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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그건 정말로 일어났던 일입니까?”

        

       “……그렇습니다.”

        

       내 대답에 레나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생겼다. 나의 대답이 불쾌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상한 기분입니다.”

        

       “아마 그렇겠죠.”

        

       레나는 굳이 나에게 상황을 더 설명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고, 자기도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현상을 똑같이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시간을 돌리던 기억까지 전부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니까.

        

       없던 기억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 게다가 그 환상 속의 세상에서도 나는 이전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의도적으로 상황을 꼬이게 했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잊어버렸다가— 아니, 아예 머릿속에서 그 기억이 말끔하게 사라졌다가 갑자기 그 기억이 다시 생겨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

        

       “…….”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 불편한 것은 나뿐일 거다. 레나는 나에게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레나는 나름대로 솔직하게 행동하면서도 이미지가 망가진 적이 없었다. 표정이 바뀌더라도 상황에 맞지 않는다거나, 주변 사람들이 경악하는 일도 없었고.

        

       내가 캐릭터를 너무 과하게 잡았나?

        

       “죄송합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레나가 다짜고짜 사과했다.

        

       대체 어쩌다가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는지 몰라서 레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레나는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시간을 돌려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라면, 모른 척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

        

       아니, 뭐, 그게 맞긴 하지.

        

       엄청나게 친한 친구라면 흑역사를 끄집어내서 놀릴 수도 있다. 신체장애같이 정말 건드리면 안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술자리에서 실수한 일이나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쪽팔린 일들은 좋은 안줏거리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내가 저지른 실수들은 대부분 좋은 안줏거리 수준이었다.

        

       “그렇게 처절한 전투를 하면서도 저희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셀 수 없이 시간을 돌리셨으니까요.”

        

       “…….”

        

       아닌가? 안줏거리가 아닌가?

        

       내 관점에서야 시간을 돌리면 위험했던 상황 자체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수 있고, 남들의 시선은 둘째 치고 그렇게 하는 쪽이 앞으로 싸우기에도 바람직하니 그렇게 했을 뿐인데.

        

       물론 시선을 신경 쓰기도 했다. 나는 완전무결한 캐릭터성을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투 방식도 말끔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황녀님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

        

       그런 말을 듣고도 내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아니, 못한 이유는, 레나의 그 말을 듣고 코끝이 찡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대단히 감정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동적인 말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는 또 아니다. 이렇게 보여도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의 감성은 있는 사람이다.

        

       사실 얼마 전에 펑펑 울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가족애를 건드렸으니 반칙이다. 그러므로 내가 울음을 터뜨린 수에 넣지는 않았다. 본능을 어떻게 거스르겠는가.

        

       레나의 말을 듣고 내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유가 그때 미리 다 울어놓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 덕분에 모든 일이 제대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쟁을 막았던 사람도 황녀님이겠지요.”

        

       얘는 대체 무슨 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물론 전쟁을 막은 사람은 나였긴 했다. 누구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자랑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

        

       “…….”

        

       그리고 그렇게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 나간 뒤, 우리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나는 감사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하는데도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내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듣는 말 중에서 가볍게 고맙다고 말하거나 듣기는 하지만, 그건 진심이 담겨있다기보다는 그냥 아침에 만나면 나누는 ‘안녕’ 같은 인사말과 다를 것이 없었다.

        

       친구가 뭔가 작은 실수를 했을 때 급하게 지적하거나, 늦게 오는 약속 상대 때문에 잠깐 자리를 맡아둔다거나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진심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깊은 감사가 담긴 인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레나가 하는 인사는 그 종류가 달랐다. 철저하게 진심 어린, 솔직한 감사.

        

       레나가 할법한 감사 인사였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나는 조금 심술이 났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도 결국 캐릭터성이 무너져버린 나와는 다르게 레나는 지금까지 꾸준히 자기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나와 겹칠만한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천성이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잘생기거나 공부 잘하는 사람을 질투하는 것도 천성을 질투하는 것이다. 내가 이만한 노력을 하고도 실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 나가는 사람을 보면 심술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냥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그렇다면, 제게도 한 가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레나가 입을 다물고 계속 송구한 표정으로 앉아있어서, 나는 심술을 가득 담아 입을 열었다. 물론 의도에 심술이 담겨있다는 거지, 그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황녀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알려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의 말을 듣고 레나는 더욱 송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내가 혹시 자치국에 대해서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을까?

        

       확실히, 레나 관점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레나가 보기에 나는 무려 세상을 조종해서 있었던 전쟁마저 없게 한 존재다. 거기에 그리폰을 다루고, 수많은 사람과 싸우면서 꺾이지 않고…… 중간과정이야 어쨌건 결과만 두고 보면 이게 인간인가 싶을 거다.

        

       그리고 그런 탈인간급 존재가 어떤 국가의 정보를 물어본다면, 그 정보를 좋은 곳에 쓰고자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똑 부러지긴 하지만 어딘가 좀 지나치게 순수한 면이 있는 레나였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레나의 이런 면은 레나에게 나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했을 레나의 아버지나 자치국의 수뇌부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레나는 누군가에게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당연히 레나가 나를 좋게 보고 있는 것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 레나에게, 자기들의 정보를 확실하게 넘길 생각을 했을까?

        

       뭐, 내가 고민하는 것들은 사실 전부 틀려먹은 거고, 그냥 레나가 십 대 청소년이라 그럴 뿐일지도 모르지만. 소피아의 사례를 생각하면 정말로 별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자 한 것은 자치국의 정보가 아니다.

        

       “저는 당신에게 숨겨진 면을 다 보여드렸습니다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가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킨 거니까. 그런데 지금 내 앞의 레나는 내가 ‘그것도 염두하고 거기까지 했다’라고 한다면 믿어줄 것 같았다.

        

       너무 순수하면 나중에 손해를 본다. 얼마나 애지중지 자란 딸인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현실의 쓴맛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라고, 나는 아직 심술 끼가 빠지지 않은 상태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나 당신도 저에게 비밀을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비밀, 말씀이십니까?”

        

       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저에게 숨기는 것이 없으십니까?”

        

       “…….”

        

       나의 말에 레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숨기는 것. 당연히 있다.

        

       그림으로 그린 쿨뷰티 캐릭터다. 게다가 레나는 마치 누가 그렇게 설계하기라도 한 것처럼 훌륭한 ‘갭 요소’까지 있었다.

        

       내가 고민하고만 있다가 결국 써먹지 못한 갭 요소였지만, 레나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그 갭 요소를 구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도 그 갭 요소를 모른다. 초기에 레나를 감시하던 나만 빼면.

        

       ……아, 그런데 이거 미아한테 들켰던가? 조심해야 할 흑역사가 하나 늘었다. 나중에 미아와 거래하건 설득하건 해서 레나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숨기는 것이라면, 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레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피차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어째 말하는데 성인 만화에나 나올 음침한 아저씨가 할 법한 대사인 것 같았다.

        

       그걸 깨닫고 내 마음속의 심술이 움찔 몸을 떨었지만, 이미 그때는 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보여드릴 거라면 있습니다.”

        

       단단히 마음먹은 레나를 보고 심술 아래 깔렸던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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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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