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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엘라가 사는 마을은 역에서 걸어서 1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말을 전력으로 몬 덕분에 그녀는 역을 떠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마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숨을 씩씩 내쉬는 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다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엘라는 마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오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는 짙은 피 냄새가 풍겼고, 곳곳에는 파괴의 흔적이 보였으며, 골목 너머에서는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서서히 고조되던 그녀의 불안감은 냄새와 소음의 진원지에 다다른 순간 정점에 달했다.

         

       “아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주한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가 이곳을 떠난 지는 불과 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았던 마을이었다. 자신을 갓난아기 때부터 봐온 어른들, 학교에서 함께 곡예를 익히고 자란 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편을 갈라 싸우고 놀던 동네 아이들. 그녀는 한 명 한 명 그 이름과 얼굴은 물론이요,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사람들이……지금은 모두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뭐, 뭐야……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된 거야……다, 다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형체만 해도 스무여 명.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이미 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태라고 그들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아까 역으로 도망쳐온 친구들은 양호한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 일부가 절단되거나, 뜯겨나가거나, 으스러져서 당장 치료에 들어간다고 해도 몸을 회복하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 아저씨……? 아, 아줌마……? 얘, 얘들아……? 사, 살아있는 사람 어, 없어……? 누, 누가 대답 좀 해 봐…….”

         

       대범하기로는 마을 제일인 그녀였지만, 눈앞의 광경은 16살짜리 여자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아, 하아.”

         

       폐가 쥐어짜이는 듯 숨쉬기가 어려워지면서, 호흡이 가빠졌다.

       무자비한 파괴를 목격한 그녀는 그만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우으으아아……싫어……이런 건……꿈이야…….”

         

       그녀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런 행동이 현실을 바꿔줄 거라고 믿었다.

         

       악몽이 분명해. 어릴 때를 기억해 봐.

       이런 꿈을 자주 꾸었잖아.

       주변에는 사람들이 잔뜩 죽어 있고, 할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마구 뛰어다녔어.

       이번에도 같아. 눈을 뜨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아마 옆에는 안나가 누워있겠지.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안나가 계속 내 옆에서 잤네? 아, 그래. 괜찮을 거야. 눈을 뜨면 그녀가 있을 거야.

         

       엘라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시체들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오랜 악몽 대처법은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악몽이 진화했거나, 이게 현실이라는 뜻이었다.

         

       “안 돼……안 돼……안 돼…….”

         

       엘라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꿈이 아니라면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혹시나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구해야 했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으.”

       “끄으윽, 주, 죽여 줘…….”

       “어, 어, 어머니……”

         

       그러나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엘라가 눈앞에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대답한 것은 몇몇 사람뿐이었다.

         

       “에, 엘라……구나…….”

       “괴, 괴물이 나타났어……. 그, 금발 남자…….”

       “그, 그는 ……우릴 보며 웃었어…….”

       “도, 도망쳐, 엘라.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들은 그렇게 몇 마디 하고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듯 고개를 떨궜다.

       그때마다 엘라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마치 자신이 말을 걸어서 그들의 죽음을 앞당겨 버린 것 같았다.

         

       “으흑, 흐으윽, 끄윽.”

         

       눈물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렸다. 그녀의 입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죽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이……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망가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왜……왜……왜…….”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때,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것은 마을 반대편에 있는 회관 쪽에서 난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봤다. 눈물 때문에 흐릿했지만, 그녀는 시계탑 꼭대기에 선 존재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생물이었다. 나무의 가지처럼 사방팔방 뻗은 촉수들에는 뻐금거리는 입이 달려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인간의 살로 보이는 것을 으적으적 씹어대고 있었다.

         

       어비스에서 올라온 마귀일까?

       저것이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을 죽인 걸까?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그 악마를 응시하며 몸을 일으켰다.

         

       놈은 금방 탑 위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엘라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주머니에 든 투척용 단검들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만한 살육을 벌인 괴물을 혼자서 잡을 순 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죽은 사람들과 같은 꼴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속에서 치솟는 분노가 공포를 밀어냈다. 마귀든 악마든 뭐든 좋았다. 가족과도 같았던 이웃과 친구들의 원수였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지 않으면 도저히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분노였지만, 슬픔 앞에서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종탑 아래에서 그녀는 익숙한 옷가지를 발견했다.

         

       몸의 절반이 탑의 잔해에 깔려 있었지만, 바위 사이로 삐져나온 그 앞치마는 분명 서커스 학교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친구의 것이었다. 엘라는 그것을 발견한 순간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으아아, 아, 안나! 안나! 네가 왜? 정신 차려!”

         

       가까이 서 본 친구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녀의 몸은 바위에 깔려 반쯤 동강 난 채 내장을 밖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엘라는 손톱이 부러지고 손가락이 꺾이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잔해를 치우려고 애썼다. 그 순간만은 힘자랑이나 땅재주의 기술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친구의 몸을 차가운 땅바닥에서 꺼내주고 싶은 마음에 몸을 아끼지 않고 달려들었다.

         

       시체처럼 눈을 감고 있던 안나는 엘라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상대의 얼굴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에, 엘라? 다, 다행이구나……사, 살아있었네……?”

       “안나! 너, 너도 살아 있어……제, 제발 죽지 마! 응? 구해줄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안나는 엘라의 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 안타까운 한숨을 토하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만……. 늦었어……. 나, 아, 알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그런 말 하지 마! 살 수 있단 말이야! 포기하지 말라고! 알았어? 내가, 내가…….”

         

       엘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잔해를 마구 헤집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나를 구해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압력으로 짓눌렸던 부분에 피가 돌기 시작하자 출혈이 가속화되며 그녀는 입에서 울컥 검은 피를 토했다.

       그것을 알아챈 엘라는 흠칫 몸을 떨며 바위에서 손을 뗐다.

         

       “아, 안나!”

       “괘, 괜찮아. 더, 덕분에 이쪽 팔을……움직일 수 있게 됐네……. 너를 만질 수 있게…….”

         

       안나는 살이 뜯겨나가 뼈가 드러난 팔을 들어 손으로 엘라의 볼을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엘라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어가고 있는데 그녀는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지만 엘라는 그녀에게 질문을 하는 대신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딴 물음은 나중에 얼마든지 하면 된다. 나중에 얼마든지. 일단 살아만 있으면…….

         

       “안나……미안해……고마워……그러니까……죽지 마…….”

       “나, 나는 괜찮아……괜찮아…….”

         

       안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부위도 긁어주고 싶었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의 몸에서 손을 떼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 이제 도망가…….”

       “싫어! 널 두고 어떻게…….”

       “가. 어서…….”

       “널 두고 도망칠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엘라를 향해 안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짜내어 말했다.

         

       “엘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있어……”

       “싫어. 마지막은 싫다고! 살면 되잖아? 응? 제발, 안나……”

       “부탁이야……. 부탁이야, 엘라, 들어 줘, 응……?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어…….”

         

       친구가 그렇게 간절한 표정을 짓는 것을 엘라는 처음 봤다. 그녀는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는 잠시 엘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행이었다. 그녀만이라도 살아서 다행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자신이 반했던 소녀.

         

       안나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시도했다. 기습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느릿한 속도였지만, 엘라는 가만히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기력이 다한 탓인지 안나의 입술은 엘라에게 닿지 못하고, 두 사람은 가볍게 코끝만 스치고 말았다.

       엘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 안나…….”

       “널 좋아했어……. 세상 누구보다도 좋아했어……. 아하하……주, 죽기 전에야……겨, 겨우 용기가 나네?”

         

       안나는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해, 엘라.”

         

       그녀의 몸에 완전히 힘이 빠지면서 축 늘어졌다. 그녀의 눈은 감겨 있었고, 입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아아…….”

         

       엘라는 그녀를 품에 꼭 안고 오열했다.

       자신은 바보였다. 그렇게 항상 옆에 붙어 다니며 자신을 챙겨주었던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입에 담지 않았을 뿐이지 언제나 말없이 표현하고 있었는데…….

         

       “아아아아아! 아아아!”

         

       엘라는 울음인지, 고함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안나의 몸을 꽉 껴안았다. 그녀는 친구의 몸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이대로 그녀의 시신을 품에 안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때맞춰 학교 측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쿠궁.

       무언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였다.

       엘라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그녀는 친구의 몸을 잔해 속에 눕혀두고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은 가 봐야 했다. 남은 유일한 가족이 무사한지 확인해야 했다. 그분만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

         

       “안나, 나중에……나중에 다시 올게……기다려…….”

         

       엘라는 마을을 가로질러 달렸다. 중간중간 살육의 현장을 마주쳤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잠시도 쉬지 않고 언덕을 올랐다.

       마침내 언덕 끝에 오른 그녀는 울타리 문을 열고 학교 안마당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마을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었고, 거친 싸움의 흔적이 역력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친구들 몇이 피를 토하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지만, 부상은 그렇게 심한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팔이 하나 잘려 나가긴 했지만, 남은 팔로 무너진 학교 건물의 기둥을 붙들고 서 있었다.

         

       엘라는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마당의 중앙.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게 분명한 현장에는 아까 봤던 그 괴물이 있었다. 사방팔방 촉수를 나뭇가지처럼 드리운 채, 몸에는 입인지, 눈인지, 귀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잔뜩 단 그 악마가 그곳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을 학살한 원흉.

       안나를 죽인 원수.

         

       엘라는 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래. 덤벼. 나도 죽여 봐. 이 개자식아. 그들을 죽였듯이 나도 죽여 보라고.

         

       그때, 놈의 몸에 변형이 일어났다.

       촉수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곳곳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던 입들이 봉합되듯 꾹 닫혔다. 맥락 없이 꿈틀대던 근육들도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수그러들었다.

       그것은 빠르게 하나의 형상을 갖췄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엘라는 그것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이 빚는 것은 그녀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단장님?”

         

       엘라는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추석 연휴에 고향에 오래 있다 보니 어제 올라왔습니다!
    시골 밥상에 쪼그리고 앉아 노트북으로 두드리는 것은 너무 힘들더군요…
    오늘부터 다시 정상 영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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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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