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1

       “원자폭탄에 사람들이 희생된 건 선생님 때문이 아니에요. 다 마왕이 떨어뜨린 거잖아요!”

       “내가 저것만 안 만들었어도 세상은 지금 같지 않았을 거다.”

       

       사람들이 죽어도 선형적으로 죽었겠지. 저렇게, 란체스터 법칙에 어긋나게 개죽음당하진 않았을 터다.

       

       “기초적인 폭탄 하나만으로 저렇게 됐다. 그런데 흑주를 개발하라고? 정부 놈들은 미쳤어? 난 안 해. 못 해.”

       

       물론 이 말에는 이중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불태우려던 게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겠지. 조금 힘들더라도 꾹 참고 여생을 보냈을 것을….”

       “…아뇨, 선생님.”

       “괜한 짓을 했어.”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니까요?”

       “아니, 나는….”

       “어우 씨!! 답답해─!!”

       

       레니냐는 가슴팍을 두들기며 나를 팍팍 때렸다. 그래봤자 아프진 않았다. 제자의 손찌검이 어디 아프겠는가.

       

       “답답하니?”

       “그래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지금 당국에서도 답답하게 여기고 있을 테니까.

       

       “전쟁사에서 유명하신 분이 그런 말을 남겼어요. 전쟁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지거나, 엄청나게 잘 싸워서 이기든가. 선생님은 우리가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러면 이겨야 해요. 그것도 아주 강력한 걸 만들어서. 그러려면 선생님의 지식과 힘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러면서 레니냐는 오늘 자 신문을 내밀었다.

       

       “이것 좀 읽어 보세요!”

       

       [카우렐리아 연구조사기관 조사]

       

       [Q. 전(前) 상천 에테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마수가 아니며,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21%]

       [2. 마수이긴 하나,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 11%]

       [3. 마수이며 악한 존재이나, 현재 전쟁 상황을 위해서라도 협력해야 한다 : 37%]

       [4.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당장 형을 집행하거나 추방해야 한다 : 29%]

       

       “선생님과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반이에요. 선생님께서 도움만 주신다면 엘프국을 구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어요.”

       

       아니, 얘는 대체 무얼 믿고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

       

       “내가 토사구팽당한다고 얘기했잖니. 3번을 자세히 보렴.”

       

       3번. 현재 전쟁이 급박하니 에테르와 협력해야 한다.

       

       이는 곧 전쟁이 끝나면 나를 구워버리겠다는 소리였다.

       

       아직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니 움직여서는 안 된다.

       

       그래. 자신들이 ‘소’를 잃어버렸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

       

       

       에테르가 촌구석에 틀어박힌 이후.

       

       그녀를 추종하던 다른 금안족의 행방도 묘연해졌다. 아카샤, 로즈마리. 두 마수는 종적을 감추었다.

       

       심지어 버멜은 펙튼 장군의 손에 끌려갔다.

       

       어디로? 당연히 군대로. 한 달간 기초교육을 받은 뒤 실전에 투입된다고 하더라.

       

       이제 정부가 에테르와 소통할 수단은 매우 제한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억지로라도 데려오지요.”

       “미쳤소? 잘 구슬려도 모자랄 판에 끌고 오자고? 나라를 불구덩이에 처넣고 싶은 거요!”

       

       관료들의 고심만 깊어지는 가운데.

       

       마왕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서북부 전선에서 최초 교전이 있었습니다. 우군에서 1개 중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노크로 시작했다. 최상급 마수 수십 마리를 보내 공세를 취한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투입하는 부대를 늘렸다. 카우렐리아는 잘 막아냈다. 부대의 사기는 조금씩 올라갔다. 아직은 할 만했다.

       

       “이거 잘 될 것 같은데?”

       “사상자도 아직 백여 명 규모요. 처음 충격을 잘 막아냈으니 점점 나아지겠지.”

       

       관료들이 그리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샬레로모 지역 상공에서 버섯구름이 관찰되었습니다.]

       

       [해당 지역의 중공업지대, 상업 시설, 그리고 주거 시설 약 3만 4천 호가 파괴되었습니다. 예상 사망자는 8만 2천 명입니다.]

       

       북서부의 주요 공업지대에 전술핵이 떨어졌다.

       

       

       **

       

       

       로테는 비가 오는 날에도 판자촌 문을 두들겼다. 그러다가 결국 감기에 들어 앓아눕고 말았다.

       

       프레이는 길거리에서 눈물로 호소하다가 박대를 당했다. 사악한 금안족을 감싸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유피엘은 가문의 힘을 빌려 의회에 간섭했다. 그러나 영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속한 당파의 지지율만 크게 깎였다.

       

       정부의 지지율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에 반전 시위, 행정부 탄핵 요구 시위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최전선의 군인들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샬레로모 지역 근처에 주둔하던 부대에서 이상징후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구토, 오한, 설사, 탈모, 식욕부진, 피부병변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부대를 표적 조사한 결과, 소변에서 다량의 변성 나트륨이 검출되었습니다.]

       

       쾅!

       

       “그 폭탄이 그냥 폭탄이 아니었다고?”

       “아무래도 해당 지역을 불모지로 만드는 마법 같습니다.”

       

       정부에선 해당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자연스레 그 자리는 마수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인간과는 달리, 마수는 잔류 방사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니까.

       

       [현 시간부로 사상자의 수가 추가 집계되었습니다. 피폭으로 2만 3천 명이 추가. 현재 사상자는 10만 5천 명에 육박합니다.]

       

       [이번 사태로 군부는 장성 다섯과 최상급 정령 세 분을 잃었습니다.]

       

       “뭐라고?”

       

       “정말?”

       

       국민의 불안감도 날이 갈수록 커졌다.

       

       “최상급 정령들이 죽었다고? 말도 안 돼.”

       

       다른 건 몰라도, 최상급 정령이 죽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다들 원자탄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야, 세계수가 불탈 뻔했을 땐 정령왕들이 힘을 합쳐 폭탄을 막아냈으니까.

       

       물론 그 당시 에테르가 없었더라면 카우렐리아는 진작 멸망했다. 그녀가 팔정도를 조작한 것이 재앙을 막아냈던 탓이다.

       

       그러나 국민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제 그녀가 없는 지금. 전선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급해졌다.

       

       “대통령은 뭐하냐! 행정부는 뭐하냐!”

       “당장 대비책을 마련하라!”

       

       행정부 건물과 의회 앞에선 현 정부의 무능함을 규탄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사실 정부도 머리가 아프긴 매한가지였다.

       

       아직 에테르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심했다.

       

       “그녀와 금안족에게 좋은 조건을 주겠다고 해. 해서 비밀리에 데려와서 연구시키면 안 되나?”

       “국민의 허락을 받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겠답니다.”

       “허어, 이것 참.”

       

       카우렐리아의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탄식을 내뱉었다.

       

       “게다가 자신이 만든 폭탄에 대해 죄책감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금 흑주인가 뭔가, 그런 걸 만들 의욕이 없다고….”

       “뭐? 기껏 풀어줬는데 장난해?”

       “장난이 아닙니다. 국민들은 저리 나오지, 그녀가 간접적으로 죽인 사람은 점점 늘어나지. 저라도 정신이 남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군.”

       

       이해는 간다.

       

       저런 욕을 먹고도 멀쩡히 돌아다니면 그건 진짜로 마수다. 감정이 있으니 저렇게 집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는 거겠지.

       

       “각하! 대통령 각하─!!”

       “뭔가,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하늘에서 전단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은 서둘러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 말대로 하늘에서 삐라가 떨어지고 있었다.

       

       팔락.

       

       전단지 중 하나를 잡아든 드와이트 대통령은 그것을 천천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카우렐리아의 백성에게 고한다.]

       

       [여러 차례 항복을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짐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무의미한 반항을 이어 나갔다. 이는 매우 유감인 일이며, 짐은 너희가 기회를 발로 걷어찼음을 전하고자 한다.]

       

       통보문이었다.

       

       [샬레로모에서의 일을 시작으로, 같은 비극이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재현될 것이다. 짐의 군세는 엘프들을 짓밟을 것이며, 짐의 마도는 정령왕에게 죽음을 고할 것이다.]

       

       [모든 금안족은 이 전단지를 보는 즉시 키렐 해안으로 이탈하라. 그곳에서 인간형 마수들의 안내를 받아 귀순하라.]

       

       [나머지 아둔하고 불민한 것들은 청소될 것이다.]

       

       [지도자의 뜻을 천명으로 알겠다. 그러니 더는 항복을 권고하지 않겠다. 이상.]

       

       “각하, 뒷장을 보십시오! 폭격 예정지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젠장….”

       

       수도 메르헤름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 모조리 원자탄을 뿌리겠단다. 그 장소가 물경 50곳에 달했다.

       

       “어떻게 해서든 제공권을 되찾아야 합니다.”

       “…하, 늦었겠지. 이 정도로 우릴 기만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야.”

       

       마왕군과 엘프국의 전력차는 크게 벌어졌다.

       

       재래식 전력만으로 맞붙는다면 정령왕의 가세로 이기겠으나, 원자폭탄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허무하게 돌아갔다.

       

       만에 하나, 정령왕이 만약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곳에 원자폭탄 수백 발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군.”

       “각하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국민이 불안에 떨 겁니다!”

       “아니, 이건 나라도 어쩔 수가 없어.”

       

       이미 국민들도 버섯구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폭탄이 군인과 민간인 10만 명을 죽였단다.

       

       10만 명이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중소 규모의 도시 하나에 해당하는 인구수란 말이다.

       

       그만한 인구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단 말인가? 여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전쟁 도구들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그리고 샬레로모 지역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나흘째 되던 날.

       

       카우렐리아의 연구조사기관은 다시 한번 조사를 진행했다.

       

       [Q. (최신) 전 상천, 에테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마수가 아니며,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32%]

       [2. 마수이긴 하나,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 16%]

       [3. 마수이며 악한 존재이나, 현재 전쟁 상황을 위해서라도 협력해야 한다 : 47%]

       [4.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당장 형을 집행하거나 추방해야 한다 : 2%]

       

       원자폭탄의 충격이 국민들에겐 너무나도 컸다.

       

       게다가 같은 폭탄을 카우렐리아 전역에 뿌리겠다는 전단지까지 살포됐으니 말 다했다.

       

       이제 사람들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당장 영웅적인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전란을 끝내주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선이 에테르에게 몰릴 수밖에 없었다.

       

       “각하, 여론이 그 금안족에게 호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좋아. 다시 접촉을 시도해 보게.”

       

       그리하여 정부 측 사람이 판자촌 문을 두드리기에 이르렀다.

       

       “국가안보실장인 카리나 르제프입니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 용건 있으시면 먼저 밖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다, 당신이 전 상천입니까?”

       – 두 번 말 않겠습니다.

       

       판자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영 시원찮았다. 카리나는 문 너머의 존재가 에테르라는 자임을 확신했다.

       

       “대통령 각하께서 당신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리서치 결과, 국민 여론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약속을 지키실 때입니다!”

       – …….

       “개발 이후의 일은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각하께서 당신과 금안족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셨습니다. 설령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당국에서 당신을 버릴 이유는……!”

       – 됐습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아, 안 돼.’

       

       다급해진 카리나가 문을 쿵쿵 두들기며 언성을 높였다.

       

       “열어 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발요! 부탁입니다─!!”

       

       경호실장, 카리나는 그 자리에 서서 몇 번이고 판자를 내리쳤다.

       

       “당신이 없으면 카우렐리아는 끝장입니다! 도와주기로 하셨잖아요!! 약속을 지켜주세요!!”

       

       울부짖고 또 울부짖는다. 그런데도 진심은 닿지 않는다.

       

       쏴아아아.

       

       어느덧 하늘 위로 폭우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젠장, 이렇게 죽기 싫은데…. 여기까지 어떻게 취직했는데……. 아빠, 엄마…! 흐윽…….”

       “실장님, 돌아가시죠. 비가 찹니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자 애썼고, 결국 쫄딱 젖어 부하에게 업혀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 카리나는 몸살이 도져 이틀간 간호를 받아야만 했다.

       

       간호를 받는 동안, 그녀는 지독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는 꿈이었다. 지독한 안개가 피어오르고, 빛이 번쩍이며 광구를 만들어내는 광경.

       

       색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잿빛의 공간.

       

       “…허억!”

       

       그런 공간을 걷던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하고 물수건이 떨어진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일어나자마자 스크롤을 조작하여 라디오를 틀었다.

       

       제발, 지금 상황이 예전과 다를 바 없음을 염원하면서.

       

       [……속보입니다. 조금 전 9시 54분, 키슈펠 지역에 규모 13kT에 해당하는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사상자는 최소 11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사망자 대부분이 민간인일 것으로…….]

       

       “아….”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