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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3

       그런데 뭐 어쩌겠어.

        

       나한테 잘못도 하지 않은 애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나는 최대한 그 죄책감을 덜어주고자 할 뿐이다. 안 그러면 앞으로 얼굴 볼 때마다 엄청나게 불편할 테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이미 레나가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이전에 조사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 있는 캐릭터였다면 내 목숨을 노리지 않는 이상은 굳이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았겠지만, 레나는 내가 원작에서 전혀 본 적이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레나가 나에게 숨기고 있는 것은, 캐릭터인 ‘디거 더 독’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

        

       “…….”

        

       하지만 레나는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자기가 동경하는 인물이 자기 뒤를 캐고 다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평소에 다른 아이들 앞에서 숨기는 것이 없는 레나라도, 특정한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밝히기 어려운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그렇게 숨길만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이쪽 세상에서 서브컬쳐란 것은 아직 태동기일 뿐이다. 영화라는 것이 막 나와서 예술로 취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고. 내가 살던 세상에서 영화 기법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이제 막 연구되고 있어서 아직 이 세상에서 영화라는 것은 ‘짧은 슬랩스틱 영상’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더하고.

        

       반대로 말하자면, 오히려 그렇게 입지가 좁기에 ‘오타쿠’라는 개념조차 생겨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 사실을 밝히는 걸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방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레나는, 겨우 마음을 다잡은 뒤 내 눈치를 한 차례 본 뒤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레나의 뒤를 따라 들어갔더니…… 내 방과 별로 차이 나지 않는 방의 모습이 보였다.

        

       뭐, 기숙사니까. 아무리 꾸며도 한계가 있다. 4년이라는 기간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4년 이후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레나의 방은 나름대로 최대한 꾸며두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일반적으로 귀족의 방은 서재와는 다른 곳이라, 방 안에 책장이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저택에서 책이 있는 곳은 서재다. 저택에서 일하거나 책을 읽을 일이 있다면 당연히 서재에서 읽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기숙사에서 모든 귀족에게 개인 서재를 제공할 수는 없기에, 아카데미의 기숙사 방에는 나름대로 커다란 책장이 하나씩 있었다.

        

       레나의 책장에서 한 개 층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열에는 인형이 가득 들어있었다.

        

       창 바깥에서 관찰했을 때도 보이긴 했지만, 막상 방 안에 들어와서 제대로 보니까 의외로 인형의 모양이 다양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의 마스코트 캐릭터처럼 각국의 전통의상 같은 것을 입고 있는 개들도 있었고, 파생 캐릭터인 듯 아예 성별이 달라 보기는 것들도 있었다.

        

       “디거 더 독이네요.”

        

       나는 괜히 아는 척을 해봤다.

        

       사실 알고 있긴 했다. 내 컨셉질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던 캐릭터이니 나름대로 연구도 했고.

        

       생긴 것은 나름대로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였지만, 솔직히 이름이 영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 개가 하는 행동을 보고 이름을 짓는 것이 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땅 파는 걸 좋아하는 개라고 이름까지 디거라고 지어놓는 것은 무슨 센스인가.

        

       그렇다고 그런 말을 이 캐릭터 애호가 앞에서 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레나가 조금 놀란 듯 그렇게 물어서 나는 다시 한번 조금 죄책감을 느꼈지만, 모른 척하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는 잘 없으니까요. 귀엽기도 하고.”

        

       “……!”

        

       내 말이 레나의 어떤 감성을 건드리기라도 한 걸까.

        

       생각해보면, 레나는 지금까지 숨겨오던 취미를 공개한 것이다. 그것도 나의 반협박에 의해서.

        

       애초에 그 약점 자체도 레나가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긴 했지만.

        

       그리고 숨기고 있었다는 건, 남들에게 알리기에는 다소 부끄러운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성인이 피규어나 게임을 사는 행동을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쪽 세상은 어떻겠는가. 심지어 군인 집안이라면 ‘다 큰 애가 인형을?’이라는 말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잠깐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한때 오타쿠였던 내 상식으로 생각건대, 원래 이런 물건 중에서는 겉보기에 비해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나가는 것들이 있다. 테디베어 같은 것도 유명한 곳에서 만들어진 것은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그 테디 베어들이 비싼 이유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며 프리미엄이 붙은 거고.

        

       그렇다면 여기 있는 이 ‘디거 더 독’ 인형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네, 괜찮습니다.”

        

       레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는 것을 듣고, 나는 적당히 인형 하나를 집었다. 아무런 옷도 입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모습의 인형이었다.

        

       손으로 잡고 살짝 눌러보니 꽤 푹신했다. 하지만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안에 들어있는 솜의 양이 생각보다 많은 것일까.

        

       “언제부터 이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까?”

        

       아무 말 없이 인형만 가지고 놀고 있기는 조금 그래서, 나는 레나가 이 인형을 모으게 된 사연을 물었다.

        

       “처음 계기는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것입니다.”

        

       “…….”

        

       어…….

        

       나는 그냥 어쩌다 이런 취미를 가지게 되었냐는 가벼운 질문을 했을 뿐인데, 어째 뒤에 엄청나게 깊고 무거운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의 도입부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레나의 사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묵직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직업 특성상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돌아온다고 연락하신 뒤에도 들어오지 못하시는 경우도 있었고요. 어머니와 저는 밤늦게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먼저 잠이 들곤 했습니다.”

        

       “…….”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밤늦게 들어와 제가 자는 모습을 보고 나가시며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신경 쓰인 모양인지, 어느 날 제 머리맡에 인형을 하나 두고 가셨습니다. 그것이—”

        

       레나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인형으로 향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소중한 거잖아. 나는 그 인형을 손에 든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다짜고짜 있던 곳에 돌려놓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일 거고, 그렇다고 손에 계속 들고 있기에는 심장이 떨렸다. 그냥 비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서투르셔서…… 편지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저는 그게 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깊게 잠들어있던 저와는 다르게 늦게라도 다시 일어나 아버지를 짧게라도 보셨던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고, 그래서 제게 아버지께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떠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 습니까?”

        

       자기 딸을 여기 파견해둔 사람이라서 그 아버지라는 양반도 황제랑 크게 다를 게 없는 인간일 줄 알았는데, 전쟁 와중에 자기 딸을 뒤로 피신시키고 머리맡에 인형도 놓아주었다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가정적인 사람인 모양이었다.

        

       “저는 아버지께 편지를 썼습니다. 사실 글에는 소질이 없어서 짧은 감사 인사 정도였습니다만, 아버지는 제 편지를 받는 것이, 그…… 즐거우셨던 모양입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표정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레나였지만,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부끄러운 감정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하긴,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이 아주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음속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훈훈한 이야기였으니까.

        

       “그 이후로 아버지는 종종 인형을 선물해주셨고, 저는…… 잘 때마다 인형을 끌어안고 잤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쭉 이어진 것입니다.”

        

       “…….”

        

       “사실 나이에 걸맞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미 버릇이 되어버린 터라 쉽게 버릇을 버릴 수는 없어서…….”

        

       큰일 났다.

        

       나는 그냥 레나가 인형 좀 좋아하는 정도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 부끄러운 점을 공유하자’라는 제안을 한 건데, 내용이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한 것이었다.

        

       “좋은 아버지시네요.”

        

       나는 머릿속을 최대한 뒤져서 그런 말을 건넸지만, 레나는 이미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깨에 코트를 걸치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셔츠를 넘어서 교복 재킷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이 보였을 테니까.

        

       “…….”

        

       나는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국 이런 말을 꺼냈다.

        

       “저도, 달콤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 어떻게든 비슷한 사연 하나 정도는 꺼내야 이치가 맞겠지. 레나가 나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면 곤란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음…

    요즘들어 연재주기가 너무 불안정해서, 차라리 연재 시간을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글을 써서 정해진 시간에 한번에 올리는 것이 독자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기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일단은 오늘까지만 불규칙하게 올리고, 내일부터는 오후 3시에 한 번에 두 화를 올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실까요?

    그리고 정기후원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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