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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1

       

       

       

       갑자기 난입해온 인물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양복자였다. 바닥에 착지한 양복자에게 나는 물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여기 바로 근처가 우리 집이잖아! 집중하고 있지 않아도, 긴따마가 가까워지면 알 수 있다고!” 

       

       과연. 단순히 애완용으로 기르거나 길들인 것을 넘어서, 일종의 사역마(使役魔)에 가까운 존재라는 건가.  그렇게 의기양양한 얼굴로 가슴을 편 양복자의 옆에서,  

       

       『시, 시라바야시 군, 안녕…… 으에, 어지러워……』

       

       하고 말해오는 베이지색 양갈래의 소녀, 아이까와의 모습도 보였다. 양복자와 마찬가지로 평상복 차림인 것을 보면 양복자의 집에 함께 있다가 같이 날아왔을텐데, 비행이 익숙치 않았는지 금방이라도 토할 듯한 기색이었다. 

       

       양복자는 청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뎃 군! 그보다 저건 나니나니? 마수화된 거야?” 

       “마수화는 아니야! 나중에 설명할테니, 우선 위로 들어올리든가 해 봐!”

       

       나는 양복자에게, 염동력을 이용해 청년을 공중으로 높이 들어올리라고 지시했다. 일단 공중으로 들어올리면 헛짓거리는 못 하리라. 

       

       “오·케—! 조금 멀긴 하지만케도!”

       

       양복자가 청년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

       

       청년은 멀찍이 서서 자세를 낮춘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새 인물이 등장하자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거리를 넓힌 청년이었지만, 양복자의 사정거리에 간당간당하게 닿는 거리였다. 

       

       【……읏!】

       

       자신을 끌어당기는 듯한 기묘한 힘을 느꼈는지, 청년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바로 등을 돌리며 도망쳤다. 

       

       “아앗! 시맛따! 놓쳤어!” 

       “뭐? 잡아!”

       “모오! 움직이는 건 염동력으로 잡기 힘들닷떼! 민나 가만히 있어 봐!”

       

       양복자는 우리들을 살짝 위로 띄우고는, 청년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청년의 속도가 빠르다고는 해도 양복자의 비행보다 빠를 수는 없었는지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저기 있어!” 

       

       도망치던 청년도 도망이 소용없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어딘가에 멈춰섰고, 양복자는 다시 한 번 청년을 향해 두 팔을 뻗쳤다.

       

       “좋아! 이제 거리가 닿아! 모오 데끼루!”

       

       하지만 청년은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청년이 향한 곳은, 주택단지 공사장 부지 한켠에 중장비들이 주차되어 있던 곳. 청년은 중장비 하나에 달라붙어 손으로 꽉 붙잡았다.

       

       ‘중장비……?’ 

       

       아직 집들은 지어지지 않았지만 격자형으로 도로 터는 닦여 있었고, 길 닦는 중장비 역시 현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로드롤러?!’

       

       21세기에서 보던 것보다는 좀 작고 조금 다르지만, 딱 봐도 로드롤러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중장비. 청년은 그 로드롤러를 꽉 붙들고, 양복자의 염동력에 저항했다.  

       

       “으읏……! 떨어지지 않아! 무슨 괴력이!” 

       “저대로 들어올릴 수는 없어?”

       “무리무리! 젯따이 무리! 사람 몇 명 정도면 모를까, 저런걸 들어올리지는 못 해!”

       

       그럴만도 하다. 딱 봐도 몇 톤은 나가보일 법한 중장비였으니까. 아무리 양복자가 사람 서너 명 들어올린 채로 날아다닐 정도로 성장했어도, 당장 몇 톤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인 것이 당연했다. 

       

       【스으으으……】

       

       양복자의 염동력에 저항하던 청년은, 길게 호흡을 들이쉬며 더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우왓! 로-라를! 로드로-라를!”

       

       로드롤러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청년의 모습에는, 호들갑스러운 양복자나 다른 녀석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인가?’

       

       청년은 로드롤러를 들어올린 것으로 멈추지 않고, 

       

       【부야오 꿔 라이!】

       

       하고 외치며,

       

       —구우우우웅!

       

       곧장 이 쪽을 향해 집어던졌다! 몇 톤이나 나가는 육중한 쇳덩어리가 마치 비행기 소리같은 파공음을 내며 우리를 향해 날아들어왔다.

       

       여기서 단순히 뒤나 옆으로 몇 걸음 피해봤자, 저 막대한 질량이 바닥에 쳐박힐 때의 충격에서 빗나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송병오나 이유하처럼 몸이 느린 애들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할 터.

       

       “젠장, 복자! 양복자!”

       “에? 에? 에? 에? 아, 알았어!”

       

       굳어있던 양복자가 우리를 급한대로 몇 미터 옆으로 옮겼다. 그 직후,

       

       —콰아아아앙! 

       

       방금까지 우리가 있던 자리에 로드롤러가 직격했다. 로드롤러는 굉음을 내며 박살이 났고, 흙바닥에 깊은 상흔을 남기며 한참을 더 굴러갔다.

       

       옆으로 피한다고 피했지만 불과 몇 미터 옆. 디디고 선 땅이 흔들리고 흙과 파편이 비처럼 후두둑 쏟아졌다. 

       

       흙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나는 저 멀리 흐릿하게 서 있는 청년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건가?’

       

       저런 놈을 두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애초에 우리를 죽이기 위해 여기로 유인한 놈이니만큼, 우리가 도망쳐도 놈은 계속 쫓아올 것이다. 

       

       이곳에서 처리해야만 했다. 나는 이유하에게 빈 칼자루를 내밀며 조용히 말했다.

       

       “이유하. 얼음칼 다시.”

       “여기 있소.”

       

       나는 이유하가 새로 만들어 준 얼음칼을 쥐고,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형광빛 실루엣을 노려보았다.

       

       놈은 우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멈춰서 있었. 우리가 놈을 경계하는 것처럼, 녀석 역시 양복자가 추가된 우리를 어떻게 상대해야할지 잠시 멈춰서서 고민하는 것이리라.  

       

       ‘저 괴물같은 놈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이유하의 빙결로도 묶어둘 수 없고, 송병오의 마력탄마저도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

       

       짐승에 가까운 감각으로 양복자의 염동력도 피해가고, 염동력에 붇잡히더라도 상식을 초월한 괴력으로 버텨낸다.  

       

       무기를 들고 근접전으로 붙으려고 해도, 허와 실을 넘나드는 교묘한 무술 때문에 오히려 내 쪽이 큰일 날 뻔 했다. 애초에 이런 얼음칼로는 놈의 공격을 제대로 막을 수 없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놈이 아예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저 녀석도 결국은 인간이야.’

       

       내가 얼음칼로 쳐낸 팔뚝과 송병오의 마력탄을 스쳐맞은 옆구리에는, 피는 흐르고 있지 않지만 깊게 패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로드롤러를 집어던진 것도 무리해서 힘을 쓴 것인지, 지금의 놈은 조금 비척거리는 듯 보였다. 불타오르는 듯한 빛도 조금은 사그라들어 있었다. 

       

       ‘회복능력까진 없는 모양이군.’ 

       

       놈도 한계가 있다. 조금씩 대미지를 쌓아나가면 아무리 놈이라도 버틸 수 없으리라. 반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좀 다쳐도 회복시켜주고 기력을 북돋아줄 수 있는 힐러의 존재가 있었다.

       

       『아이까와.』 

       

       나는 우리 팀의 치유계 능력자, 아이까와를 불렀다. 

       

       『나랑, 다른 모두에게 생력 주입 좀 부탁해.』

       『으, 응!』

       

       아이까와가 내 등에 손을 얹자 곧 전신에 활기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생각했다. 

       

       ‘좋아.’

       

       아까부터 중국인들과 싸우고, 한참 달리고, 저 청년과 맞붙어 싸우느라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이 금방 해소되었다. 

       

       모두 컨디션이 회복된 것을 확인한 나는, 이유하가 새로 만들어준 얼음칼을 들고 놈을 향해 한 걸음 내딛고는 뒤에 선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할까 싶겠지만, 길게 보면 우리가 유리해. 물론 우리도 위험하겠지만…… 조금씩 상처를 입히면 놈도 버틸 수 없어. 그러니, 일단 아까처럼 내가 접근해서 놈에게 조금씩이라도 대미지를 입힐게.”

       

       한번 다치고 지치면 돌이킬 수 없는 놈과는 달리, 우리에겐 아이까와라고 하는 보조배터리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허나, 그 칼로 되겠소? 차라리 내 멀리서, 저 자에게 빙결을 쏟아붓는 것이—”

       

       이유하의 지적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해 봤잖아. 놈의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니 놈을 향한 직접적인 빙결은 소용이 없어. 그러니 너는 옆에서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서서, 내가 쥐고 있는 얼음칼에 빙결을 계속 보태 줘. 금방 녹지 않게끔.”

       “이해했소. 하지만, 조심하시구려.”

       “좋아. 그리고 홍옥례.”  

       

       나는 홍옥례를 불렀다.

       

       “말만 해, 백 동지!” 

       “위험할 수도 있지만…… 너는 내 바로 곁에서, 놈의 공격을 피하면서 놈에게 조금씩 전격을 흘려 줘. 물리적 타격은 몰라도 전기는 통할 거야.” 

       “위험따위는 이미 각오했는걸! 알겠어!” 

       

       홍옥례의 맨손 격투로는 놈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주지도 놈의 공격을 막지도 못하지만, 몸이 날쌔고 놈의 무술의 허실(虛實)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으니, 공격을 피하는 것은 나보다 한 수 위일 것이다. 즉, 놈에게 쉽사리 맞지는 않겠지. 

       

       “뎃 군! 아따시, 아따시는 저 중국인을 다시 들어올려볼까?  지금은 무거운거에 매달려있지 않으니까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양복자에게 말했다. 

       

       “아니야. 놈은 아무래도 감각이 예민한건지 눈치가 빠르니까, 염동력이 느껴진다 싶으면 아까처럼 도망칠 거야. 그러니까 양복자 너는 내 뒤로 멀리 떨어져서, 아까처럼 내가 치명타를 맞을 것 같거나 맞으면 나를 옮겨 줘.” 

       “오·케—!”

       

       양복자의 시원스러운 대답을 들은 나는, 마지막으로 송병오에게 말했다. 

       

       “너는 이유하랑 양복자 곁에 서서, 놈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견제사격을 해 줘. 내가 놈과 겨루는 동안에도 놈을 맞출 수 있으면 맞춰 주고.”

       “맡겨만 주게!”

       

       내가 지시하는 족족 결의에 찬 동료들의 대답. 하지만, 이렇게 기세좋게 대답하는 녀석들이었음에도 역시 어딘가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무섭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적이 그냥 각성능력자도 아니고, 마수도 아니고, 마수의 힘을 가진 인간도 아니고,

       

       그 힘의 근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강적 앞에서 불안함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까와라는 보험도 있고 양복자라는 안전장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죽거나 다치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적이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틈을 타, 나는 동료들에게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입을 열었다.

       

       “전에, 나에게 미래인의 기억이 있다고 했지.”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쉬었기 때문에 오늘은 연참!

    그리고 TMI……? 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드롤러가 나온 것이 좀 뜬금없어보일 수 있어서 자료를 조금 덧붙입니당.

    … 도로포장을 작년도의 계속사업으로써 … 금년도 예산은 이십만원이며 다음개소 연장 7만1천4백9십9평방미돌에 “로라”의 발길이 다흘것으로 …
    — 1936.06.12. 동아일보 기사 《금년중에 “로라”행진 칠만일천여평방미》 중에서.

    … 경기도 토목과의 “로라”에 충돌하야 자동차는 전방기관부가 깨져서 이삼백 원의 손해를, 로라는 그 후부에 다소의 파손을 당하야 이삼십원의 손해를 각각 …
    — 1937.10.24. 동아일보 기사 《화물자동차와 길닥는 차 충돌》

    … 금년도에 완성될 포장도로 면적은 … 그러나 아직도 미장의 로라가 궁글지 않은 개소가 상당히 만허 경성부내의 도로 …
    — 1938.11.13. 동아일보 기사 《추물! 경성의 도로》

    금년도에 특별예산을 게상하야 아직 “애스팔트”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십육개 지내에 포장의 “로라”를 궁글리기로 되엇다.
    — 1940.04.10. 동아일보 기사 《경성의 북촌도 포장》

    … 직접전투에는 아모 상관이 업는 가지각색의 작업기재가 병기로서 필요하게 된다. 적은것은 보경개개인의 배낭 속에 든 십차초로부터 로드·롤라에 이르기까지 지형극복상의 병기로 …
    — 1938.02.06. 조선일보 기사 《현대병기에 잇서서 지형의 관계 下》 중에서.

    … 기관부분품 급 동부속품 (중략) 보라브르스침 엔진 ▲574의2, 로도로라 ▲574의 3, 콩크리드 미끼사 ▲575, 스팀타빈57 …
    — 1939.09.30. 동아일보 경제면 기사 《관만지 수출조정 – 일단의 협력기대 신산국장 담》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로라”, “로도로라”가 바로 포장도로 평평하게 만들 때 쓰는 로드롤러예요. 당시에도 당연하지만 포장도로는 있었고, 포장도로를 깔 때에는 로드롤러가 쓰였답니다.

    다만 당시의 로드롤러는 어떻게 생겼을지,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 ‘일제강점기와 근대의 도로’라고 검색하면 블로그 글이 하나 뜨는데, 거기 첨부된 사진에 대충 모습이 나와있네요. 혹은 구글에 ‘1930s road roller’를 이미지 검색해서 나온 사진들을 참고하셔도 될 듯 합니다.

    제가 보니 현대에도 쓰이는 소형 로드롤러와 별 차이는 없어보이네요. 애초에 단순한 용도의 중장비라서 그런지……

    다음화 바로 이어집니당!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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