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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2

    <292 – 지뢰>

     

    아카데미 선배들은 위험하다.

    1학년에게는 “내숭을 떤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온화한 강의를 한다는 교수들이 진심으로 몰아붙이는 강의를 경험하는 자.

    심신이 피폐해지고 고강도의 강의를 따라가고자 사람이 독종이 되다 못해 미쳐버린 건 아닌지 의심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 극악무도한 강의일정을 모두 극복하고 끝내 졸업에 성공한 선배이니 제국에서 금기시한 금단의 강화를 저질러도 “훗. 이래야 우리 선배답지”라며 오히려 안도하고 납득했던 모두들!

    그러나 상대가 졸업생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짜 졸업생인데 자기 기수를 속일 이유가 있을까?”

    “없지.”

    “졸업생이 아닌데 아카데미를 사칭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왜 그런 짓을 하지?”

    “겁을 주려고 아카데미의 위세를 빌리는 거겠지.”

    “그럼 저 사람은 우리 아카데미 사람이 아니야?”

     

    혼란에 빠진 학생들.

    지젤은 후회했다.

    나름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고쿠에게만 따로 전할 생각을 못하고 모두의 귀에 다 들리게 이야기한 탓에 학생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이 건은 함구하고 제게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위험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하급반 학생들은 눈치껏 입 다물고 물러섰다.

    지고쿠만이 용기 있게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

     

    “어쩌려는 거냐? 괜히 정체가 뭐냐고 도발했다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널 강화로 파괴시켜주마, 이지랄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일단 저 사람에게 강화를 맡겨보고 생각하죠. 전리품의 압축은 저희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조명대가 아닌 물건도 강화를 해줄까.

    그것이 그나마 걱정거리였지만 퍼거슨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강화를 하면서 조명대를 강화할 일이 많겠냐, 귀금속을 강화할 일이 많겠냐? 감추기 쉽고 티도 나지 않는 귀금속 강화할 일이 당연히 훨씬 더 많지.”

     

    퍼거슨의 말이 옳았다.

    조명대처럼 눈에 띄는 물건을 강화로 펑펑 날리는 것보다는 귀금속을 감쪽같이 강화로 해치우는 편이 훨씬 은닉성이 높아진다.

    당연히 수익을 생각하는 대장장이가 강화라는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이상, 조명대 강화보다는 귀금속 강화를 더욱 열심히 할 것이 틀림없었다.

     

    깡깡!

     

    망치질과 함께 빛이 휩싸이는 화려한 이펙트 효과와 함께 뭉텅이로 사라지는 강화재료들.

    산더미처럼 분류했던 물건들이 증발하는 와중에도 지젤의 눈은 그 원리를 파악하고 있었다.

     

    ‘물질에 존재하는 마나퍼즐을 뜯어내어 합치고 있어.’

     

    망치질은 마법사들이 입으로 주문을 영창하거나 무음상태에서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개발한 동방의 손을 이용한 인술을 시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건을 때리고 부수는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망치의 움직임 아래에서 훨씬 복잡하고 치밀한 [분해][조립][결합]이 이루어지는 것!

     

    ‘다시 봐도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군.’

     

    제국의 어둠 속에 살아가는 암상인으로 살다보면 강화꾼을 볼 일이야 간간히 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처럼 엄청난 속도로 강화를 해치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겁도 없이 아카데미의 졸업생을 사칭하는 것도 납득이 갈 정도의 속도다.

     

    ‘정확도도 장난이 아니야.’

     

    불과 한 시간 사이에 모든 강화재료를 해치우고 압축을 끝마친 퍼거슨이 대장장이용 손망치를 작업벨트에 회수하였다.

     

    “자, 이걸로 전부 강화를 마쳤네!”

    “…엄청난 실력이시군요. 새삼 감탄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의 강화사를 보는 건 처음입니다.”

    “하하. 자네 웃기는 사람이군. 고작 1학년이 어디서 강화사를 본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물어볼까.

    그가 실제로는 뭘 하는 사람인지.

    어째서 아카데미 졸업생을 사칭했는지.

    반쯤 벌어졌던 입이 도로 닫혔다.

    세상에는 건드려선 안 될 지뢰 같은 일들이 곳곳에 산적해있다.

    고관대신이 뒤를 봐주는 불법적인 사업.

    황실에 끌려가는 재능 있는 아이들.

    그들의 제국암부 정보원 육성사업을 벤치마킹하여 독자적인 장학생들을 찍어내는 와이히엠하이 재단.

    비밀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비밀도 존중한다.

    그것을 들춰내어 일어날 사태가 얼마나 끔찍할지를 알고 있으니까.

    퍼거슨에게서 느껴지는 위험함은 그 정도였다.

     

    “원하시는 바가 있다면 얼마든지 답례를 해드리고자 합니다만.”

    “되었네. 원 없이 강화를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외유였으니까. 하하.”

     

    ‘외유’란 말이지.

    한 번 밟아달라고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뢰를 뿌려대는 퍼거슨을 지젤은 이 악물고 외면하며 웃어넘겼다.

    지금은 그가 아니라도 지젤의 신경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뭐냐. 맡기면 네가 해결한다고 했으면서. 쫄기라도 한 거냐?”

    “솔직히 쫄았습니다. 지고쿠, 당신도 은연중에 느꼈을 것 아닙니까? 저 남자의 위험성을.”

    “그래서 좋지. 아아. 내 배만 있어도 전속 대장장이로 초청하는 건데. 전리품 압축이라니, 이런 굉장한 짓을 할 수 있는 녀석은 해적선에 무조건 태워야 하지 않겠냐고.”

    “최대한 편이를 봐주되 시야에서 놓치지는 마십시오. 그가 ‘외유’를 즐기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우리의 적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너, 마음이 딴 곳에 가있네. 오크노디냐?”

    “그러는 지고쿠는 오크노디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도 우리 꼬마숙녀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만.”

     

    지고쿠가 재밌는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을 하며 지젤을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도라는 건 적어도 너는 오크노디한테 마음의 빚이 있다는 건데. 아카데미에서 네가 오크노디에게 빚을 졌다고 할 만한 일은 없지 않았나?”

    “그럼 밖에서 진 빚이었겠죠.”

    “이상하네. 우리 쫄따구들한테 듣기로 네가 오크노디와 만난 건 티켓시험 때였다던데. 그때도 손오천을 호위로 고용해서 써먹었고. 네가 오크노디에게 빚을 질만한 계기는 없지 않았나?”

    “제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뭘 시치미 떼고 있어. 1학년 중에 남의 뒷조사를 제일 열심히 해왔을 인간이.”

     

    정말 사방이 지뢰투성이군.

    지젤은 못들은 척 화제를 흘려넘겼다.

     

    “오크노디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정보상인이라도 뭐든지 아는 건 아닌가보군. 하긴 우리 애들한테 뭔가를 빼내기엔 시간이 부족했겠지. 그 사람도 경솔하게 싸돌아다니진 않았을 테고.”

    “그 사람…?”

    “내가 오크노디를 왜 걱정 안하고 있겠냐. 걱정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거지.”

    “누군가가 있는 겁니까? 오크노디를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 만일 재단의 집사를 말하는 거라면 그건 오산입니다. 그 사람은 재단의 대리인일 뿐, 오크노디의 심복이라고 하기에는 불안요소가 있습니다.”

    “누가 재단사람을 말했대? 아카데미 교수가 와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수많은 지뢰를 숨 쉬듯이 지나친 지젤이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지뢰를 밟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수…?”

    “애초에 너,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냐? 아무리 나라도 저 오합지졸 견습쫄따구들을 데리고 최신식 크루즈선의 결계를 뚫고 잠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애초에 교수가 도와줬으니까 잠입했지.”

    “대체 어떤 정신 나간 교수가 해적들의 해적질을 도와가며 밀항에 동참한 겁니까? 지금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고요?”

     

    아카데미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재단에 엮이는 사태를 순순히 방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상반란이 한참인 지금은 코빼기도 내비추지 않고 어디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몰라. 여기에 없으면 다른 곳에 있겠지.”

     

    심드렁한 지고쿠의 반응을 보아 교수는 지금 크루즈선에 없는 것처럼 들렸다.

    재단의 승무원들에게도, 배의 학생들에게도 보이지 않고 사라졌다면 밀항을 도운 교수가 갈 곳은 오직 한 곳뿐이었다.

     

    “교수가 무인도에…?”

     

    선상반란을 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자신들보다 오크노디의 상태가 위험하게 보였단 말인가?

    이상하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이다.

    머릿속의 지뢰탐지기가 울렸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고 심각하게.

     

    ‘섬의 상황은 어떻지?’

     

    지젤은 지고쿠가 지켜보는 앞이라는 사실도 개의치 않고 즉시 인형과 이어진 거울을 꺼냈다.

    마도구의 저편에서는 뭘 잘못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수천 마리씩 떼 지어 모든 사물을 갉아먹는 블루메탈쥐들을 피해 보트에 오르는 자쿠와 매스각키 황녀가 보였다.

     

    ‘저기였어.’

     

    점점 줄어드는 무인도 경매장의 인원들.

    언제나 주변에 인산인해를 이루거나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곳에 있던 오크노디가 빼도 박도 못하고 무인도라는 특정 장소에 갇힌 이 순간.

    오크노디는 어느 때보다도 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경매장에 갇힌 채, 위치가 노출된다.

    그녀를 초대한 파파에 의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재단의 장학생들에게.

     

    “교수의 이름! 이름을 알려주십시오. 당장!”

    “왜 그리 난리야?”

     

    지고쿠는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제국마도학의 기초와 이해 강의를 가르치는 레이브 교수라고 했었지.”

     

    오크노디에게 명백한 살의를 품고 있는 교수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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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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