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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3

        

         

       “예, 예?”

         

       이제순은 괴한의 충격적인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이세요? 장작이라뇨. 타버린 장작이라뇨…?”

       “그 말 그대로일세. 타버린 장작이 잿더미가 되었다면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순 없지 않겠는가?”

         

       괴한은 사형선고를 내리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수첩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했고, 점차 절망감이 퍼져나가는 기자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합니까 저는?”

       “허허허. 그걸 왜 나에게 묻나?”

         

       괴한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선물을 주었고, 자네는 사용했지. 그저 그뿐일세. 거기에 무어 더 들어갈 것이 있는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런 걸 줬으면…!”

         

       이제순은 남 일처럼 말하는 진성의 태도에 욱하면서 소리를 쳤다.

       하지만 소리를 치자마자 자신이 무엇을 한 것인지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닫았고, 혹여 괴한이 화라도 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순은 괴한이 계속해서 눈웃음을 짓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크흠. 그 뭐냐, 어르신?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리하게나.”

       “어르신. 제가 그, 수첩이 꼭 필요합니다. 진짜로 필요해서 그러는 건데,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네?”

       “허허허. 말하지 않았는가? 타버린 장작을 어찌 원래대로 돌린단 말인가?”

       “아니, 타버린 장작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 이렇게 멀쩡하게 있는데…!”

         

       이제순은 완강하게 안 된다고만 말하는 괴한 때문에 언성을 조금씩 높였다.

         

       “이보게. 껍데기가 멀쩡하면 그건 멀쩡한 게 맞는가?”

       “그렇…아니, 아닙니까…?”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서 불을 지피면 장작은 재가 되지만 아궁이는 멀쩡하지. 그런데 그게 진정 멀쩡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괴한은 본질에 대한 것을 이제순이 이해하기 쉽도록 말했다.

         

       겉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본질이라고.

       그리고 이 수첩 안에 들어있는 ‘본질’은 이제는 재활용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그저 사실을 늘어놓듯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이제순은 잠시 절망한 듯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하지만 이내 떠오른 것이 있는지 고개를 확 올리며 물었다.

         

       “그, 그렇지! 어르신! 그럼 그 수첩과 똑같은 물건이 있습니까?!”

       “똑같은 물건이라?”

         

       괴한은 이제순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없다네.”

         

       단호하게 말이다.

         

       하지만 이제순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그, 비슷한 물건! 예, 비슷한 물건이 있습니까? 수첩처럼 생기지 않아도 좋습니다.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면 족합니다, 어르신!”

       “허허허. 비슷한 물건이라. 그 역시도 없다네.”

         

       하지만 괴한은 이제순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말을 내뱉었다.

         

       “이보게. 내가 역으로 묻겠네. 그런 물건을 어디 구하기가 쉬울 것 같은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어르신은, 어르신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제순은 절규라도 내지르듯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괴한은 그 외침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 인지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와 똑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러했지.”

         

       그렇다.

       그는 분명히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자네에게 주기도 했어. 그래. 그게 맞지.”

       “그럼…!”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하나밖에 없는 것을 자네에게 주었네. 더는 없어.”

       “아니, 그 무슨…!”

         

       이제순은 괴한에게 빌 듯이 외쳤다.

         

       “그렇다면 어르신! 구해주십시오! 비슷한 거라도 어떻게든 구해주십시오! 제가 진짜 그…그래! 돈, 돈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드릴 수 있는 모든 재산을,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구해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허.”

       “제가 꼴이 이렇긴 한데 그래도 모아놓은 돈이 어느 정도 되기는 합니다! 그, 억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만 원 정도는 있습니다! 이 정도면 목돈 아니겠습니까? 그 돈을 모두 드릴 테니 비슷한 것을 어떻게든 구해주시면, 예! 어떻게든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허.”

         

       괴한은 돈을 주겠다는 기자의 말에도 심드렁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돌멩이를 내밀면서 ‘이거 되게 어렵게 구한 건데, 이거 줄 테니까 빵 하나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는 듯했다.

         

       이제순은 괴한이 돈을 주겠다는 제안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 그래! 돈이 그렇다면…. 집! 집을 드리겠습니다! 예! 시골에 제 명의로 된 집이 있습니다! 집값이 꽤 올라서 몇천 정도는 되고, 나름 경치도 좋고 공기도 좋은 곳입니다! 거기를 그냥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집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러면 정보는 어떻습니까? 제가 기자 유망주입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제가 온 힘을 다해서 얻어오겠습니다!”

       “허허.”

       “혹시 기사? 기사 필요하십니까? 제가 인맥이고 제 능력이고 모두 동원해서 좋은 기사를 써드릴 수 있습니다. 제 기사 몇 번이면 아마 전국에서 부자들이 돈을 싸 들고 찾아뵐지도 모릅니다!”

         

       이제순은 최선을 다해 제의했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을 진성에게 절박한 태도로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심드렁하게 그의 말을 웃어넘길 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 모습은 허허롭되 신비롭지 않았고.

       그가 두르고 있는 분위기 때문인지 더없이 불길하게 느껴졌다.

         

       “…어르신? 설마.”

         

       넘치는 불길함은 싸늘하게 이제순의 몸을 휘감았다.

         

       “설마…영혼, 같은 거라도…?”

         

       이제순은 온몸에 엄습해오는 불길함을 이기며 간신히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허허, 영혼이라.”

         

       영혼이라는 단어를 듣자 반응을 보이는 괴한의 모습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

         

       “그래, 젊은이. 영혼, 영혼….”

       “허억….”

       “혼과 백, 백과 넋, 넋과 영혼…. 영혼이라!”

         

       괴한은 방긋 웃으며 이제순의 양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 느낌은 마치.

       마치.

         

       사람 크기의 벌레가 잡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젊은이. 영혼을, 정말로 영혼을 팔 생각이 있는가?”

       “허억, 아, 아닙니다! 제가 말, 말실수를.”

       “아니야, 나는 보았네. 자네의 눈에서 각오를 보았어. 자네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을 팔아넘길 수 있는 각오를, 그 각오를 똑똑히 보았단 말이네.”

         

       괴한은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그의 두 눈동자는 공포의 불길을 담고 있기라도 한 듯 푸른 빛을 내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고, 그 귀화(鬼火)의 끄트머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바싹 마른 시체의 손아귀 모양을 만들었다.

         

       그 푸른 불꽃의 손아귀는 매끄러운 유리처럼 이제순의 얼굴을 비췄다.

         

       한껏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을 말이다.

         

       “제가 실수, 실수했습니다! 말실수했어요. 영혼은 팔지 않, 팔지 않겠습니다!”

       “허허허.”

         

       이제순은 끔찍한 공포에 휩싸였다.

         

       눈앞의 괴한이 정말로 자신의 영혼을 빼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풀려버린 다리는 쉽게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으며, 그의 허리 역시 제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괴한의 손아귀는 그의 어깨를 꽉 잡은 채 그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를 땅에 짓누르고 있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가 일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기에 그는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헛된 발버둥이었다.

         

       괴한은 그 헛된 발버둥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입을 닫았다.

       다만 그가 힘을 완전히 빼버릴 때까지 어깨를 꽈악 짓누를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순이 힘이 다 빠져서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을 때,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보게 젊은이. 왜 그리 겁을 먹었는가?”

       “그, 그….”

       “이보게. 젊은이. 나는 말이야. 자네의 영혼이 필요가 없어.”

         

       괴한은 이제순을 안심시키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음정이 이리저리 튀는 쇳소리는 안심은커녕,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과 가치가 없는 것은 같은 말이라네. 자네의 영혼은 자네에게 있어선 값을 매길 수 없겠지만, 나에게 자네의 영혼은 가치가 없어. 그러니 나는 자네의 영혼이 필요가 없네.”

         

       그는 자신이 해가 없다고 알리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순의 머리는 그 말에 숨은 또 다른 뜻을 알아차렸다.

         

       ‘영혼을, 거래할 수 없다는 말이 없는데…?’

         

       괴한은 이제순의 영혼이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영혼을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없었고, 영혼을 거래할 수 없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가치를.

       이제순의 영혼의 가치를 말했을 뿐이었다.

         

       이제순은 그 사실에 더더욱 공포에 질리고야 말았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영혼을 가져갈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

         

       ‘씨, 씨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영혼을 가져갈 수 있다.

       이상한 힘을 가진 물건을 다룬다.

         

       이게 사람인가?

       괴물이지.

         

       “그리고 말이야. 나는 자네가 무엇을 제시하던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네.”

       “그, 게 무슨 말씀이신…지?”

       “대가를 받으면 그건 선물이 아닐 것이니.”

         

       괴한은 벌레 같은 황금 가면을 스윽 기울였다.

         

       “선물이라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흐. 그리고 난 자네에게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아. 그래, 나는 자네에게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네. 나는 상인이 아니니 대가를 받고 무언가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요, 나는 속물이 아니니 호의로 준 선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요, 수리공이 아니니 준 선물을 고쳐 달라는 것 역시 받지 않을 것이네. 그리고 나는, 그래. 적어도 나는 자네에게 또 다른 선물을 줄 생각 역시 없어.”

         

       단지 그뿐이야.

         

       괴한은 그렇게 말했다.

         

       “어르신! 그게 무슨, 어르신께서 수첩을 처음 줄 때, 다른 선물을 원한다면 이곳으로 오라고! 이곳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러했지.”

       “그런데 그때랑 왜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다른 말이라니.”

         

       그는 이제순의 따지는 것 같은 말에 이렇게 답했다.

         

       “전혀 모순되지 아니하네. 나는 선물을 줄 생각이 없으나, 자네가 다른 이들에게 호의를 사서 그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네, 네?”

         

       이제순은 괴한의 말에 눈동자를 굴려 황금 가면을 쳐다보았다.

         

       어두컴컴한 곳에 있기 때문일까?

         

       “자네는 말이야. 영혼까지 팔 각오가 있었어. 그렇다면 쉬이 호의를 사고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가면이.

       저 벌레를 닮은 황금 가면이.

         

       “자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흐. 그들을 부르고, 호의를 사고, 선물을 받아보게나. 그리한다면 자네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저 딱딱한 가면이….

       방금 웃지 않았나?

         

         

         

        * * *

         

         

         

       요정을 만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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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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