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

       

       

       온 세상이 흐릿했다.

       

       다만 큰 나무와 그 밑에 있는 형체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또 꿈인가.”

       

       꿈이 아니고서야 시커먼 것이 엘프의 형상으로 내 앞에 있을 리가 없으니···.

       

       꿈인데도 정신이 맑았다.

       

       “잡귀도 악귀도 아닌 새끼가 귀신 흉내를 내내.”

       

       저놈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당장 나에게 실체를 들키는 순간에도 온갖 환상들로 나를 희롱하던 놈이다.

       

       그 성정이 상당히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악몽 같은 건 나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놈의 입이 더욱 벌어지며 시커먼 치아가 드러났다.

       

       나를 향해 있는 눈빛마저 누랬다.

       

       “관상한번 지독한 새끼네.”

       

       마치 먹잇감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짐승 같았다.

       

       신가물 중에 으뜸이 바로 나인데 탐이 안나고 배길 수가 있겠는가.

       

       꿈에 찾아온 걸 보니 또 나를 조롱하러 온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헛짓거리가 시작되었다.

       

       – …..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미쳐 버린 사람의 광소였다.

       

       광기로 가득 찬 그 웃음이 울려 퍼지며 놈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

       

       흔히들 말하는 귀신이 있다.

       

       웃고 있는 귀신.

       

       춤을 추고 있는 귀신.

       

       이 둘이 무섭기로는 제일이다.

       

       저놈이 지금 그 두가지를 다 하고 있었다.

       

       “허…”

       

       내가 굿을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저놈은 나의 굿을 따라 하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방울을 흔들어대며.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우리 집 대가리만도 못한 새끼가 무당을 따라 해?”

       

       악귀의 안 좋은 특성이란 특성은 다 때려 박아 넣은 것 같다.

       

       독한 놈들이 무당을 따라다니며 하는 짓이다.

       

       악귀를 쫓아내는 것에 실패한 무당들이 당하는 ‘놀림’이랄까.

       

       “나는 못 쫓아낸게 아니라…”

       

       생각해 보니 못한 게 맞나?

       

       몸이 약해서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몸을 단련해야 할 것 같다.

       

       “집도 없어서 남의집에 얹혀사는 놈이…”

       

       내 말에도 저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고 있었다.

       

       슬슬 깨어날 시간이다.

       

       

       ***

       

       

       “꿈 한 번 더럽네…”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

       

       그 옆으로 내 일행들이 보였다.

       

       클로셀 영감이 내 몸을 훑으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사냥꾼이었다 하더니 몸이 약하군.”

       

       파라몬 영감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게 검을 배워 보라 하지 않았나. 매번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겐가?”

       

       “무당이 방울이랑 부채를 흔들어야지… 무슨 검이예요.”

       

       한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미 신성력이 바닥입니다.”

       

       다들 내가 걱정돼서 이렇게 모여 있었나보다.

       

       “제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어요?”

       

       “하루가 지났네.”

       

       “으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루의 시간이라면 저놈이 다시 몸을 숨기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신령의 기운을 확인했을 테니 이번엔 더 깊게 숨어들었겠지···.

       

       “허주굿을 해야 하나…”

       

       나 또한 허주 굿을 한 적이 있다.

       

       나름 내림굿을 받기전의 필수 코스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에겐 허주는커녕 잡귀도 다가오지 못했지만.

       

       이거 어쩌면 그때부터 이쪽의 신들이···?

       

       내가 잠꼬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파라몬 영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한 대로 마수를 잡아 놓았네.”

       

       “….예?”

       

       기절하기 직전의 일이라 잊고 있었다.

       

       분명 내가 마수를 잡아 달라 했었지.

       

       근데 마수를 산 채로 잡는 게 가능한가?

       

       “마침 엘프의 숲을 넘어가니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더군. 다리를 몽땅 부러뜨려서 끌고 왔네.”

       

       “….다리를요?”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게 마법으로 묶어 놓았지.”

       

       같이 다니던 영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잠깐 잊었다.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

       

       그리고 대정령사와 그에 버금가는 신관의 제자.

       

       마수를 가지고 구슬치기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조합이다.

       

       가만 보면 내가 제일 약하다.

       

       “그런데 마수는 왜 잡아 오라고 한 것인가?”

       

       “놈을 끌어내는 미끼로 쓸 생각이예요.”

       

       “마수를 미끼로?”

       

       설명하기가 복잡한 개념이다.

       

       사실 이건 굿이라기보다는 열 받게 하는 방법에 가까운 방법이니까.

       

       이런 상스러운 일에 굿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아깝다.

       

       “일단 마수의 상태부터 확인하죠.”

       

       “방금 깨어났는데 괜찮겠는가?”

       

       “더 늦으면 못 찾을 지도 몰라요.”

       

       내 꿈에까지 다녀간 녀석이니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시커먼 만큼 음흉한 놈이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릇으로 삼은 게 세계수의 육체이니만큼 엘프들이 위험할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어요?”

       

       영감들을 따라 밖으로 나온 나는 사로잡혀 있는 마수를 보고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마수라는 걸 처음 보기도 했지만, 그 상태가 괴상했다.

       

       “영감님들…? 이거 왜 이렇게…?”

       

       일단 몸집이 거대했다.

       

       내 몸의 세배는 될 정도의 크기.

       

       생김새는 더럽게 생긴 표범이라고 해야 하나···?

       

       마수는 군데 군데 몸이 뭉개져 있었다.

       

       무언가로 깎아낸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거의 죽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숨만 붙여놓은 모양새였다.

       

       파라몬 영감이 멋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각을 좀 해봤네… 마수를 보니 옛동료들이 생각이 나서 말이지…”

       

       “보통 마수로 조각을 하나요…?”

       

       “저놈들은 그래도 싸지.”

       

       하기야 파라몬 영감은 마수에게 쌓인 것이 많으니···.

       

       마수를 살펴보니 그 기질이 시커먼것만큼이나 특이했다.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굉장히 질이 낮았다.

       

       그리고 모든 본능들이 타락 해 있었다.

       

       “별의별 놈들이 다 있네…”

       

       이름에 마짜가 붙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여기 가죽은 왜 벗겨 놓은거예요?”

       

       마수의 몸은 군데군데 가죽이 잘려 나가 있었다.

       

       그리고 배의 가운데 부분에는 단검이 하나 박혀 있었다.

       

       “마수의 가죽은 상당히 질기다네. 숙련된 병사가 내지르는 창도 막아 내지.”

       

       “음…?”

       

       “자네가 마수를 찌를 일이 있을 때 쓰라고 벗겨 놓았네. 여기 목이랑 다리에도 하나씩 있네. 이곳은 심장이 있는 위치이고.”

       

       “…예?”

       

       사실 칼로 찌르기는 해야 했다.

       

       그런데 말도 하기 전에 이렇게 가죽을 벗겨 놓다니···.

       

       일단 말하지 않아도 생각대로 잘해준 것은 맞다.

       

       “이걸 세계수의 앞으로 옮겨야 해요.”

       

       클로셀 영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말게. 이미 이동준비도 마쳐 놓았네.”

       

       그 모습이 무언가 뿌듯해 보이기도 했다.

       

       “세계수의 앞까지만 가면 되는 건가?”

       

       클로셀 영감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스으으-

       

       마나가 움직이며 마수를 감쌌고, 마수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

       

       “가세.”

       

       “허….”

       

       마수의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듣기로는 마수들은 재생력이 상당하다던데…?”

       

       “그건 한스가 신성력으로 지져 놓았네. 한동안 재생하기는 힘들 것이네.”

       

       클로셀과 파라몬의 얼굴에 통쾌함이 들어찼다.

       

       마수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푼 모양이다.

       

       클로셀 영감이 몸을 움직이고 마수가 그 뒤를 따라갔다.

       

       모든 엘프의 구경거리가 되면서.

       

       “이거 잘하면 약이 좀 오르겠는데…?”

       

       허주놈 분명히 이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금세 세계수에 도착했다.

       

       로메넬이 먼저 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계수를 살피고 있었다.

       

       “크리스님, 아무리 보아도 저는 이상을 느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어제의 그것은….”

       

       당연한 말이다.

       

       온전한 신가물도 아니며 영안도 없는 로메넬이 찾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곧 모습을 보일거예요.”

       

       “….”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이번에 하는 건… 보기가 좀 거북할 수도 있어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영감들의 표정은 시큰둥 했다.

       

       “뭐, 내장이라도 떼어내는 것인가?”

       

       “저놈의 발톱을 뽑아 그것으로 눈을 파내는 것도 괜찮겠군. 원한다면 마법으로 뽑아 주겠네.”

       

       이 영감탱이들 아까부터 마수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이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난 영감님들이 하는 말에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부하가 그렇게 죽었지.”

       

       “나를 따르던 마법사 역시 자신의 손에 눈알이 뽑혔네.”

       

       “…..”

       

       대륙전쟁이라는 것은 방금 영감들이 말한 것들은 우스울 수준이었겠지···.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할게요.”

       

       일행들과 로메넬이 나에게서 떨어졌다.

       

       나 또한 몸을 움직여 세계수를 향해 다가 갔다.

       

       “역시….”

       

       시커먼 것은 다시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

       

       내 두 눈이 녀석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방울을 한번 흔들었다.

       

       딸랑 –

       

       정신이 아득해지며 고개가 한 곳을 향해 저절로 돌아갔다.

       

       아마 지금 보는 가지가 녀석이 몸을 숨긴 곳이리라.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 길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무당의 놀림이다.”

       

       방울을 흔들며 몸을 놀렸다.

       

       가볍게 뛰어오르는 내 몸을 따라 신이 깃들었다.

       

       마수의 몸에 손을 올리니 찐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그것을 내 입과 턱을 따라 펴 발랐다.

       

       진득한 피가 토를 한 듯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피를 토하던 나의 모습을 재현해 낸 것이다.

       

       딸랑 – 

       

       놈의 몸을 후려쳤을 때와 똑같은 동작으로 마수의 몸을 두드렸다.

       

       딸랑 –

       

       마수의 몸이 움찔거리며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신령의 앞에서 도망을 치던 저놈처럼.

       

       딸랑 –

       

       피가 묻은 손으로 단검을 뽑았다.

       

       주르륵 –

       

       찢어진 상처를 따라 마수의 피가 흘러내렸다.

       

       한 손에서는 방울을, 한 손에서는 칼을 놀렸다.

       

       칼과 방울이 부딪치며 쇠소리를 만들어냈다.

       

       이제는 이 칼로 마수를 놀릴 차례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편 연달아 올릴게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e check love fortune, career fortune, financial fortune, compatibility, physiognomy, and points of intere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