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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제국력 99년 12월 초.

     어느덧 가을이 지나 날씨가 서서히 겨울에 접어드는 시기.

     지브롤터 협곡은 초겨울의 바람이 조금 일찍 불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로버트 경.”

     “예, 도련님.”

     “이렇게 하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 말이야, 기분이 어떤가?”

     “사람이 개미처럼 보입니다.”

     나와 로버트 경은 황금의 비행선을 탄 채, 협곡 근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살피는 ‘비행순찰’ 중이었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음, 잘하고 있군’이라고 끝내는 게 아니라, 협곡 노동자들을 위한 보급품을 싣고 각 공사장마다 배급하기 위한 목적.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우리를 무슨 황금을 수거하는 걸로 알고 경계했지만, 이제는 우리를 볼 때마다 벌써 제국산 과자와 음료를 마실 생각에 군침이 도는듯 곡괭이를 내려놓고 입맛을 다시며 손을 흔들고 있다.

     “개미라. 틀린 말은 아니군. 개미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로버트 경의 말대로, 협곡개발에 투입된 노동자들은 개미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로버트 경. 자네가 만일 평범한 농민이었다면,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을까 아니면 여기에 와서 공사를 하고 있었을까.”

     “당연히 공사를 했죠. 9년 전 제 기사 월급보다 1.5배는 더 받고 있는데.”

     “자네 지금 월급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정도인데?”

     “평범한 농민이라고 했잖습니까. 여기 협곡 개발 공사장 시설 정도면 아늑한 수준입니다.”

     로버트는 공사장 인근에 주차되어있는 마도자동선 여러 대를 가리켰다.

     “잠은 저기 배에서 자면 되고, 하는 일은 협곡만 파내면 되고, 그러다가 혹시 금이라도 발견하면 그 금은 주머니속에 챙기면 되고. 그것만 하는데도 지브롤터에서는 막대한 월급을 주겠다고 했으니, 안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지?”

     공사장으로 온 이들 입장에서는 하지 않는 게 어리석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좋다.

     어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걸로 먹고 산다면 그 수익에 만족할 수 없는 삶이 되어버린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다닐 지경이다.

     “로버트 경. 인간을 갈아넣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더 많은 돈이요.”

     “그렇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들보다 더 많은 소득이지.”

     나는 두 손을 겹쳤다.

     “고향에서 일하던 거에 비해 소득이 절반 정도만 더 높아도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먹고 자고 지내는 것도 불편한 게 거의 없어. 고향을 떠나왔다는 것 빼고는 말이지.”

     “으음….”

     “협곡개발사업. 협곡을 파낸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만 없다면, 이런 대규모 토지개발사업은 막대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지. 빈민들조차도 돈에 혹해서 곡괭이를 들러 올 정도로 말이야.”

     “예. 나중에는…노스트럼과 제국이 다섯 방향으로 사람들이 오다닐 수 있게 되겠군요.”

     “그렇지.”

     북부, 빙하지대.

     마수 오염지대.

     중부, 지브롤터 협곡.

     엘프의 숲.

     남부, 세이레네 해협.

     “한 20년 정도만 지나면 빙하지대의 위로 깔린 열차를 타고 설원여행을 다닐 수도 있을 것이며, 세이레네 해협 사이에 설치된 거대한 다리를 마차로 넘어다닐 수도 있을 것이야. 그렇게 된다면….”

     “누군가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제국군이 그 대로를 따라 전쟁을 하러 올 수도 있는 거고요.”

     로버트 경의 말은 초를 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이곳에 당장 곡괭이를 열심히 휘두르고 있는 이들이 내뱉는 불안감을 그대로 언급하는 것이다.

     “도련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다들 빠르게 곡괭이질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내게 질문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나?”

     “소드마스터도 되었는데, 도련님께 역질문을 하는 정도가 안 되면 9년 동안 헛배운 거죠.”

     “그야 당연히, 전쟁 나기 전에 빨리 황금 캐내고 튀어야지.”

     “예.”

     로버트 경이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다들 똑같은 생각입니다. 만일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꿈 속에서처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금은 평화로우니까 그 사이에 빨리 땅을 파내서 황금을 찾아내자.”

     “이 때 아니면 협곡을 언제 파내겠어. 심지어 중간중간에 진짜로 황금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흐.”

     로버트 경이 겸연쩍게 웃었다.

     “어디 땅요정들이 몰래 황금을 찔러넣어주는 게 아니고요?”

     “신비하지 않나? 그렇기에 더 드래곤의 유산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지. 그리고 진짜로 그런 것들이 나오는 것도 있고.”

     지브롤터 협곡.

     유물이 나오기는 한다.

     황금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기적과도 같이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했지만, 집을 짓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부산물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나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녹여야 하는 금광도 아니고, 진짜 500년 전의 보물이 나오지 않나.”

     “예. 몇몇 개는 지브롤터의 장인들이 몰래 만들어내고 있는 가짜지만요.”

     “가짜라니, 어허. 자네는 지금 지브롤터의 예술혼들이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는 ‘용의 보물’들이 우스워보이나?”

     “우습지 않습니까?”

     로버트가 주변을 잠시 훑은 뒤, 다른 이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시간끝에서 꺼낸 보물을 빼돌린 다음, 사람들이 파낸 곳에다가 몰래 다시 심어두면서 다음날 발견되게 하는 게. 이거, 사기잖습니까.”

     “사기라니.”

     “심지어 그 중 일부는 아가씨들이 점토놀이 하듯이 형태를 잡아둔 거푸집에다가 황금을 부어서 만들어낸 거 아닙니까.”

     “예술적 가치가 충만한 물건 아닌가.”

     “그걸 가지고 역사학자들이 ‘500년 전 노스트럼 양식’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양심의 가책은 없으십니까?”

     “고고학자라는 자들이 애들이 소꿉장난으로 만들어낸 조각상이랑 진짜 유물이랑 구분도 못하면 학자라는 직업 때려치워야지.”

     사기는 아니다.

     엘프들이 밤에 몰래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이 파낸 땅굴에 황금을 다시 묻어둔다거나.

     그 황금이 실은 황금신전에서 꺼낸 극소량으로서, 광석이 아닌 조금은 형이상학적인 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거나.

     그게 뭔가 500년 전 고대 양식이 아니라, 레타르 이하 지브롤터 가문의 소녀들이 소꿉장난으로 만들어낸 점토형틀에다가 부어서 굳힌 황금이라거나.

     “로버트 경. 그래도 이런 게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른 생각 안 하고 현실에 집중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그거야…그렇죠.”

     사기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저 대륙의 모든 사람들이 ‘현재’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행동할 뿐이다.

     협곡 곳곳에 숨겨진 고대의 유물.

     예쁜 것처럼 보이면서도 ‘이게 500년 전의 미술?’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장식물로서의 가치만 가지고 있는 상태의 황금.

     녹이기에는 뭔가 애매하고, 녹이지 않자니 어린 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만들어낸 물건 같은 그런 황금의 조각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캐내는 걸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은 돈을 벌어들이며 행복한 미래를 희망하게 된다.

     “이런 거라도 없었으면, 사람들은 아직도 거짓된 황금을 쫓아나서며 황금을 먹어치우고 있었겠지.”

     거짓된 황금이 아닌, 현실의 황금을.

     “그보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그, 아무리 시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좀 불쌍하지 않습니까?”

     “불쌍하기는. 진짜 불쌍한 건 아직도 이걸 자기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우리 시한부 국왕 전하지.”

     나는 갑판 위, 밧줄에 칭칭 휘감긴 원판을 발로 두드렸다.

     “저거 보게.”

     “오는군요.”

     어디에서 또 구했는지 몰라도, 비룡을 탄 황금의 기사가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이제는 칼자국으로도 확인하기 힘든, 그냥 갑옷 덩어리 사이사이를 거짓된 황금으로 가득 채운 존재.

     육신이라고 할 곳은 남지도 않은 채, 오직 마력으로 움직이는 유동성 황금이 자신의 육신이 되어버린 황금의 망령.

     “저격할까요?”

     “아니. 놔둬봐. 오늘은 직접 상대해보게.”

     “알겠습니다. 환영기사단. 도련님께서 즐기신다고 하니, 내버려두도록.”

     로버트 경이 손목에 찬 마석장치를 조작하며, 마석에 대고 가볍게 말했다.

     그러자 비행선 근처에 활공하던 비룡들이 좌우로 흩어졌고, 황금의 망령은 열린 하늘길을 따라 그대로 갑판에 착지했다.

     “내, 놓, 아, 라…!”

     “이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군. 지난 번에는 그래도 한 마디씩은 하던데.”

     “도련님이 너무 많이 썰어버려서 그렇잖습니까.”

     “올 때마다 썰리려고 오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이, 건, 방, 진…!”

     익숙한 목소리다.

     이제는 좀 사라져줬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포기라는 걸 모른다.

     “이봐. 제로스 바르셀.”

     황금여명의 기사.

     이제는 황금망령으로서, 나에게 몇 번이나 죽었는지도 직접 카운트하는 게 귀찮을 정도로 계속 부활하는 자.

     “무능왕께서는 이걸 찾으러 직접 오실 생각은 아예 없으신 건가?”

     “닥, 쳐, 라…!”

     “본인이 직접 왔으면 왜 이렇게 이 유물에 집착하는 건지 묻고 싶은데 말이야.”

     “……크흠.”

     로버트 경은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는다.

     

     “이거 참. 혹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전하, 지금 제로스 바르셀의 눈을 통해 보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미 제로스 바르셀의 영혼은 꺾일 대로 꺾였고, 이제는 제로스 바르셀의 껍데기를 조종하시면서 이 자리에 영혼만 보내신 겁니까? 그렇다면….”

     나는 원판 위에 올라간 다음, 발로 가볍게 원판을 두드렸다.

     “이게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집작하시는 건지 설명이라도 좀 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도 이걸 녹여서 쓸지 아니면 어디 장식해둘지….”

     “매, 국, 노, 가ㅡ!”

     “저런.”

     결국, 제로스 바르셀-인지 세인트 지오가 영혼만 보낸 건 지 알 수 없는 황금의 망령이 폭발했다.

     “이번에는 어떤 검으로 썰어볼까. 그래. 가장 잘 드는 검으로 썰어버리는 게 좋겠어.”

     나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해치워. 로버트 경.”

     서걱.

     제로스 바르셀.

     오늘로, 79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어떻게 한 번을 직접 안 오냐.”

     제로스 바르셀이 수십 번 죽을 동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적어도 우리가 파악하는 바로는.

     

     * * *

     국가의 위기, 혹은 또다른 ‘재앙’이 펼쳐진 가운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이가 없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하나둘 언급하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거짓된 황금이 당대에 발현된 황금룡의 저주가 아니냐고.

     너희들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죽이는 바람에, 너희들이 겪어보지 못했을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황금룡의 저주가 아니냐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주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인생을 살 바에는 그냥 현실을 살지.

     제국의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

     노스트럼이 9년 전부터 제국과의 교류를 시작한 게 아니라 계속 칼 대 칼로 승부를 하여, 기어이 세이레네 백작이 배신을 하고 제국이 노스트럼을 지배하기 시작한 세상.

     망한 나라의 국민이 될 바에는, 그냥 현재 왕이 두 명에 한 명은 행방불명된 상태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없는 상태.

     넘쳐나던 황금의 영령들도 서서히 그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황금의 영령들이 죽으면서 남긴 황금도 일부 현실보다 제국과 전쟁하는 노스트럼을 선택하는 이들에 의해 줄어들어가고 있는 시기.

     꿈 속 세상처럼 지브롤터와 제국이 전쟁을 하게 두면 안 된다.

     전쟁이 일어나 망하지 않게 하려면, 모든 걸 평화롭게 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과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의 약혼식을 공중 비행선에서 열자ㅡㅡㅡ!!]

     평화를 위해, 사람들이 주머니에 황금을 집어넣은 채로 하나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제국력 99년 12월 21일.

     약혼식이 열리는 오로솔 아카데미를 향해, 수많은 영지에서 ‘비행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의 명령에 따라, 오로솔 아카데미를 향해 수백 척에 이르는 비행선이 하늘을 날았다.

     오직.

     두 사람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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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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