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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언젠가, 합스베르크 황제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암살에 위협당할수록, 군왕은 굳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황제의 제왕학이었다.

     암살이라는 건 언제나 생길 수밖에 없고, 군왕은 이 암살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의연하게.

     하지만 뒤로는 철저하게.

     암살자들의 행동원리를 분석하고, 암살자들보다 더 뛰어난 암살자를 그림자로서 동원하여 그들을 억제한다.

     테르시안 제국은 그렇게 성장했다.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약육강식의 제국이었고, 그게 합스베르크의 방식이었다.

     이를 부정한다?

     아니다.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내게 이득이 되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그걸 이용하려고 하기에, 설령 내가 죽여야 하는 황제의 방식이라도 기꺼이 필요하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여기에 오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군.”

     비행선을 정박시킨다.

     그냥 넓은 평원에 정박하는 게 아니라, 고층 건물의 위에 중심점을 잡고 흔들리지 않게 배를 옥상 위에 내려놓는다.

     “로버트 경. 그거 알고 있나? 오로솔 아카데미, 지브롤터 장학재단 건물의 옥상은 처음부터 비행선의 착륙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50m 이상가는 전열함은 예정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로버트 경은 황금의 비행선이 착지한 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원래는 이것보다는 훨씬 작은 소형 비행선을 상정했던 거 아닙니까?”

     “역시 자네야.”

     본래는 정박할 수 없는 장소.

     건물 옥상 위에 얹어놓는 게 한계인 장소.

      

     하지만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정확하게 원 안에 ‘H’모양의 기호가 있고, 황금의 배는 무게중심을 정확하게 그 H모양에 맞추는 걸로 반듯한 건물 옥상에 정박했다.

     “황금의 노예들은….”

     “또 죽고 싶어 안달난 제로스 말고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일단 내버려두도록 하지.”

     요 며칠 사이.

     제로스 바르셀을 제외하면 황금의 노예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드물어졌다.

     연도가 바뀔 때가 되어서 그런 건지, 황금의 노예들이 뜸해지고 있다.

     “병력을 모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 줄어든 빈도를 마지막 한 순간에 폭발시킬 수도 있는 법.

     “약혼식에 하객이 참 많겠어. 축하하러 오는 이들이 말이야.”

     “병력 배치는 어떻게 할까요?”

     “나와 자네가 어떻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나는 이미 오로솔 아카데미 장학재단 건물, 주변에 늘어선 학생들을 가리켰다.

     “이미 호위병력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학생들 중에는 이제 몇 달 뒤에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이들도 눈에 보였다.

     아카데미 1학년 때와 비교하면 그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졸업 후에는 기사단에 즉시 들어갈 수 있을만큼 성장한 이들도 가득했다.

     “학생용 제복을 입은 기사도 있고, 학생으로 입학한 그림자도 많지. 교직원으로 위장한 이들도 가득하고.”

     “예. 이번 약혼식, 모르가니아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렘버리와는 다르다.

     렘버리 때는 역량도 되지 않는 자가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도 망쳐버린 절망적인 행사였다면, 이번 행사는 대륙의 모든 예산이 한 곳에 모여 펼쳐지는 역대급 행사다.

     “좋으시겠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약혼식을 하시고.”

     “약혼식이라고 하고 결혼식이라고 하는 거지.”

     “어라, 결혼식 따로 안 하실 겁니까?”

     “설마.”

     나는 오랜만에 장학재단 이사장실의 의자에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 한 것보다 더 화려하게 결혼식을 할 거야.”

     “이것보다 더 화려하게 결혼식을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건 아스타시아와 나만의 비밀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련님. 저거, 계속 가만히 놔둘 겁니까?”

     “글쎄.”

     로버트 경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티테이블에는 솜누스 찻잎이 유리병에 들어있었다.

     언제든지 필요한 양을 꺼내 도자기 찻주전자에 넣으면 따뜻한 솜누스 차를 우려낼 수 있는 말린 솜누스 꽃잎.

     문제가 있다면, 평소에 내가 마시던 것과는 다른 꽃잎이라는 것.

     “오로솔 아카데미를 장기간 비워뒀더니, 어느새 이런 일이 생기는군.”

     “어떻게 할까요, 이거. 마법으로 이걸 준비한 사람을 찾아서 없애버릴까요?”

     “글쎄. 오랜만에 고전적인 방식의 암살시도가 들어와서 제법 흥미롭기는 한데, 그냥 놔둬. 어차피 저 정도의 독으로는 나를 죽이지 못해.”

     말린 솜누스 꽃잎에 독이 묻어있다.

     정확히는 솜누스 꽃잎이 아닌, 그 꽃잎이 담긴 유리병 뚜껑의 안쪽.

     “아무래도 투구꽃의 독이랑 이것저것 섞은 것 같은데.”

     내가 직접 솜누스 차를 내려마신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암살을 하려고 한 것이리라.

     “누굴까요?”

     “맞춰보겠나?”

     “…도련님.”

     “장난일세. 하지만 알려주기라도 했다가는 자네가 바로 당사자를 찾아가서 죽이려고 들텐데, 함부로 그럴 수 있겠나.”

     나는 내 자신의 목을 가볍게 그었다.

     “웃게. 적에게 본심을 드러낼 때는 적이 확실하게 죽고 난 뒤일 뿐이야.”

     “정치는 복잡하군요.”

     “나쁜 의미에서의 정치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상대로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는 슬픔.

     “아니면 한 번 날아오는 이들의 표정을 살펴보겠나? 겉으로는 그레이 지브롤터의 약혼을 축하한다면서, 뒤로는 이렇게 몰래 솜누스 꽃으로 독살하려고 한 사람이 누군지. 심지어 제국에서 편의로 보내준 비행선까지 타고 온 이들 중에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자가 누군지.”

     “무섭군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이렇게 죽이려고 한다니.”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고 있나? 나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야.”

     “이유도 아십니까?”

     “알지.”

     “전부 알려주시렵니까?”

     “음, 간단해.”

     나는 솜누스 꽃이 담긴 유리병을 연다음, 손수건으로 바로 독을 닦아낸 뒤 향초가 담긴 병에 밀어넣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랑 약혼하니까, 그게 질투나서 그래.”

     “만 점 드립니다.”

     “농담 아닌데.”

     “저도 농담 아닙니다만.”

     “…….”

     “……진짜로요?”

     “어.”

     약혼.

     아스타시아가 나의 여자가 된다.

     “질투라는 게 꼭 신분, 권력, 재산만 해당되는 게 아니거든. 오히려 더 원초적인 의미에서 질투하게 되는 거야.”

     대륙에는 여전히, 내가 죽으면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이 많다.

     “심지어, 그 능력도 부족하면서 말이지.”

     * * *

     [그 시각, 세이레네 해협 상공, 제국 비행선.]

     “폐하. 보고드립니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향한 독살에 관한 자료입니다.”

     “거기 두도록.”

     비행선의 함장실에서 상반신을 탈의한 채, 커다란 대검을 앞으로 휘두르는 황제는 그림자-프란츠의 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검만 휘둘렀다.

     “그레이 지브롤터의 독살인데, 관심 없으십니까?”

     “그레이 지브롤터가 독 따위에 당했을 리가 없지.”

     “황금으로 빚은 독에 중독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네가 그렇게 죽여버리고 싶은 게 아니고?”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흐.”

     프란츠의 솔직한 답변에 황제가 대검을 내려놓았다.

     “그레이를 죽이려고 하는 자는 많아.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실시간으로 그 부류가 늘어나고 있지. 한 번 말해보겠나?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누가 있는지.”

     “우선, 합스베르크 황제의 사생아들이 있겠군요. 저를 필두로 하여, 그레이 지브롤터가 없으면 차악으로라도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을 기회가 한 번이라도 있는 폐하의 핏줄들이.”

     프란츠가 대놓고 빈정거리듯이 말했으나,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저 씩 웃기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나머지 부류는 전부 왕국 아니겠습니까? 지브롤터가 제국의 황녀와 결혼한다는 걸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 지브롤터로 인해 권력을 잃은 자들. 구 바르셀 후작령의 잔당들.”

     “이번에는 누구지?”

     “…조금은 의외라서, 보고를 드리는 바.”

     프란츠는 볼을 긁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냥, 일개 직원이었을 뿐입니다.”

     “일개 직원이라.”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처녀인 아스타시아를 더럽히려고 하는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여버리겠다’라는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으하하하!!”

     황제가 땀을 닦아내던 도중, 배를 잡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런 미친 놈들이 있는 게 노스트럼이지. 심지어 그걸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

     “프란츠. 이번 기회에 한 번 잘 봐두거라.”

     황제는 비행선의 창밖을 가리켰다.

     “노스트럼의 인간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불쾌한 자들인지.”

     “노스트럼 안에 지브롤터도 있지 않습니까?”

     “지브롤터는 스스로 협곡을 열고 파헤치는 걸로 노스트럼으로부터 벗어났지. 마법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황금룡의 저주에서 스스로 벗어난 이들이고, 사상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노스트럼의 전통과 관념의 족쇄를 부수고 새로운 세상으로 손을 뻗은 자들이다.”

     창밖, 세이레네 백작령의 성이 보인다.

     “그렇게 해서 실패하면 조롱하지만, 너무나도 화려하게 성공한 나머지 질투하게 된 거지.”

     그리고 그곳에는 마치 황제의 비행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제국의 비행선에 오르는 세이레네 백작이 황제의 비행선을 보며 두 손을 크게 들며 만세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질투가 ‘현재’에 있다고 하면 나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질투가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이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것.”

     황제가 땀을 닦아낸 수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가짜 세상의 모습에 질겁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노력과 시간을 허사로 만들어버리는 저 멍청이 말이야. 이 세상을, 이 시간을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세이레네 백작은 비공식적으로나마,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프란츠는 황제의 사무용 책상 위에 있는 양피지를 슬쩍 눈으로 가리켰다.

     양피지에는 보통의 잉크가 아닌 붉은 잉크-피로 쓰여진 황제를 향한 충성 맹세가 적혀있었다.

     제국어로.

     “세이레네 백작, 죽일까요?”

     “지금은 죽이지 않는다.”

     황제는 양피지를 향해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이레네 백작가는 아직 유용해. 거짓된 황금을 마구 먹어치워주는 것도 좋고, 그 거짓된 세계의 정보를 우리에게 넘겨주는 것도 가장 가치있는 일이지.”

     “…….”

     “카르멘 모르가니아가 크림슨 지브롤터의 아내가 되고, 지브롤터가 두 명의 여인을 아내로 품은 세계선이라. 후후, 재미있군. 거짓된 황금의 세계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카르멘 왕비였으나, 그녀는 그 거짓에 현혹되지 않고 현재를 바라보고 있지.”

     구구구.

     비행선이 하늘로 오른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싫지 않아. 카르멘 왕비가 그레이 지브롤터의 영향을 받았든, 아니면 그 본인의 의지로 일어났든. 지금과 같이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어.”

     세이레네 백작가의 사람들을 태운 비행선의 근처로 검은 비룡들이 상승하고, 그들이 차려입은 제복과 갑옷에는 흑장미가 펼쳐져있었다.

     “품으실 겁니까?”

     “내가? 뭐하러. 낳는 딸이 나리아아닌가. 천재가 항상 천재를 낳는 법은 아니지.”

     “…….”

     “그레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하면, 시간이라도 되돌려 처녀일 때라면 품는 것도 생각은 해볼 수 있지. 그레이를 낳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

     프란츠는 잠시 시선을 돌리며 벽을 바라봤으나, 황제는 키득거리기만 하며 피로 쓰여진 충성맹세를 옆으로 치웠다.

     “하여튼, 이번 약혼식에서 결론이 나올 거야. 이 노스트럼을….”

     툭.

     “그대로 둘지, 아니면 전부 없애버릴지.”

     충성맹세가 쓰여진 양피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봐서 지금까지는 참아왔는데, 그런 그레이 지브롤터를 계속 죽이려고 든다면 노스트럼을 전부 지워버리는 수밖에.”

     황제는 생각만해도 짜릿하다는듯 씩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떤 누구도, 그레이 지브롤터를 암살하지 못하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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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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