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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아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녀석 땡땡이는 안 친 거 같더라.

   

   그 뿐일까. 그는 내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었다.

   

   아직 2학년이 시작 되지도 않았는데 오러를 사용하다니!

   

   그것도 단순히 감을 잡았다 수준이 아니라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진 상태!

   

   아무리 내가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지 않아?

   

   아서가 천재라는 걸 알고야 있었지만 그 재능이 이만큼이나 뛰어날 줄이야.

   

   신성의 격이 오르기 전이었다면 한 번 호되게 당했을지도 모르겠네.

   

   ‘많이 노력하셨네요. 3왕자님.’

   “불쌍 왕자님께서 이렇게나 강해지셨을 줄이야. 엄청나게 노력을 하셨겠네요. 쿠흐흫. 물론 그래봐야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여자애한테 발린 허접이란 게 바뀌진 않지만요.”

   

   바닥에 널부러진 아서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응이 없다. 그냥 시체인 것 같다. 라는 묘사를 떠올리게 하는 그 모습에 어디를 잘못 때린 걸까 생각하고 있으려니 프레이가 졸래졸래 다가가선 아서의 등을 두르려 주었다.

   

   “3왕자님은 잘못 없어. 이건 루시가 너무 강한 탓이야.”

   “켄트 영애의 말이 옳습니다. 3왕자 저하. 저하께서 보이신 것은 나이에 비해 아득히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위로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둬라. 마음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좀 시간이 걸릴 듯 하니.”

   

   아아. 그냥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썼는데도 발린 게 충격이었을 뿐이구나.

   

   다행이네. 혹시 내가 힘조절을 못해서 진짜 불쌍공주님을 만든 거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둘의 말이 옳습니다…’

   “맞아요. 불쌍왕자님께선 허접치고는 무척 강하셨답니다. 귀여운 여자애의 얼굴에 상처를 내겠다고 발악하시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너무 추악해서 비명을 지를 뻔 했다니까요?”

   

   “…루시 알른. 패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을 한다만. 부디 닥쳐주지 않겠나?”

   

   부들부들 떨리는 아서의 목소리에 난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뒤에 더했다가 어떤 괴악한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으음. 아무리 봐도 이 자리에 더 있어봐야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네.

   

   아서가 수련을 대충하기는커녕 내가 시킨 것보다도 열심히 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슬쩍 도주하도록 할까.

   

   근데 있잖아. 아서가 나한테 찔리는 게 없으면 어제 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친 거지? 이유를 모르겠네.

   

   <진정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냐?>

   ‘그런데요?’

   <…그대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군. 뻔하지 않은가.>

   ‘설마 아서가 바뀐 제 모습이 놀라서 도망쳤다고 하고 싶으신 거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3왕자님이 얼빠여우 같은 변태도 아닌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짜리몽땅한 꼬맹이를 보고 이상한 마음을 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놈은 얼빠여우나 예술 교단의 사도, 그리고 허접 페도 주신같은 변태새끼들 뿐.

   

   제가 아는 아서는 그런 변태들과는 다른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고요.

   

   ‘아! 혹시 변태 눈에는 변태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그건가요?! 저 할아버지만큼은 믿고 있었는데!’

   <그것은 또 무슨 모함인가! 그대는 대체 본인을 무어라고 생각하는 게냐!>

   

   나는 할배가 버럭거리는 것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아서가 도주한 이유에 대해 고민했지만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한테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네. 오늘 다시 만났을 때 멀쩡했던 걸 보면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은 대충 넘겨둘까.

   

   <듣고 있느냐!? 최근 그대는 너무 본인에 대한 존중이 없느니라!>

   

   최근 이렇게 저렇게 놀린 것이 쌓이다 터진 것일까.

   

   할배의 잔소리는 내가 던전학 교수가 있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요즘 들어서 내가 자주 깐족거리긴 했지.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야.

   

   그렇지만 말야. 놀릴 때마다 할배가 보여주는 반응이 너무 재밌는 걸 어떡해!

   

   평소에 근엄하던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버럭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단 말이야.

   

   놀림당하기 싫으면 반응이 재밌질 말든가!

   

   과거의 루시가 왜 사람들을 놀리고 다녔는지 알 것 같기도…

   

   아냐. 이건 아냐. 걔는 놀리는 정도가 아니라 타인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옛날 루시의 마음을 이해하면 안 되지.

   

   <알겠느냐. 그대가 본인을 친근히 여기는 것은 이해하겠다만 최소한의 존경은 보여주었으면 좋겠단 게다.>

   ‘제가 할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리 없잖아요? 항상 마음속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요!’

   <…그래?>

   ‘그럼요! 할아버지가 악신을 상대로 기적을 펼치는 걸 본 저라고요! 지금도 생각나요! 그 어두운 동굴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

   <크흠. 그게 무어라고. 본인이 전성기 때에 펼쳤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늘.>

   ‘진짜요!? 역시 할아버지! 전설적인 성기사 루엘다워요!’

   <거 그리 티나게 아부하면 본인의 화가 풀릴 성 싶더냐.>

   

   할배. 말은 그렇게 하지만 흐물거리는 목소리는 솔직한걸요?

   

   장난만 치던 손녀가 칭찬해주는 게 엄청 기쁘면서 솔직하지 못하기는.

   

   ‘이건 아부지만 진심을 담은 아부라고요! 할아버지!’

   <아부면 아부지. 진심을 담은 아부는 또 뭐냐.>

   ‘존경하는 마음은 진짜란 거에요!’

   <…하여간. 내 그대를 말로 이길 수가 없구나.>

   

   할배의 마음을 달래는 데 성공한 나는 앞으로 놀림과 칭찬의 비율을 적절하게 유지해야겠다 생각을 하면서 던전학 교수의 방에 들어섰다.

   

   “알른 영애.”

   

   최근 들어서 잠을 제대로 못잔 걸까. 그녀의 눈가에는 진한 다크서클이 새겨져 있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칼 교수에게 이야기는 들으셨나요?”

   

   ‘네. 그게…’

   “들었어. 개허접 교수 네가 자신의 멍청한 머리로는 날 평가할 수 없다 인정했다는 걸 말이야.”

   

   메스가키 스킬로 번역된 말에 교수가 이빨을 까득댔지만 난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이미 저 사람한테 호감을 사는 걸 포기한 지 오래거든.

   

   “그…으럼 결정은 내리고 오신 건가요?”

   

   ‘네. 던전을 만들어 보려고요.’

   “맞아. 어떻게 교수가 된 건지 의심스러운 너한테 제대로 된 던전이 뭔지 보여주려고. 하. 정말. 난 너무 착하다니까.”

   

   내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던전학 교수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저러다가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거 아니야?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의 악명에 ‘혈압을 올려 사람을 죽인 적이 있음.’ 같은 게 추가될까봐 무섭네.

   

   “…조교수.”

   “넵!”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드리렴.”

   

   던전학 교수와 나 사이에 낀 불쌍한 대학원생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허리를 숙였다.

   

   “저어! 알른 영애님! 이 허접한 쓰레기에게 당신께 설명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다소 과할 정도로 깎듯한 태도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난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어. 음. 네.’

   “푸흐흫. 주제를 좀 아네. 어디 한 번 지껄여봐.”

   

   이러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난 번 평민 기숙사를 한 번 엎었을 때에 난 루카에게 사건의 원흉들을 적당히 처리해달라고 명령했다.

   

   그 멍청이들이 계속 남아있다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할지 몰랐으니까.

   

   루카는 내 명령을 잘 수행해 주었다. 다만 너무 과할 정도로 잘 수행했지.

   

   사건의 원흉이 되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아카데미에서 사라져 버릴 줄이야.

   

   이 일 때문에 아카데미 내에 루시 알른을 분노케 하면 증발해 버린다는 괴소문이 생겨났다고!

   

   실상은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조용히 퇴거 시켰을 뿐인 일이지만 원래 소문이라는 건 자극적인 쪽이 더 빠르게 퍼져나가는 법.

   

   덕분에 그 사건 이후로 난 평민 학생 및 교직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아. 이거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이전처럼 시비거는 애들이 사라져서 좋기는 한데.

   

   내 옷깃에 닿기만 해도 땅에 머리를 박고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건 좀 과하잖아!

   

   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사람을 괴롭힌 쓰레기가 되어야 하는 거냐고!

   

   아무리 내가 평판을 포기했다지만 이건 아니잖아아아아!

   

   “저. 저어. 알른 영애님. 제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걸까요옷?!”

   

   겁에 질린 조교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한숨을 내쉬는 순간 그대로 땅에 머리를 박을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입술을 살짝 씹었다.

   

   ‘못 들어서요.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말 좀 또박또박하게 못 해? 알아 들을 수가 없잖아. 한심한 허접 같으니. 다시 제대로 설명해 봐.”

   

   “네엣! 최선을. 딸꾹! 다하ㄱ… 딸꾹!”

   “하아. 됐어. 조교수. 하던 일 해. 그냥 내가 설명할게.”

   

   이젠 아예 울먹거리는 조교수를 보다 못한 걸까. 던전학 교수가 앞으로 나서자 조교수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니 진짜 아카데미 내에서 내 평판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져 있는 거야?!

   

   내가 뭘 했다고 이 정도로 무서워 하는 건데! 나 아무것도 안했잖아!

   

   아아악! 진짜 억울해! 악신의 부활을 두 번이나 막아낸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거냐고!

   

   차라리 진짜 사람을 괴롭혔다면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던전학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일단 영애님께서 알아두셔야 할 것은 기말시험의 던전은 어디까지나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시험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던전의 내용은 시험 범위에 나온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고지해 드렸으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알려주셨나요?’

   “말했었어? 진짜로? 바보 같은 네가 착각한 거 아니고?”

   

   “…분명 고지해 드렸습니다만 못 들으셨습니까?”

   

   그랬었구나.

   

   미안합니다. 교수님.

   

   그치만 저 던전학 시간엔 만날 자는 걸요.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뭡니까.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인데 들을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던전학 교수의 입가가 부들거렸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시험범위는 기믹형 던전입니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넘어설 수 없는 여러 던전의 공략과 관련된 내용이죠.”

   

   던전학 교수는 높아지려는 목소리를 애써 억눌러가면서 수업 시간에 알려 준 여러 기믹과 그 풀이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학년 수업에 나오는 내용이라서 그런가 괴악한 종류의 기믹은 거의 없다시피하네.

   

   저 기믹들을 집어 넣어서 던전을 설계해야 한다는 건가.

   

   “이외에도 몇 가지 조건이 더 존재합니다. 던전의 크기. 난이도. 용량의 제한 그리고…”

   

   제약이 꽤 빡빡하다.

   

   하긴 던전을 만들어내는 것도 공짜가 아니니까. 여러 현실적인 제한이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

   

   가만 교수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머릿 속에 들어있는 여러 지식을 뒤적거렸다.

   

   내게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면서 이상적인 던전을 만들어 내려면…

   

   으으음…

   

   팔짱을 낀 채 고민을 이어나가던 중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기믹을 써먹을 수만 있다면 이게 제일 좋긴 한데 될까 모르겠네.

   

   ‘저기. 교수님 혹시…’

   “야. 혹시나 물어보는 건데. 이 개허접 아카데미에 이런 걸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건 어렵단 답을 생각하고 내뱉은 질문이었지만 교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답변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만. 그 기믹을 어떤 식으로 쓰시려고요?”

   

   …된다고?

   

   진짜 이 기믹을 써먹을 수 있단 말이야?!

   

   흐흫.

   

   흐헤헤헿.

   

   아카데미 1학년 이 새끼들아.

   

   딱 대.

   

   이 썩은물이 제대로 된 던전이라는 게 뭔지 알려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에서 깬 순간 함께 잠들었던 친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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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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