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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3

    평화로운 거리, 한적한 골목을 지나면 어디에나 있을 법 한, 동네 인형가게가 있었다.

     

    훌륭한 수제 인형과, 인형 옷 주문제작, 그리고 인형의 수리까지, 인형에 관련된 거라면 뭐든지 가능한 이 인형점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평판이 좋았다.

     

    가게의 유리 진열창에는 곰이나 토끼나 사자 같은 동물의 형상을 따서 만든 귀여운 인형이나, 곱게 차려입은 예쁜 소녀의 모습을 한 인형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아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인형가게의 이름은 ‘메를린 인형점’.

     

     

    딸 아이의 생일 선물로 줄 인형을 구하는 데에는 이 근처에 이만한 가게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안타깝게도 문을 닫았다.

     

     

    잠긴 문을 흔들어보고 나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어느 가정의 아버지는 낭패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어제 미리 사 두었어야 했던 건데 말이다.

     

    —–

     

    솜과 천, 바늘과 실, 만들어진 인형과, 만들어지다 만 인형이 가득한 방.

     

    검은 머리칼의 한 여성이 테이블에 놓인 램프의 불빛에 의존하여 고아하게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옷을 만드는 것 같아 보였지만, 도저히 사람이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주변의 다양한 인형들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인형의 옷이라 추측할 수 있으리라.

     

    마침내 완성된 옷은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조그맣고 빨간 스웨터였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순간.

     

    -콰직!

    -타다닥!

     

    돌연 공방의 문이 부서지며 파편이 비산한다.

    여러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어두운 방 전체에 퍼진다.

    그리고 마침내, 앉아 가만히 인형 옷의 제작에 몰두하던 여성에게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저벅, 저벅, 저벅.

    -탁, 탁, 탁.

     

    집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기는 했으나, 그들은 단순한 도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건장한 체격이었으며, 지팡이와 흉기를 손에 하나씩 쥐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강도라고 해도, 저택 하나를 털기 위해서 동원되기에는 머릿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하지만 이 당혹스러울 만 한 상황에서도, 검은 머리의 그녀는 별 감흥이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인형 옷을 잠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안경도 벗어서 방금 만든 붉은 스웨터 곁에 조심히 내려놓으며 의자를 빙글 돌려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지?”

     

    여자의 목소리에는 별 힘이 없었다.

    곧 벌어질 일을 알고 체념한 것일까?

    그런 그녀를 향해, 괴한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메를린, 그분께서 당신을 치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겉으로는 이 소박한 인형가게의 주인이지만, 인형가게는 그녀의 취미와 같은 것이고 사실 그녀는 뒷세계에서 사용될 암살자들을 길러내는 교육자였으니까.

     

    죽음의 인형사, 메를린.

     

    그녀의 손으로 길러진 암살자들은 어떤 감각에도 구애받지 않는 차가운 심장을 지녔기에 ‘인형’으로 불리운다.

    암살자를 키우는 것과 인형을 만드는 것은 그녀에게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그녀의 커리큘럼은 고아, 실험체, 동물,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알았군.”

     

    그녀는 자신이 하던 일, 그러니까 뒷세계의 교육자에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완전히 질려버린 탓이었다.

    이제는 늙기도 했고, 돈도 충분히 모았으며, 영향력도 크니 안전하게 발을 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이 바닥에서의 관계는 아주 복잡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은퇴계획에서 후환이 될 수 있을 만한 씨앗들을 하나하나 쳐내가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자신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닌 딜런트 헤스리엘을 죽이는 것에는 애를 먹었다.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그가 혼자서 죽어버린 덕분에 그녀는 이제 안심하고 이제야말로 은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나 뒷세계는 자신에게 이만큼 깊이 발을 들인 그녀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사실 그녀도 알았다.

    그 누구보다 완벽주의자인 ‘그 자’가, 자신의 목을 치리라는 것은.

     

    늙은 사냥개가 사냥이 끝난 후에 버려지는 것은, 흔한 이야기니까.

     

    “어쩔 수 없나…….”

     

    메를린은 넋이 나간 듯이 웃었다.

     

    이왕이면 ‘메를린 인형점’을 그대로 상표로 쓰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인형가게 이름은 다른 걸로 다시 만들어야 할 성싶다.

     

    ——-

     

    치과에서 잔뜩 겁을 먹었던 파이리스는 현재, 콧노래를 부르며 냉기마법과 부분적 헤이스트가 인챈트 된 회복패치 너머로 제 볼을 꾸욱 꾸욱 누르고 있었다.

    마취 때문에 볼에서는 전혀 누르는 느낌이 나지 않는데, 손가락으로는 무언가를 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게 참 신기한 모양이다.

     

    “흐음, 흠~.”

    “마취가 그렇게 신기한가?”

    “응! 진짜 볼에 느낌이 하나도 안 나! 내 볼인데, 다른 사람 볼 같아!”

    “하하, 그렇겠구나.”

     

    루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모든 감각이 살았음에도 정확히 볼만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니, 신기할 법도 하다.

    그것도 감각 대부분이 신기한 파이리스에게는 더더욱 독특한 자극이리라.

     

    하지만 그게 권장되는 행위는 아니었다.

    루크는 치과의사가 진료를 마치고 말해주었던 주의사항을 파이리스에게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도, 너무 세게 누르진 말거라. 출혈이 도질 수 있으니.”

    “응.”

     

    하여간 대답은 잘 하지만, 여전히 볼을 꾹 꾹 누르는 저 손짓은 그만 둘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에휴.”

     

    하지만 루크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까부터 계속 말했는데, 또 말한다고해서 알아들을 것 같지고 않고.

    그리고 파이리스라면 그냥 놔둬도 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파이리스는 먹은 것의 마나로부터 제 육신을 구성하는데, 만약 자신의 피를 먹는다면 별 손실 없이 그대로 다시 육신을 구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건 파이리스에게 교훈으로 남겠지.

    이번 치과의 일처럼 말이다.

     

    “또 치과에 와서 주사 맞기 싫으면 앞으로는 이를 잘 닦아야겠지?”

     

    파이리스는 한번 몸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응! 파이리스, 앞으로는 이 잘 닦을 거야!”

     

    주사라는 것은 병원에서 가장 많은 두려움을 받는 대상이므로,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파이리스 역시 주사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토록 주사를 무서워하던 파이리스가 이를 뽑거나 갈아내는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진료를 받는 것을 본 예르나는 또 다른 의미로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치과진료는 다행히 그렇게 무사히 끝났다.

     

    그 결과, 너무 많이 썩은 이빨을 하나 뽑았고, 나머지는 이빨을 갈아내고 보철물을 끼워넣었다.

    파이리스는 그 갈아내는 도구를 굉장히 두려워했지만, 막상 마취 때문에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자 지금처럼 굉장히 신기해했다.

     

    문제는 그 치료비용이었다.

    다행히 보험이 적용되는 아이라서 그렇게 큰 값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루크에게 22만 길은 꽤나 큰 돈이었다.

    그 가격을 들은 루크는 순간적으로 ‘그냥 내가 서클의 밸런스 따위 고려하지 말고 신성력을 쓸 걸 그랬나’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르나는 꽤 흔쾌히 그 가격을 지불했다.

    그 모습을 본 루크는 자신이 반드시 큰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매번 자신과 파이리스가 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다 문득, 파이리스가 활기차게 물었다.

     

    “언니, 나 근데 이제 안 아픈데, 밥은 언제 먹을 수 있어?”

    “마취는 두시간 있으면 풀린다니까, 밥도 그 때부터 먹을 수 있을 게다.”

     

    두시간이라는 말을 들은 파이리스는 크게 좌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응……. 나 배고푼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마취한 채로 뭘 먹다간 볼이나 혀를 씹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이를 잘 닦거라.”

    “응…….”

     

    두시간동안 뭘 먹지 말라는 것이 그리도 충격적인 말이었을까?

    파이리스는 잔뜩 풀 죽은 표정으로 변해 빨리 집이나 가자는 듯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한지, 마치 소나기라도 맞은 강아지같다.

     

    “…….”

     

    조금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것도 자업자득이었다.

    자신이 항상 이를 닦으라고 말하면 무시하던 것은 파이리스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저렇게 풀 죽은 모습을 보면 뭔가 달래주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루크는 발걸음 속도를 늦춰 파이리스의 곁에 다가가 손을 잡으며 파이리스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나온 김에 오늘 저녁 재료를 사러 가자꾸나. 두시간 뒤에 먹을 것 말이다.”

     

    루크의 말에는 예르나도 맞장구쳤다.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파이리스가 먹을 죽 재료는 없으니까.”

     

    아무리 현대 마법의학이 발달했다지만, 마취가 풀리자마자 바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부분적 헤이스트와 현대식 포션의 도움을 받더라도, 이를 빼고 하루 정도는 죽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

     

    아무래도 맛이 어떨 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태껏 ‘죽’이라는 것은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내, 파이리스는 활짝 웃으며 외쳤다.

     

     

    “기대된다!”

     

     

    그렇게, 파이리스는 그날 처음으로 죽을 먹었다.

     

    맛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리스는 그냥 맛 없는 게 없다….ㅋㅋ

    근데 마취하면 하루 왠종일 풀릴때까지 거기 눌러대는거,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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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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