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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

       

       

       “아니, 말도 안 되잖아. 사랑?”

       

       

       사랑은 무슨.

       

       시우는 그게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범이 그렇게 말했는데?”

       

       

       그 할아범이 도대체 누구길래 아멜리아에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한 걸까.

       

       아니, 말한 건 둘째 치고.

       

       도대체 왜 믿은 거지?

       

       말이 안 되잖아.

       

       

       “그럴 리가 없잖아. 아르테는 빌런이라고!”

       

       “유시우, 생각해 봐. 아르테가 너를 지켜보는 이유가 뭐야?”

       

       “그걸 모르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 아냐!”

       

       “그래. 거기서 모든 게 시작하는 거야!”

       

       

       척, 하고.

       

       마치 탐정이 범인을 지목하듯, 아멜리아가 내게 삿대질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해. 나도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인가 했거든.”

       

       “어처구니없는 소리 맞거든?!”

       

       “아니, 아니야! 자, 유시우. 진정하고 생각해 보는 거야.”

       

       

       후우···.

       

       그래, 진정하자.

       

       아멜리아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분명 그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겠지.

       

       숨을 가다듬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는 아르테에게 감시당하고 있지?”

       

       “···그렇지.”

       

       “집 밖에서 계속 감시하기도 하고?”

       

       “응.”

       

       “거봐! 사랑이잖아!”

       

       “어디가?!”

       

       

       아니, 진정은 무슨!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 그 아르테가 사랑이라니. 나한테?!

       

       쿵, 쿵.

       

       심장 소리가 시끄럽게 요동치는 게 귓가에 들리는 기분이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감시당하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보라고!

       

       

       “자, 잘 생각해 봐. 아르테는 너에게 관심이 많아. 이건 확실하지?”

       

       “그렇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랑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어. 그건 감시라고!”

       

       “널 따라서 동아리에 들어가기도 했고. 검술 수업까지 따라갔다고 했었던가?”

       

       “···그것도 감시야!”

       

       “다른 학생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수업 시간엔 자꾸 너를 지켜보고?”

       

       

       도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것들은 당연히 나를 감시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잖아.

       

       내가 그 사실을 아멜리아에게 열변하자, 그녀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찔러왔다.

       

       

       “물론 감시일 수도 있지만, 유시우. 네가 감시당할 인물이야?”

       

       “뭐, 뭐?”

       

       “그냥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뛰어날 뿐인 네가, 그녀에게 감시당할 이유가 있어?”

       

       “그, 그거야 있지! 마수 사태의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걸 눈치챘으면 그냥 널 죽이면 되잖아. 쓱, 하고. 라이라도 죽였다며?”

       

       

       말문이 턱 막혔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무언가 입 밖으로 반박을 내뱉고 싶었지만, 입이 막힌 듯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왜, 그렇잖아. 지금 우리가 보아온 아르테는 보통이 아니야. 너도, 나도 들키면 그 자리에서 쓱싹. ···죽어버린다고.”

       

       

       아멜리아가 엄지로 목을 스윽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 알고 있다.

       

       아카데미에 잠입이 가능하고, 마수로 아카데미를 습격할 수 있고.

       

       라이라를 아주 간단하게 죽여버린 그녀라면, 사람을 죽이는 데 거부감 따위는 없을 게 분명하다.

       

       여러 가지 행동을 벌였지만, 지금껏 우리가 눈치챈 사건은 한 줌일 수도 있었고.

       

       아르테는 위험하다.

       

       그런 그녀가 마음을 먹으면 우리가 죽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아.

       

       그렇기에 들킨다면 무조건 죽을 거라 생각했던 탈의실에서 기적적으로 벗어난 뒤 눈물을 훔치지 않았던가.

       

       

       “나를, 감시하던 게 아니었다고···?”

       

       “그렇다니까! 감시하는 거라면 너 같은 녀석을 감시할 필요가 없어!”

       

       

       너 같은 녀석이라니.

       

       ···반박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야, 저 정도의 능력자가 나 같은 걸 감시할 이유가 없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그, 그러면 도대체 나를 지켜보는 이유가, 뭐지···?”

       

       “말했잖아! 사랑이야, 사랑!”

       

       

       결국 이건가.

       

       돌고 돌아 아멜리아가 주장하던 이야기로 다시 넘어와 버렸다.

       

       

       “너를 바라보는 이유? 멋있으니까! ···나는 잘 모르겠지만. 뭐, 얼굴은 좀 봐줄 만하긴 해.”

       

       “야?!”

       

       “네 집 앞까지 따라가는 이유? 그거야 사랑하니까! 첫눈에 반한 거지!”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당연하게도 아르테가 나를 감시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감시가 아니라고?

       

       

       “너를 따라서 검술 수업에 들어간 것도, 동아리도 너를 따라서 들어간 것도. 전부! ···사랑해서 그런 거야!”

       

       

       문득 시우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름도 모를, 아카데미에 잠입한 그 빌런.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까워 보이기는 했지만, 그는 사람이었다.

       

       처음 사람을 베었을 적의 그 감촉에 소름이 끼쳤을 무렵, 그녀가 무얼 했더라.

       

       

       ‘걱정하지 마세요, 유시우 군.’

       

       ‘그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요. 저와 아멜리아 양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모든 게 괜찮을 거에요.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시우 군에게는 잘못이 없답니다.’

       

       

       그 부드러운 감촉···아니, 아니지.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나를 위로해줬어.”

       

       “응?”

       

       “그때 말이야. 카멜레온.”

       

       “아, 아···. 그때 말이지?”

       

       

       아차.

       

       시우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사건 이후로 한동안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잃었다.

       

       그걸 드디어 회복했나 싶었는데, 부주의하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버리다니.

       

       다시 그녀가 기운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던 그때, 시우의 예상과는 달리 아멜리아가 당차게 말했다.

       

       

       “미안했어!”

       

       “···어?”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 놓고 그 꼴이라니. 반성해야지. 음.”

       

       “너, 괜찮···은거지?”

       

       “물론이지. 내가 누군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그때의 일을 모두 털어낸 모양이었다.

       

       평소대로의 아멜리아였다.

       

       

       “흠, 흠. 어쨌든! 네 말대로, 아르테는 실의에 빠진 너를 위로해줬어. ···이게 무슨 뜻인지, 너도 알겠지?”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아멜리아의 말을 부정해보았지만,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에 확신이 담기지 않았다.

       

       ···진짜로? 그게 맞아?

       

       생글생글 웃던 아르테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목소리가 흔들렸다는 걸 깨달은 걸까.

       

       아멜리아가 당차게 웃으며 말했다.

       

       

       “너를 계속 지켜본 것도, 너를 졸졸 따라다니던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라니까!”

       

       

       ···그런가?

       

       시우는 그녀의 말에 납득해버렸다.

       

       남자라는 생물은 착각하기 쉽다고들 하던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여성이 혹시 자신에게 관심이 있나, 망상을 펼친다고들 하지.

       

       하지만 이건.

       

       이건, 착각이 아닌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아멜리아다.

       

       나와 함께 아르테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같은 여성인 그녀가.

       

       아르테가 나에게 반했다고 이야기하잖아.

       

       그것도 이렇게 당당하게. 어느 정도 일리도 있었다.

       

       ···진짜라고?

       

       

       “감시할 가치가 없는 너를 계속해서 지켜보는 이유, 그건 사랑밖에 없잖아. 첫눈에 반한 거지.”

       

       “그, 그런가···?”

       

       “확실하다니까! 할아범도 그렇게 말했어!”

       

       

       그 할아범이 누구를 말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유시우는 아멜리아의 말에 넘어가 버렸다.

       

       너무 그럴듯했으니까.

       

       

       “아르테가, 음, 그···. 조금,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걸 거야!”

       

       “조금? 조금이라기에는 심한데···?”

       

       “아, 대충 알아들어!”

       

       

       조금이라기에는 너무 많이 나간 게 아닌가 싶어 소심하게 반박해보았다.

       

       순식간에 까였다.

       

       어째서.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그녀를 막을 방법이 하나 더 생긴 거야.”

       

       “무슨 방법인데?”

       

       “아주 유서 깊은 방식이지.”

       

       

       천천히 아멜리아가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갑작스럽게 얼굴을 확 들이밀···?!

       

       깜짝 놀라 목을 뒤로 빼자 그녀가 그 청명한 눈동자를 빛내며 내게 선언했다.

       

       

       “너는, 아르테를 꼬셔줘야겠어.”

       

       “···네?”

       

       “유서 깊은 방식이지. 미인계, 유명하잖아?”

       

       

       시우는 아멜리아가 제 컨디션을 되찾은 게 좋은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가 침울해 있던 그 시기가 좋았던 걸지도.

       

       

       “내, 내가 아르테를 꼬시라고?”

       

       “그래. 어렵지 않지? 네가 아르테를 꼬셔서 그녀를 막으면 되는 거야! 사랑은 막을 수 없으니까!”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갑작스럽게 다가왔던 만큼, 갑작스럽게 거리를 벌린 아멜리아가 싱긋 웃었다.

       

       청록색 눈동자가 완전히 기운을 되찾았다는 듯 청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좋은 말이지? 이번에도 똑같아.”

       

       

       좋은 말···?

       

       다른 명언들 다 놔두고 저게 좋은 말이라고?

       

       

       “목표는 아르테의 저지. 그렇다면, 그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잖아? 그녀가 그 ‘작가님’보다 네가 소중해지면 네 말을 들어주겠지!”

       

       

       당당하게 웃은 아멜리아가, 이내 선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와 아르테가 배를 맞대게 해주겠어···!”

       

       

       제발 단어를 좀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

       

       

       

       “···이야, 둘이 친하네요?”

       

       [그러게요! 히로인과 주인공끼리 보기 좋아요!]

       

       

       둘이 저기서 자주 만나네.

       

       저 골목에서 만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카페에서 사 온 빵과 커피를 즐기며 그들의 밀회를 관찰했다.

       

       

       [꺄아, 꺄아! 저, 저, 저거. 키스 아니에요?!]

       

       “으음, 키스라기에는 조금 애매한데···? 그냥 얼굴 들이민 거 아닐까요?”

       

       [히잉···. 아쉽다.]

       

       

       작가님이 칭얼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었다.

       

       그나저나, 요즘 아멜리아의 표정이 좋지 않더니.

       

       유시우를 만나자마자 표정이 밝아졌다.

       

       이게, 주인공···?

       

       히로인을 다루는 솜씨가 귀신같았다.

       

       역시 주인공들은 전부 여자들을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구나.

       

       

       “평화롭네요.”

       

       [그러게요. 으음, 슬슬 새로운 이벤트를 생각해 봐야겠어요.]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작가님께 여느 때와 같이 아이디어를 전해주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통해 아이디어가 작가님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 맛있네.”

       

       

       여기 꽤 맛있네. 다음에도 들러볼까.

       

       손에 들린 빵을 해치우며, 주인공과 히로인의 밀회를 지켜보았다.

       

       평화롭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인계는 삼십육계 중 삼십일계에 속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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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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