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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저, 아이 충치 때문에 왔는데요.”

    “네, 이쪽에 이름 써주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그렇게 예르나가 진료를 접수하고 있을 무렵, 치과에 도착한 파이리스는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아이들처럼 치과의 치료가 아플 것을 예측하여 느끼는 공포는 아니었다.

    파이리스는 아픔이라는 감각에서 공포를 느끼는 존재는 아니니까.

     

    -키이이잉-.

    “네, 가만히……. 움직이지 마시고요-.”

    “응으윽…….”

     

    그러나, 치과에 들어서자마자 저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담긴 감정은 파이리스를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려움과 불쾌감.

    과연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도 치과가 어지간히 싫은 것이 아닌모양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병원이나 치과에 간다는 것은 몸의 불편함을 견디다 못해 찾은 것일 터인데, 병원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단단한 이빨을 치료하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치료방식도 마냥 우아하지는 않겠지.

     

    “…….”

     

    하지만 어쩌겠는가, 치과진료는 받아야 하는데.

    루크는 새하얗게 질린 파이리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리 겁먹을 것 없다. 너는 아픈 것은 잘 참지 않더냐?”

    “응…….”

     

    루크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파이리스는 여전히 울상이었다.

    그야 당연하다.

    루크가 아무리 격려한다고 해도, 결국 남들이 저토록 두려워하는 치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파이리스는 루크의 손이 꽤나 따듯해서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선을 돌려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온화한 미소를 띈 루크의 표정을 바라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이빨은 아직도 아프고 치료가 무섭지만, 언니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워, 언니.”

     

    루크는 파이리스가 더욱 안심할 수 있도록 파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웃었다.

     

    “후훗. 천만에.”

     

    파이리스가 용기를 내 주어서 고마운 건 사실 루크였다.

    루크는 사실, 파이리스의 진료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기대가 되는 구나.’

     

    솔직히 말해, 루크가 언제 치과에 와보았겠는가?

    그것도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신성력으로 모조리 해결하던 시절의 인간인 루크는 현대의 치료방식에는 완전히 무지했다.

    때문에 의학적인 지식은 사실, 루크조차 기껏해야 어디가 아프면 지혈을 하고 포션을 마시거나 뿌리는 수준에서 조금 더 나아간 정도에 그친다.

    그런 루크가 아는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는 충치 치료법이라면, 그저 다른 곳에 썩은 것이 전이되기 전에 문제가 되는 이빨을 뽑아내는 것 정도 밖에는 떠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신이 자취를 감추고,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는 치료가 굉장히 발달한 현대에는 충치를 치료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의 이빨은 다시 자라지 않는다.

    마치 손가락이 잘린 것이 저 혼자 다시 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때문에 현대에는 이빨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냥 뽑아버리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을 써야 했는데, 그건바로 이의 썩은 부분을 갈아내고 보철물로 채워넣어 이빨이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어때, 아주 흥미롭지 않은가?

     

    이를 갈아낼 때는 어떤 주문이나 도구를 쓰고, 보철물에는 또 어떤 재료를 사용할까?

    이런 주제에 루크가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루크도 대충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정보이나, 자신은 치과에 갈 일이 전혀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불멸의 몸에 충치 따위가 생길 리 없고, 그렇다고 일부러 충치를 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마침 파이리스가 자신의 이빨을 희생해가며 직접 두 눈으로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루크가 파이리스의 이빨을 그냥 뽑아버리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이유였다.

    하지만, 루크에겐 그것 말고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만약에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썩은 이빨을 다 뽑아버렸다고 한다면, 파이리스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충치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게 잇몸에 박혀있는 부분은 생이빨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생 이빨을 뽑는다는 것은 다량의 출혈을 동반하는 일이다.

    루크가 아는 방식대로 모두 뽑아버렸다면 아마 어금니는 대부분 발치를 해야 했을 것인데, 그 출혈은 어린아이의 몸으로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당장의 치과 진료비를 아끼자고 그러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

    루크는 파이리스를 조금 더 전문적인 의학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여겼다.

     

     

    루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파이리스의 손과 머리를 어루어만지며 달래는 동시에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고 있을 무렵, 진료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걸어나왔다.

    마침내 그동안 안에서 기묘한 소음과 함께 행해지던 치료가 끝난 모양이다.

     

     

    “자, 이제 다음 분 들어오세요.”

     

    ——–

     

    굉장히 순박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루크와 파이리스, 그리고 예르나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충치가 있다고요?”

    “네, 애가 이가 많이 아파하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예르나의 대답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어디, 충치가 맞나 한번 볼게요. 자, 그럼 여기 누워야 하는데…….”

     

    의사는 가만히 자신을 향한 두 아이의 시선을 바라보며 난처하게 웃었다.

     

    “어느 쪽이 파이리스죠?”

    “…….”

     

    파이리스는 우물쭈물 손을 들어올렸다.

    어쩐지 경계심도 조금 잦아든 것 같았다.

    결국 파이리스도 남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하는 정령이었기 때문이겠지.

     

    “역시 동생쪽이구나.”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딱 봐도 똑 부러질 것 같은 표정의 당당한 루크와는 달리, 엄청 사고뭉치일 것 같은 파이리스는 잔뜩 풀죽은 모습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만약 ‘누구의 이빨이 썩었을까?’라고 묻는다고 하면 백이면 백, 파이리스를 선택할 것이 뻔했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 여기 앉아 보렴.”

    “…….”

     

    파이리스가 우물쭈물 의자에 앉자, 그렇게 진료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서서히 침대처럼 모양을 바꾸며 파이리스의 몸을 뒤로 젖히는 의자.

    루크는 그 광경을 굉장히 흥미로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의 형상을 마음대로 용도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니, 흐음. 저 기능은 나중에 집에 둘 의자에 추가해도 꽤 쓸모 있을 것 같구나.’

     

    루크는 곁에서 바라보는  예르나의 시선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움직이는 의자가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정말…….’

     

    예르나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자, 아-. 해봐.”

    “아.”

    “더 크게-.”

    “아아-.”

    “소리를 크게 내지 말고, 입을 크게 벌려야지-.”

    “아아아.”

     

    의사의 말에 따라 파이리스는 고통을 참으며 입을 더욱 크게 벌렸다.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입 안쪽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잠깐만.”

     

    그렇게 의사는 파이리스의 입 안을 살피며 예르나를 향해 말했다.

     

    “으음……. 확실히, 충치가 심하네요. 일단 어금니 쪽은 되게 심한데, 몇 개는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역시 그런가요…….”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잉……. 내 이빨…….”

     

    파이리스는 울상을 지으며 볼을 부여잡았다.

     

    “……뽑다니? 충치가 나면 다르게 치료하는 게 아니었나?”

     

    그리고 루크는 의문을 제기했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뿌리까지 완전히 썩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몇 개가 있다는 모양이라, 씌우는 것은 일부 씌우더라도 결국 뽑기는 뽑아야 하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이리스의 육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금니는 뽑아도 괜찮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의사가 장비를 챙겨 다가올 무렵에도 루크의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가 가져와 파이리스의 곁에 놓인 모든 도구들은, 수많은 인간들의 ‘두려움’이 각인된 장비들이었기 때문이다.

    파이리스는 저 괴상하게 생긴 마도구를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어도, 수많은 환자들의 공포를 먹고 자란 저 끔찍하고 차가운 쇳덩이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루크는 그것에 흥미를 느끼면서 마력시로 그 마도구를 한참 훑은 참이다.)

     

    파이리스는 온 몸에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느끼며 루크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말했다.

     

    “언니, 나 무서워……. 나 두고 멀리 가지 마.”

     

    루크는 파이리스의 그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그래,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느냐.”

     

    루크는 파이리스가 정령화로 도망칠 수 없도록 더욱 손을 꼬옥 붙잡으며 말했다.

     

    ‘치료과정을 직접 봐야 하는 데 말이다.’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루크는 의사를 바라보며 양해를 구했다.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곁에서 파이리스의 손을 잡고 있어도 괜찮을까? 아이가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구나.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

     

    그 광경을 보던 치과의사는 마스크 안쪽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사이좋은 자매가 귀엽게 서로를 위하며 감싸주는 장면은 참 보기 좋았으니까.

    의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어……. 손을 잡는 건 방해가 되니까 안되고. 좀 떨어져서 있으면 괜찮아.”

    “그런가.”

    “언니 손 못 잡아?”

     

    파이리스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루크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방해가 된다고 하니. 대신에, 꼭 근처에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게다가 내 경우와는 달리 이번엔 마취제도 잘 쓰니까 그리 아프지도 않을 게야. 그러니까 무서워 할 것은 전혀 없단다.”

    “으응……. 알겠어, 루크 언니.”

     

    이 얼마나 사이가 좋은 아이들인가!

    치과의사는 마치 보기만 해도 가슴 한켠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은 보호자인 엘프에게도 꽤나 감명이 깊었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예르나가 울고 있는 이유는 의사가 생각했던 것과는 살짝 달랐다.

    예르나의 머릿속에서는 끔찍한 키메라 실험을 마취도 없이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던 루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르나는 마취제를 쓴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한 발상이라는 듯이 감탄을 하던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사실, 루크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솔직히 신기할만한 일이기는 했다.

     

    마취란, 감각을 둔하게 하는 독성작용이다.

    게다가 감각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의식과 의지를 그 누구보다 중시하는 마법사에게 마취란 야만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했으므로 마취를 기피하는 성향은 더했다.

     

    옛날에는 신성력이 있었으므로 치료에는 딱히 마취가 필요한 일이 없었고, 만약에 필요하다고 해도 그건 전투시 통각을 없애 두려움을 지우는 정도의 역할이었지, 치료에 사용한다는 발상은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히 전투 외의 부분에서 마취기술이 발달할 이유가 없었던 시대를 살았던 루크에게 필요한 부분에만 마음대로 원하는 시간동안만 할 수 있는 마취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었다.

     

    그러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루크는 실제로 배가 완전히 꿰뚫렸을 때에도 마취따위 없이 스스로를 응급처치 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예르나에게는 그것이 전혀 다르게 비춰졌다.

     

    ‘루크가 마취제를 잘 모르다니……?’

     

    예르나는 그동안 ‘루크는 누구보다 마취제에 익숙하지 않을까?’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험실의 쥐 들에게 우리는 굳이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다.

    어쩌면, 루크와 같은 실험체들에게도 마취제는 딱히 필요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기특해서 눈물이 나…….’

     

    그런 예르나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의사는 단순히 하하하,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애들이 참 귀엽지요?”

    “……네에. 정말로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험체로 고통받았다는 부분만 빼면 예르나의 망상은 다 사실임.

    루크는 판타지 주인공이라 안 피폐해 보이지만, 사실 정말로 피폐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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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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