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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사람은 상실을 슬퍼하는 생물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는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에 더 큰 고통을 느낀다.

         

       그렇기에 사람은 손에 쥔 것을 놓으면 미래에 곱절로 다가올 것임을 알고도 손을 펼치지 못하고,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을 놓아주어야 함에도 쉬이 놓아주지 못한 채 그대로 품 안에서 썩혀가도록 놔둔다.

         

       그것이 형체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상관이 없다.

         

       가지고 싶으니까 가진다.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가진다.

       잃고 싶지 않으니까 가진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번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우연처럼 다가온 행운의 수첩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으니까.

         

       “안 돼, 안 돼….”

         

       흔들리는 바람이 손아귀 안에서 쏙 들어오듯 그의 품으로 들어왔던 수첩은, 이제는 자신이 왔던 방식 그대로 손아귀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고 했던가.

         

       그에게 다가온 행운은 남에게 강제로 쥐어진 만큼,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페이지가…. 페이지가 부족해…. 젠장, 젠장, 젠장…!”

         

       수첩이.

       페이지가 줄어간다.

         

       제물을 바치고 정보를 얻을 때마다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로 남은 페이지가 얇게 변한다.

         

       이제순은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이게 없으면, 이게 없으면….”

         

       수첩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의 성공을 위한 날개이고, 그를 시궁창에서 꺼내준 보물이며, 앞으로 그의 인생을 찬란하게 빛나게 해줄 광택제이며, 그를 쑥쑥 자라나게 할 찬란한 햇빛이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없으면, 씨발. 씨발 옛날처럼….”

         

       정보가 있었기에 그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동료들은 그를 질투하면서도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서 그에게 달라붙고 있었고, 평소에 그를 무시하고 부려 먹던 선배 역시 자신과 친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사회부나 정치부의 기자 역시 자신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쌓아가고 있었고, 평소에는 잘 보지도 못했던 편집장과 친해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나는 말이야, 다른 사람은 못 믿어도 네 기사는 이제 믿을 수가 있겠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써.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라는 말까지 듣기까지 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수첩이 없어진다면?

       그를 이렇게 인정받게 해준 ‘정보’를 더 이상 얻지 못하게 된다면?

         

       “씨발, 안 돼. 안 돼. 그렇게는 안 돼. 빌어먹을, 안 된다고.”

         

       추락.

       추락이다.

         

       하늘을 날다가 날개가 사라지면 당연히 땅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

         

       다시 옛날처럼 시궁창에 처박혀 있게 되리라.

       그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에 그 아픔은 더더욱 클 것이고, 시궁창을 기는 하찮은 삶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겠지.

         

       동료들은 질투와 시기 대신 ‘그럴 줄 알았다.’, ‘역시 제대로 된 실력이 없으면 행운이 저렇게 많아도 높은 곳에 갈 수가 없다니까?’ 등의 말을 하며 그를 욕할 것이고, 선배 역시 그를 쓰레기 취급을 하게 되리라.

       그에게 믿음을 주었던 편집장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을 할 것이고,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들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연락을 뚝 끊어버리고 그를 남 취급을 하게 되리라.

         

       그리고 사회부로 돌아가는 그의 꿈은 좌절될 것이고, 그는 시궁창에서 기다가 반강제로 기자 생활을 청산하게 될 것이다….

         

       “이런 건 있어선 안 돼….”

         

       끔찍하다.

       생각만 하더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다.

         

       이제순은 절대로 그런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높은 곳에 있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람의 심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지도 않았고, 경험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위로 가고 싶었다.

         

       수첩.

         

       그래.

         

       수첩의 도움을 통해서 말이다.

         

       “그, 그래. 잠깐만. 그래…. 그 사람이, 그분이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이제순은 생각했다.

         

       수첩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복원을 위해서는.

       수첩의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그때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만나면 된다고 했지…?”

         

       그에게 수첩을 준 그 사람을 만나야 한다.

         

         

         

        * * *

         

         

         

       “왜…? 왜?”

         

       그는 용기를 내서 발걸음을 옮겼다.

         

       괴한을 만난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던 음산한 길로 발을 옮겼고, 고장 난 가로등 아래의 뭉쳐 있는 어둠 역시 두려워하면서도 담대한 척 쉬지 않고 걸어갔다. 그리고 괴한을 만났던 그 자리를, 그때와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것에 성공했다.

         

       수첩을 위해 용기를 한껏 낸 것이다.

         

       그런데….

         

       “왜 없어…?”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쇳소리를 내는 꼽추는 없었고, 골목과 공원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황금 가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없다.

         

       괴한이.

       그에게 선물을 준 은인이.

         

       없다.

         

       “대체 왜, 왜…?”

         

       용기를 내서 찾아왔거늘.

       괴한이 말했던 대로 그 시간, 그 장소에 나왔거늘.

         

       대체 왜 없단 말인가.

         

       ‘아니야. 오늘만 이런 거겠지. 그래….’

         

         

         

         

        * * *

         

         

         

       이제순은 다음날 똑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똑같은 시간에 공원을 가로질렀고, 똑같은 장소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곳에서 괴한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하지만 가로등 아래에 머문 어둠이 햇살에 부서지며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도 괴한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왜 없어….”

         

       해가 뜨고 세상에 밝게 빛나도.

       어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음에도.

         

       괴한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 * *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도.

         

       괴한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괴한을 만났던 것이 신기루였고, 과로에 지쳐서 헛것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페이지를 다 써버린 수첩만이 괴한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뿐.

         

       “페이지를 다 썼어. 다 썼다고…. 제발 나와. 나와달라고…!”

         

       이제순은 괴한을 찾아 헤맸다.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간에 그 길을 걸었고, 잠도 집에 가서 자는 대신 골목이나 공원의 벤치 적당한 곳에 누워서 자버렸다.

         

       혹여 자신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 괴한이 나타날 수도 있었으니까.

       괴한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나도 쉽게 사라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제순은 폐인처럼 노숙자 생활을 반복했다.

         

       그것이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활동하는 이제순의 행색은 추레해졌고,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염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비호감처럼 보이게 되었고, 머리 역시 제대로 감지 않아서 엉겨 붙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옷과 속옷 역시 제대로 갈아입지를 않아서 점점 냄새가 나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스가 계속해서 배에 차는 바람에 입에서 고약한 트림이 계속해서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이뿐만이 아니었다.

         

       업무에도 지장이 생겼다.

         

       오로지 괴한을 찾는 것에만 신경이 쏠린 이제순은 기자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다 하기는커녕 시간만 까먹고 있었고, 그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제대로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특별히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았다.

         

       수첩을 다 썼다면 직접 발로 뛰거나 사람을 만나서 정보를 얻어야 하거늘, 그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수첩을 복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무언가에 깊이 빠져버린 중독자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야. 너 왜 그러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제순을 걱정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제순의 모습은 심상치가 않았다.

         

       폐인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모습이니 당연히 사람으로서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걱정이 지극한 걱정은 아니고, ‘냄새나고 귀찮은 것 같으니까 깊이 관련되고 싶지는 않다.’라는 마음과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래? 무슨 일 있나?’라는 궁금증이 뒤섞인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리고 ‘선배’ 역시도 이제순에게 한마디를 했다.

         

       “이봐 제순이. 너 요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을 하라고. 내가 뭐 명색이 선배인데 이야기 들어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으면 뭐 마음이라도 가벼워질 수도 있지 않겠냐?”

         

       얼핏 걱정하는 듯한 말.

       하지만 실제로는 ‘일 똑바로 안 하냐?’라는 핀잔이 들어있는 말이었다.

         

       물론 그 핀잔은 한없이 순한 맛이었다.

         

       그동안 이제순이 터뜨린 기사들이 있었으니까.

         

       두 번 연속으로 터뜨리기도 어려운 대박 기사를 연속적으로 터뜨린 놈이니, 각 잡고 쓴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은근하게 암시를 주는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순이 이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면…. 그 은근한 핀잔은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가게 되고, 그 끝에는 평소 이제순이 듣던 폭언에 가까운 것이 되리라.

         

       ‘빌어먹을. 벌써 이래. 벌써 추락의 조짐이 보인다고. 제기랄!’

         

       이제순은 날카로운 칼날이 등 뒤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날카로운 칼이 그의 등을 찌르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그의 등을 확실하게 찌르고, 고통에 신음하는 그를 시궁창에 처박아버릴 칼날이다.

         

       ‘안 돼. 빨리, 빨리 찾아야 해.’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제순의 마음은 더 다급해졌다.

         

       ‘제발 나와라, 제발. 무슨 대가라도 치를 테니까 제발 나와!’

         

       제발.

       제발 나와라.

         

       ‘씨발 영혼을 팔라고 해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테니까, 제발 나오라고-!’

         

       이제순은 빌고 또 빌었다.

         

       제발 괴한이 있기를.

         

       제발 오늘은 만날 수 있기를.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보게, 젊은이.”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깨달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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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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