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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291화. 무지갯빛 비늘 ( 4 )

       

       

       

       

       

       “크아아아아악!!”

       

       에이홉은 길고 참담한 비명과 함께 뒤로 쓰러졌다. 배를 갈라 스스로의 창자를 끊어내는 이의 비명이 이러했을까.

       

       마치 자식을 잃은 부모의 외마디 비명처럼 끔찍했다.

       

       “에, 에이홉!!”

       

       “노인장!”

       

       “크, 으어어어…!! 흐아아아아아!!”

       

       눈을 까뒤집은 에이홉이 게거품을 물며 발광했다. 현실이라는 늪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가련한 몸짓이었다.

       이윽고 풀썩 기절했다.

       

       “……기, 기절… 했습니다…”

       

       “…일단 저대로 잠시 두지…”

       

       중요한 것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괴생물체였으니. 이스칼과 한스는 경계심을 끌어 올렸다.

       

       “끼기기기긱-! 삐헤이이익-! 끼, 끼끽-?!”

       

       삐이이이-

       

       “크읍. 귀, 귀가…”

       

       하반신은 물고기, 상반신은 사람의 형체인 무언가가 고주파를 토해냈다. 고막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과 함께 이명이 몰려온다.

       

       동시에 다가온 괴생물체의 형상이 똑바로 보였다.

       세상에, 저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 저게 진정 에이홉이 말한 아틀라스의 주민인가…?’

       

       끔찍한 몰골이다.

       이스칼은 절로 눈을 찌푸렸다.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목구비 굉장히 자유롭게 분포한 녀석이군요.”

       

       “말을 좀…”

       

       “솔직히 맞는 말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끼끼끼끼끼끼ㅡ”

       

       참지 못한 한스가 한마디 했다. 이스칼이 말리기는 했지만, 내심 같은 생각이었다.

       

       창백한 회색빛 피부에 콧대가 없는 코, 커다란 입에는 송곳니가 가득했고 두 눈은 물고기의 동공이었다.

       거기에 사람의 형상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있으니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왔다.

       

       하반신은 아름다운 비늘을 자랑하는 물고기였는데, 상반신은 추레한 인간의 모습이라니.

       이스칼은 난생처음 보는 괴리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끼, 끼기기-?”

       

       능숙하게 아탈라스로 다가온 어인이 이스칼과 한스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무언가 탐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윽-

       

       에이홉이 기절하며 멀리까지 굴러간 무지갯빛 비늘을 주운 어인이 입을 길게 찢었다. 초승달처럼 찢어진 입술 사이로 상어의 이빨이 번뜩였다.

       

       “녀, 녀석이 비늘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아… 아니야. 저건 아마도… 웃는 것 같군.”

       

       “저게 웃는 표정이라고요?”

       

       …자세히 보니 비늘을 주워서 기뻐하는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인은 무지갯빛 비늘을 자기 하반신에 이리저리 갖다 대더니, 이내 하반신의 텅 비어있던 자리에 비늘을 끼웠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비늘이 쏙 들어갔다.

       

       “어…? 이스칼. 에이홉이 분명 저 비늘은 자신을 구해준 인어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 맞네.”

       

       “그런데 저 비늘을 저렇게 딱 맞게 끼울 수 있다는 건… 설마……”

       

       “으음…”

       

       이스칼과 한스가 침음을 흘렸다. 기절한 에이홉이 깨어나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고 있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떠올렸다.

       

       “삐에에에에엑-”

       

       어인이 멀리서 빙글빙글 돌며 소리쳤다.

       이목구비의 자유로운 분포 탓에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겁먹은 표정과도 비슷했다.

       

       “적의는 없는 것 같군.”

       

       “…에이홉은 도대체 저것의 뭘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걸까요.”

       

       “의식이 흐릿했으니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 어릴 때의 기억이니 미화됐을 수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경계를 풀자 그제야 어인이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면상이 더더욱 흉악하였다.

       실시간으로 정신을 공격당하는 기분이었다.

       

       “끼기기긱, 끽-! 으케히익!”

       

       어인이 에이홉과 한스의 손을 덥석 잡아끌며 뭐라 뭐라 크게 소리쳤지만, 듣기 싫은 고주파만이 들렸다.

       

       “이 녀석, 저희를 잡아당기는데요?”

       

       “흐음. 정말 에이홉의 말대로 어인들이 여기 살다가 도망친 건가…?”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말입니까?”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겠지. 어인이 우리를 안내하려는 것 같지 않나?”

       

       “…저 어인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낫겠지.”

       

       첨벙, 첨벙-!

       

       둘은 어인의 인도를 따라 빠르게 헤엄쳤다. 남은 물약의 시간이 촉박한 탓이다.

       물약 효과가 떨어지며 점점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졌다.

       

       부르르릅-!

       

       ‘나랑 한스 경은 어느 정도 숨을 참을 수 있어서 상관없다. 하지만, 에이홉이 문제군…’

       

       여전히 기절한 에이홉을 어깨에 둘러맨 한스와 시선을 교환한 이스칼. 한스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합의된 사항이었다. 에이홉에게 산소가 부족하면 돌아가면서 산소를 공급해 주기로.

       

       ‘이건 구조 활동이다. 이건 구조 활동이다. 이건 구조 활동이다. 이건 구조 활동이다…!’

       

       눈을 질끈 감은 한스가 기절한 에이홉의 입에 산소를 넣으려던 그때.

       

       멈칫.

       

       불쑥 끼어든 어인이 한스를 막았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할 틈도 없이 어인이 재빨리 에이홉을 뺏어 갔다.

       

       “부그르르르릅-!”

       

       ‘막아!’

       

       한스와 이스칼이 재빠르게 달려들던 찰나.

       

       즈큐우우우웅-!

       

       ‘아, 아니!’

       

       ‘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둘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눈앞에서 일어난 참사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말릴 틈도 없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

       

       ”어, 어인이 에이홉에게 입을 맞췄다아아아ㅡ!!”

       

       그야말로, 전대미문.

       미지의 공포를 맞닥뜨린 기괴함.

       

       어인은 기절한 에이홉에게 입술을 맞추고, 공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어인의 귀 옆 아가미가 펄떡거리며 기묘한 생동감을 더했다.

       

       스윽.

       

       어인은 기절한 에이홉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에이홉은 새근새근 숨을 쉬며 아기처럼 자고 있었다.

       

       ‘……숨을 쉰다.’

       

       ‘물 속인데 숨을 쉬다니…’

       

       어인의 입맞춤에는 저런 신비한 효과가 있단 말인가.

       문득 어인이 이스칼과 한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떤 말과 몸짓, 음성도 없었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은 기묘함.

       

       “부그르르르르릅!!”

       

       ‘난 사양하겠네!!’

       

       ‘절대로 싫어…!’

       

       둘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익사를 하고 말 것이다.

       

       

       

       ***

       

       

       

       어인은 한참이나 헤엄쳐서 멀리 떨어진 도시로 안내했다.

       중간에 숨이 부족해서 큰일 날 뻔했지만, 악으로 깡으로 어인의 입맞춤을 거절했다.

       

       “허어… 이곳은 또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아틀라스 같은 도시가 두 개나 있는 줄은 몰랐군요. 아니. 어쩌면 여기가 아틀라스일지도…”

       

       “그건 좀 봐야 알겠군. 도시의 상태는 여기가 훨씬 더 안 좋아. 그런데… 신성력이 굉장히 풍부하군. 도시 자체에서 신성력이 솟아나고 있어.”

       

       그들이 최초로 도착한 도시보다 인어의 안내로 도착한 도시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곳곳에 무너진 기둥과 벽이 산재했다. 허나, 진하고 묵직한 신성력이 도시 자체에 깃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성지나 다름없는 수준.

       숨을 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지상과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다.

       

       웅성웅성-

       

       두 다리 달린 인간의 존재에 온갖 어인들이 모여들었다. 멀찍이서 구경하며 저들끼리 끽끽- 꽤애액-하고 외치는 모습이라니.

       어쩐지 철창에 갇힌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불쾌하군요.”

       

       “참으세나, 한스 경. 일단 저들에게 악의는 없어 보이니.”

       

       어인들 틈에서 우렁차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방문은 까마득하게 오랜만인지라. 아이들이 신기해서 그런 것이니 부디 불쾌하게 여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웅성이던 어인들이 크게 길을 트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늙은 여성 어인이 다가왔다.

       추례하게 늙었지만 물고기의 동공에는 기묘한 현기가 깃들어 있다.

       

       “……자네가 말을 한 건가?”

       

       “네, 맞습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상의 인간분들. 저는 인어들을 이끄끼기기긱-! 큼, 크흠! 실례… 인어들을 이끄는 심해 장로, 에리얼이라고 합니다.”

       

       “에리얼… 지상의 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는군?”

       

       “먼 옛날에 배웠습니다. 아주 먼… 별들이 지상에서 반짝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하게 눈을 빛내던 에리얼이 다시금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데 여러분께서는 참으로 좋지 못한 시기에 찾아오셨군요.”

       

       “좋지 못한 시기라? 혹시 크라켄에 관련된 건가?”

       

       “크라켄… 예, 그렇게도 불리지요. 그 잔학무도한 괴수를 피해 도망친 것이 얼마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에리얼이 찌릿하고 눈을 좁히며 한 어인을 바라봤다. 에이홉을 품에 안고 있던 어인이 움찔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어느 아이가 멋대로 나갔다 온 까닭에 뒤를 밟힌 것 같습니다.”

       

       “끼히이이익…”

       

       무지갯빛 비늘을 되찾은 어인이 작게 외치며 에이홉을 품에 꼭 껴안았다.

       에이홉이 볼품없이 짜부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빙빙 돌려서 말하는 취향은 없네. 뭘 말하고 싶은겐가.”

       

       “…알겠습니다. 크라켄이라고 부르시는 괴수가 곧 이 도시를 향해 쳐들어올 것입니다. 보아하니 손님들께서는 강인한 전사이신 듯하여… 도움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도움이라?”

       

       이스칼이 피식 웃었다. 

       이에 에리얼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 거죠? 우리에게는 생존의 터가 걸린 문제입니다.”

       

       “아, 실례했네. 자네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모르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그대들이 도망쳐 온 이 도시를 말이네.”

       

       이스칼은 도시에서 진하게 올라오는 신성력을 만끽하여 과장된 몸짓으로 인사를 올렸다. 다름 아닌 허공을 향해서.

       

       “정녕 이 도시가 어느 분의 손에 만들어졌는지… 왜 이토록 강렬한 신성력을 풍기는지. 자네들은 정말 모르는가?”

       

       “그게 무슨 말이죠? 설마 위대하신 분들의 손에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에리얼의 목대에 핏줄이 솟았다. 

       과하게 흥분한 모습이었다. 상처 입은 짐승이 도리어 이빨을 드러내는 것과도 같은 기세.

       

       “위대하신 분들은 모두 저희를 버렸습니다… 단 한 분도 남김없이 말이죠. 우리는 보기 좋은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단 말입니다.”

       

       “심해에 살아서 그런가, 소식이 굉장히 느리군?”

       

       “…불쾌하군요. 이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겠습니다.”

       

       에리얼이 대화를 거부했다. 이스칼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여섯 번째 신의 강림을 모르는 것 같았으니까.

       뭔지는 몰라도 나름의 상처가 있어 보였다.

       

       ‘두 눈으로 신의 기적을 목도하면 스스로 깨우치겠지.’

       

       지금이야 에리얼이 신을 부정하고 분노하며 모른 체 하지만, 그마저도 신께서는 품어주실 것이다.

       돌아온 탕아와 길 잃은 어린 양을 보듬어 헤아리시는 분이니까.

       

       쿵- 쿠구궁! 콰앙!

       

       지척을 울리는 굉음.

       신성력을 머금은 도시가 잘게 흔들리며 먼지를 토해냈다.

       

       “꽤애애애액-!! 끼께에에에엑!!”

       

       한 어인이 허겁지겁 헤엄쳐서 다가왔다. 창백한 안색이 더욱 시체처럼 질려 있었다.

       

       “기어이 왔군요.”

       

       “크라켄 말인가?”

       

       “예. 예상보다 너무 이릅니다…”

       

       “하. 걱정할 것 없네.”

       

       이스칼과 한스는 여유로웠다. 도시 자체에 신성력이 깃들어 있었다. 동시에 이토록 진한 신성력을 뿜어내다니.

       이것은 온 세상에서 단 한 분만이 가능했다.

       

       “신께서 이 도시를 보살피고 계시네.”

       

       “…헛소리.”

       

       이스칼은 자신만만했다.

       도시를 들어섬과 동시에 수면 위로, 더욱 아득한 구름 저편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여섯 번째 신께서 심해에 가라앉은 도시를 굽어 살피고 계셨음이다.

       

       쿵! 쿵, 콰앙-!

       

       과연, 저 멀리에서부터 난동을 부리며 다가오는 크라켄의 형체가 보였다.

       어찌나 거대한 녀석인지, 깊은 바다임에도 촉수의 끝이 수면에 닿을 지경이었다.

       

       “끼기기긱-! 꽤히이익-! 삐, 끄깨애애액!!”

       

       에리얼이 다급하게 외치자 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를 대비하는 것인지, 나름의 날붙이로 무장한다.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말게. 신께서 이 도시를 살피고 계시다니까?”

       

       쿵, 쿵, 쿵-!

       

       “정말이네. 그러니까 다들 표정 풀게. 신께서 곧 저 마수에게 벼락과 불로 벌하실 거니까.”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어, 어어… 이쯤이면 슬슬 신께서 벼락으로 벌을 내리실 때가…”

       

       콰앙-! 콰앙-! 콰앙-!

       

       “……”

       

       벼락과 불 따위 떨어지는 일 없이, 크라켄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이스칼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옆에 있는 어인과 비슷할 정도였다.

       

       ‘시, 신이시여…!’

       

       

       

       ***

       

       

       

       이스칼이 애타게 신을 부르짖던 그 시간…

       

       “씨이바아아알!! 내, 내 누우우우운!!”

       

       어인이랑 할아버지의 키스는 도대체 뭔데!!

       

       내!!! 눈!!!!! 아악!!!!!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에이홉의 60년 순애보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첫?키?스??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에이홉이 60년이나 지켜온 순애보의 첫키스… 강탈… 약탈…!! 면간…!! 할아버지와 마른 멸치 면상의 어인 키스샷…!! 주인공의 동공에 작렬…!! 그리고 안구 산화…!! 크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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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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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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