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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기인의 질문을 듣자마자 충격에 멍해진 머리로도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냥 비급서를 주웠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서학의 제자를 사칭해야 하나?

         

       이 기인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대체 어떻게 해야 기인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정철이 노인을 향해 포권을 해보였다.

         

       “…무림의 말학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본인은 낭야검 정철이라고 합니다.”

         

       “그래. 노부는 무림에서 쓰던 이름일랑 진작에 버린 자이니 굳이 본인을 소개하지 않겠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정철은 단도직입적으로 기인에게 요구했다.

         

       “어르신, 어르신의 뒤에 있는 자는 제가 이끄는 연맹의 문파에게 온갖 술수를 다 부리며 피해를 준 제 대적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장의 세력과도 손을 잡았고, 신분을 위장하여 문파에 잠입해 분란을 일으켰으며, 관무불가침의 불문율마저 깨트리며 제 목적을 달성하려는 무도한 놈입니다. 부디 제가 마무리를 짓게 해 주시지요.”

         

       저저, 비겁한 새끼가 팩트로 공격하네. 정철의 말에 기인은 뒤를 돌아 나를 내려보았다. 죽립 아래로 기인이 무슨 표정을 짓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일단 침묵했다. 기인의 성향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정철의 말에 반박하거나 부인해 봐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터져서 반박해야 할 것 같았지만 우리 둘이 방금 전까지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싸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뭐 대단할 것도 없는 험담이었으니까.

         

       그저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 기인의 반응을 살필 뿐이었다.

         

       “무림을 떠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군.”

         

       나를 힐끔 바라보았기에 좀 더 정철의 이야기를 들어 볼 것 같았던 기인이 예상외로 내 편을 들었다.

         

       “…어르신. 한때 무림에 몸담으셨다면 타인의 은원에 끼어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타인…타인이라…타인이 아니라면?”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바로 저 아이의 사조(師祖)라네. 그러니 타인의 일에 끼어들었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정철의 인상이 찡그려지고 내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무정패검 서학의 스승이라고? 스승이 있는데 왜 상허산에다가 비급이랑 자기 무기를 묻어놓은 것일까.

         

       “후배의 눈과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놈과 어르신은 지금이 첫 만남인데 어찌 사조라 할 수 있겠습니까.”

         

       “허허, 첫 만남이든 두 번째 만남이든 저 아이는 문파의 무공심법을 익혔고 문파의 보법을 펼쳤네. 필시 내 제자의 제자가 분명하니 사조가 아니면 무어라 해야 하는가?”

         

       정철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항의해봐야 이미 기인의 마음이 굳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

         

       와 시바 살았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정철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어르신, 제가 대표로 있는 사도련에는 현경의 고수가 세 명이나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 후배는 선배님의 행적을 존중해드리고 싶으나, 한 무리의 장으로서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은원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허허, 그런가. 확실히 내가 강짜를 부리긴 했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현경 고수가 세 명을 적대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기인의 마음이라도 바뀐 것일까.

         

       “그래, 승패가 결정된 상황이었으니 자네가 좀 억울할 수도 있다고 보네. 그러니 내 한수 재주를 보여주지.”

         

       기인이 손짓하자 사람 머리통만한 바위가 떠올랐다. 아마 격전을 치르며 부서진 바닥 어딘가에서 나온 잔해로 보였다.

         

       그 허공섭물의 행사에 정철은 물론이고 일행의 누군가도 헛숨을 삼켰다.

         

       “으음…”

         

       “허엇.”

         

       기인이 허공섭물로 끌어온 바위는 무려 10장이 넘게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지금 펼쳐지고 있는 허공섭물의 수준으로 이기어검을 부린다면? 모르긴 몰라도 눈으로 쫓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엄청난 속도를 보여줄 것이다.

         

       이기의 묘리를 다루는 실력이 하늘에 닿았음을 증명하는 한 수였다.

         

       “고작해야 과녁 하나를 불러왔을 뿐인데 뭐들 그리 놀라는가?”

         

       나와 정철은 물론이고 일행들까지 멍한 눈으로 기인을 바라보았다.

         

       끌끌 웃어보인 기인은 뒷짐을 졌다.

         

       빠직.

         

       그러자 기인의 얼굴 앞에서 번개가 튀었다.

         

       빠직. 빠지지직!

         

       순식간에 일자 형태의 강기가 만들어졌다. 그 모습에 나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강환(剛環)!

         

       외부로 뻗는 내공, 경을 응집해 강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강환이라 칭한다. 그러나 어째서 허공 중에 만든 강기를 환, 고리라는 고정된 형태로 칭하는가.

         

       무기나 신체의 형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강기와는 달리 허공중에 만들어지는 강기는 그 형상에 제한이 없을 텐데 말이다.

         

       그 해답은 간단했다.

         

       제아무리 현경에 도달한 고수라 할지라도 경을 응집시키는데 가장 최적화된 고리 형태가 아니라면 허공 중에 강기를 구현하는 것이 큰 부담이 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노인은 지금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허공섭물로 띄우며 해냈다!

         

       꽈-릉!

         

       귀를 찢는 뇌성과 함께 발출된 번개 모양 환강은 말 그대로 섬전(閃電)처럼 내달려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돌가루가 흩날리는 사이로 정철의 흔들리는 눈빛이 보였다.

         

       아군인 내가 봐도 기가 질리는 장면인데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정철은 지금 이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농담이 아니라 내가 정철이었으면 저 광경을 보자마자 무릎부터 꿇었다.

         

       “그래, 구경은 잘 하였는가?”

         

       “….후배. 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기인이 손짓하자 입구 쪽에서 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입구가 열리는 소리 같았다.

         

       허공섭물로 문을 연 것일까. 다시 봐도 기가 질리는 수법이었다.

         

       정철은 음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 옆에 서 있는 기인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인사대지천명이라더니….운이 좋았구나 호천안.”

         

       정철은 그 말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마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을 테니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하겠지.

         

       그러나 지금은 살았다.

         

       정철이 사라지고 다시 석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철이 닫은 것 같지는 않고 눈앞에 이 기인이 닫았겠지.

         

       기인은 뒷짐을 지고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우선 할 이야기가 많지만 다친 이들이 많으니 치료부터 하자꾸나.”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 ***

         

       저 기인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일행의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가장 경상인 사람이 의식을 잃었던 당소열이었으니까. 다들 화경의 고수가 내쏜 경에 내상을 입고 구르고 베였다.

         

       그러나 기인이 손을 대고 기공치료를 한번 하는 것만으로도 안색이 불편했던 일행의 얼굴에 곧바로 혈색이 돌아왔다.

         

       각양각색의 내공을 지닌 일행의 모든 내상을 제 문파의 것처럼 다스리는 모습이 기인이 익힌 의술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케 했다.

         

       내상을 다스리는 것과 별개로 내 다리에는 뭔지 모를 고약한 냄새의 연고가 치덕치덕 발렸다. 다리가 개미에 물린 듯이 따끔따끔했지만 이미 신기에 달한 기공치료를 맛본 상태였기에 찍소리도 못하고 참았다.

         

       “쯔쯔, 다리를 이리 험하게 써서야 한동안은 거동이 불편하겠군.”

         

       한바탕 치료가 끝나고 나서야 간신히 대화할 분위기가 잡혔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허허허허, 그리 고마워 할 것들 없다.”

         

       흑묘의 흑영기공 같은 특수한 기공을 운용중인지 백발의 수염 말고는 전혀 얼굴 생김새가 보이지 않았지만 일행의 인사에 흐뭇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이제 자네가 어찌 경운무심공을 익혔는지 말해 줄 차례로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상허산의 바위 밑에서 비급과 참암검을 발견했다는 말에 기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런가…그렇다면 이 기이한 진법을 펼친 것도 자네들인가?”

         

       “그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흠. 자네들이 이곳에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수상한 짓을 하기 전부터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네. 갑자기 집이 동굴 안에 나타나 있질 않나 수상한 제단에서 진법의 기운이 흐르지를 않나…진작에 주변을 둘러 보고 온 상태였다네.”

       

       우리들의 이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건가.

         

       “난해하긴 했으나 아무튼 진법 자체는 이해했네. 내가 불려온 자라는 것도 말이야.”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기인이 지닌 능력의 끝은 어디인가? 현실성이 떨어질 정도로 고강한 무공에 기공을 이용한 의술 그리고 진법에 대한 조예까지 있다고? 우리들의 이목을 속이고 숨은 것도 현경 고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 좁은 곳에서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것을 감안해보면 은신기술도 지닌 것 같은데…

         

       “자네, 나한테 빚을 졌다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겠지?”

         

       기인이 노골적으로 빚을 언급하자 일행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떠올랐다. 역시 이유 없는 친절은 없지. 이 기인이 무엇을 원하든 들어줘야 할 처지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진법의 요체를 파악한 기인을 상대로 제단을 부수거나 입구를 부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단이나 입구를 부수더라도 진법이 스러지는 그 짧은 틈에도 마음만 먹으면 우리 전원을 다 해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사실 자네를 보고 나는 매우 불편했네.”

         

       “….예?”

         

       “언짢았다고.”

         

       “…예?? 죄, 죄송합니다.”

         

       “뭔지는 알고 사과하느냐! 이놈아!”

         

       딱!

         

       눈 앞에서 별이 튀었다.

         

       이마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

         

       “끄어어억!”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눈물이 찔끔 날 둔탁하고도 날카로운 딱밤의 맛에 온몸이 뒤틀렸다.

         

       “하이고, 사내놈이 딱밤 한 대 맞았다고 우냐, 울어?”

         

       “아, 아닙니다.”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기인의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운무심공은 고작해야 그렇게 쓰는 무공이 아니야! 아니 애초에 자네는 그냥 경운무심공에 대한 이해도를 떠나서 그냥 약해! 경지만 절정이면 뭘 하나? 허수아비도 자네보다는 속이 꽉 차 있을 걸세!”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경지가 올라갈 때마다 정말 최소한의 무공을 익히며 경지만 올리고 있었으니 사실 내실이랄 게 아예 없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평균 이상의 전투력을 온존하면서 경지를 올리고 있다 자부했지만 진짜 고수들이 보기에는 이게 뭐하는 놈인가 싶겠지.

         

       “지 몸뚱이 튼튼한거 하나 믿고 내부에서 뇌성을 터트릴 때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네! 자네의 그 무식함에 말이야!”

         

       그 뒤로 기인에게 잔뜩 혼났다. 기초가 왜 그따위냐, 검법은 어따 팔아먹고 그런 근본 없는 것을 쓰냐, 무인이란 놈이 놈팡이도 아니고 여자를 왜 이리 많이 끌고 다니냐, 복장은 또 웬 도둑놈들이나 입고 다닐 위장복이냐, 등등…

         

       “아무리 내가 살던 곳이 아니더라도 경운무심공의 계승자가 얻어터지는 꼴을 볼 수는 없다.”

         

       “…그 말씀은?”

         

       “내가 하산하라고 할 때까지는 절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음.

         

       이런 기인에게 수련을 받을 수 있다니 말 그대로 기연이 아닐 수 없었지만…어쩐지 서학의 행보가 마음에 걸렸다. 멀쩡한 스승을 두고 왜 검이랑 비급을 산에다가 파묻어? 거기다가 스승이랑 사문이 있는데 왜 감추고 있었을까.

         

       함부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어쩐지 평생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저, 어르신 그런데…”

         

       빡!

         

       이마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진짜 아프다!

         

       다리만 멀쩡했다면 바닥을 회전초마냥 데굴데굴 구르며 아픔을 표현하고 싶을 정도의 강렬한 고통!

         

       “이런 은혜도 모르는 자식 같으니라고. 사조가 아니라도 삼도천 앞에서 네놈을 건져 주었거늘! 내가 널 잡아먹겠다 했더냐?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도 토를 달아?”

         

       이마를 감싸쥐고 있는데 또 딱밤을 장전하고 있는 기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답?”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나는 졸지에 이름도 모를 기인의 제자가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야 제자 하라고 어? 안해? 팍씨!

    *

    [가엾고딱한자로다]님이 [50코인]을 후원해 주셨네요.

    훌륭하다니 아주 뿌듯하군요. 깔깔. 오늘은 납짝호빵을 마구마구 해치워야겠습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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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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