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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내가 대답하건 말건, 미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러 가지 감정을 한 번에 느꼈어요. 아, 이 세상에는 이제 더는 아버지가 없겠구나, 하고.”

        

       아버지가 없겠구나,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겠지. 하지만 나는 감히 어떻게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 번도 부모님을 잃어본 적이 없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쪽 세상으로 와 부모님이라고 부를 만한 상대는 모두 생존해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는 감히 그 감정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게다가 미아는 나처럼 평범한 가정을 겪어보지 못했다.

        

       원래 가족끼리는 서로 애증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애증의 ‘증’이 도를 넘는 일은 거의 없다. 부부라면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자식과 부모의 관계라면 상황이 아주 끔찍하게 돌아가지 않은 이상 ‘증오’가 ‘애정’을 넘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아는……

        

       미아는, 살아있던 자기 아버지에게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차라리, 내가 백작을 죽인 것을 후회할 미래였다면 미아에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후회하고, 미아에게 용서받지 못하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미아에게 있는 상처는 지금보다는 작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만난 백작은 내가 알던 백작 그대로였다.

        

       평민도 아닌 남작 영애의 몸을 핥듯이 바라보면서 당당하게 ‘차지하겠다’라고 선언하는 자. 이쪽 세계 기준으로는 어른으로도 칠 수 있는 나이라지만,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나에게 십대들은 그저 어린애들이었으니까.

        

       “슬펐어요. 하지만 동시에, 뭐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놓이기도 했어요.”

        

       “……그렇습니까.”

        

       “네.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상하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버지가 사라졌는데.”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굴러갔을 것이다. 환상 속 세계 마지막 부분에서 전장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죽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악몽 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거고. 그게 현실이라고 자각하지 않는 이상 환상 속 세계에서의 기억은 현실의 기억에 겹쳐 잠재의식 안쪽으로 묻히겠지.

        

       그러니 웬만해서는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었다는 상황은 없었을 거다. 여신이 그 부분까지 전부 새로 만들만한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미아는 달랐다.

        

       가장 중요한 ‘살인범’이 완전히 바뀐 인생을 살았으므로.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가 어떻게 망가지고 어떤 식으로 사람을 실망하게 하는지 보았겠지.

        

       그 ‘백작’이 진짜로 살아 돌아왔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극도로 정교한 환상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건 여신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미아에게 있어서는 살아있는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슬펐어요. 네, 물론 슬프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꺼번에 기억이 돌아오면서, 제가 그 환상 속에서 아버지를 가지고 있기 위해서 잃었던 것이 무척 많았다는 것도 기억해낼 수 있었어요.”

        

       “…….”

        

       나는 입을 다문 채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무표정을 유지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 미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속을 후벼 파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의 아버지를…….”

        

       내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미아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표정을 지으시네요.”

        

       “…….”

        

       “아마, 시간을 돌릴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런 거겠죠.”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툭하면 시간을 돌렸으니까.

        

       그 ‘컨셉’을 잡아보겠다고.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최소한의 행동만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신비로운 존재로서.

        

       “그때 했던 그 말 있잖아요.”

        

       미아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감정을 배워나가고 있다는 말.”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친구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으로서의 죄책감이나, 미아에게 끔찍한 과거를 두 번이나 겪게 했다는 죄책감이나, 그런데도 미안하다는 말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아무튼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던 죄책감들이 일순간에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릴 만큼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렇다. 나는 미아의 방을 찾아가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감정을 배워나가는 중이고, 그래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감정을 연습하고 있다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생구라였다. 그 상황만 어떻게 넘겨보자고 그냥 아무렇게나 주절거린 거였는데, 미아는 극히 최근까지도 그 말을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정신이 성층권을 이탈하기 전에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은 나는 입을 열어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쩍쩍 갈라져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하면서 등에 소름이 돋았다. 뼛속까지 차가운 기운이 들면서도 식은땀은 흐르고 있으니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물론 그 이상한 기분을 분석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그런가요?”

        

       이번에는 미아가 물었다.

        

       “그렇, 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이제 와서 숨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말하는 것이 괴롭다.

        

       주로 ‘쪽팔린다’라는 의미에서 무지막지하게 괴로웠다.

        

       “저는, 당신이 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같았어요.”

        

       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에게…… 총을 건넸죠. 쏠 테면 쏘라고. 사실 제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면 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을 거예요.”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지금도 좋은 기회이긴 했다. 하지만 미아는 나를 죽이지 않을 거다. 지금 미아와 나는 친구니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너무 계산적인가?

        

       “그리고, 사실 저는 당신이 절 따라다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아 크로우필드라는 캐릭터는 마법사 캐릭터였지, JRPG에서 흔히 나오는 도적이나 로그형의 직업을 가진 캐릭터는 아니었다. 장비에 따라 첫 번째 공격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위장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그로를 줄여줄 뿐이고.

        

       그건 내 실책이었다. 원작을 해봤기에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한 실책. 그래서 그때는 그런 어이없는 변명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럭저럭 잘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미아의 머리가 무척 좋다는 사실 또한 나는 망각하고 있었다.

        

       ……머리가 좋은 미아는,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변명을 생각해내다가, 그런 변명을 하게 된 겁니다.”

        

       내가 겨우겨우 설명을 마치자, 미아는 한동안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쿡,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완벽한 존재인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사람이, 사실은 처음부터 엄청나게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이상한 변명을 해야 했을 정도로.”

        

       “…….”

        

       차마 할 만한 대답이 없었다.

        

       “이전에 실비아가 레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요.”

        

       “…….”

        

       아니, 무슨 파면 팔수록 흑역사만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네. 과거의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고 다녔을까?

        

       그 능력이라는 게 나중에 쓸 수 없게 될 능력이고, 그 결과 사람들이 내가 돌렸던 시간에 대해서 전부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그 능력을 쓸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면 능력을 쓰는 것을 최소화했거나.

        

       “그때, 내가 실비아를 보고 드디어 감정이라는 것을 배워나가고 있다고 했었잖아요.”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뒤에 무슨 말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결국 내 실수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내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는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미아가 한 말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사뭇 다른 말이었다.

        

       “그러니까, 저도 잘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미아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살짝 들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을 살짝 가릴 정도로 내려와 있는 앞머리 사이로 미아의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처럼 텅 비어서 검은 것이 아니라, 잘 세공된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런 말을 하기 부끄럽다는 듯 볼을 살짝 붉히고서 미아는 말했다.

        

       “원래 감정이라는 건, 누구나 천천히 깨달아가는 거니까요. 감정이 없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풍부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처음 저를 만났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던 실비아와 지금 제 앞에 있는 실비아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미아의 말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에 부정적인 감정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실비아도 분명 감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미아의 그 마지막 말이 나의 흑역사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상체를 푹 숙이고 테이블 위로 무너지고 말았다.

        

       ……진짜, 내 컨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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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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