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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그렇기에 진성이 해야 하는 것은 그 천칭을 자세히 살피는 것.

         

       악한 곳으로 기우는지, 선한 곳으로 기우는지를 자세히 판별하는 것.

         

       그리하여 마땅히 해악이 될 것이며, 회귀 전과 같은 미래를 걸어갈 것이라고 여겼을 때.

         

       그때 이제순의 운명이 결정되게 되리라.

         

       그래.

       모든 것은 이제순의 몫이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느냐.

       쓸모있는 도구가 되느냐.

         

       그 모든 것이 그의 선택이고, 그의 업(業)이 아니겠는가.

         

       말을 물가로 끌고 와 물을 먹이려고 해도 말이 원치 않으면 먹일 수가 없듯, 진성이 아무리 다른 길을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한 치 앞의 이득만을 탐하며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면….

         

       그 결과는 좋지 않게 되겠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 판단은 긴 시간이 필요가 없으리라.

         

       한 번 정보를 얻기 시작한 이제순은 미친 듯이 정보를 탐하게 될 테니까.

         

       자신이 쥐고 있는 수첩이 ‘제물을 주면 정보를 토해내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주물.’이 아닌, 제물을 통해 활성화되면 미리 설정해놓은 정보를 띄우는 하잘것없는 주물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저 자기 손에 들린 주물과 그 주물에서 얻은 정보를 사용한 기사로 전능함마저 느끼게 될 테니까.

         

       정보.

       정보.

       정보.

         

       위대한 정보.

       돈을 주고도, 인맥을 이용해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정보.

         

       이제순은 중독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수첩을 사용할 것이고….

       그리고 종국에는 깨닫게 되리라.

         

       박진성이 기괴한 행색으로 이제순의 앞에 나타나 수첩을 주었을 때.

       그때 그가 헤어지면서 남겼던 말의 진의를 말이다.

         

         

         

        * * *

         

         

         

         

       이제순은 기뻤다.

         

       『 NP 스튜디오, 정훈상 논란에 대해 입을 열다. 』

       『 NP 스튜디오”정훈상 배우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자진 사퇴의 뜻을 밝혀…. 빈자리는 김성준 배우가 자리를 메웠다. 영화 제작에 차질 없을 것.” 』

       『 피아 치킨, 정훈상 배우가 등장하는 광고 전부 중지….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도? 』

       『 논란의 중심, 정훈상 배우에 알아보자. 』

       『 메타 엔터테인먼트”분위기가 과열됐다. 정훈상 배우에 대한 취재 받지 않을 것.” 』

       『 정훈상 배우 자숙 결정. 누리꾼들 “침묵만이 답이 아니야. 사과와 해명 필요.” 』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말이다!

         

       수첩에서 얻은 정훈상 배우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해 그는 자기 능력을 증명했고, 동료들에게서 깔보는 시선이 아닌 시기와 질투가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깔아보는 것으로 그쳤던 동료들이 그에게 견제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제순에게는 기쁜 것이었다.

         

       본디 하찮은 것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법.

         

       견제라는 것은 위협이 되는 것에게 행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동료들이 자신을 견제하는 것을 그들이 자신이 진가를 드러내자 화들짝 놀라서 발악하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자신은 저들의 하찮은 짓거리에 그 어떤 영향을 받지도 않은 채 날개를 펼쳐서 훨훨 저 멀리 날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있긴 했다.

         

       [ 아이고, 제순이. 어, 하늘 같으신 선배님이다. 제순이 너 기대도 안 했는데 큰일을 해주네? 이야. 잘했다 잘했어. 이렇게 기사를 잘 쓸 줄 아는데 말이야, 어 평소에는 왜 그렇게 죽을 썼는지는 몰라. 혹시 뭐 누가 써줬다거나 돈 받고 기사 샀다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아, 농담이야 농담. 거 가벼운 농담 하나 던졌다고 반응하는 것 좀 봐라. 거 너도 좋은 기자 되기는 글렀담마. ]

       [ 근데 거 좋은 정보를 얻었으면 선배한테 귀띔이라도 좀 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거 선배 좋다는 게 뭐고 후배 좋다는 게 뭐냐. 선배한테 은혜를 입혀두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게 직장생활의 진리란 말이지. 아이고, 이놈 또 반응 이러네. 그냥 가볍게 하는 말을 무슨 진담처럼 받아들이고 있어? 누가 정보를 나눠달라고 했냐, 정보를 나한테 바치라고 했냐? 거 큰 거 하기 전에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가능하다면 콩고물이라도 좀 얻을 수 있게 배려 좀 해달라는 게 뭐 그리 잘못된 말인가? 응? ]

       [ 보니까 그 사회생활에 대한 이해랑 기자 생활에 대한 상식이 좀 부족하네. 야, 제순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한테 신경을 좀 많이 못 써주고 그랬네. 이런 건 말이야 사수나 선배가 잘 알려주고 체험해주고 하면서 몸에 체득시켜줘야 하는 건데 말이야, 너는 그런 게 없었지. 이거 지금에라도 좀 도와줘야겠네, 도와줘야겠어. ]

       [ 이게 다~ 하늘 같으신 선배의 배려다. 봐라 제순아. 네가 평소에 이렇게 잘하니까 내가 어? 선배로서 너한테 이렇게 베풀고 싶어 하는 거 아니냐. 이게 상식이에요 상식. 서로 주고받고, 서로 돕고. 이게 바로 아름다운 세상 아니겠냐? 앞으로는 내가 너를 도와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어, 지금 취재 중이니까 이따가 가서 보자고. ]

         

       선배라는 작자가 이제순에게 들러붙기 시작한 것이다.

       다소 노골적인 의도를 보이면서 말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선배로서 후배를 지도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곁에 딱 달라붙어서 이제순에 대해 알아보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이제순이 이번에 터뜨린 기사가 속된 말로 ‘뽀록’이라 부르는, 그냥 한 번의 행운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이제순이 터뜨린 기사가 훌륭한 정보원에게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쓰였다면, 그 정보를 준 정보원은 누구이고 어떻게 접촉할 수 있는지.

       만약 이제순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이번 기사가 그 능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가까이하면서 그 능력을 어떻게든 이용해 자신에게 이득이 되게 할 수 없을지.

         

       그런 의도가 뻔하게 보였다.

         

       ‘저주받아 뒈져버릴 새끼 같으니.’

         

       하지만 이제순은 선배의 그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사회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의 인맥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수첩’은 선배라는 작자가 알아차릴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상식적으로 수첩에 제물을 바쳐서 정보를 얻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이제순은 초조해할 선배의 얼굴을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상황은 이제순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선배라는 작자는 이제순에게 꽤 노골적으로 달라붙기도 하고, 밥 사준다, 술 사준다 하면서 그를 식당으로 끌고 가 술을 먹여서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도까지 했음에도 그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정보원에 대해 알아낼 수도 없었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제순의 행동을 보면서도 함부로 잔소리할 수 없었고.

       이제순을 보면서 ‘진짜 자기 능력으로 크게 터뜨린 건가?’, ‘그냥 뽀록인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제순은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고소를 머금으면서도, 겉으로는 시치미를 뚝 떼고 선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선배가 주는 밥과 술은 감사히 받아먹었고, 자신을 술에 취하게 만들려는 선배를 오히려 술에 취하게 만들어서 후배의 정보원을 빼앗아 자기가 처먹으려고 하는 저 놀부 심보를 가진 개자식의 정보원에 대한 정보를 쏙쏙 빼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빼먹은 정보원에게는 우연을 가장하거나 선배의 이름을 팔아 접근한 뒤 친분을 가지며 인맥을 넓혀갔다.

         

       그리고 이러는 와중에도 그는 수첩을 잘 사용했다.

         

       선배라는 작자가 붙어있어서 작은 새나 햄스터를 수시로 소비하는 방법을 쓰지는 못했지만, 대신에 수산물 시장에서 어패류를 구매해 그것을 제물로 사용했다. 다행히 수첩은 어패류 역시 제물로 받아들여 주었으며, 훌륭한 정보를 토해내었다.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사실은 권력자의 정부(情婦)였다거나.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70대의 여성 재력가와 스폰 관계였다거나.

       한국에서 허구한 날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유학파 출신 남자 가수가 사실은 미국에서 유학 당시 남창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뒹굴었다거나.

         

       하나같이 구하기 힘들고 자극적인 정보들이었다.

         

       이제순은 그 정보들을 훌륭히 활용했다.

         

       『 충격! 유명 트로트 가수 B양의 진실! 』

       『 트로트 가수 대표 B양, 사실은 추악한 연예계 대표. 』

         

       트로트 가수에 대한 것을 터뜨렸고, 선배가 ‘좋은 마음’으로 해준 ‘충고’를 가슴에 잘 각인시키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 트로트 가수 B양을 정부로 둔 권력자, 친일인명사전(親日人名辭典)에 올라가 있다? 』

       『 친일파의 후손, 친일파의 첩이 된 가수. 일제강점기의 재현인가? 』

         

       선배에게 빼앗은 정보원을 더듬어 사회부 기자에 간신히 손이 닿게 되자, 그 사회부 기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넌지시 흘리면서 자신 바로 뒤에 후속 기사를 쓰면 좋지 않겠냐고 하면서 그와 연을 이은 것이다.

         

       이로써 이제순은 사회부에 연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선배’의 인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에게는 수첩이 있었는데!

         

       수첩은 무적이고!

       수첩이 주는 정보는 신이었다!

         

       그래.

       수첩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신다.

         

       인맥도.

       성공도.

       기사도!

         

       『 유명 아이돌 멤버 T군, 여성과 함께 호텔로…?』

       『 재력가 J씨”순수하게 팬으로 만난 것뿐. 금품이 오가거나 불순한 일은 없었어.” 』

       『 T군, 스폰인가. 50살 차이를 뛰어넘은 진실한 사랑인가? 』

       『 누리꾼 T군과 J씨에게 격노,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

       『 T군 소속사 측, 사실무근이다. 루머와 악플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 』

       『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소속사, 하지만 실제로는 침묵. 대책 세우고 있나? 』

         

       수첩은 사회부와 연을 만들 수 있도록 훌륭한 정보를 주었다.

         

       단순히 연예 쪽에서만 난리가 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도록 연관이 되어있는 정보를 주었다.

         

       그 덕분에 이제순은 손쉽게 인맥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목표로 삼은 사회부에 ‘이 녀석 꽤 유능한데?’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놓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 문란함의 극치. 남자 가수 M군…유학 당시 남창과…충격. 』

       『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역겨운 비밀. 그때 M군은 무엇을 했었나? 』

       『 M군 유학 당시 파티 사진 입수! 소돔과 고모라가 이곳에 있었다. 』

       『 통일 대한민국 기독교 연합, M군 소속사에 항의…”아이들도 보는 TV에 이런 가수가 웬 말이냐.” 』

       『 통일 대한민국 기독교 연합, 방송국 앞에서도 시위 시작. “M군이 TV에 나오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저렇게 자라날 수 있을 것. 방송에서 퇴출해야 마땅하다.” 』

       『 김득수 목사”끝도 모르는 문란함은 사회에 악한 영향을 끼칠 것. 아이들을 위해 M군이 방송국에서 영구 퇴출당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투쟁할 것.” 』

         

       그리고 종교계 쪽에도 인맥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는 부모님이 기독교인이라고 운을 떼며 통일 대한민국 기독교 연합에서도 낮지 않은 위치의 목사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거기서 은근하게 정보를 흘림으로써 목사가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목사가 사람들을 이끌고 행동에 나서자 당연하게도 이는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이제순의 입지 역시 예전과는 달라졌다.

         

       동료들은 이제순을 보며 경악했다.

       연타석 홈런이나 다름없는 기사를 계속해서 터뜨리는 것을 보았으니 행운이라고 깎아내릴 수 없었고, 이제순의 능력에 대해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선배 역시 이제순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바뀌었다.

       그냥 대충 쓰다가 버릴만한 녀석으로 취급하던 옛날과는 달리 선배의 태도가 꽤 조심스러워져 있었으며, 그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사람을 소개해주거나 진짜 꿀같은 조언을 말해주기도 했다.

         

       아마 사이가 좀 더 친밀해지게 된다면 그가 사회부로 옮겨가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리라.

         

       ‘좋아. 아주 좋다고.’

         

       수첩은 전지전능했다.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수첩이 있다면 그는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

         

       더 높은 곳.

       더 훌륭한 곳으로.

         

       수첩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

         

       “어?”

         

       다만 이제순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면.

         

       “왜, 왜?”

         

       수첩은 소모품에 속하는 것이고.

         

       “왜 페이지가….”

         

       이제순이 받은 ‘수첩’은 본래부터 페이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왜 수첩에 페이지가 이것밖에 안 남았어…?”

         

       수첩은 끝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첩을 다 쓰게 되는 그날 이제순의 꿈도 끝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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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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