 다 죽었거든요.”

       

       “아아⋯⋯.”

       

       일레인은 알 만하다는 눈으로 ‘만남의 평야’를 바라보았습니다. 좋은 만남이 있으면, 나쁜 만남도 있는 법.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꼭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페로는, 여기를 거점으로 삼으려던 사람들은 죽었다고 들었다⋯⋯ 가 아니라, 죽었다. 라고 끝맺었습니다. 직접 그 모습을 봤다는 것처럼. 어쩌면 페로는 ‘만남의 평야’를 거점으로 삼으려던 이들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전투력도 낮고, 그저 생존에 필요한 여러 재주가 있을 뿐인 페로가, 과연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지도. 

       

       일레인의 눈꺼풀 아래에서 작은 의심이 피어났습니다.

       

       ===============================================================

       

       낙원까지 남은 거리.

       약 320km.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말엔⋯⋯ 많이 바빴답니다! 작가의 말도 잊어버리고 뒤늦게 추가하다니, 이런 미스를⋯⋯.
    전번에도 올렸지만, 일본어 자격증 시험을 치러 다녀왔거든요! 부디 행운의 여신님이 저와 함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청해의 영역에서는 무쌍을 찍었지만, 독해의 벽은 참 높더군요. 한자⋯⋯ 난 네녀석이 밉다⋯⋯!!

    돌아오는 밤길에는 코감기를 살짝 얻기도 했습니다. 흠흠. 아니, 뭐⋯⋯ 변명하는 건⋯⋯ 아니구요.
    사실 변명하는 게 맞습니다. 연참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마이 프렌즈.
    맛은⋯⋯ 고향의 맛⋯⋯ 비법 소스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니까⋯⋯!!

    저는, 쓰면서 좋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겐, 입맛에⋯⋯ 맞으셨을까요?! 또, 맞으실까요?!
    여러분들도 마음에 들어하셨으면 좋겠네요, 내일 또 봐요 친구들! 모레도요!
    이것저것 장난을 담아서 올 테니까요!

    P.S.
    그리고, 일요일은 휴재일이란 말입니다⋯⋯!! 으흑흑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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