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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젊-은-이. 내 눈에는 보이네. 정처 없이 방황하던 자네의 욕망이 마침내 방향을 찾아 올바른 길을 걷고 있음을.”

         

       괴한은 기묘했다.

         

       벌레를 온몸에 휘감은 듯 보이기도 했고, 물고기의 비늘을 뜯어 몸에 두른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을 징그럽게 조형한 듯한 피부를 가지고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으며, 발을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얼음 위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이제순의 앞까지 도달한 괴한은 황금 가면을 번뜩이며 말했다.

         

       “금속이 단단하다 하나 땅속에 묻혀있으면 쓸모가 없는 법. 땅속에서 나와 뜨거운 불 속에서 녹고, 대장장이의 망치질에 몇 번이고 형태를 만들어가야만 그 쓰임새가 만들어지는 법이지.”

       

       그의 시선은 형체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 기묘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묘하게 그 시선을 인지하고 있으면 얼굴의 살갗 아래가 따끔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비유로 따끔거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피부 아래에서 날카로운 턱을 가진 개미 수천 마리가 움직이며 그의 피부를 조금씩 뜯어먹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따끔거린다.

       너무나 따끔거린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들어 얼굴을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

         

       피부 아래까지 충분히 전달될 정도로 강하게 후려쳐서, 피부 아래에서 멋대로 살을 뜯어 먹고 있는 개미 떼를 죄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그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순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털이 바싹 곤두섰고, 온몸의 감각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치 양동이에 각성제를 들이붓고 그대로 마셔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감각이 벼려졌다.

       벼려진 감각은 단순히 그를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친 듯이 폭주하듯 날뛰었으며,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진 몸은 뇌를 한껏 괴롭히면서 그에게 외부의 온갖 정보를 전달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바짝 곤두선 털은 서늘한 밤의 공기를 그대로 읽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예민해진 코는 괴한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눈치챘다.

       그 냄새는 벌레를 불로 태웠을 때 나는 듯한 냄새라는 것 또한 알아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는 코를 찡그리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바이스에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크게 뜨인 눈은 남자의 황금 가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 가면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빛에 현혹이 될 것만 같았다.

       규칙성을 가지며 반짝이는 황금 가면을 보고 있자면 정신이 저절로 몽롱해지는 것 같이 느껴졌고, 자기 몸에 감각이 사라졌다가 붕 떴다가를 반복하며 그의 감각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 역시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이제순은 그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남자를 보았고, 남자가 하는 말을 얌전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어서야 이제순의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를 쉬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

       잠깐 잊혔다가 더 잔혹한 형태로 솟구쳐 오르는 것.

       뇌를 폭주시킴과 동시에 마비시키는 것.

       사람의 이성을 얼어붙게 만드는 감정.

         

       바로 공포였다.

         

       그는 수첩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거대한 공포 때문에 잊어버렸던 괴한에의 공포를 기억해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그는 겁대가리 없이 공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지금 그 공포와 마주 보고 있지 않은가.

         

       “내 자네의 욕망을 똑똑히 보았네. 그-래, 나는 보았어. 흐.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원하는 자네의 욕망은, 그래. 욕망은 말이야.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는 송곳처럼 보였네. 송곳? 그래. 송곳이 아니라면 칼이라 표현해도 좋네. 자네는 욕망을 제련했고, 욕망을 다듬었고, 욕망의 모양을 만들어내었네. 그리고 그렇게 형태를 이룬 욕망은 자각과 함께 손에 들린 채 자네의 도움이 될 것이고.”

         

       괴한의 눈이 웃었다.

         

       “마침내 자네를 더 발전케 할 것이니라.”

         

       괴한은 그리 말하며 손을 천천히 뻗어 이제순의 가방을 빼앗았다.

       그리곤 날카롭게 자라난 손톱을 이용해 가방을 찢어발기기 시작했고,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서 찢어진 틈으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탈탈 털어내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는 발을 이용해 툭툭 치면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발길질을 몇 번 행하자 그가 찾던 것이 나왔다.

         

       낡은 수첩.

         

       그가 이제순에게 주었던 그 수첩이었다.

         

       그는 허공을 쥐는 것으로 수첩을 천천히 이제순의 눈앞에 띄웠다.

       그리곤 그것을 손톱 끝으로 잡고 흔들며 물었다.

         

       “욕망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해준다네. 지금 자네가 그러하였듯이.”

         

       그는 이제순에게 말했다.

         

       “그래. 자네는 욕망이 있네. 크흐, 거대한 욕망. 아주 거대한 욕망이지.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자네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야.”

         

       괴한은 수첩이 마치 실에 묶어서 늘어뜨린 동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천천히 흔들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 속도는 아주 느릿느릿하면서도 규칙적이었다.

       뇌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규칙이라는 것은 경험이자 정보가 되고, 경험이자 정보는 뇌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다.

       사람은 습득한 경험과 정보를 이용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그것은 때로는 현실을 초월한다.

         

       지금 괴한이 흔드는 수첩의 궤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아주 단순한 움직임.

       좌우로 흔들리는 아주 단순한 움직임이다.

       속도에도 변함이 없고, 그 움직이는 거리도, 수첩이 있는 위치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너무나 규칙적이기에 수첩은 착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눈에 익은 수첩의 궤적은 수첩이 지나간 자리에도 잔상을 남겼고, 그 잔상은 실제처럼 움직이며 눈을 어지럽혔다. 수첩은 가지 않은 곳에 먼저 가 있기도 했고, 두 개가 존재하기도 했고, 거울을 마주 보게 만들었을 때처럼 수많은 잔상을 만들기도 했다.

         

       눈이라도 강하게 깜빡일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이제순의 눈은 감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이 그 수첩을 바라보며 서서히 풀려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서서히 말이다.

         

       이제순의 눈은 피로에 찌들었으며, 이제순의 뇌는 수첩이 만들어내는 착시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

         

       괴한은 다른 손의 손톱을 길게 늘이곤 그것을 이제순의 몸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그는 날카로운 손톱의 끝으로 이제순의 손가락을 콕 찌르며 말했다.

         

       “자아아네는 말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자네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네.”

         

       느릿한 쇳소리.

       손가락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느낌.

         

       이제순은 멍한 머리로 그의 말을 새겨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팔이네. 자네는 팔을 움직일 수 있어.”

         

       손가락 다음은 팔이었다.

       그저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던 몸은 이제는 무려 팔 전체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자네는 이제 눈을 깜빡일 수 있어.”

         

       눈을 깜빡일 수 있게 되었다.

         

       “자네는 이제 입을 움직일 수 있어.”

         

       입을 움직이며 숨을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자네의 다리가 풀리게 될 것이야.”

         

       단단하게 굳어있던 다리가 부드럽게 변하며 그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그리고 자네는 이제 나와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마침내.

       그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괴한과.

       그를 압도했던 주술사와 말이다.

         

       괴한은 얼굴을 기울였다.

       그리곤 목을 늘어뜨리는 듯한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이제순의 코앞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이토록 욕망은 대단하니 그 한계가 없어 무한하고 무궁하여라. 자아, 자네는 이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네. 그럼 이제 묻겠네. 자네가 이곳에 다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무슨 까닭인고?”

       “어, 그. 그.”

         

       이제순은 괴한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아까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의 뇌는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제대로 생각을 짜내지 못했고, 그의 입 역시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도 제대로 출력하지 못하며 어버버 거리는 멍청한 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괴한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그를 계속 빤히 바라보며 기다려주었고, 이제순은 그 덕분에 자신이 할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에 성공했다.

         

       “수, 수첩. 수첩을 다 썼습니다…!”

       “흐.”

         

       과부하 된 뇌를 혹사하다시피 해서 짜낸 말.

         

       괴한은 그것을 들으며 웃었다.

         

       그 웃음은 녹슨 쇠 파이프에 바람을 불어넣어서 만드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쇠를 긁어서 사람 웃음소리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더없이 불길한 소리였다.

         

       “그렇겠지.”

         

       괴한은 불길한 소리 다음엔 긍정의 말을 내뱉었다.

         

       “모든 것이 유한하거늘 어찌 저 하잘것없는 선물이 오래갈 수 있을까.”

         

       괴한은 호선을 그린 눈으로 이제순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젊은이. 묻겠네. 자네는 내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가?”

       “네, 네? 네. 네!”

       “그래. 선물이라는 것은 받는 이가 기뻐해야 하는 것인즉, 이는 선물을 한 이에게 지고한 기쁨이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말이로다. 아주 만족스럽구나.”

         

       괴한은 이제순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물론 그 부드러운 목소리는 쇠를 긁어서 내는 것 같은 소리 때문에 그의 귀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소음에 가깝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그렇습니다. 네! 정말 만족, 네.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니. 어.”

       “그러니?”

       “그러니까 어…. 아, 그렇지. 저 수첩을 더, 더 사용하고 싶습니다!”

       “더 사용하고 싶다?”

         

       이제순은 괴한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보이자 용기를 내어서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나는 당신의 선물이 마음에 들었고, 그 선물을 계속 쓰고 싶어서 다시 온 것이라고.

       그것을 위해서 당신을 찾아다닌 것이라고.

       그러니 나에게 저 선물을 고쳐서 돌려달라고 말이다.

         

       그는 간절한 말투로 빌었고, 절박하게 그에게 청했다.

         

       그리고 괴한은 그의 간절함에 이렇게 답했다.

         

       “젊은이. 다 타버린 장작을 다시 되돌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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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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