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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루크가 한창 디아나와 놀아주고 있을 시각, 다이튼은 요동치는 심장을 어쩔 길이 없었다.

    ‘이거, 사실상 데이트 아냐?’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왔을 뿐이지만, 중요한것은 예르나와 단 둘이라는 사실이다.

    다이튼은 옆에서 같이 걷고있는 엘프를 내려다본다.

    윤기나는 황금빛의 머리칼과, 고민하는듯한 자색의 눈동자.

    숲지기로 활동한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가녀려보이게 만드는 새하얀 피부.

    솔직히 넋을 잃고 바라보기엔 충분했다. 너무나…….

    “루는 무슨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 다이튼.”

    “아, 어엉?”

    다이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대체 언제 아이스크림가게에 도착해버린건지!

    예르나를 바라보다보니 시간가는줄 몰랐던 모양이다.

    다이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예르나는 그런 다이튼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모습조차 참 예쁘…….

    “루는 무슨 아이스크림을 좋아할까, 라고 물었어.”

    “아, 그랬었지.”

    ‘후우,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아무래도 정신이 자꾸 다른곳으로 가려는것을 막기란 요원해보였다.

    그만큼 기분이 들떴으니까.

    다이튼은 이대로 갔다간 예르나의 의문어린 시선이 경멸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얼른 생각의 방향성을 고쳐잡았다.

    “맛이라…….”

    바닐라? 무난하지. 초코? 그것도 아이들은 좋아한다. 딸기? 새콤달콤하니 맛있지. 민트초코? 호불호는 좀 갈리지만 나쁘지 않다. 

    여동생은 치약같다며 질색하지만. 

    민트초코가 치약이라고? 어린이치약 쓰는 주제에, 아주 건방진 여동생이 따로없다.

    방향성을 돌렸더니 또 아예 다른 방향으로 머리가 돌아가버렸다.

    그만큼 그는 한가지 고민을 오래하는 성격이 못 되었으니까.

    ‘아오, 머리아파.’

    다이튼은 미간을 짓누르며 고민하기를 포기했다.

    애초에 다이튼은 이런 고민엔 적합하지 않은 인재였다.

    다이튼은 너무 잘 묶인 매듭은 잘라버리자는 주의였고, 너무 귀찮은 일은 아예 돌파해버리는 남자였다.

    “주문할게요.”

    “손님, 결정하셨나요?”

    “네.”

    ——

    루크는 디아나가 자신의 방에서 가져온 곰돌이 인형으로 인형놀이를 하는것에 어울려주는 중이었다.

    루크가 환상으로 이뤄진 파이를 조작하면서 적당히 어울려주면, 디아나는 알아서 꺄륵거리면서 잘 놀았다.

    정령의 환상 자체를 보는것으로도 이미 충분히 즐거운 것이리라.

    덕분에 루크는 편안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근데, 왜이르케 안오지?”

    한참을 놀다가 문득 떠올렸는지, 디아나는 곰인형을 들어올리며 인형에게 물었다.

    “니나, 왜 안올까?”

    그 순간이었다.

    “오빠왔다.”

    디아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드디어 왔다.

    디아나는 자기가 들고있던 인형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하면서 현관으로 다다다 뛰어갔다.

    “와! 아이스크림이다!”

    루크는 먼저 뛰쳐나간 디아나를 향해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니나’라고 불리던 인형을 주워들어 소파에 올려 앉혀두고는 마중을 위해 현관으로 걸어갔다.

    “다녀왔는가. 꽤 오래걸렸구나.”

    루크가 디아나의 옆에 서자, 예르나가 웃음지으며 말했다.

    “루, 디아나랑 잘 놀고 있었어?”

    “물론이다.”

    아이와 놀아주는것은 루크에겐 쉬운 일이었다.

    마을의 어린이들을 놀아주던 경험도 있었고, 루크 자신이 어린이들을 싫어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잘 놀았냐?”

    다이튼이 디아나를 바라보자, 디아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다이튼에게 외쳤다.

    “엄청 재밌었어!”

    “그래, 그럼 얼렁 들어가자. 아이스크림 녹을라.”

    “응!! 그런데, 오빠. 뭐 사왔어?”

    다이튼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커다란 백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걸 봐라.”

    “허어억!!”

    디아나는 그 백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제 볼을 잡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쉰 디아나는, 곧 제 목이 찢어져라 외친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다!!!”

    결국 다이튼이 주문한것은 아이스크림케이크였다.

    무슨 맛을 좋아할지 모르니, 그냥 최대한 다양한 맛이 있는걸로 고른 것.

    “케이크?”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크라면야, 익숙하겠군.’

    빵과 크림으로 만들어진 달콤하고 폭신한 그 감각은 과거에도 몇번이고 먹어본 유형의 디저트이니 금방 맛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아이들은 단맛을 좋아하니, 어린 디아나는 그만큼 좋아라 할 수밖에 없겠지.

    의외로 차분한 루크와는 달리, 디아나는 이미 흥분을 넘어선 광분상태였다.

    기껏해야 1000길 남짓한 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생각했던 디아나였다.

    그런데 아이스크림 케이크라니!

    “오늘 내 생일이야?!”

    “아니. 넌 네 생일도 모르냐? 그만 내 다리 좀 놓고 자리 가서 앉아.”

    “응!!”

    케이크가 그리도 좋을까, 루크는 피식 웃으면서 디아나의 과장된 몸짓을 바라보았다.

    “루도 자리에 가서 앉자. 아참, 손도 씻고.”

    “알겠다, 예르나.”

    ——-

    “이게 케이크……?”

    루크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케이크의 촉감이, 기억과 너무 달랐다.

    ‘이 시대의 케이크는 참으로 특이하구나…….’

    케이크는 빵이 아닌가?

    그러나 이건 차갑고, 꽤나 점성이 있다.

    이름 그대로, 얼린 크림같달까.

    뭐, 사실은 과거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기는 했다.

    얼음을 눈처럼 갈아낸 것에 과즙이나 견과류, 꿀 등을 뿌려먹는 샤베트라는 디저트였다.

    시원하고 맛있기는 하지만, 얼음을 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서 여름에는 귀족이 아니라면 별로 입에 댈 수 없었다.

    얼음마법으로 만든다고해도 얼음속성에 대한 기초적인 권한은 3서클에서야 열리니, 겨울이 아닌 계절엔 최소 3서클 이상의 마법사를 거느린 귀족만이 그 사치스런 간식을 입에 댈 수 있었지만.

    ‘참……. 매번 느끼지만, 이런 호사를 평범한 가정에서조차 아무렇지않게 누릴 수 있게 되다니…….’

    참으로 감동적인 인류의 발전이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마법이, 말 그대로 마법같은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놀라운 세상이 도래했구나. 정말로.”

    루크는 깊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다이튼은 괜히 머쓱해져선 뒷머리를 긁었다.

    아이스크림을 본 아이의 반응이 저모양이라니, 대체 얘는 무슨 삶을 살아온것일까?

    ‘뭐, 이번엔 안 우네.’

    저번엔 꼬치 한입 먹고는 주륵주륵 눈물을 쏟았었는데.

    이번엔 그정도까진 아닌걸까.

    뭐, 이 꼬맹이가 우는건 당황스러우니까 안 우는건 좋았지만.

    하지만 이제 디아나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건지, 거의 침을 흘릴기세였다.

    “빨리, 빨리 먹고싶어!”

    “임마, 기다려라 좀.”

    디아나의 재촉에, 다이튼은 아이스크림을 좀 그릇에 퍼서 디아나에게 건네줬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양을 본 디아나는 금세 입술을 비죽 내밀며 외쳤다.

    “너무 적어!”

    “한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날지도 모르니까. 이만큼만 먹어.”

    “힝…….”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많은데, 겨우 요만큼이라니.

    디아나는 실망스런 표정으로 다이튼을 바라보았다가 예르나를 바라보았다.

    손님이니까 조금 권한을 행사해보라는 제스쳐였다.

    예르나는 그 간절함이 어린 눈빛을보며 말했다.

    “다이튼, 조금정도는 더 줘도 될것같은데.”

    “하아, 그래. 조금 더 주지 뭐.”

    다이튼은 예르나의 말에 마지못해 해준다는 듯이, 과장되게 스푼을 움직여 그릇에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그제서야 양에 만족한 디아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받아들었다.

    “자. 루도 받아.”

    “고맙구나, 예르나.”

    루크는 받아든 아이스크림을 자세히 살폈다.

    ‘점성은 샤베트와 비교해 꽤나 끈적한 느낌이군. 무슨 재료가 들어간거지?’

    이것은 마법이 아니니 마력시로 읽을 수도 없고, 자신은 요리사도 아니니 무슨 재료가 쓰였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리도 맛있느냐, 디아나?”

    “응!! 완전 마이따!”

    “그렇구나.”

    확실히 맛은 있는 모양이었다.

    디아나의 대놓고 행복해보이는 표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으니까.

    루크는 마침내 분석적인 시선을 거두고,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작게 한술 떠올렸다.

    “음.”

    달았다.

    단맛과 부드러움. 깔끔한 조화였다.

    하얀 색상만큼이나 기본에 충실한 훌륭한 디저트라고 할 수 있겠다.

    -루크, ……?

    파이는 마치 풀벌레가 우는듯한 소리를 냈다.

    정말 맛있냐고 물어오는 듯 했다.

    하지만 식사중에 입을 여는것은 예의도 아니고, 어차피 정령은 물질계에 직접적인 간섭이 불가능하니만큼 아이스크림을 먹을수도 없다.

    참으로 아쉽지만, 파이는 그저 바라만 보아야했다.

    파이가 계속해서 풀벌레소리를 내는것은 무시하며 루크는 바로 다음으로 한술을 떴다. 이번엔 조금 더 많이 담아서.

    약간 크게 푼 한 숟가락을 잠시 입 안에 머금으니, 체온으로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초콜릿인가? 처음보다 훨씬 달군.’

    검은색에 걸맞는 더욱 끈적하고 강렬하게 남는 단맛.

    맛있기는 했지만, 입 안에 들러붙는 감각은 루크의 취향이 아니었다.

    세번째는 또 다른 색상을 떠올렸다.

    단맛, 그 기본적인 맛 사이에 이번에는 또 새로운 새콤함이 느껴졌다.

    이건 분명히…….

    ‘체리인가? 이건 꽤 괜찮구나.’

    여태까지로 치자면 제일 괜찮았다.

    너무 과도한 단맛은 루크의 취향이 아니었으니.

    “음?”

    계속해서 숟가락을 놀리던 루크는 무심코 느껴진 맛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달지만은 않다. 

    시원하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이스크림은 원래 차갑지만 그 물리적인 차가움과는 또 다른, 감각적인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마치…….

    ‘흐음, 박하인가?’

    오묘한 맛이 꽤 인상적이기는 했다.

    물론 루크가 그동안 디저트에서 느껴오던 맛과 너무나 달라서 당황스러웠지만…….

    ‘흥미롭군…….’

    마법사인 루크에게 새로운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다는것은 언제나 새로운 관점의 실마리가 되므로.

    대체로 루크는 익숙한것과 새로운것중에서는 언제나 새로운것을 선택하기 마련이었으니.

    내심 루크가 그 맛에 대한 호기심을 피워나갈때, 디아나가 절규하듯이 외쳤다.

    “아악! 오빠, 내꺼에다 민트초코 넣었어!”

    “하하하! 맛있지않냐?”

    “오빠 진짜 싫어!”

    “뭐? 그럼 먹지 마.”

    “아, 아냐. 오빠 최고……!”

    다이튼이 짐짓 디아나의 그릇을 빼앗으려는 순간, 제 등 뒤로 그릇을 빠르게 숨겨버리곤 어색하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내는 모습에, 루크는 정말 사이가 좋은 남매라고 생각했다.

    “그게 싫으면 내게 주거라. 다른 맛으로 교환해줄터이니.”

    “진짜? 고마워, 루크언니!”

    그 모습을 본 예르나는 후훗하고 웃으며 생각했다.

    ‘벌써 저렇게 사이가 좋아졌네.’

    또래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할지도 몰라서 걱정했는데, 루크는 예상과는 달리 사교성도 좋고 배려심도 깊은 참 착한 아이였다.

    ‘너무 기특해…….’

    문득 예르나의 그런 눈빛과 마주친 루크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민트초코 좋아할것같아서 이렇게 썼지만…
    사실 작가는 민트초코 별로 안좋아해요!

    제 입맛은 디아나랑 가까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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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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