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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비약 제조 주문에 대해 물어보니 시모어가 재미있다는 듯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내 맞춰보지. 연금술.”

     

    “정답입니다. 용케 알아차리셨군요.”

     

    “하하, 물론. ‘강화’나 ‘제조’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렸다네. 설마 흑마술은 아니었겠지.”

     

    강화에서 흑마술을 연상했나.

     

    뭐, 그럴 수도 있었다. 수명을 대가로 힘을 얻거나 하기도 하니까.

     

    내가 잠시 대답이 없으니 시모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재차 물었다.

     

    “아니지?”

     

    “물론입니다. 그런 재능을 가지고 주치의가 될 순 없지요.”

     

    시모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조 주문이라. 무엇이 궁금한가? 비약이니 하는 단어를 썼지. 그게 뭔가?”

     

    “단기적으로 신체를 건강하게 해주는 보조식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따지고 보면 비타민이나 홍삼 액기스도 비약으로 볼 수 있다.

     

    에너지드링크도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특정 효과를 발생시키는 점에서 강화 비약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내가 가장 만들고 싶은 건 근력을 단기간 강화해주는 비약이다.

     

    진짜 계단 오르내릴 때 쓸 건 아니고.

     

    ‘아셀라의 일정표를 확인하니 조만간 황실 비무대회가 있었어.’

     

    황가 구성원 전원이 참석하는 가족 모임이랄까.

     

    비무대회를 명목 삼아 봄철 좋은 날씨에 벌이는 2박 3일간의 꽃놀이다.

     

    황제에게는 휴가지만 승계권이 있는 황자와 황녀 파벌은 황제의 눈에 띄기 위해 필사적인 준비를 하게 된다.

     

    자신의 파벌이 얼마나 강대한지 황실 구성원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실력을 뽐낼 자리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조금 떨어진 동쪽 산지로 갔던 모양인데, 같은 장소라면 분명 나도 종일 뛰어다닐 일이 생긴다.

     

    황제직을 노리는 아셀라가 비무대회를 대충 참가할 리는 없다.

     

    비상시를 위해서라도 근력 강화 비약은 준비하고 싶다.

     

    “연금술로 식료품을 강화해 효능을 증가시킨다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으실까요.”

     

    시모어가 손가락을 튕겼다.

     

    “연금술로 광물이 아닌 식재의 근원을 파악한다라! 재미있군. 혹시 그 근원 파악이 어려워서 난항을 겪고 있지 않나?”

     

    꽤 정확한 지적이었다. 지금 내 연금술로는 정확한 화학식까지 조작할 수가 없다.

     

    [강화]와 [성질변화]를 이용해 대충 눈대중으로 원하는 물건과 비슷한 걸 만들어내는 정도다.

     

    장미사탕과 무통약이 그런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현자님께서는 연금술에도 조예가 있으셨습니까?”

     

    “현자라 불리는 만큼 만물의 이치에 통달했지! 거기 자네, 그것 좀 빌려주게.”

     

    시모어가 호위기사 한 명에게서 호신용 단검을 뽑아 내게 내밀었다.

     

    “이걸 부드러운 재질로 바꿀 수 있나?”

     

    “가능은 합니다.”

     

    [성질변화]를 시전한다.

     

    단검 날의 재질은 철.

    ‘단단한’ 특성을 가졌으니 부드럽게 만들려면 고무나 천의 특성을 가질 때까지 성질변화를 사용하면 된다.

     

    “흡.”

     

    마나를 사용해 주문진을 그린다.

     

    아셀라에게 배웠던 대로, 이번엔 조금 어렵게 정 12각형을 세 개 그려봤다.

    하나 건너뛴 꼭지점끼리 선분으로 이어 보강한다.

     

    ‘부드럽다’라는 의미의 고대어를 적어넣는다. 철 재질은 대략 2위계에 해당하는 주문이 필요하니 똑같은 진을 하나 더 만들어 마나가 통하게 연결했다.

     

    회전시키고, 시전한다.

     

    흰 빛이 일며 단검의 성질이 변화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야.”

     

    단검은 딱딱한 상태 그대로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상태로 변해있었다.

     

    “씁, 잠깐 기다려 보십쇼.”

     

    이런 식으로 [성질변화]는 식을 적어넣어도 변화하는 성질이 무작위에 가까웠다.

     

    새 장미사탕을 만들 때 상당히 애를 먹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여섯 번 더 주문을 시전한다.

    그제야 단검에 시꺼멓게 그을음이 지고는 고무처럼 말랑말랑한 재질로 변했다.

     

    “됐습니다.”

     

    “하하, 효율이 안 좋구만.”

     

    시모어가 단검을 들어 끝을 구부렸다.

     

    “하지만 효과는 더할나위 없이 좋군. 물질의 근원을 이해하지 않고 주문을 써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네.”

     

    “근원 말입니까. 성분은 알고 있습니다만.”

     

    철은 철이지. 고무는 탄소와 수소의 합성수지고.

     

    “근원은 근본과 보조로 구성되지. 단검의 날은 본래 근본이 하나, 보조가 스물여섯일세.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고 싶다면 근본 열셋, 보조 서른여덟의 조합으로 특정 도형을 만들어야 하네.”

     

    시모어의 말에 조금 충격받았다.

     

    지금 철과 고무의 원자와 전자 개수를 각각 얘기한 건가?

     

    설마 원소를 관측했을 리는 없고, 마나를 통해 화학을 본능적으로 이해해버렸나.

     

    “흥미가 간다는 표정이군.”

     

    “주문에 적용할 방법이 있습니까?”

     

    “하하, 마법진의 도형과는 다르다네. 근원은 대마법사들도 이해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지. 자네도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나뭇가지를 들어 땅바닥에 도형을 그렸다.

     

    합성고무의 화학식을 나타낸 그림이었다.

     

    “현자님께서 말씀하신 근본과 보조를 이런 형태로 구성하면 부드러운 재질로 변형할 수 있습니다.”

     

    “…호오.”

     

    시모어가 입꼬리를 찢고는 수염을 튕겼다.

     

    “어이쿠.”

     

    그러고는 갑자기 어깨동무를 해와서 넘어질 뻔했다.

     

    “자네, 내게서 수업 들어보겠나?”

     

    “수업이요?”

     

    시모어의 제안은 꽤 흥미가 갔다.

     

    꼭 마법이 아니라도 주문 시전을 필요로 하는 스킬은 많이 있다.

     

    내 연금술 스킬이 바로 그 케이스다.

     

    현자의 강의라면 연금술 강화에 분명 큰 도움이 될 터다.

     

    “대가는 무엇입니까?”

     

    시모어는 내 질문에 만족스러워했다.

     

    궁정 마법사나 되는 현자니 재능은 분명 가지고 있겠지.

     

    아셀라처럼 대가에 민감할 게 분명하니 이 언급을 좋아하리라 확신했다.

     

    “나는 눈치 좋은 녀석이 마음에 들어. 아셀라도 그래서 받아들였지.”

     

    “그 말씀은?”

     

    “한 가지 문제를 내겠네. 내 재능이 무엇인지는 너무 알기 쉬우니 대가를 맞춰보게.”

     

    재능은 당연히 아셀라와 같은 마법이겠지.

     

    하지만 대가로 가지는 디버프는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내가 알아낼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먹힐까.

     

    ‘진단.’

     

    시모어를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 즉시 상태창에 텍스트가 출력됐다.

     

     

    [부상 상태 : 무통각증]

    [부상 위치 : 두뇌]

     

     

    과연.

     

    그는 감각을 못 느끼는 상태다.

     

    마법 재능의 대가로 모든 감각을 잃었다.

     

    미각은 물론, 통각을 포함한 촉각, 후각 등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겠지.

     

    “감각을 잃으셨군요.”

     

    “오호라! 왜 그렇게 추측했나?”

     

    “제가 드린 사탕은 꽤 맛있거든요. 감상을 말씀하지 않으실 리가 없습니다.”

     

    “하하, 예리하군. 아셀라가 유능한 주치의를 데려왔어.”

     

    시모어가 호탕하게 웃고 있으니 근처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바로 그 아셀라가 우리를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스승님, 제 시전 안 보시고 뭐 하세요.”

     

    시모어는 아차 싶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다 제대로 보고 있다네. 방금 제3 진이 30도 뒤틀렸어. 쌓는 순서를 반대로 해보게나.”

     

    “그러죠. …제 주치의에게는 무슨 볼일이세요?”

     

    “하하. 생각보다 재밌는 친구여서 말이야.”

     

    “훔쳐가지 마세요.”

     

    아셀라가 쏘아붙이고는 나를 향해서도 한 마디 덧붙였다.

     

    “공자, 내 마법 봤어?”

     

    “물론이지요, 황녀님.”

     

    “어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천하를 호령할 마법이 틀림없으십니다.”

     

    “…흐응, 당연하지.”

     

    아셀라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몸을 홱 틀어 돌아갔다. 다시 마법 시전에 집중한다.

     

    “자네도 어려운 길을 택했군. 황가의 다른 이도 아니고 아셀라의 주치의라! 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맡지 못할 직업이라 여기고 있었다네.”

     

    “황가에는 황녀님 외에 재능을 가진 분이 안 계십니까?”

     

    “있기야 있지. 하지만 승계권을 가진 자식 그 누구도 두 개를 가지진 않았어.”

     

    “그럼 그만큼 마법을 잘 쓰시는 아셀라 황녀님께서 승계에 유리하시겠군요.”

     

    그래서 아셀라가 차기 황제가 됐나 추측하는데 시모어가 고개를 저었다.

     

    “반대라네. 턱없이 불리해, 주치의.”

     

    “어째서입니까?”

     

    “아셀라는 마법만을 잘 쓰기 때문일세.”

     

    “마법만을?”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었다.

    내가 아는 아셀라는 목적을 위해 온갖 모략과 지략을 누구보다 잘 쓰는 여자였다.

     

    “마법의 재능만 두 개. 처음부터 황가는 아셀라를 승계권자가 아닌 마법사로 키우려 낳았어.”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허, 주치의인데 아직 못 들었는가?”

     

    시모어가 수염을 꼬며 말했다.

     

    “하긴 황가에도 알고 있는 자가 거의 없는 사실이군. 주치의인 자네는 알아둘 필요가 있겠지.”

     

    슬쩍 그가 아셀라를 돌아봤다. 아셀라는 시모어가 낸 과제를 해결하려 애쓰며 집중하고 있었다.

     

    “카밀라 제3 황비, 괜찮은 마녀지. 실력자야. 그녀가 입궁하는 조건은 황가에 충성하면서도 타국을 견제할 강력한 마법병기를 낳는 것이었다네.”

     

    “그게 아셀라군요.”

     

    “핏줄은 무엇보다 확실하니. 기대대로 아셀라는 한 개의 마법의 재능을 타고났어.”

     

    “한 개요? 그럼 두 번째는?”

     

    “주입됐다네. 다섯 살 때, 대가와 함께.”

     

    주입됐다?

     

    나처럼 두 개의 재능을 타고난 것과는 다른 건가?

     

    “아셀라는 병기일세. 차기 황제가 타국 침략에 사용할 마도병기. 황가의 피를 이었으니 배신하지도 않아.”

     

    “차기 황제가 누가 될지도 모를 일이잖습니까? 타국 침략이 꼭 필수적인 전제도 아닐 텐데요.”

     

    현 황제는 쇠약해서 전쟁을 일으킬 힘은 부족하다.

    차기 황제가 평화적인 기조를 잡으면 아셀라는 어디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땐 폐기될 뿐일세.”

     

    “…그렇군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아셀라를 처형함으로서 제국의 기조를 타국에 알리는 용도로 쓸 수도 있고. 정치에 사용할 패는 많을수록 좋아. 황실은 늘 그렇게 움직인다네.”

     

    시모어의 이야기에 조금 위가 쓰려왔다.

     

    오늘따라 몸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다.

     

    가족이든 뭐든 전부 정치도구에 불과할 뿐인 곳이 황실인가.

     

    이곳의 상식은 상당한 별세계라 평생 적응할 수 없을 듯싶다.

     

    “황녀님께 재능 주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까?”

     

    “그것까진 모르겠군. 자세한 건 카밀라 황비만이 알고 있다네. 아, 그녀의 파벌을 지원하는 2황자도 알지 모르겠군.”

     

    2황자는 팔켄하인이 담당하는 승계권자다.

     

    “비밀 이야기는 이쯤 하고.”

     

    시모어가 마법을 해제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방음 마법을 걸어놨었다. 꽤 철저하다.

     

    “어디, 앞으로는 수요일과 금요일 아침에 찾아오게. 자네에게 진짜 주문이 뭔지 가르쳐주겠네.”

     

    “영광입니다.”

     

    시모어가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으며 수염을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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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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