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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 * *

       

       

       

       

       “나보고 혁명을 포기하란 말인가?!”

       “다시 처음부터 하는 것입니다. 아직, 페트로그라드는 건재합니다. 그곳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페트로그라드로 가자니. 대체 얼마나 가란 건가.

       

       모스크바에서 페트로그라드까지 갈 정도로 위험해진 건가.

       

       페트로그라드는 소비에트가 일어난 혁명이 일어난 상징적인 도시다.

       

       이곳으로 돌아가자는 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레닌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아니, 아직 이야.”

       “레닌 동지?”

       

       

       혼이 빠져 정신이 나가버린 듯 초점이 맞지 않는 레닌의 모습에 소련의 국가정보통제담당 인민의원 스탈린은 레닌이 이전의 총명함은 온데간데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닌은 모스크바 인근 지도를 펼쳤다.

       

       

       “세묜 부됸늬의 적기병대가 황녀의 옆구리를 푹 찌르고 강력한 한방으로 저 안톤 데니킨과 표트르 브란겔. 반동들을 격퇴하면 되네.”

       “부됸늬의 기병대는 카자크 반동들에게 격퇴당했습니다.”

       “예고로프 동지의 적위대가 안톤데니킨의 후방을 쳐준다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동지. 예고로프 동지는 공격에 동원할 전투 병력이 많지 않습니다. 예고로프동지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스탈린은 레닌의 말을 듣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고로프의 적위대라니. 적위대는 붉은 군대의 전신으로 트로츠키가 붉은 군대를 건군하기 전에 존재하던 붉은 군대의 전신이다.

       

       얼마나 사정이 급하면 붉은 군대도 아닌 적위대로 부를까.

       

       지금 안톤데니킨의 군대의 뒤를 칠만큼 적위대가 많다고 해도 무기가 부족하다.

       

       

       “그 많은 군대는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스탈린! 애초에 동지가 차리친만 막았으면 이리될 일도 없었네!”

       “죄송합니다. 동지.”

       “다 나가!”

       

       

       레닌의 축객령에 스탈린은 레닌의 집무실을 나왔다.

       

       그는 생각했다.

       

       

       ‘철저하게 실패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세묜 부됸니의 적기병대가 목숨을 걸고 후미를 뚫어 뒤에서 백군의 상징처럼 있을 황녀를 생포하거나 죽이게 할 생각이었지만,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황녀는 정작 선두에 있어서 반대로 카자크 기병대에 격퇴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생포.

       

       이제 남은 것은 인민들을 갈아 넣으면서 막아내는 것인데.

       

       이 짓거리를 하면 방어에 성공한다 한들, 볼셰비키는 끝장난다는 것이다. 애초에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혁명의 상징인 레닌이 빠르게 무너진다는 말인가.

       

       살아남은 황녀 하나에 의해 이렇게 혁명이 무너지고 마는 건가.

       

       차르 일가의 처형은 스탈린 본인이 제안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기회가 될 때 죽여야지 막무가내로 죽여버린 것은 타격이 컸다.

       

       레닌은 어느새 볼셰비키 시민들을 앞세워 죽이고 있는 사탄이 되어버렸다.

       

       ‘물론 황녀를 원망하면서 싸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사정이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황녀는 비열하게도 항공기를 이용해 항복하면 사면해주겠다는 선전물을 뿌려대고 있으니까.

       

       

       ‘모스크바의 시민이여! 더는 볼셰비키의 사악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들고 일어나십시오! 러시아인끼리 동족상잔을 일으키게 만들어 당신들의 남편, 자식, 형제를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에게 들고일어나십시오!’

       

       

       참 보기 좋게 뿌려대고 있다.

       

       이런 걸 백군에 뿌린다 해도 소용이 없겠지만.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이건 귀가 솔깃해지게 만들겠지.

       

       이러면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전선에 있는 골수 볼셰비키들을 불러들여야 하고 이러면 인력이 또 빠지게 된다.

       

       

       ‘완벽하게 졌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황녀 아나스타샤가 마치 오흐라나로 소비에트를 속속 헤집은 것처럼 소비에트가 야심 차게 준비 중인 개혁을 먼저 해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든다든가. 그때부터 이미 인민들은 소비에트에 실망했다.

       

       아니지. 아니야. 애초에 잘못은 아나스타샤를 죽이지 못한 시점이었다.

       

       정말 차라리 살려서 전향시키는 편이 나았겠지.

       

       전향한 차르 일가가 선전하고 다니면 백군도 무너졌을 터.

       

       훗날 소비에트가 러시아 전역을 전부 장악한다면. 그때 가서 차르 일가를 처형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트로츠키 망할 놈.”

       

       

       뭐 따지고 보면 그때 나서서 막지 않은 스탈린 본인의 탓도 없지는 않았다.

       

       스탈린도 그때는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

       

       애초에 트로츠키놈 앞에서 당시 처형을 막으려 했다면 트로츠키가 자신을 반동으로 몰아버릴 수도 있었을 테니까.

       

       스탈린은 여기서 죽어 순교자가 될 생각도 없었고. 자기 본인의 목숨도 소중했다.

       

       모스크바가 어떻게 버티고는 있지만, 힘의 차이는 분명하고 전투가 계속될 수록 모스크바에서는 불온한 움직임이 이어질 거다.

       

       그렇다면 역시 레닌을 방패로 세워야 한다.

       

       이제 스탈린에게 레닌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선동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땅도 갖다바치고, 황녀는 열심히 선수치고 있는데, 이쪽은 개혁도 못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자이면서도 현실은 철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냉철한 인물이었다.

       

       레닌은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나스타샤란 계집에게 패배했다. 그랬으면 적어도 그 아나스타샤에 맞설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데. 레닌의 한계는 명확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아나스타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란 허울 좋은 것에 패배했다.

       

       스탈린도 이쯤 되면 자신이 믿는 것이 제대로 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러시아에 저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의 장점을 곁들인 수정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 공산주의는 완전히 끝이다.

       

       러시아에 더는 공산주의가 자리 잡기 힘들겠지.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중국도 좋고, 대전쟁의 패배의 맛을 본 오스만이나 오스트리아는 어떤가.

       

       아니면 독일?

       

       그래. 그러자면 일단 새로운 공산주의의 태동을 위해서 여기서 레닌은 혁명의 상징으로 죽어야만 한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죽을 땐 죽더라도 스탈린 일행이 모스크바 밖으로 탈출한 다음 레닌이 죽어야만 하는 조건부가 붙는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스탈린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레닌이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함께 혁명을 일으킨 자신들도 도망칠 수 없다.

       

       이대로 죽어야 하는가.

       

       벌써 모스크바 시민 중에는 이쪽에 대놓고 적대감까지는 아니지만, 소비에트를 따르지 않는 불순한 사상의 시민들이 많이 늘었다.

       

       그들을 다 때려잡고 있지만, 오흐라나까지 잠입할 정도면 모스크바가 얼마나 버틸까.

       

       황녀에게 항복?

       

       황녀도 어리지만, 제국주의자다.

       

       내전 중에 몽골 총독을 임명하고 북만주로 남하하며 기세를 떨치고 제국의 재건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공산주의자가 제국주의자에게 무릎 꿇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에 그걸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목숨을 구걸하고 싶어도 황녀의 부모 형제가 죽어 황녀가 지금에 이른 것이 아닌가.

       

       목숨을 보전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선보다는 차악.

       

       레닌을 여기서 어떻게 죽이고, 자신들은 페트로그라드로 도망간다.

       

       아니, 꼭 죽이지 않아도 된다.

       

       한동안 의식만 없게 만들어도 충분하다.

       

       일단 페트로그라드까지 가면, 어디 망명을 준비하든 해야겠지.

       

       그럼 레닌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가 문제인데, 그래.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특단의 조치를 사용할 수밖에.’

       

       

       때마침 아내 나데즈나 알릴루예바가 레닌 동지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래. 그 방법 밖에 없다.

       

       스탈린은 이런 곳에서 죽기 싫었다

       

       

       * * *

       

       

       모스크바 전투가 진행될수록 모스크바 방어선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인민들이 죽으면 그 자리를 계속 채워나가고 있으나, 그 인민들도 갈리고, 그야말로 볼셰비키 정권유지의 고기 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방어선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지들! 지금 저 반동의 수괴 황녀가 오고 있소! 헌데 지금 꼬리를 말고 도망치겠다는 거요?”

       

       

       뒤에서 골수 빨갱이들이 인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덕이었다.

       

       이미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서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죽지 않는 이상 빨갱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존재.

       

       그런 진골 볼셰비키들은 겁먹고 도망치려는 인민들을 총으로 쏴죽였다.

       

       생존의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나 있는 것과 뒤에서 바로 날아오는 총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명백히 전자였지만.

       

       그조차도 이제는 약빨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럼 네놈이 가서 싸워! 우리가 니들 고기 방패인 줄 알아?”

       “네놈들은 차르보다 더한 새끼들이야!”

       “이.이 반동들이!”

       

       

       붉은 군대의 장교가 소비에트에 반발하는 반동사상으로 물든 인민을 총으로 쏘려고 할 무렵.

       

       탕!

       

       먼저 인민들의 총에 의해 죽었다.

       

       나약한 소리를 하면 어디서 어떻게 총탄이 날아와 머리에 박힐지 모른다. 그 때문이라도 싸웠던 인민들은, 이미 이 자리에서 전우들이 육편이 되는 것을 똑똑히 보면서 생각을 달리했다.

       

       당장 얼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전우가 저 거대한 강철 덩이의 바퀴에 짓눌려 고기 양탄자가 되어버렸다.

       

       이걸 보면 복수심으로 분노하게 될까?

       

       복수심도 정말 가능한 수준이 되어야 하고 자시고 한다.

       

       전우라 하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같은 처지로 동정하며 친해진 관계에 불과하다.

       

       눈앞에서 현실로 그 광경을 목도하면 생존욕이 앞서는 법이다.

       

       백군은 파도처럼 몰려오고, 자신들보고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장교들은 소수였다.

       

       심지어 자신들은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항복하면 사면해준다고 했으니까.

       

       

       “나.나는 항복할 거야. 황녀가 볼셰비키 대가리들 빼고 항복하면 사면해준다고 했어.”

       “나도 항복할 거야.”

       

       

       백군이 날리는 항공기에서 떨어진 삐라만 보고 적군에 속한 병사들은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살 수만 있다면 백군에 붙는 것이 더 나았다.

       

       붉은 군대의 장교들은 이제 걸어 다니는 과녁판이었다.

       

       총을 들고 협박하면 반대로 휘하에 있던 병사들의 총에 죽고 병사들은 항복하기에 바빴다.

       

       이쯤 되면서 보고가 올라가자 붉은 군대의 장교들은 이제 자기 머리에 총구멍이 날까 두려워 너무 병사들을 다그치지는 않고 달래는 쪽으로 선회했다.

       

       

       “동지들. 잘들 생각해봐. 우리 살려준다는 게 정말 사실이겠나?”

       “우리라니 말은 바로 해야지. 너희 같은 진성 빨갱이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네놈들한테 끌려왔다고!”

       

       

       달래면 달래는 대로 장교들을 우습게 보고 당당히 백기를 거는 병사들도 있었다.

       

       물론 아직은 항복하는 만큼 그 자리를 채우는 붉은 군대가 더 많지만.

       

       미하일 프룬제는 전선에서 탈영병, 항복하는 적군 장교들을 막기위해 병사들 배급도 늘리고 방어전만 승리하면 진정 소비에트의 낙원이 펼쳐질 거라고. 그렇게 설득해가면서 겨우 방어선을 유지했으나. 그렇게 해봤자 무너진 전세는 회복하기 무리였다.

       

       

       “검은 남작이 강하긴 하군.”

       

       

       안톤데니킨의 군대는 트로츠키와 예고로프가 함께 돌려막기를 하며 막을 수 있었지만. 검은 남작 표트르 브란겔.

       

       황녀가 선두에 있어 사기도 올라있고. 검은 남작이 지휘하는 군대는 남달랐다.

       

       저 전차라는 것을 앞세운 전격전은 두텁게 쌓아둔 모스크바의 요새와 방어를 박살 내면서 몰려오는데, 마치 지신들은 거센 폭풍 앞에 있는 촛불과도 같았다.

       

       황녀를 기습해서 전쟁을 끝내겠다는 부됸늬의 적군 기병대도 검은 남작 휘하의 카자크 기병에게 가지 치듯이 탈탈 털려 패잔병으로 돌아왔다.

       

       검은 남작을 어디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애초에 자신이 모스크바 전투에서 방어선을 맡은 것도 현재 붉은 군대에 제정 시절에 활약한 명장이 있는 것도 아닌 탓이었지만.

       

       어디를 봐도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인민들이 전차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전차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지만. 전차의 뒤에서 따라오는 보병들의 총탄도 매섭긴 매한가지였다.

       

       그저 적군은 백군의 먹잇감, 전투력 실험대에 불과했다.

       

       실제 역사에서 표트르 브란겔의 백군을 끝장냈던 미하일 프룬제는 그렇게 반대로 검은 남작에게 밀리고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으리라.

       

       방어전만으로도 버티기 힘든데.

       

       최근에는 제정 시절 출신의 장교도 백군에 항복 중이다.

       

       거의 반강제로 협박으로 유지되는 붉은 군대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실패하고 민심도 잡지 못한 붉은 군대다.

       

       골수 공산주의자인 자신이 저 제국주의자 황녀에게 항복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렇게 되면 정말 모스크바에서 퇴각해야 한다.

       

       레닌 동지에게 그럼 모스크바에서 퇴각해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막사로 한 병사가 부리나케 뛰어들었다.

       

       

       “사령관 동지!”

       “무슨 일인가?”

       

       

       설마 검은 남작의 군대가 기어이 방어선을 뚫었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 저. 레.레닌 동지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차라리 열린 결말을 내지. 아나스타샤 암살로 끝내지는 않습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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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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