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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0

    <290 – 숨어든 쥐새끼>

     

    즈앙은 줄곧 기척을 감추고 크루즈선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크루즈선의 운행 하나만으로도 아카데미 교수 하나의 목을 날릴 수도 있는 거금이 동원되었다.

    재단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지출을 했을까.

     

    돈이 곧 힘이 되는 세상.

    재단은 사치와 낭비를 즐길 조직이 아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모토는 극한의 효율성.’

     

    불필요한 불순물과 낙오된 낙오자는 모두 가혹한 ‘지령’에 의해 폐기처분의 운명을 맞이한다.

    힘겨운 지령을 극복해내고 자신의 가치를 다시금 증명해낸 자들만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해석하면 이번 크루즈선의 여행에는 분명 교수 하나의 목과 동등한 무언가가 걸려있다는 뜻이 된다.

     

    ‘포인트 경매. 경매에서 장차 대륙의 거물로 거듭날 용사 이슈타르의 기호와 취사판별을 파악하려는 속셈이었나?’

     

    처음에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배에 초청된 거액의 투자가치가 있는 거물은 용사와 제국2황녀 둘밖에 없으니까.

    5일차의 경매가 끝난 뒤에야 즈앙은 깨달았다.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진짜 거물은 따로 있었다.

    오크노디.

    재단의 수석장학생.

    조직이 손에 넣은 최상의 재능을 지닌 걸물이자 천하의 용사와도 견줄만한 인재가.

     

    -다들 저희 집에 놀러 오실래요?

    -싫으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파파가 모처럼 친구들에게 줄 선물까지 준비했다는데 아쉬워하겠네요!

    -뭔지는 몰라도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고 들었어요! 분명 다들 기뻐할 거라고도 했고요. 제때 받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 하던데요?

     

    도로시를 설득할 때, 오크노디는 말했다.

    파파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친구들을 초대하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그 ‘부탁’이라는 것부터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다.

    지령으로 수많은 장학생을 휘두르며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실력자의 부탁을 어느 누가 부탁이라고 여길까.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키우는 방법을 아니?

     

    언젠가 사다코 교수님이 밤길에 유령을 만나 쫓길 때 넘어지지 않고 도망치는 법을 가르칠 때, 지쳐서 기진맥진한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커스단에 팔린 코끼리는 말뚝에 묶여서 자란단다. 어린 코끼리는 힘을 주어도 말뚝을 뽑지 못하고 절망한 채 순응하게 되지.

    -나는 말뚝을 뽑을 수 없어. 난동을 부리면 불에 달군 꼬챙이로 괴롭힘을 당할 거야. 성과도 없이 아프기만 한 경험은 싫어.

    -그렇게 성체가 되어 충분한 힘을 지니고도 코끼리는 말뚝에 묶여 지내게 된단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깨닫지 못한 채, 고통을 두려워하면서.

     

    티토소가는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그게 저희랑 무슨 상관인데요?

    -지금 너희를 쫓는 영혼이 서커스단의 말뚝에 묶여 지내다 불타는 막사에 깔려 죽은 코끼리의 원혼이란다. 잡히면 아주 납작해지겠구나.

    -으아앙!

     

    “…”

     

    티토소가의 바보 같은 울음이야 어찌됐건 사다코 교수님의 이야기는 교훈이 되었다.

    인간을 체중을 실어 발로 짓밟으면 가뿐히 죽일 수 있는 코끼리도 어린 시절부터 사육사에게 사육당하면 공격성을 거세당할 수 있다.

    지금 오크노디가 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재단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다.

    말뚝에 묶인 코끼리처럼.

    저항하면 아픈 꼴을 겪는 코끼리처럼.

    재단에 묶여 자란 채 창관에 팔리는 공포를 마음 속 어딘가에 품고 있겠지.

    그런 그녀가 파파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게 데려온 친구들.

    황녀는 나머지는 전부 짐덩이에 불과하고 진짜 목적은 용사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즈앙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용사는 덤으로 따라온 것이고 진짜 목적은 오크노디와 친밀한 주변인들이다.

    적어도 재단의 이사장, 오크노디의 파파의 노림수는 그렇다고 느꼈다.

     

    ‘오크노디에게 창관에 팔아치우겠다는 협박 따위가 정말로 코끼리의 말뚝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저 아이는 강하다.

    설령 그 말을 진심으로 믿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아이인지, 얼마나 강한 아이인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쓸모없는 아이나 폐기처분당하는 그런 미래가 자신에게 닥칠 거라는 일말의 우려조차도 없겠지.

    그렇다면 오크노디의 말뚝은 무엇일까.

    말뚝이란 한 사람의 두려움.

    코끼리처럼 커다란 힘도 봉인하는 족쇄다.

    그녀는 무엇에 구애받고 힘을 아끼는가.

    즈앙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친구.’

     

    그렇다.

    재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것은 새로운 말뚝을 공고히 박기 위한 자리.

    재단의 파파가 오크노디에게 가하는 협박이다.

    반년 동안 열심히 사귄 친구들.

    그들 전부의 약점을 재단은 이미 지니고 있다고.

    누구에게라도 그 약점을 들려줄 수 있다고.

    한 사람의 주변관계를 원하는 타이밍에 언제든지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고.

     

    “오크노디.”

    “응?”

    “나도 방해돼?”

     

    걸림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말해줘.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으으음. 즈앙은 강하기는 한데.”

    “…”

    “어떨까~?”

    “…”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지금 누굴 약올리나.

    눈에 힘을 주고 째려보자 움찔한 오크노디가 냉큼 대답했다.

     

    “그냥 계속 남아서 지켜봐줘!”

     

    해냈다.

    인정받았어.

    즈앙은 솔직하게 기쁨을 느꼈다.

    암살자는 감정표현이 풍부하면 안 되는데.

    자신을 감출 줄 모르면 죽는데.

    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헤스티아나 손오천, 지젤보다도 내가 가장 오래 무인도에 남았어.’

     

    오크노디가 믿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믿음직스럽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분명 그런 뜻이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해석할 거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즈앙!

    그렇지만 오크노디의 발언에서도 신경 쓰이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지켜줘가 아니라 지켜봐줘…?”

    “응. 보고 있어줘!”

     

    믿을 수 있는 동료로 선택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뉘앙스가 다르다.

    어깨를 나란히 할 동료가 아니라 자신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을 허락했다는 의미에서의 동료.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가면 돼!”

     

    심지어 중간에 멋대로 낙오될 거라는 생각마저도 품고 있다.

    다른 동료들보다는 낫지만 결국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나름 대륙에서 악명 높은 십대도적 중 하나인 목숨도둑의 하나뿐인 일인전승의 비기를 물려받은 후계자인데.

    용사뿐만 아니라 교수 클래스의 감지도 속이고 숨어 다니고 저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눈도 속일 수 있는데,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오크노디가 강한 건 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납득할 수 없어.

    오기.

    혹은 반발심이라고 불러도 좋을 감정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위로 쑥 내밀었다.

     

    ‘흥. 네 입으로 먼저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로 지켜보기만 할 줄 알아.’

     

    오크노디의 사과 아닌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다짐을 품으며 그늘 속에 스르륵 숨어드는 즈앙.

     

    “찍찍!”

    “…?”

     

    그런 즈앙의 눈에 그늘 근처에서 바위를 뜯어먹던 쥐새끼가 눈에 띄었다.

     

    [블루메탈쥐]

    [신체를 이루는 레어메탈의 순도와 효능을 성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단단한 물질과 마나가 깃든 물질을 갉아먹는다.]

     

    아카데미 마수학 강의에서 몬스터도감을 보면서 알게 된 레어몬스터였다.

    하나를 발견하면 레어메탈을 꽁으로 얻어서 득템했다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지만 둘을 발견하면 긴장하고 셋을 발견하면 줄행랑을 쳐야하는 몬스터.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가 깃든 물질.

    블루메탈쥐의 이빨이 노리는 먹이는 생명체와 사물을 가리지 않으니까.

     

     

    단검 끝에 일어나는 저항을 무시하고 콱 눌러 죽이기 무섭게 바위 밑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찍찍?”

    “찍찍찍?”

    “찍찍찍찍찍!”

     

    세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

    섬의 바닥에서 느껴지는 무수한 블루메탈쥐의 기척에 즈앙은 깨달았다.

    오크노디가 경매를 버틸 수 있을 때까지만 지켜봐달라고 말했던 진정한 의미를.

    이 경매장.

    시간이 지날수록 무인도에서 버티기가 위험해진다.

     

     

    * *

     

     

    “어이, 샌님. 먼저 돌아가서 아쉽지는 않냐?”

    “저야 제 앞으로 나온 상품도 구매하고 탈출하지 않았습니까. 아쉬울 이유가 없죠.”

     

    손오천의 앞에서는 태연하게 말한 지젤이었지만 섬에 남겨둔 <엿보기인형>에 비치는 광경을 보며 운이 좋았음을 실감했다.

    블루메탈쥐.

    저런 흉악한 포식자들이 숨어있던 섬에서 자칫 하룻밤을 보냈다가 발밑에서 놈들이 우르르 튀어나오기라도 했다면 목숨을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마나를 감지하고 튀어나왔군.’

     

    앙증맞은 작은 인형발로 섬을 부지런히 누비는 인형은 참가자끼리 교전이 일어났던 동굴이나 로지니의 잔불이 남은 지형에 쥐들이 몰려드는 것을 깨달았다.

    저런 식으로 지상으로 빠져나온 쥐들이 사람의 마나를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인간과 블루메탈쥐의 교전이 시작된다.

    한 번이야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교전으로 더 많은 마나의 흔적이 남고, 섬 밑에서 더 많은 쥐들이 기어 올라온다면?

    제발 크루즈선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쥐떼에게 쫓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꼬마숙녀가 순순히 우리를 먼저 보냈던 것은 전투력이 약한 우리를 배려해서였을지도 모르겠군요.’

     

    마음을 써준 것이야 고맙지만 지젤은 지젤 나름대로 걱정이 앞섰다.

    오크노디는 이미 매스각키 황녀와 교전을 벌였다.

    쥐들의 ‘추적대상’에 선정되었다는 뜻이다.

    저대로는 용사보다 오크노디와 황녀가 더 많은 쥐들에게 쫓기며 보다 빠르게 지치는 것은 당연지사.

    뾰족한 수를 내지 않으면 다음에 구명보트를 타고 크루즈선으로 넘어오는 것은 황녀팀과 오크노디팀이 될지도 모른다.

     

    ‘믿어보죠. 우리 꼬마숙녀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저희는 저희가 머무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상인의 안목과 셈법을 살려 식량창고의 남은 식량을 계산하고자 손오천과 함께 창고를 샅샅이 뒤지며 적재화물리스트 및 수량체크까지 돌입한 지젤.

    식량컨테이너를 열자 호롱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포커를 치던 지고쿠해적단이 나타났다.

     

    “…쥐새끼가 무인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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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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