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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그……

        

       라는 말을 입 밖에 내놓을 뻔했다가 얼른 다물었다.

        

       아무리 캐릭터성이 무너지고 실체가 까발려지는 와중이라고 해도, 아직은 지켜야 할 부분이 남아있었다. 나는 능력을 잃은 뒤에도 나름대로 내 최소한의 캐릭터성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언젠가는 내 본성이 전부 까발려질 수 있겠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전부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상대한테 말을 걸면서 ‘그……’라고 말을 시작하는 것은 내 캐릭터성에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생각한 다음 말을 바로바로 꺼냈었으니까.

        

       “……저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까지 남아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그렇게 물었다.

        

       “…….”

        

       나의 질문에 미아의 시선이 잠깐 허공을 향했다. 그리고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는 듯 잠깐 조용히 있다가,

        

       “적어도 제 앞에서 보였던 모습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몰라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여지를 준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미아는 복잡한 마법 영창을 외우고 있을 만큼 기억력이 좋다는 것을. 성적도 언제나 상위권이고. 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 겨우 성적을 유지하고, 앨리스가 피나는 노력으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면, 미아는 애초에 머리가 좋아서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아가 공부에 대해 가진 생각은 우리와는 약간 다른 차원에 있다.

        

       앨리스가 황녀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하기 싫은 거라도 억지로 노력하는 거라면, 미아는 공부를 재미로 하는 캐릭터다. 일전에 내 앞에서 마법에 대해 흥미가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미아는 정말로 마법에 흥미가 있어서 스스로 공부하는 케이스다. 거기에 머리까지 좋으니 당연히 성적도 떨어질 일이 없다.

        

       같은 이유로, 내가 미아 앞에서 한 뻘짓이 있다면 미아는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

        

       문제는, 정작 내가 그 뻘짓을 전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바로 위에서 머리가 좋다느니 기억한다느니 하는 말을 했지만, 그건 미아에 관한 이야기고 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성적이 좋았던 것이나, 게임 설정이나 스토리, 던전내부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것들을 철저하게 반복 숙달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애초에 숙달할 때까지 반복했다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이겠지.

        

       소소한 것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할 만큼 머리가 좋지 못한 내 기준으로는, 미아의 이 말은 어마어마하게 불안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물어볼 수도 없다. 만약 내게 시간을 돌릴 방법이 아직 있었다면, 일단 물어본 뒤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며 절규하고 시간을 다시 돌렸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그럴 일도 없다. 내가 돌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한 끝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그런 것뿐이었다.

        

       *

        

       시련이 끝나지를 않는다.

        

       보통 시련이란 극복한 뒤에 뭔가 좋은 것이 딸려오는 것일 터인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시련은 그런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전부 내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에 대한 업보였다.

        

       그러니까, 나는 시련을 뒤로 미루고 그 시련에 따라오는 좋은 일들을 미리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거다.

        

       아니,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런 식으로 시간을 돌리지도 않았겠지. 애초에 처음부터 말 없는 캐릭터를 유지하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만 시간을 돌렸을 것이다.

        

       “황녀님.”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 사람은 레나였다.

        

       내 주변에서 나를 ‘동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그저 동등한 친구로 생각했고, 나는 거기 불만이 없다. 사실 따지자면 그렇게 생각해주는 편이 더 좋다.

        

       하지만 나와 아주 가깝지는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동경하는 눈으로 나를 보기도 한다. 그 사람들은 애초에 나의 실수를 직관할 일이 거의 없었던 사람들이고, 무엇보다 실수를 직관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시간을 돌려서 그런 것이라는 자각이 없으므로 그저 자기가 헷갈린 것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고자 하는 황제를 저지하고, 그리폰을 타고 돌아온 나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여러모로 말 걸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 빼고.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를 대놓고 동경하는 이가 한 사람 있었다.

        

       바로 레나 마이어였다.

        

       분명 아카데미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나를 감시하거나 내가 하는 행동을 윗선에 보고하기 위함일 텐데, 레나는 처음부터 내가 하는 거의 모든 행동에 눈을 반짝였다.

        

       처음 레나를 만났을 때 나와 캐릭터가 겹치는 것을 걱정했다. 아니, 사실 쿨뷰티라는 이미지로서는 레나가 더 우위에 있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전부 ‘연기’라면, 레나는 그야말로 ‘진짜’였으니까. 단순히 겉으로 냉정 침착해 보이는 것 외에, 뒤로는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는 갭의 영역에서도 레나는 ‘진짜’였다.

        

       나는 그런 레나를 이겨보겠다고 레나 앞에서 나름대로 시범을 보였고, 덕분에 레나는 나를 진짜로 동경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디 앉을 때 내 옆자리가 비면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고, 나를 흉보거나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박하려고 나설 정도였다. 심지어 전투 방식도 영향을 받아, 내가 영화를 보고 따라 한 ‘텍틱컬한’ 행위들을 나름대로 자기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런 레나도 기억을 되찾았다.

        

       동경하던 사람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 망가지는 수준이 정말 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영역에 걸쳐있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내 망가지는 모습은…… 음, 그런 것보다 훨씬 심하지 않았던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미아와의 대화가 일단락된 후 그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빠져나오는 도중 레나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앨리스를 보았다. 앨리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니, 기왕이면 어떻게 좀 같이 이야기를 나눌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랐는데.

        

       ……뭐, 결국에는 독대하는 순간이 오긴 했겠지. 그럴 거면 차라리 미리 이야기를 나눠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네, 괜찮습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

        

       “…….”

        

       “…….”

        

       생각해보면, 나는 레나와 그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나는 내가 알고 있던 ‘캐릭터’ 중 하나가 아니었기에 내가 미처 성격을 다 파악하지 못했던 것도 있고, 레나가 나를 보는 시선이나 내가 그 시선에서 느끼는 것이나,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가 혼합되어서 우리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건 레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이전에는 그래도 나한테 이런저런 말을 걸곤 했었는데, 막상 기억이 살아나고 나니 내가 이전의 나처럼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속마음을 모르는 채로 말을 거는 것과 알고 있는 채로 말을 거는 것은, 설령 그 대상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어렵다. 엄밀히 따지면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뒤니까.

        

       “그렇습니까.”

        

       “예. 제국이 리클란트 자치국…… 그러니까 제 모국을 공격했다는 기억입니다.”

        

       “……전쟁에 참여하셨습니까?”

        

       내 질문에,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환상 속의 세상에서 나는 레나와의 접점이 없었다. 원래의 세상에서처럼 전장에 나서지 않았으니까.

        

       “저희 아버지는 저를 어머니와 함께 후방으로 피신시키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국경지대가 포격으로 초토화되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정부와 대립하던 군벌 일부와 손을 잡기까지 했다고 했었습니다.”

        

       “…….”

        

       그렇게 말을 이어 나가는 레나의 표정은 담담했다.

        

       “저도 전쟁에 나가고자 했습니다만…… 어머니께서 막으셨기에 결국 끝까지 그 곁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 중 하나만이 남았는데 그 가족마저 전장에 내보낼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나는 레나의 가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레나의 아버지가 자치국의 중요 인물이라는 것 정도밖에.

        

       “그래서, 그 모든 기억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크게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같은 대답을 했다.

        

       “……그래서,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십시오.”

        

       “황녀님께서 했던 행동들이, 제가 분명히 기억하고 있던 것들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는 최대한 빠르게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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