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뭐, 뭐라고요?!”

   “시련이요.”

   “시, 시, 시?! 에, 네?”

   “시련이요.”

   “네에에에?!”

   흠, 이것 참.

   나는 데자뷔를 느끼는 기분으로 여직원을 바라보았다.

   입을 쩍 하니 벌린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옆에 서 있는 므냥이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여직원의 심정에 공감해주었다.

   ‘흠, 그 정돈가?’

   【검성】클래스가 나왔을 때도.

   ‘브레이크 아웃’을 클리어하였을 때도 그렇고.

   뭔가 여기 사람들은 호들갑이 심한 것 같았다.

   “…세하야. 그건 세하가 이상한 거야…”

   흠, 그 정돈가?

   아무튼, 나는 이러다 일 진행이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선수를 쳤다.

   《토주원의 정원》에 관련된 시스템 로그만을 잘라 그녀에게 증거품으로 제출하였다.

   겸사겸사, 토주원의 대가리도 포함해서.

   “여기 증거품입니다.”

   “보, 보관 처리하겠습니다…”

   키보드가 부서지라 누르는 여직원.

   ‘와 미친…진짜 시련이잖아?!’ 거리며 다시 한번 더 얼을 빼었다.

   “저, 저기 기록에 의하면 우선권 획득. 그리고…귀속까지 완료했다는 말이 있는데…크, 클리어까지 하신 건가요?”

   “네, 클리어까지 했습니다. 거기 자루에 담겨 있는 녀석이 이곳 보스입니다.”

   “…미, 미친!”

   직원은 더는 본인의 입을 말릴 수 없는지 양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흠, 그 정돈가?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 이건 제가 맡을 수 있는 사안을 벗어나는 일이라…”

   “네, 네…천천히 하세요.”

   그대로 휙-! 하고 어디로 달려가 버렸다.

   * * *

   “오랜만입니다. 유세하씨. 마하나씨.”

   잠시 뒤, 나타난 것은 흰머리가 슬쩍슬쩍 보이는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브레이크 아웃’때 앞장서서 사건의 뒤처리를 하였던 부길드장 아저씨였다.

   “반갑습니다.”

   “바, 반가워요…”

   “저야말로. 자, 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부길드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마치 극빈을 모시는듯한 정중한 태도.

   그러는 와중에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주었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설마 시련까지 찾아내서 클리어하셨다니…”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이정도면 실력이지요. 웬만한 A급 헌터님들도 찾기 어려운 게 시련인데 말이죠.”

   “그래 봤자 F급 헌터인데요.”

   “하하하. 그거야 유세하님의 활동이 적어서 그런 거지요. 도저히 그 실력 대가 아닌 건 여기 직원들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 참 너무 금칠을 해주니 약간 부담스러웠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지요.”

   “어, 네?”

   “끔찍한 재앙을 막아주신 거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솔직히…그때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겨우, 보상금 밖에 못 드렸으니까요.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습니다.”

   어, 음…돈이면 충분한데.

   1억이면 그래도 많은 거 아닌가?

   “그래서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떻게든 보상을 챙겨드리기 위해 길드장님께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 길드장님이라면…분명 해외에 있다고…”

   “네 맞습니다. 대단하신 분답게 맡은 바 임무가 막중하신 분이라…하지만 사안이 사안이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든 닦달해서 며칠 전 귀국하셨거든요.”

   “아하……”

   “그런데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시련까지 해내시다니…역시 대단하십니다.”

   이것 참.

   처음 볼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아저씨 참 호인이다.

   ‘…쓰읍. 다시금 느껴지네.’

   나는 처음 ‘고스라’를 할 때도 느꼈던 그 감정이 한 번 더 샘솟는 것을 느꼈다.

   특유의 간질간질하면서도, 사람 속을 조여오는 이 느낌.

   애써 무시하자 어느새 목적지까지 도착해 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갈색빛의 방문 앞.

   멈춰 선 부길드장은 ‘실례…’라는 말을 남기고 방문을 두들겼다.

   “길드장님. 말씀드렸던 귀빈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안내해주세요.”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목소리.

   마치, 옥구슬이 데구루루 구르는 것 같은 고우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끼이익.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치된 인테리어였다.

   벽면에 얼마인지 짐작도 안 되는 비싸 보이는 그림 몇 점이 걸려있었고, 중앙에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소파들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눈앞의 인물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때 하나 묻지 않은 백색의 정장을 입은 여성.

   절로 ‘눈나~’소리가 나올 만큼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은 입은 옷만큼이나 새하얀 장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자, 백색과 완전히 대비되는 핏빛 같은 붉은색 눈동자가 나를 직시한다.

   “므우와……”

   옆에 있던 므냥이가 진심 어린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마 상대의 미색에 감탄한 거겠지.

   여성은 대단한 미인이었고, 동시에 과할 정도로 요염한 분위기도 가지고 있었다.

   나 또한 표정관리에 실패할 만큼 놀랐다.

   ‘……이게 말이 되나?’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외모에 감탄한 게 아니다.

   내가 놀란 건 바로 여성의 겉모습 때문.

   아무리 높게 잡아도 여성은 30대 초반을 넘지 않아 보였다.

   ‘길드장이라는 자리가, 이리 젊은 나이에 오를 수가 있나?’

   국제적인 규모의 사기업이며, 강력한 무력 집단이자,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클랜>이야.

   젊은 나이여도 실력만 확실하다면 ‘클랜장’이 되는 게 가능하였다.

   실제로 ‘고스라’에서도 젊은 클랜장이 주요 NPC로 나오기도 하니까.

   하지만 ‘길드장’은 협회에서 내려주는 공직이다.

   일종의 최고 공무원이라고 보면 되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적을 내는 게 아닌 이상은 나이에 걸맞은 위치에 앉는 게 보통이라고 알고 있다.

   “반가워요.”

   “……!”

   어, 씨 깜짝이야.

   여성은 생각하는 짧은 사이에 거리를 훅 좁혔다.

   먼저 므냥이와 악수를 나누고, 빙그레 웃으며 나와 손을 잡는다.

   “…유세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유세하 헌터. 분에 넘치게도 이곳 길드장의 자리를 맡은 사람입니다. 편하게 길드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의도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정보가 새나가는 걸 꺼리는 걸까.

   당연한 처세술이긴 하다.

   ‘……아!’

   나는 직후, 그녀의 행동에 왜 이리 젊어 보이는지 깨달았다.

   버릇처럼 목덜미를 넘기자 드러나는 특유의 뾰족한 귀.

   “눈치채셨군요?”

   “네, 엘프……신가요?”

   “정확하게는 쿼터입니다.”

   “므아아?!”

   엘프라는 소리에 므냥이가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다 예의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괜찮다는 듯 빙그레 웃는 길드장.

   뭐 놀랄만하지.

   다른 판타지 세계랑 다르게 여기서 엘프가 받는 대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

   ‘…어, 음.’

   여러모로 독특하니까 말이다.

   *

   “…이거 정말 놀랍네요.”

   길드장은 특유의 여유로운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건네준 기록을 읽었다.

   그러면서 종종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끈질겨서 죄송합니다. 유세하 헌터. 다시 확인 가능할까요?”

   “네 얼마든지…”

   “이번에 발견하신 시련. 《토주원의 정원》은 미탐사 지역에 있었다…이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에 나가기 전 므냥이랑 적당히 말을 맞춘 경위를 들려주었다.

   몬스터를 쫓다 미탐사 루트까지 진입.

   거기서 붉은색, 푸른색으로 칠해진 나무와 그 안의 입구를 발견하였고, 안으로 들어갔다는 내용까지.

   “…미몽의 숲.”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환상을…불러일으켰다고 했죠?”

   “맞습니다. 처음에는 악몽을…마지막에는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따스한 기억이 올라왔습니다.”

   마지막 말에 길드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어지간히 악질적인 곳이군요.”

   “대신 대가는 컸습니다. 정신 능력치를 올려주더군요.”

   “…정신. 확실히,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곳이긴 하네요.”

   이어서 정원에 도착.

   물속에 독을 풀어 토주원을 끌어낸 뒤 쓰러트린 것을 보고하였다.

   “기록상 B+군요. +가 붙었다는 말은…레어보스라는 건데 제가 아는 한 최초로 나타난 몬스터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애초에 분류가 영물로 나타나더군요.”

   “…영물. 신성을 머금은 일종의 신수. 과연 그렇군요. 신목을 지켜온 수호자라…학계에 보고할 시 보상금이 지급될 확률이 높은데 어떡하시겠어요?”

   당연히 보고지.

   이런 근본 없는 외래종의 정보 따위 해외로 나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알겠습니다. 스킬은 [워터밤], [워터브레스]에 [혼신의 박치기]라…파생스킬을 여러 개 가지고 있군요. 특성도 몇 개 보유한 것으로 보이고요?”

   “적어도 2개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에 마력 수치도 최소 30 이상. 도저히 초짜 헌터들이 잡을만한 녀석이 아니네요. 물이라는 특수한 환경까지 고려한다면…B급 헌터 1명을 필두로 한 C급 헌터 3명 정도는 필요할 것 같군요.”

   나는 길드장의 분석에 속으로 놀랐다.

   확실히 <냉정, 침착> 성향을 유지하는 토주원을 정면에서 싸우려면, 저 정도 인원은 돼야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으니까.

   ‘…역시 길드장이라는 건가.’

   “그걸 단둘이서 쓰러트리다니……대단하시네요. 두 분 모두 처음 보는 순간 등급 측정이 잘못되었구나 했는데. 특히 유세하씨는 절대로 F급이 아니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일 이야기를 하지요.”

   길드장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시련에 대한 관리 처분.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나는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미발견’ 던전이나 시련의 경우 처리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지속적인 관리와 운영을 하며 콩고물을 받아먹는 법.

   종합적인 이득만 따져보면 이게 가장 좋다.

   헌터들의 입장료와 안에서 사냥하는 부산물 및 마석의 수수료 일부를 받을 수 있으니까.

   ‘비율은 8대2 정도 되려나.’

   당연하지만 협회가 8이고 내가 2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방법은 기각이다.

   시련이나 던전은 클리어에 성공하여 《귀속》까지 한다고 하여도 본인 전용으로 계속 두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클랜] 정도 되는 집단의 소유라면 계속해서 유지, 관리하며 이익을 얻겠지만.

   [토주원의 정원]은 나와 므냥이 전용으로 귀속되어있다.

   즉 사실상 우리 둘이 직접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건데, 이건 상식적으로 무리다.

   물론, 협회에 관리를 맡기면 되지 않아?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아.’

   이 관리 비용이라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실력과 신용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을 고용하고 파견을 보내는 등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있다.

   그리고 혹시라도 헌터가 죽기라도 하면, 사망 배상금 같은 걸 물어야 할 수도 있는 거고.

   결정적으로 [미몽의 숲]이 가장 큰 문제다.

   길을 알려줘도 환상을 이겨내고, 문제없이 도달할 이들을 많지 않을 거다.

   ‘그리고 이제 볼일 없지.’

   토주원의 정원은 처음 입장에 한정하여 보상이 높은 시련이다.

   다음에 방문하여도 리젠되는건 [어류계] 보스 몬스터 하나뿐.

   쓸만한 자원이나 광물 같은 게 나오는 곳도 아니니.

   굳이 목숨을 걸고 이곳에 방문할 헌터는 많지 않을 거다.

   ‘따라서 고를 방법은 아예 양도 판매하는 것.’

   사실 이건 굳이 ‘협회’가 아니어도 좋다.

   ‘클랜’이라면 더 높은 가격에 사줄 테니까.

   아무래도 가지고 있는 자본금 자체가 클랜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이것 또한 기각이다.

   이유는 너무 위험해서.

   ‘돈은 더 받을지 몰라도…십중팔구 나와 므냥이에게 탐욕의 손길이 뻗어올 거야.”

   나와 므냥이는 아직 약하다.

   적어도 A급 헌터 정도는 성장해야 특별한 세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영향력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길드와도 사이가 틀어질 거다.

   협회의 길드 또한 기본적으로 클랜과 경쟁하는 사이.

   낯짝 두껍게 클랜에 팔고 길드에서 일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1억.

   내가 생각하는 [토주원의 정원]이 가지는 가치다.

   이미 저기서 얻을 수 있는 히든피스랑 히든피스는 전부 얻었다.

   남아있는 찌꺼기를 1억에 팔아넘기기만 하여도 저녁으로 소고기 사 먹을 정도의 공로이다.

   “길드에 양도 판매로 선택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길드장은 진한 미소를 드리웠다.

   역시나, 그녀로서는 이걸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쁘네요. 저희를 믿고 해주신 선택이니까요.”

   아닌데요.

   그냥 제일 만만해서인데요.

   “그럼, 길드장의 권한으로 지금 여기서 바로 거래하도록 하지요. 음 그러네요…역시 가격은…”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아, 아무리 그래도 1,000만 원 정도로 부르지는 않겠지?

   ‘…아니야. 아니야. 욕심을 버려. 유세하.’

   100만 원이어도 나는 오케이 할 거다.

   [길드]랑 척지는 거 고려하면, 걍 손해 보고 마는 게 나으니까.

   …그래도 미리 선수라도 좀 칠까?

   ‘2, 2장 정도는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2천만 원-”

   “-10억.”

   응?

   어?

   응?

   1,000만 원을 잘못 말한 건가?

   “……네?”

   “10억은 어떠신지요?”

   아, 잘못 들은 게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