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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극단적인 예시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건 속단이다.

     100명의 노스트럼인 중 한 명이 나를 죽이려고 든다고 해서, 나머지 99명 모두가 잠재적 암살자인 건 아니다.

     하지만 1만명 중 100명이라면?

     그 수가 배로 늘어나고,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에 이르게 된다면?

     바르셀로나 총독의 자리에 오르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 의해 매국노로 낙인찍힌 지금까지, 아니 그 이전부터 나를 향했던 암살 시도는 수백 건에 달했다.

     어렸을 때는 딱히 암살 위협이 없었다.

     

     그 때는 나름 무능을 연기하고 있었고, 누아르를 표면적인 후계자로 내세워서 암살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제국 황녀에게 홀려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망나니 정도로 인식이 퍼졌기에, 굳이 나를 죽이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죽일 이유가 차고 넘친다.

     무슨 이런 이유를 가지고 죽이려고 하나 싶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났던 암살 근거는 전부 질투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그 이유를 하나하나 전부 짚기에는 너무나도 문제가 많아서 논문이 나와야 하는 실정이며, 그건 지금까지 일어난 암살을 또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형태로 저지르는 행위일 뿐이다.

     제국신문에 실리는 추리소설을 보더라도, 밀실살인으로 살해 방법은 다르더라도 결국 사람이 죽는 건 똑같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범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왜 죽였는가.

     살해방법을 알아차리고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면, 왜 죽였는가를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묻고 싶다.

     왜 암살하려고 하는가? 그 동기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번에 새로운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러니까, 꿈 속 세상과 내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죽이려고 했다?”

     “…….”

     제국력 12월 22일 오전.

     나는 어느 한 건물의 옥상에서 암살자 한 명을 붙잡은 채 심문하고 있다.

     “자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어. 협곡장학생으로 선발한 사람 중 한 명이지.”

     “……!”

     암살자는 여자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분명, 위르고 가문의 영애였지. 검에 재능이 있었고.”

     나이는 공식적으로는 19세이며, 실제로는 21살로 나이를 속이고 입학한 위르고 남작가의 장녀다.

     실력은 대외적으로 하급 기사 정도지만, 실제로는 입학 때부터 중급 기사였고 이제는 상급 기사에 이르기도 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황금여명 기사단에서 뽑아갔을 거라고 평가가 자자했던 걸로 기억해.”

     그리고 미래, 회귀 전에는 혁명군의 일원으로 짧게 활약하기도 했다.

     내 손에 의해 처형당한 구 왕국 귀족 중 한 명이었다. 

     충성병자인.

     “묻겠다. 그대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명령에 따라 나를 죽이러 온 건가? 내가 노스트럼 왕가에 반역하는 지브롤터 가문의 장남이라서?”

     “아닙…니다.”

     위르고의 장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런 광인의 명령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 인가. 이미 암살을 하러 온 것부터 어리석은데.”

     “하, 하지만…!”

     “아직 질문은 끝나지않았다.”

     나는 위르고의 장녀에게 지팡이 끝을 겨눴다.

     “묻겠다. 네가 이곳에 독이 묻은 단검을 들고 온 이유는 무엇이지?”

     “…….”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아니면 대답을 하면 내가 죽일 것 같아서 두려운 건가?”

     “…….”

     매국노 그레이 시절에도 그랬지만, 항상 혁명군이든 범죄자든 심문을 할 때면 한 번으로는 대답을 얻어내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들의 속내를 추론해야 했고, 그 경험이 많이 쌓여 이제는 눈빛과 행동, 그리고 몇 가지 단서만으로도 속마음을 추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 거짓된 황금에 중독되어있군.”

     “……!”

     순간적으로 눈을 감는다.

     시선이 좌우로 한 번 빠르게 구르고, 손가락 끝이 움찔거린다.

     “현실보다 꿈 속 세상의 자신이 더 화려했나보지? 어떻게, 어떤 삶을 살고 있던가?”

     “그, 그것이….”

     “왜 대답을 못하는 거지?”

     “……솔직하게 대답한다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봐서.”

     궁금하기는 하다.

     지금까지는 멀쩡하게 지냈고, 내게 협곡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우수한 능력을 보였던 인간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람이 180도 뒤집힌 것처럼, 먹히지도 않을 암살을 하러 왔다는 말인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 거짓된 황금을 먹고는, 황금룡이 꼬리…를 박아넣은 채로 밀어넣어주는 황금을 맛보았겠지.”

     실제 드래곤의 몸통을 생각하면 몸 속에 들어가는 건 꼬리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가깝지만, 나도 한 번 겪어본 사람이니 심정적으로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 상당히 그렇다.

     “황금룡이 보여주는 꿈이 그렇게 행복하더냐.”

     그냥 꿈을 체험하게 해주는 또다른 기관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지.

     “황금룡이 짜내주는 따뜻한 꿈의 젖이 그렇게 달콤하더냐.”

     아니면 황금의 젖을 내려다주는 드래곤의 젖꼭지라고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거짓된 황금을 모유처럼 핥아먹으며 꿈을 꾸고, 황금은 몸 속으로 들어가 ‘마나로 승화’하는 게 현재 제국의 마도공학연구소에서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니까.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암살이나 할 정도로.”

     “환상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위르고의 장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원래 그랬어야 하는 역사입니다!”

     “그렇겠지. 나도 그쪽이 노스트럼 입장에서는 더 낫다고 생각해.”

     카르멘 왕비가 우리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 모성을 가진 세계.

     나의 어머니라는 점에서 더 낫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지브롤터가 10년 전에 있었던 모든 뒤틀림의 시작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세계.

     “너는 그 꿈 속에서 무엇을 보았지?”

     “…….”

     “대답하라.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내가 지팡이 끝에 오러를 일으킨 순간.

     “가문이…망했습니다.”

     

     위르고의 장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가문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저는 여동생과 함께 최후의 성지 지브롤터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는….”

     위르고의 장녀가 형형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당신을, 만났습니다.”

     “…….”

     “당신께서는 지금의 후작님, 크림슨 변경백이 암살당한 뒤의 백작위를 물려받았음에도, 제국군을 상대로 선전하며 싸우셨습니다. 환영기사단을 직접 이끌며, 제국군으로부터 지브롤터를 철저히 지켜내셨습니다.”

     아버지의 암살.

     환영기사단.

     제국군과의 전쟁.

     거짓된 황금으로 꿈을 꾸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고, 그건 분명 현실과 너무나도 괴리감이 큰 이야기였다.

     “그렇군.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헛소리 집어치워’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이 여자가 암살자가 된 동기가 궁금했다.

     “너도, 다른 여자들처럼 그랬나?”

     “…….”

     “내가 이끄는 환영기사단의 일원으로 들어와, 지브롤터 변경백의 반려가 되고 싶었던 이들 중 한 명인가?”

     “저는, 그런 단순한 시녀들이 아니었습니다…!”

     위르고의 장녀가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었다.

     “저는 당신의 열두 부인 중 한 명이었던 자…! 유살리나 위르고였어요…!”

     “그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런 소리를 내게 한 여자가 네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저는…!!”

     “그래서 암살하려고 했는가.”

     새롭게 추가된 암살의 동기.

     “꿈 속에서는 내가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주는데, 그 사랑이 현실에서는 다른 이를 향하고 있으니.”

     “틀려요!! 저는…!”

     “이만하면, 헛소리도 더 이상 들어줄 필요는 없겠지.”

     “백작님!!”

     “나는 총독이다.”

     누군가가 제국의 황녀를 향해 연심을 품고 나를 죽이려고 한 것처럼.

     “네가 죽는 이유는 단 하나.”

     누군가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마련.

     “아스타시아를 죽이려고 했다.”

     푸ㅡ욱.

     “아….”

     “마지막으로 이 말만 해주지.”

     “제발, 사랑한다고….”

     “꿈. 깨.”

     나는 위르고의 장녀를 죽였다.

     회귀 전에는 혁명군의 일원으로서 나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죽던 그녀가, 이번 생에는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데도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죽는다.

     “……그저, 불쾌하기 짝이 없군.”

     

     털썩.

     

     “시신, 수습해.”

     나는 볼에 튄 피를 닦아낸 뒤, 바로 몸을 돌렸다.

     스스슥.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암살자의 시신이 수습된다.

     나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니고, 아스타시아를 죽이려고 한 존재의.

     “…쯧.”

     불쾌한 일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피가 튄 것도 튄 거지만, 이 다음에 있을 일을 생각하면 그게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니드호그.”

     푸르르.

     협곡에서 데려온 니드호그의 발목을 잡고 하늘을 날아 빠르게 건물 옥상에서 하늘로 난다.

     

     오로솔 아카데미의 하늘에는 심야에도 일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룡기사들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모르가니아의 흑장미를 가슴에 새겨넣은 이들도 있었다.

     꾸벅.

     나를 향해 그들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렸다.

     

     아마도 옥상에서 있었던 일은 모르는척 하겠다는 듯한 제스쳐인 동시에, 앞으로 좀 더 신경을 쓰겠다고 하는 다짐이겠지.

     하지만 저들도 예상하지는 못하리라.

     제국의 유학생과 친해지는 걸로 제국 유학생 건물에 몰래 잠입한 다음, 그걸 역으로 이용해 아스타시아를 암살하려고 한 미치광이는.

     그것도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포함하면 2년 11개월 동안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1개월만에 사람이 뒤바뀌어서 제국 황녀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존재라면 더더욱.

     “고생했다, 니드호그.”

     푸르르.

     니드호그가 황금의 비행선에서 우아하게 착지한다.

     나는 비행선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비행선을 내려가 건물 옥상 아래, 장학재단의 이사장실로 향한 다음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몸에 묻은 피냄새를, 다른 여자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내기 위하여.

     그리고 비행선에 준비해뒀던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비밀통로를 향해 그대로 내려가 지하로 향했다.

     위이잉.

     여전히 문제 없는 마도승강기를 따라, 새로운 건물의 4층에 도착했다.

     똑, 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안에는 이미 사람이 있지만, 그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스타시아.”

     

     끼이익.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방의 문이 열린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방 안쪽에서 퉁명스럽게 답하는 목소리로, 아스타시아가 나를 부른다.

     “씻고 왔어요?”

     “예. 피가 튀는 바람에….”

     “아, 아쉬워라.”

     거실.

     “모처럼 직접 씻겨드릴까하고 이렇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스타시아가 메이드복을 입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씻겨드릴까요?”

     “…생각해보니.”

     나는 조용히 아스타시아에게 향했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조금 땀이 흐른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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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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