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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거대한 굉음을 내며 ‘급행’이 출발했다.

        온갖 방어마법을 두른 쇳덩어리가 탑을 오르는 방법은 말 그대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가며 마탑의 외각을 타고 도는 것이었다.

        선로가 이어진 대부분은 구역은 안전을 위해 접근이 제한되나 때때로 습격을 감행하는 무리들이 나오곤 했다.

       

        등반을 위한 일종의 편법.

        성공적으로 급행에 올라탈 수만 있다면 높은 층에 안착하는 것도 꿈은 아니기 때문이다.

       

        ====

        [님들 급행 타면 좋은 건가요?]

       

        빨리 중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해서 전재산 주고 3등석 샀는데

        만약 제 수준에 너무 어려운 거 같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겠죠?

       

        — 그걸 탔음? ㅋㅋㅋㅋㅋㅋ

        — 돌아오는 표값은 조상님이 내 주시냐…….

        —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당장 뛰어 내려라

        — 공역 들어갔다가 못 나오는 놈들이 다 너같은 애들이었구나

        — 거기서도 갤러리는 할 수 있으니 ㄱㅊ

        — ㅂㅂ 멀리 안 나감~

        ====

        ====

        [누가 종착역까지 간대?]

       

        19층에서 타서 21층에서 다시 내릴 거야~

        수련의 층 시련 좆같아서 못 해먹겠음

       

        — 급행에는 중간에 내리는 버튼이 없는데?

         ㄴ 아 그냥 뛰어내리면 두 다리가 브레이크라고 ㅋㅋㅋㅋ

         ㄴ 그거 성공한 애들은 다 실낙원에 가 있음

         ㄴ 실패하면?

         ㄴ 평생 갇히는 거지 뭐

        — 걸리면 학파에서 퇴출되는 건 알지?

        — 백가 원로들이 만든 방어마법 뚫고 들어갈 실력이면 니가 수련의 층에서 시간만 죽치고 있을까?

        ====

        ====

        44층에갇혀있어요살

        [44층에 갇혀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

       

        — 오 꾸준글 ㅎㅇ

        — 얜 아직도 못 나왔나 보네 ㅋㅋㅋㅋ

        — 어떻게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

        — 곧 친구들 가니까 기다려~

        ====

       

        “화장실은 객실 오른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침대는 저녁이 되면 승무원이 직접 만들어드릴 예정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고풍스러운 외관과 훌륭한 서비스, 일등석의 시설은 과연 훌륭했다.

        중력값 조정으로 탑을 올라가는 느낌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차창엔 환영 마법으로 직조해낸 다채로운 풍경이 떠다녔다.

        열차의 진동이 알 수 없는 외력에 의해 잦아들기 시작하자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전술핵을 직접 사용하는 것은 갤러리의 주인조차 내상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얼마 전 아르투르에게 부탁받아 보내준 ‘수상하리만치많은돈을지불한커미션모음집’과 같은 ‘B랭크 접근제한 폴더’에 저장되어 있지만, 격리 등급은 이쪽이 더욱 높았다.

       

        아주 잠깐 쳐다봤을 뿐인데 초원 위로 떠다니는 구름 사이에서 이상한 형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멀미가 절로 일어났지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공역에서의 업무 따위가 아닌 오직 비나에게 마법을 내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셀루시아는 백가 내에서도 꽤 순위가 높지만 저희가 옆에 있는 한 관리인 님에게 해를 끼치진 못할 거에요.”

        “감사합니다.”

        “저는 차장님이 불러서 잠시 다녀올게요. 좋은 시간 보내세요!”

       

        마침 크리스티나가 자리를 비우자 비나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

        “…….”

       

        단화와 검은 스타킹, 가지런히 모은 무릎을 살포시 덮은 수려한 스커트.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양장본을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순혈 마법사라는 사실을 떼어 놓고 보더라도 감히 함부로 말을 걸기조차 어려울 만큼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외모였다.

       

        물론 실상을 알고 나면 좀 깨는 면이 있었지만.

       

        ====

        얼어죽어도메테오

        [이번 조사 위원회는 저희 글레시아가 주최한 거에요]

       

        역시 원소학파 중에서도 제일 명망 높은 학파 다워요

        칠현자 직을 내팽개친 칼레이도스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에요

        엡실론 관의 자판기에도 이제 저희 글레시아에서 판매하는 얼음물만 놓기로 했어요

       

        (사진)

       

        그러니까 앞으로는 공짜로 정수기에서 뽑아 먹으면 안 돼요 

       

        — ㅇㅇ(1.1) : 또또 뻘소리 한다 갤러리가 느그 일기장임?

         ㄴ 얼죽메 : 또 당신이군요 하지만 상관 없어요 전 당신같은 한심한 인생이 뭐라한들 전혀 타격받지…….

         ㄴ ㅇㅇ(1.1) : 그렇게 대단해서 대미궁에서 질질 짜다가 미티어 바짓가랑이 붙잡고 겨우 올라왔음? 니들이 흘린 눈물 때문에 어둠의 숲 나무들이 5미터는 더 자랐다더라

         ㄴ 얼죽메 : 지금어디있나요당장말해얼음송곳을머리에박

         ㄴ ㅇㅇ(1.1) : 긁?

        ====

       

        “아드득……!”

       

        부들부들 떠는 비나를 놀리는 것은 이쯤해 두고 나는 용건을 꺼내었다.

       

        “비나 님.”

        “네?”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마법을 한 가지 내게 줄 수 없냐는 말을 듣더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법이요?”

        “네, 해주학파가 수련의 층을 등반하려면 타인에게서…….”

        “그런 뜻이 아니에요. 사감은 순혈 마법사에게서 마력의 총체를 받는다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군요.”

       

        역시 가업 비밀 같은 거라 나같은 놈한테 쉽게 넘겨줄 수는 없으려나?

        마법을 해석, 파훼당한다는 건 자연스레 학파의 힘을 약화시킬 테니 경계받는 것도 당연하다.

        놀란 듯한 반응을 보고 미련없이 포기하려던 찰나, 비나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정말입니까?”

        “네, 대신 공역에서 나갈 때까지 사감이 제가 준 케이크를 완전히 부술 수 있다면요.”

       

        나는 아까 플랫폼에 도착하기 전 급하게 챙겨온 봇짐을 꺼냈다.

        연녹색 천 안에는 잡다한 물건과 함께 지금껏 줄곧 해주적으로 물고 빨아왔던 얼음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이걸 완전히 부순다면 마법을 내어준다라……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녀가 내게 내어준 시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급행을 타고 다시 내려오기 전까지라면 일 분 일 초가 아까웠으니 이런 자투리 시간을 모조리 쏟아도 모자랐다.

       

        케이크에 간섭기를 사용하자 삼단으로 이루어진 시트의 꼭대기와 딸기 사이에 작은 틈이 느껴졌다.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겨 주의만 한다면 마력회로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술식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가장자리에 놓인 딸기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한 번에 부술 수는 없으니 장식부터 하나씩 제거해 나갈 요량이었다.

       

        “…….”

       

        톱질하듯 도려내기보단 침과 점막으로 균열을 만든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케이크는 공격은 커녕 반격조차 하지 않지만 시전자에게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존재하기 마련.

        술식과 술식의 연결고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나의 체온을 전하면서 마치 어르고 달래듯 살살 떼어내야 했다.

        그러다 질척임에 익숙해져 경계가 약해진 틈에 이빨을 드러내 앙! 하고 송곳니를 박는 것이었다.

       

        축축.

        톡톡.

        사각사각.

        오독오독.

       

        축축.

        톡톡.

        사각사각.

        오독…….

       

        .

        .

        .

       

        빠직!

       

        투명한 얼음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도 땀방울이 흐를 정도로 간섭에만 집중한 지 어언 한 시간.

        나는 기어코 딸기 하나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투명한 얼음에 그어진 실금들을 보며 스스로의 실력에 감탄하던 그때.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던 비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비나 님?”

       

        평소 그녀답지 않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약간 볼이 붉었다.

        자세나 표정이 어딘가 안절부절 못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비나는 곧장 객실 문을 열더니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통로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내가 따라가려 하자 문고리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갑자기 어디 가십니까?

        “……실.”

        “네?”

        “오지 마세요.”

       

       

       

        *

       

        방금 뭐였지?

        나는 손에 묻은 얼음 조각들을 털어내며 비나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떤 급한 일인지는 몰라도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케이크의 남은 딸기들을 마저 뗄까 고민하다, 대신 열차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실제도 아니면서 반복되는 풍경만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객실 밖으로 나온 나는 우리가 차량의 한 칸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등석 중에서도 순혈 가문에게만 제공되는 특실인 모양이었다.

       

        “앞은 어차피 기관실일 테니까…….”

        “어이, 거기 너!”

       

        그런데 뒷칸으로 가는 문을 열자마자 로브를 굳게 눌러 쓴 마법사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마치 나를 찾고 있었다는 듯이 옷자락을 잡아채더니 인적이 드문 통로로 끌고 갔다.

        38이라는 숫자를 보아하니 백가 출신인 듯한데, 아무리 봐도 일면식은 없었다.

        의아해하던 내게 그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니플헤이르에게 접촉하는데 성공하면 연락한다고 했잖아!”

        “네?”

       

        집중하지 않으면 감지하기 힘든 미세한 떨림은 열차가 살갗에 파고든 뱀처럼 마탑을 올라가는 중임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플랫폼에서 비나와 크리스티나에게 말을 걸었던 셀루시아의 마법사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는 단순히 호감을 사기 위해 두 사람에게 접근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게시판에선 그렇게 해낼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너 설마…… 맘이 바뀌어서 그놈들을 곱게 공역까지 보낼 생각인 건 아니겠지?”

       

        단순히 일등석에서 나온 것을 보고 말을 걸었을 뿐, 내 얼굴을 모르는 모습을 보니 갤러리 내에서만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치노트로 확인한 눈앞의 마법사는 최근 버려진 ‘꿀벌 게시판’에 접속한 기록이 있었다.

        아마 지금쯤 플랫폼 바닥에서 뒹굴고 있을 녀석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내가 이들의 일원으로 위장한다면 앞으로 벌어질 커다란 소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

       

        “뭐야, 위치노트 있었으면서 연락은 왜 안 받아! 게다가 가문의 문장은 또 어디갔어?”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살면서 거짓말이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다 남들을 저주할 줄도 모르는 해주학파의 이단아인데?

        정체를 속이고 테러 조직에 잠입해 그들의 정보를 빼내려는 시도 따위 1초만에 들킬 게 분명…….

       

        “잠깐, 이 계정은 ‘사랑받는 손주’가 아니잖아? 설마…….”

        “어리석군요. 이렇게 중요한 계획에 노트를 하나만 쓰는 머저리가 어디 있나요?”

       

        ……했지만 나는 곧장 가면을 뒤집어썼다.

        용의 심장에 창을 꽂았을 때 이후,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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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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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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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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