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0

   마황과 결계사.

   두 명의 사이에 있었던 거래.

     

   이 둘 사이에 있었던 거래는 익시온이 바이오렌에게서 원했던 목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둘 다 같은 목적을 위해 바이오렌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눈앞에 있는 마황, 테라시우스 제블람을 향해 대체 무슨 거래를 했냐고 물음을 던졌다.

     

   테라시우스는 침묵을 한 채 크라슈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잠시 동안 턱을 누르더니 생각에 잠겼다.

     

   “익시온이 바이오렌을 노리고 있나.”

     

   그리고 이어진 다음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는 움찔거리려는 몸을 가까스로 멈췄다.

     

   “결계사가 바이오렌에게 분리한 걸 되찾을 방법을 안 모양이군.”

     

   누가 천재가 아니랄까 봐.

   크라슈의 질문을 던진 저의부터 그 뒤에 관계까지 한순간에 유추해버린 것 같았다.

     

   크라슈는 잠시 침묵한 채로 테라시우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테라시우스의 눈에 바이오렌을 향한 흥미가 다시 샘솟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정말로 바이오렌에 관한 실험을 모두 끝낸 이처럼 보였다.

     

   “나는 바이오렌의 연구를 끝마쳤다. 바이오렌이 다시 힘을 되찾아온다 한들 그걸 고려하여 끝낸 연구 결과다.”

     

   크라슈는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튼 테라시우스와는 좋을래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가 없다.

     

   인간의 감정을 정신 마법으로 절제시킨 테라시우스에게 필터링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충분한 결과를 얻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익시온이 보기에는 나와는 또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 모양이군.”

   “……결계사의 뒤에 익시온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냐?”

   “일개 세계 침식자 한 명이 제블람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제블람은 허투루 만들어져 있지 않다.”

     

   테라시우스는 생각보다 더 제블람에 자신을 보였다.

   그가 직접 설계한 마법진들이 마법 왕국 전체에 퍼져있다.

     

   그의 말대로 세계 침식자 한 명으로는 어림도 없겠지.

     

   “그녀가 접근했을 때부터 뒤에 집단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한 제안은 충분히 거래 가치가 있는 내용이었지.”

   “바이오렌을 태어나게 하는 것.”

     

   테라시우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세계 침식과 세계의 힘을 동시에 담아 유지 시킬 수 있는 그릇이다.”

     

   바이오렌을 가리키는 말.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눈을 서서히 일그러트리기 시작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않냐?”

     

   크라슈는 아우라와 세계 침식의 힘을 둘 다 몸에 담아두고 있다.

   그러니 자신도 같은 거 아니냐고 묻자 테라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케이스지만 다르다. 넌 그 힘을 융합하는 데, 저주를 이용했지. 그리고 이용하기 전까지는 두 개의 힘은 공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테라시우스의 말대로 크라슈가 지닌 아우라와 세계 침식의 힘은 최상위 저주 사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계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크라슈는 두 개의 힘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었을뿐.

   만약 삐끗했다면 그 즉시 다른 쪽이 서로를 집어삼키려 드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크라슈는 두 개의 힘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사계를 통해 각 힘을 하나의 힘으로 치환시키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마 바이오렌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세계 침식의 힘과 세계의 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거냐?”

   “원래라면 그랬었다.”

     

   크라슈의 눈이 떠졌다.

   크라슈는 바이오렌이 자신을 갉아 먹는 세계 침식의 힘 탓에 괴로워하던 것을 알고 있었다.

     

   세계 침식의 힘은 이쪽 세상에서 태어난 바이오렌의 육체를 용납하지 못하고 갉아 먹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원래대로라면 그러지 않다는 소리였다.

     

   ‘바이오렌도 분명 결계사가 떠나간 뒤로 점점 더 세계 침식의 힘이 강해지며 자신을 갉아 먹었다고 했었지.’

     

   어쩌면 그것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힌트였을지도 몰랐다.

     

   “결계사가 지닌 결계술은 생각보다 더 특이한 일종이다. 그리고 그걸 이어받은 바이오렌도 마찬가지였지.”

     

   테라시우스의 손가락이 한차례 휘릭 하니 움직였다.

   그러자 복도 저편에서 날아온 책 한 권이 그의 손에 텁하니 쥐어졌다.

     

   테라시우스는 자연스럽게 책을 펼쳤다.

     

   “세계 침식의 힘과 세계의 힘은 공존할 수 없으나, 결계 안에서는 공존이 가능했다. 외부의 영향이 없다면 결국 본질은 둘 다 같은 세계의 힘이니까. 바이오렌은 그러한 특성을 결계란 개념으로 발동시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게 가능했다고?”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크라슈의 눈이 크게 뜨였다.

   테라시우스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더니 이내 한 책장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크라슈에게 들어 올린 책에는 이리 적혀 있었다.

     

   【 바이오렌을 통해 세계 침식의 힘과 세계의 힘을 융합할 시, 배출된 힘은 어느 세계라도 통용되는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이 특성을 기문(器門)이라 작성했다. 】

     

   어느 세계에서라도 통용되는 힘의 그릇.

     

   기문(器門)

     

   크라슈는 그것을 보자 서서히 그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익시온이 왜 바이오렌을 노리기 시작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기 위한 그릇이다.’

     

   크라슈는 세계 침식의 신의 창조가 왜 실패했는지를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도 간단했다.

     

   세계 침식의 신이 창조된다 해도 세계 침식의 신은 세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크라슈가 사는 세계에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없었다.

     

   멸망해버린 세계 안에서 신을 창조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신은 아무런 힘도 지니지 못한 채 결국 세계 침식과 함께 종식될 뿐이다.

     

   신이 지닌 원초적인 힘은 세계의 존재에서 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익시온은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한 뒤 방법을 바꿨다.

     

   세계 침식의 신이 세계 침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신이라면.

   이 세계 전체를 세계 침식으로 뒤덮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익시온은 이 방법을 실행했는데, 그중 방법 하나가 바로 최흉의 씨앗을 터트려 세계 침식을 전역으로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세계 침식자, 검존이 샬롯에게 죽은 후.

   위기감을 느낀 세계 침식자들의 마지막 발악에 최흉을 터트리도록 하여 전 세계에 최흉을 피어나게 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역시 실패했던 것이 세계 침식의 신이었다.

   세계 침식의 신은 익시온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계사는 바이오렌을 실패작으로 꾸며 놓고, 숨긴 뒤 어떠한 과정에서 익시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익시온도 결국 결계사의 말대로 바이오렌을 실패작으로 판단.

   그리고 더 이상 바이오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결과, 바이오렌은 창공의 세대에서 결계술로 이름을 떨칠 무렵에도 구태여 익시온의 목표는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계 침식의 신이 결국 실패한다는 걸 알고 있는 녀석이 익시온에게 있다.’

     

   붉은 마녀, 아벨라.

   그녀는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익시온을 이용해 세계 침식의 힘을 완성하고자 하고 있다.

     

   거기에 그녀는 과거, 제블람에서 머물렀던 경력이 있다.

     

   ‘그때 이 자료를 본 거다.’

     

   바이오렌은 실패작이 아니라 결계사에 의해 봉인된 성공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익시온이 왜 바이오렌을 노렸고, 그것을 결계사도 알게 두었는지 알겠어.’

     

   함정이다.

     

   위기감을 느낀 결계사가 바이오렌에게 간섭하게 하고, 결국 바이오렌이 본인이 지닌 힘을 되찾았을 때.

   결계사를 인질로 이용하여 바이오렌을 데려갈 작정이 분명했다.

     

   크라슈의 눈이 찌푸려졌다.

     

   왜냐하면 얼마 전 익시온이 신성 왕국 프리만에서 훔쳐 갔던 성배의 도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배는 성녀를 탄생시키기 위해 프리만이 만들어낸 최악의 성물이다.

     

   성배의 특성은 신의 힘을 흡수하여 저장한다는 것.

     

   ‘신의 힘은 세계 본질의 힘인 아우라와 비슷한 유형이니까.’

     

   익시온은 성배를 완성 시킨 뒤 성배에 담긴 힘과 세계 침식의 힘을 그릇인 바이오렌에게 주입 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바이오렌을 통해 융합시킨 두 힘을 통해 세계 침식과 크라슈가 살아가는 세계에 동시에 양립할 수 있는 신을 창조시킬 생각이었다.

     

   ‘라그렌에서 독혈전을 훔쳤던 건 바이오렌이 그 힘을 받아 내는 걸 견딜 수 있도록 육체를 강화할 속셈이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연결이 된 크라슈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아벨라는 정말로 익시온과 함께 세계 침식의 신을 완성 시킬 작정이었다.

   그리고 크라슈는 아벨라가 왜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시키려는 건지 은연중에 느끼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의심은 최근 확신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테라시우스에게 크라슈는 가짜 아서에게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벨라가 사랑하던 아서는 지금의 아서가 아니다.

   그녀가 사랑하던 아서는 다름 아닌 전 회차의 아서.

     

   그때의 아서는 세계 침식의 멸망 속에서 죽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벨라는 전 회차의 아서를 어떻게든 다시금 만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녀는 아서에 미쳐 버린 여자니까.

     

   가짜 아서의 몸에 남아 있던 시간 마법의 흔적.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벨라의 짓이었다.

     

   ‘전회차의 아서를 되돌리기 위해 가짜 아서를 진짜 아서로 바꾸려고 한 거다.’

     

   하지만 그녀는 실패했다.

   시간 마법이라는 것은 아벨라조차 완전하게 닿을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벨라는 시간 마법을 통해 아서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니 그녀는 방법을 바꾼 것이다.

     

   ‘……이 미친년,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시켜 아서를 창조할 생각이다.’

     

   아벨라가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려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서를 창조시키기 위함이었다.

     

   ‘돌아버린 년.’

     

   아서를 살리겠다고 이 세상을 멸망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렸다.

     

   크라슈는 지독할 정도로 환멸 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아벨라를 반드시 저지 시켜야 함을 깨달았다.

     

   그 녀석을 가만두면 분명히 일을 치를 것이다.

     

   “바이오렌을 어쩔 생각이지.”

     

   그 순간 테라시우스가 궁금증을 담아 크라슈에게 물었다.

     

   “그 애의 힘을 되찾아 준다면 익시온은 끈질기게 널 노릴 거다.”

     

   크라슈는 콧방귀를 내쉬었다.

     

   “어차피 바이오렌 없어도 그놈들은 날 질리게 노리게 되어 있어.”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건 크라슈가 지닌 이그니스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크라슈는 바이오렌의 일을 반드시 해결할 것이다.

   그녀가 익시온에게 넘어가게 둘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렇다면 익시온은 내 적이군.”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가 테라시우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테라시우스는 인간의 웃음과는 거리가 먼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난 네게 아직 궁금한 게 많다. 익시온의 재료로 쓰이게 둘 생각 없다.”

     

   저 망할 호기심이 웬일로 도움이 좀 된다.

     

   “그렇다면 네 딸이나 챙겨.”

   “고려하지.”

     

   의외로 테라시우스는 순수하게 승낙했다.

     

   “다른 천상사강과 천하십강들이 익시온을 치기 위해 뒤에서 몰래 인원을 모으고 있단 건 들었다.”

     

   테라시우스의 손가락이 들어 올려졌다.

     

   딱!

     

   그 순간 그의 손가락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뒤바뀌었다.

     

   기다란 은발이 그의 등에서 나부끼었다.

   동시에 입가에 생긴 주름이 돋아나며 그의 키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그의 푸르른 사파이어 눈이 조용히 빛났다.

   그 눈에 담긴 공허함과 이지는 역시 다시 보아도 평범한 인간의 것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유지 중이던 테마린의 모습이 아닌.

   진짜 테라시우스의 모습이었다.

     

   “참전하지.”

     

   익시온 토벌대.

   그곳에 천상사강 테라시우스 제블람의 참전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