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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오랜만에 버멜과 만났다.

       

       기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동안 같이 다니면서 얻은 정이 있었으니까.

       

       더구나 나를 위해 움직여주는 녀석이다.

       

       온갖 이상한 녀석이 판치는 세상에선 괜찮은 친구였다. 비록 그 의도가 세계 멸망을 막기 위한 것일지라도 상관없다. 의도 자체도 불순한 건 아니잖아?

       

       조금 늦는다고 해도 크게 역정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야 나를 당장 죽이라고 하는 엘프국 시민들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래서였다.

       

       “때려라.”

       

       툭.

       

       “……?”

       

       한 대 때리라고 해서 때렸다. 

       

       말 그대로 화난 만큼만 후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놈은 여사친에게 고백이라도 받은 동정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미안함의 표시이기도 했다.

       

       마왕을 잡을 때까지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즉각적으로 움직이자고 한 약속.

       

       당장 나는 어느 이유 때문에 그 약속을 한시적으로 어겨야만 했다.

       

       “테르, 왜 그래? 그렇게 바깥에 나가고 싶어했잖아.”

       “됐다, 됐어.”

       

       나는 일부러 환멸이 난 척, 세상에 싫증이 난 척 굴었다. 손을 휘적거리고 있자니 버멜의 얼굴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저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이 세계는, 내가 없으면 망한다.

       

       “에테르, 내가 미안하다. 조금만 더 일찍 오는 건데.”

       “아니, 네 잘못은 아니고.”

       “그러면…?”

       “그냥 귀찮아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훨씬 나아.”

       

       나는 신문을 펼치며 읽는 시늉을 했다.

       

       신문 가라사대, 여전히 내 여론은 좋지 않았다. 내가 마수인 것도 있거니와 원자폭탄의 개발자라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폭탄 때문에 제국은 망했다.

       

       로테의 나라를 멸망시켰다. 죄스러운 감정이 뭉클 솟아오른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자약한 태도를 유지한다.

       

       대략 이런 느낌으로 사연 있는 척 가식을 부린다.

       

       “……너.”

       “솔직히 얘기할게.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 읽던 신문을 내밀었다. 아카샤는 그것을 받아 버멜에게 건네주었다.

       

       신문을 읽은 빙의자의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낀다.

       

       “국민 여론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

       

       예리한 거 보소.

       

       “…소식 들었어.”

       “소식? 무슨 소식?”

       “……너도 알잖아. 내가 만든 폭탄이 제국을 완전히 파멸로 몰아넣었어. 그전까진 몰랐는데, 이거 생각보다 허탈하네. 참.”

       

       나는 흐흐, 하고 웃으며 이불을 가슴이 있는 곳까지 덮었다.

       

       “내가 욕먹는 건 상관 없어. 하지만 이 이상 무언가를 연구하고 싶진 않아.”

       

       일부러 메너리즘에 빠진 척.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척.

       

       무엇보다, 그렇게 된 이유가 윤리 때문인 척 포장하여 도덕적인 우위를 점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얻느냐.

       

       이 나라의 전 국민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게 된다.

       

       “흑주를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 마왕은 쓰러뜨려도, 많은 사람이 죽겠지. 똑같은 짓을 반복할 수는 없어.”

       “…아니야, 그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는 내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질에선 이런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마왕을 쓰러뜨리더라도 흑주는 만들지 않아. 예전에 만든다고 했을 때도 나라에서 거절당했어. 생각해 보니까 왜 거절 당한 건지 알겠더라고.”

       

       사실은 마수라는 이유 때문에 빠꾸 먹은 거겠지만.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해석은 사람이 하기 나름이지. 내가 이리 받아들인 이상 이미 게임은 끝났다.

       

       이제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웅얼거렸다.

       

       “나는 대역죄인이야.”

       “…아니야.”

       “과학 연구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지. 나는 학살자야. 내가 만든 폭탄에 모두가 죽겠지. 노벨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니라고.”

       “그런 죄를 지었으니 여기 남아야겠어. 국민 감정도 이해 되고, 아무튼 그래.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버멜이 필사적으로 변호를 하였으나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래,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해. 나도 여기 있을 테니까.”

       “……뭐?”

       

       잠깐만. 방금 얘가 뭐라고 했니.

       

       “나 일주일 뒤에 입대하거든? 그전에 아는 사람이랑 작별인사하고 오라고 했어. 그러니까 못해도 일주일, 여기서 기다릴게.”

       

       바쁜 애가 뭐라는 거야.

       

       한참 돌아다녀야 하는 녀석이 여기 일주일을 처박혀 있겠다고? 그것도 나랑 같이?

       

       “아니, 이 새끼가 미쳤나 봐. 네가 뭔데 테르랑 같이 여기 있겠다고 해? 됐어. 있을 거면 차라리 내가 같이 있고 말지.”

       

       그러더니 아카샤도 같이 눌러붙고 말았다.

       

       “저, 저기…. 이제 여기 있으면 안 되시는데….”

       

       졸지에 경비병만 난처한 꼴이 되었다.

       

       

       **

       

       

       카우렐리아에도 법이라는 게 있다.

       

       높으신 분들이 한 번 결정한 이상 뒤집기는 어렵다. 이미 나에 대한 죄를 묻지 않기로 한 그들은 아예 법적 구속력을 만들어 나를 석방시켰다.

       

       결국 감옥에 남겠다는 내 시위는 자그마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쾅쾅쾅!

       

       – 야! 나와 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구속이 풀린 그 순간부터. 나는 폐인 행세를 하며 판자촌에 틀어박혔다.

       

       “저, 선생님. 밖으로 나가보시는 게….”

       “됐어.”

       

       카우렐리아에 집이 따로 없었기에 나오자마자 레니냐를 찾았다. 그래도 같은 금안족이니 숙식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얹혀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괜찮았다. 식사나 설거지, 청소 같은 잡일을 전부 도맡아 하고 있으니까.

       

       쾅쾅쾅!

       

       – 선생님, 문 열어 주세요!

       

       벌써 몇 시간째 저러고 있다.

       

       “선생님, 정말 이러고만 있어도 돼요? 이러다간 마왕군에 다 죽어요!”

       “선생님도 한때는 마왕군이었는데 뭐가 두렵겠니.”

       “선생님은 선생님이에요. 금안족을 위해서 그랬다는 거, 전부 알고 있어요.”

       

       레니냐는 후우, 한숨을 쉬며 별사탕을 내밀었다. 입에 넣고 설렁설렁 굴려대니 향긋한 체리 맛이 났다.

       

       “그러니까 선생님, 싫어도 저들을 도와주세요. 이러고 있다간 오히려 더 큰 미움을 사겠어요.”

       

       역시 심성이 곱긴 곱구나. 누가 금안족 아니랄까 봐.

       

       “일단 국민에게 지지를 받아야 해요. 민중의 이해가 있어야 나중에 혁명도 성공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뭐?”

       

       얘는 또 뭐라는 거야.

       

       “선생님이 마왕을 쓰러뜨리면 모두가 선생님을 다르게 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카우렐리아의 시민도 이해하겠죠. 선생님은 영웅이 될 테고, 금안족의 입지가 올라가면 혁명이 가능해져요. 저희, 하이엘프가 없는 세상을 한 번…….”

       “잠깐, 거기까지.”

       

       방금 한 말은 취소해야겠다.

       

       잘못하면 레니냐가 제2의 마왕이 되겠는데.

       

       나는 그녀에게 살짝 과장을 섞은 현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레니냐, 현실은 다르단다.”

       “어떤 점에서요?”

       

       그녀의 고개가 갸웃 돌아간다.

       

       “내가 마왕을 무찌른다고 한들, 사람들은 나를 영웅으로 추대하지 않아. 오히려 토사구팽하려 하겠지. 생각해 보렴. 제국을 파괴한 폭탄보다 더 강력한 마도를 부리게 될 선생님을 카우렐리아 당국에서 좋아할까?”

       “아니겠죠. 하지만 그때 가면 선생님은 대륙에서 가장 강하신 분이 될 거잖아요.”

       “그런다고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합종과 연횡. 강한 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약자는 항상 힘을 합쳐왔다.

       

       당장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당국에서 나를 풀어주었다. 제국과 연합하기도 했으며, 표면상으로는 금안족 차별도 단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왕이라는 위협이 제거된다면.

       

       카우렐리아의 다음 타겟은, 나를 포함한 금안족이다.

       

       마왕군에 종군한 금안족은 모두 처벌. 레니냐처럼 아무런 연이 없는 자들도 좋은 꼴은 못 보겠지.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금안족이 노예처럼 부려먹힌다는 거,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될 거예요. 지금은 현대잖아요?”

       “현대에 홀로코스트가 안 일어난다고 누가 단언하지?”

       “그, 그건.”

       “신이 단언하나? 정령들이 그리 말해주나? 아니야, 레니냐. 호구 잡히기 싫으면 여기서 머리를 잘 써야 해.”

       

       내가 죽은 이후. 너와 아카샤, 로즈마리를 비롯한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쿵, 쿵, 쿠웅.

       

       – 에테르! 나야, 로테! 제발, 문 좀 열어줘. 제발…….

       

       “선생님.”

       “……열어주지 마.”

       

       젠장, 하필이면.

       

       바깥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절절하고 애통한 음색이었다. 그 가녀린 음색이,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다른 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저 울음을 들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아직 때가 아니었다.

       

       

       **

       

       [마왕군에서 항복을 권고해 왔습니다. 일주일 내로 항복하지 않을 시 수도를 쓸어버리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키렐 해 서부에 마수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규모는 추산 불가능하나, 최소 수십 만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당국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로 민간인의 이동이 통제됩니다. 나라에선 50년 만에 징병제를 한시적 부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왕군이 북서부에서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오늘 오전 4시 20분, 안개가 짙은 틈을 타 마왕군이 데렌티코 주에 공세를 가했습니다. 규모는 3만 정도로, 전체 군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학계에선 이를 두고 항복 권고를 위한 무력 시위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런저런 뉴스를 접하며 글이나 쓰는 게 일상이 되었다. 레니냐가 속한 해안가는 여전히 평화롭기만 했다.

       

       그야 그렇겠지. 이곳은 마왕군이라고 해도 일부러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동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니까.

       

       때문에 전쟁이 진작 발발했어도 전혀 위급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선생님, 뭐하고 계신가요?”

       “낙서 좀 하고 있었어.”

       

       오늘도 나는 종이에 기호를 적고 있었다.

       

       레니냐가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없었다. 이 세계 문자로 쓰인 게 아니거든.

       

       “무슨 낙선가요?”

       “내 고향에서는 이런 걸 그리면서 심신의 안정을 취하거든. 요새 불안한 일이 워낙 많잖아. 전쟁도 터졌고.”

       

       그러면서 라디오 스크롤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초기 상황 브리핑입니다. 현재 사상자는 10만하고도 1천 2백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미 서북부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이로 인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10만. 10만이라.

       

       단 일주일 만에 정규병 10만 명이 사라졌다.

       

       카우렐리아의 방어가 매우 단단하여 마왕군에서 먼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탓이다.

       

       “…나 때문에 저만큼 죽었다.”

       

       막상 숫자를 보니까 죄책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멀쩡하다고 하면 그건 싸이코패스나 다름없겠지.

       

       “선생님.”

       “오늘은 조금 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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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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