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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선배, 물러서요!”

         

       “위험합니다!”

         

       흑묘와 혁기린이 기함을 토하며 말렸지만 나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이게 최선입니다.”

         

       퇴로는 막혔다. 오직 정철을 쓰러트리는 것이 살길이었고 정철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나 역시 목숨을 걸고 공격에 나서야 했다.

         

       …초절정들조차 애를 먹는 정철에게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자살돌격 말고는 수가 없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서린 각오를 읽었는지 여일예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흑묘 역시 이를 악물며 구음기를 뿜어냈고 혁기린은 자세를 낮추며 튀어나갈 힘을 축적했다.

         

       당도연과 당소열 역시 공격권에 노출될 각오를 하며 좌우로 접근했다.

         

       일행들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필패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말없이 전력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건곤일척의 승부.

         

       “하아압!”

         

       선공의 시작을 알린 것은 흑묘였다. 노도와 같은 기세로 쏘아지는 강맹한 경이 정철을 압박했다.

         

       흑묘의 경이 정철을 압박하자마자 당소열과 당도연의 암기가 허공을 갈랐다. 좌우에서 쏟아지는 암기의 공격에 정철은 정신없이 검을 놀려 암기들을 튕겨냈다.

         

       쿠우웅!!

         

       그렇게 흑묘의 구음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신이 분산되고 당소연과 당도연의 암기에 손발이 바빠진 타이밍에 여일예의 기세가 정철의 시선을 빼앗았다.

         

       내상에도 불구하고 별무리와 같은 강기를 발산한 여일예는 그대로 정철을 향해 검을 던졌다.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차피 여일예의 몸상태는 정철의 경과 검강을 받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강기가 흐려지더라도 온 힘을 담은 투검을 쏘아내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쩌어억!!

         

       “큭!”

         

       효과가 있다. 여일예의 투검을 받아낸 정철이 힘이 부쳤는지 몇 발자국 밀려났다.

         

       여일예의 내공이 밀집된 공격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구음기가 정철의 경과 내공 수발을 방해하고 있기에 완전히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쩌적!

         

       여일예의 공격에 밀려난 정철의 몸에 얼음꽃이 피어났다. 정철을 포위하고 한기를 불어넣던 구음기의 경력이 장악하고 있던 공간까지 몸이 밀렸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하군!”

         

       화아아악!!

         

       정철의 몸에서 방대한 경력이 발출되었다. 여일예와 여행을 다니며 방대한 내공의 흐름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경악성을 터트렸을지 모를 거대한 흐름.

         

       방대한 경력이 충격파처럼 흑묘의 구음기를 날려버리고 일행의 행동을 제약하는 순간.

         

       나는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쿠르릉.

         

       어떤 환청이 들려왔다.

         

       극한의 극한 상황. 어쩌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는 걸음을 떼기 위한 각오가 무공을 통찰(通察)했음일까.

         

       경운무심공(驚雲無心功)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름에는 마음이 없으니.

         

       이는 즉 천둥을 가르치는 말이었으니, 심상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지금 경운무심공의 요체를 깨달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내 짐작이 맞다는 확신을 주려는 듯이 단번에 기의 수발이 한결 편해졌다.

         

       용수철처럼 응축되며 뻗어나갈 준비를 갖추는 다리에 전하를 쌓듯이 내공을 쌓아올린다.

         

       경운심법과 한몸인 칠뢰방위보의 제 1형.

         

       일문직뢰보(一文直雷步)를 준비한다.

         

       쌓이고 쌓인 전하가 단 한순간의 불꽃방전으로 공기를 울리는 천둥과 대지를 찢는 번개를 만들어내기를 기다리듯이 다리에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인다.

         

       강렬한 경의 흐름이 온몸을 두들겼지만 무시했다.

         

       정철은 알 길이 없었겠지만 여일예의 손에 철저하게 굴려진 몸. 방대한 경의 압박은 충분히 경험해보았으니까.

         

       물론 초절정인 여일예와 화경의 끝자락인 정철의 경은 그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여일예의 경이 그냥 바람이라면 정철이 폭사시킨 경의 흐름은 모래폭풍과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한들 버티는 요령은 비슷했다.

         

       콰아아아아!!!

         

       온몸을 두들기는 경의 흐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우연인지 의도된 것인지 정철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파직.

         

       영상매체에서는 흔히 시선을 번개로 표현하고는 했다. 두 사람이 노려보는 장면에서 서로 눈에서 번개가 튀어나가 부딪히는 연출을 본 적이 있는가?

         

       정철의 눈을 보는 내 마음속에서 불똥이 튀어올랐다.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이건 증오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뭐라고 정의해야 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순간적으로 넘쳐흘렀다.

         

       마음속 밑바닥, 나조차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불쑥 튀어오른 느낌.

         

       그러나 그런 마음 역시 금방 씻겨나갔다.

         

       콰아아아앙!!

         

       불똥이 튀겨 다리에 응축되어있던 경운무심공의 힘이 폭발했다. 찰나의 순간임에도 다리의 근육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런 통증의 대가는 확실했다.

         

       나는 그 순간 한 줄기 번개가 되었다.

         

       물론 진짜 번개가 되지는 않았지만…그렇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내가 이런 속도로 쇄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

         

       생사의 기로에 섰음일까.

         

       찰나의 시간이 무한하게 늘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 속에서 정철을 바라보았다. 정철 역시 이런 내 속도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정철의 표정은 살심으로 일그러졌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네 번 정도는 죽일 것 같은 살기였다.

         

       다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측면에서 날아오는 당도연의 채찍과 내 후방에서 쇄도해 들어오고 있을 것이 뻔한 혁기린의 공세가 따라오고 있을 테니까.

         

       찰나의 순간 나는 확신을 가졌다.

         

       이건 먹혔다.

         

       머릿속에서 그리던 그림의 구상과 현실이 점차 일치하고 있었다.

         

       흑묘의 구음기가 정철의 경력을 갉아먹었고 견디다 못한 정철이 큰 손해를 각오하고 내공을 방출했다. 그로 인해 힘의 공백이 생겼다. 나라는 패가 그 공백을 절묘하게 파고들었고 그로 인해 정철은 빈틈 속에서 이지선다를 강요당했다.

         

       나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당도연의 채찍을 쳐낼 것인가.

         

       양쪽 다 대응하면 그 뒤에 들어올 혁기린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다.

         

       당도연, 혁기린, 여일예, 흑묘. 전부다 초절정이었지만 엄연히 초절정에도 고하가 있기 마련. 이룩한 무의 경지만 따지자면 혁기린은 일행 중에서 가장 화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본래도 완숙의 초절정이었던 혁기린은 깨달음까지 얻은 상태니까.

         

       아무리 정철이라도 무방비 상태로 (진)화경의 혁기린이 뻗어낼 혼신의 일격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판단이 서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정철이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위험해지는 것은 내 목숨뿐, 일행은 살아 돌아갈 수 있겠지.

         

       죽어도 나 혼자 죽는 상황이 펼쳐지니 마음의 짐이 사르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경운심법을 운용했다.

         

       우르르릉.

         

       아까보다는 힘이 빠진 천둥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멀쩡한 다리에 내공을 채워넣었다.

         

       정철은 우리의 뒤를 밟았음이 분명했다. 얼마나 뒤를 밟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루나 이틀 전부터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음이 확실했다. 그렇지 않다면 적귀대로 위장한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을 테고 이 동굴에서 우리를 몰아넣고 마무리를 하려던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거기에 살길이 있었다.

         

       정철이 정말 우리를 감시하면서 기회를 노렸다면 내가 수련하는 광경 역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철은 내 역량과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겠지.

         

       고작해야 일휘청운검을 운용하며 비지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을 기억하던 정철에게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떻게 보여질까. 그야말로 뒤가 없는 혼신의 한 수를 펼친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판단은 실제로 그런 상황이었다.

         

       내 머릿속에 한 줄기 뇌성이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로인해 단 한번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정철의 눈에서 넘실거리는 살기를 보고 있노라면 당도연의 채찍에 휘감기는 상황을 감수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날 죽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정철의 공격을 온전히 피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팔다리를 내주고 중상을 각오하고 목숨만 건져도 남는 장사였다.

         

       그저 단 한번. 정철의 공격을 이끌어 낸 뒤에 목숨만 건져서 빠져나간다.

         

       그런 각오를 다지며 정철을 바라본 나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철의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걸 내가 쇄도하고 있는 경로에 던지는 정철의 모습까지도.

         

       울퉁불퉁하나 원형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검붉은 것. 용암에 바위가 붙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시킨 듯한 모습을 지닌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폭렬와의 내단.

         

       화약이 있긴 하지만 밀봉된 기름 항아리가 터지는 수준의 힘도 내지 못하는 무림천하의 세계관 속에서 폭탄의 역할을 하는 기물.

         

       내공을 넣어 내단의 기운을 활성화시키면 그 이후 작은 충격에도 폭탄에 버금가는 폭발을 일으키는 물건. 그런 물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내 코앞에 떨어지려는 것을 보자마자 즉시 남은 내공을 폭발시키며 일문직뢰보를 펼쳤지만.

         

       콰아아아아아앙!!

         

       그 폭발 반경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폭압이 내 몸을 강타하고 뜨거운 고통이 내 몸을 뒤덮었다. 그저 손을 들어 얼굴을 보호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자니 등에 충격이 내달렸다.

         

       털썩!

         

       그리고 이번엔 어깨에 통증이 치솟았다. 신음 하나 낼 수 없는 고통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눈을 떠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충격으로 인해 귀가 윙윙거리고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황을 파악하는 것은 가능했다.

         

       당도연이 채찍을 던지며 달려드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철의 검에 채찍이 잘려버린 것일까.

         

       귀에서는 이명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아예 맛이 가버린 것은 아닌지 정철과 혁기린의 검강이 충돌하며 나는 폭음이 흐릿하게나마 들리고 있었다.

         

       아.

         

       끝났구나.

         

       전신이 욱씬거리는 와중에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흑묘도 한계까지 구음기를 긁어냈고 여일예 역시 마찬가지다. 나보다 약한 당소열은 전력으로 분류하기가 어려웠고 당도연 역시 암기를 다 쏟아내고 채찍까지 찢어졌다.

         

       혁기린은 아직 힘을 온존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원이 없으니 곧 제압당하겠지.

         

       나는 정철이 터트린 폭렬와의 내단을 떠올리고는 기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뻔한 이야기고 뻔한 결말이었다.

         

       내가 비도를 던지듯, 그저 낭인이 비상시에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한 수단을 하나 구비해두었다는 뻔한 이야기.

         

       강자가 약자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했다는 뻔한 결말.

         

       후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글자는 그것뿐이었다. 그저 게임 무림천하의 고인물이라는 이유로 내가 신이라도 된 양 착각하고 있었다.

         

       정철은 강자고, 나는 약자였다.

         

       흔히들 이기는 것이 강한 것이라 말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뭐하러 강자와 약자를 나누겠는가.

         

       강자는 몇 번을 패배해도 그 힘을 잃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지만 약자는 그저 단 한번의 패배가 곧 죽음이었다.

         

       그저 고인물이라는 자신감에 취해 나는 그 사실을 잊었다. 단 하나의 빈틈조차도 용납하지 않아야 할 선택지에서 용지맹이라는 인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당도연의 단검이 깨지고 입으로 피화살을 내뿜으며 쓰러졌다.

         

       당소열 역시 달려들었지만 정철의 발차기 한번에 나가떨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검격을 주고받는 혁기린의 몸에 자상이 새겨졌다. 금창약을 바르고 운기한다면 반나절만에 나을 얕은 상처였지만 문제는 그 상처가 나는 과정에서 침투한 검강이다. 시야가 흐려 혁기린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리 볼 만한 표정은 아니겠지.

         

       나는 혁기린의 표정을 상상하는 대신 팔다리를 꿈틀거렸다. 다리는 애초에 가망이 없었다. 폭탄에 당하기 이전에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혹사시켰으니까.

         

       그러니 팔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나는 죽는다 치더라도 적어도 한 사람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폭압에 날아가 벽면에 처박히고 다시 지면에 떨어질 때 오른쪽 어깨도 박살이 났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왼팔이 바르르 떨렸다.

         

       움직여.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왼팔이 움직였다.

         

       혁기린의 검이 허공을 날았다. 뒤로 나동그라지며 그 반동으로 몸을 뒤집은 혁기린의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정철이 혁기린의 목을 칠 수 있는 상황.

         

       그 모습을 보며 필사적으로 왼팔에게 명령을 보냈다.

         

       움직이라고 좀.

         

       다행히도 왼팔은 늦지 않게 움직여 주었다.

         

       따악!

         

       모두가 거친 호흡소리만을 내는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내가 던진 돌멩이 하나가 바닥과 충돌하며 소리를 냈다.

         

       정철의 시선이 나를 향해 돌아갔다. 잠시 나를 잊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은 정철의 눈이 살기로 물들었다.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반쯤 맛이 간 귀는 그 소리를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했다.

         

       “선배!”

         

       “안 돼!”

         

       혁기린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대로 쓰러졌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내상을 입은 혁기린은 그저 앞으로 손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하….”

         

       내 앞에 선 정철을 보면서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근거리에서 본 정철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그득했고 눈에는 진한 피로감이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내공 보유량만을 따지면 어지간한 화경 이상의 여일예를 상대로 막대한 내공을 소진했고 그런 상태로 흑묘의 구음기에 갉아 먹히는 것을 떨쳐내기 위해 추가로 내공을 또 방출했다.

         

       뿐인가.

         

       원거리 공격인 암기에 대응하기 위해 적지 않게 검을 휘둘렀으니 체력도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아쉽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좀 더 버틸 수 있었더라면 정말로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시선에 섞인 아쉬움을 전달받은 것일까. 정철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피부를 찌를 듯한 살기는 덤이었다.

         

       날 다섯 번은 죽일 기세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체분시라도 당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철이 검을 치켜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강맹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철이 흠칫해 뒤를 돌아보았고 나 역시 힘겹게 고개를 움직였다.

         

       스스스스스!!

         

       그 기운의 정체는 흑묘였다. 갑작스럽게 증폭하는 흑묘의 기운에 나는 흑묘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는 입을 열었다.

         

       “….만….둬.”

         

       그러나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외침이라기보다는 다 죽어가는 신음성이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팔을 필사적으로 들어 보았으나 흑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내공을 바닥에 바닥까지 긁어내며 정철을 압박했던 흑묘가 어디서 저런 강한 기운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

         

       저건 내공이 아니었다.

         

       선천진기.

         

       자신의 수명을 태우며 한기를 일으키려는 것이다. 선천진기를 사용하면 반드시 죽는다. 한번 선천진기를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도 없었다.

         

       저 전조 증상이 끝나고 단 한번이라도 선천진기가 몸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흑묘의 생명은 그저 속절없이 타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만둬.

         

       제발.

         

       “발악을…”

         

       정철의 목표가 바뀌었다. 내 목을 치는 것에서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흑묘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걸음 걸었다.

         

       그때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눈을 깜빡였다.

         

       죽립을 쓴 누군가가 흑묘의 어깨를 짚고 서 있었다.

         

       어떻게? 어느새?

         

       흠칫 놀란 흑묘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을 보고는 헛것을 보았나 싶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움직여 눈을 뜨고 감았더니.

         

       이번에는 그자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죽립 속은 볼 수 없었지만 하관에 난 길고 흰 수염이 노인임을 짐작하게 했다.

         

       “움직이지 말게.”

         

       장심에 손을 놀린 노인의 손에서 그야말로 막대하고 정순한 뇌기가 쏟아졌다. 뇌기라 하면 거칠고 제어하기 힘든 것이 정상이었지만 노인이 내 손으로 불어 넣은 기운은 마치 내 몸과 하나라도 되는 양 전신을 누비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응급처치에 불과한 기공치료가 단번에 내 몸을 회복시켰다. 완전히 치료되진 않았지만, 몸이 안정되고 이명이 적어지고 눈이 맑아졌다. 고작해야 내공을 불어넣고 몸을 한 번 보듬었을 뿐인데 이런 효능이라니.

         

       정말 문자 그대로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오 장은 떨어져 있던 흑묘와 나 사이를 오고간 노인의 모습에 압도당한 것인지 정철 역시 주춤하고 있는 상황.

         

       나는 멍하니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 노인은 어쩐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경운무심공과 칠뢰방위보는 어디서 익힌 겐가?”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업로드가 너무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설날을 전후로 완전히 생활패턴이 꼬여서 돌아오지를 않네요.

    가급적이면 12시 연재를 맞추려 했지만…한동안은 독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생활 패턴이 정상화 될 때까지 아무래도 연재시각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다만 일일 1연재만큼은 지키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려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비공개]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언제나와 같은 10코인….편-안.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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