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94

       이프리트가 죽었다.

       

       이에 따라 화계마도사들은 팔 한 짝을 잃었다. 금안족처럼 두 짝 모두 잃은 건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조만간이겠지.

       

       “…솔직히 쌤통이라고 생각해요.”

       

       잠깐의 휴식 시간.

       

       주방에서 진흙 쿠키 비스름한 걸 굽던 레니냐가 그런 화두를 꺼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그야 엘프들이 저희를 장애인이라고 욕했으니까요.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금안족에게 설움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걸 여태껏 참아왔던 소녀가 바로 레니냐였다. 엘프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레니냐였고.

       

       그랬던 아이가 순진무구함을 허물 벗듯이 벗어던지다니.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레니냐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지나가듯 풀어냈다.

       

       “마법을 못 쓴다는 게 그렇게 멸시받을 일인가요? 그동안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지금 와서 자기들도 위험하니까 저렇게 매달리는 것 좀 보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와줘야 한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뀔 것 같아요.”

       

       이 빨간 머리 제자도 알게 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그 점이 역겨웠고, 레니냐도 똑같은 과정을 겪는 중이었다.

       

       여기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타락하고 말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그래,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

       “선생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나요?”

       “처음부터 알기는. 다 당해보고 난 뒤에 알게 되는 거지 뭐.”

       

       마왕을 쓰러뜨리더라도 금안족의 미래는 밝지 않다.

       

       마왕이 죽는다? 다음 목표는 당연히 나다. 엘프들은 흑주라는 카드를 지닌 나를 고깝게 여길 것이다.

       

       아마 금안족이라는 프레임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겠지. ‘금안족은 모두 마왕군이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만들어서 말이다.

       

       레니냐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이런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어떻게요?”

       “지금 잘 봐둬. 선생님이 어떻게 하는지.”

       “네.”

       

       레니냐와 나는 다과와 에이드 몇 잔을 차려 정부 인사들 앞에 내놓았다.

       

       관료 상당수가 하이엘프 출신이었기에, 금안족 웰메이드 진흙쿠키를 본 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해롱거렸다.

       

       간식 시간을 마친 뒤 협상이 재개됐다.

       

       “아까 보신 통계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국민은 에테르 선생님을 존경하고 계세요.”

       “국민은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입법부의 입장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입법부요?”

       “네. 입법부요.”

       

       입법부, 즉 국회.

       

       “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은 곧 국민의 대표단이죠. 실제 국민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의원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일 아닐까요?”

       

       국회의원들은 표를 못 받으면 그대로 밥줄이 끊기거든.

       

       세상 그 누구보다도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그렇습니다….”

       

       정곡을 찔린 모양인지, 장관들이 차례로 말을 더듬었다.

       

       이거 보나마나였다.

       

       지금, 행정부와 입법부가 따로 놀고 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상원 100명, 하원 500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을까요?”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어떻게 민주정에 대해 이리도 잘 알고 계십니까…?”

       “글쎄요.”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대화의 요지는 그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무튼, 그분들께서 저를 너른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인즉……?”

       

       외교부장관이 눈매를 샐긋 올리며 의문을 표한다.

       

       사실 외교당국자라면 이게 어떤 말인지는 알 것이다.

       

       그런데도 레니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과감하게 말을 던지기로 했다.

       

       “제가 어떤 마도를 연구하든, 마왕군이 저 폭탄을 몇 발이나 떨어뜨리든, 전부 제 책임이 아니라는 보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국민 여러분과 제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계약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가 아니라면 안심 못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위시한 각 부처 장관들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그야 그렇겠지.

       

       국민 중 내가 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6할을 넘어간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방금 내 말은 마수에게 나라의 권익을 일부 팔아버리라는 소리였다.

       

       즉, 매국하라는 뜻인데. 그걸 국민이 과연 허락할까?

       

       “자세한 이야기는 의원님들의 허락을 받은 이후에 진행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늦어도 일주일 내에 회의 일정이 잡히길 고대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까지 내게 굴복할 것.

       

       흑주 개발 관련 이야기는 그 뒤에 논의하되, 회담을 거쳐 전후처리도 같이 논의할 것.

       

       마지막으로, 다음 회의에선 제국 패널도 참여시킬 것.

       

       “알겠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밀물처럼 들어온 행정부 인사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뒤로 이틀이 지나는 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 선생님!

       – 에테르 선생님, 제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 마왕군이 지척까지 와 있습니다!

       

       5백 명에 달하는 의원이 레니냐의 집으로 찾아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머리를 박은 채 구원을 호소했다.

       

       일부 나오지 않은 의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진 사퇴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언론사에 생생하게 보도되었다.

       

       이제 금안족의 거주 구역에 돌을 던지는 몰상식한 놈은 없었다.

       

       

       **

       

       

       카우렐리아의 의원들이 에테르에게 차례차례 대가리를 박는 동안.

       

       일기가성으로 진격한 마왕군은 카우렐리아 국토의 4할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중간중간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엘프들의 전의를 상실시켰고, 남쪽 해안에서도 길라흐의 군대가 북상하여 전선을 개척했다.

       

       극도로 불안해진 카우렐리아의 정세 속에서, 레니냐는 에테르가 하는 바를 유심히 보고 들었다.

       

       ‘왜 나가질 않으시는 거지?’

       

       처음에는 모든 게 의문이었다.

       

       왜 선생님이 엘프들을 도와주지 않는 것인지. 저리 높으신 분들이 오는데도 왜 문 한 번을 열어주지 않으셨었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자신이 만든 폭탄이 엘프들을 죽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것조차도 연기라고 거짓말을 하시는지.

       

       – 선생님과 친하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왜 그분들에게는 아무것도 얘기해 주시지 않는 건가요?

       

       언젠가 그리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에테르는 ‘로테 살리에르’라는 동급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 네 급우이기도 한 로테는 내가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다. 그런데 말이야, 걔는 지나치게 순진해. 너무 착해 빠졌다고. 내가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 그 즉시 꾸중할 거야.

       

       그러면서 선생님은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

       

       전자에겐 거짓말을 해서라도 지켜주고 싶다. 끝까지 실망시켜 주고 싶지 않다.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때 레니냐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선생님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돌이켜 생각해도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선생님의 동공이 잠시 흔들리더니, 곧바로 변명거리를 꺼내셨다.

       

       – 너 또한 믿을 만하지. 믿을 만한 동시에, 금안족이기 때문에 따로 얘기해 두는 거란다.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한 선생님의 얼굴이 우수에 젖었었다. 마치 이 전쟁이 끝나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처럼.

       

       예컨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저는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카우렐리아에 더는 체류할 생각이 없거든요.”

       

       정부 고위인사들이 모인 비밀회의.

       

       이곳에서, 선생님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뇌며 엘프 관료들을 안심시키려고 했다.

       

       “정말 떠나실 생각입니까?”

       “예. 르네이 총장님께 드린 서류가 있습니다. 그걸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사직서잖아요!”

       

       일리야드 마도 아카데미의 교수직.

       

       절대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있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직위.

       

       그런데 그걸 발로 뻥 차 버리시다니.

       

       “전쟁이 끝난 이후에 어디서 무얼 하실 생각이죠?”

       “떠날 겁니다. 여기서 아주 머나먼 곳으로.”

       

       선생님은 허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마치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듯한 행동.

       

       무언가 꺼림칙하다.

       

       “아무튼…. 입법부와 행정부 여러분께서 괴물인 저를 받아들여 주시다니,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이전의 회의를 통해 예산을 확보한 선생님이었다. 카우렐리아 재정의 상당수가 그녀의 손에 쥐어진 셈이다.

       

       행정부 인사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요구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포로는 국제법에 따라 처벌할 것, 제가 지목한 몇몇 금안족에 대해선 처벌을 묻지 않을 것, 제국인의 고토 회복을 위해 대륙 중부를 옹골지게 비워놓을 것, 수인족과 금안족에 대한 차별을 멈출 것.”

       

       마지막으로 연구 예산과 인력을 자유롭게 빼다 줄 것까지.

       

       “이 정도만 지키시면 마왕군 격퇴를 보장드립니다.”

       

       선생님은 피곤한 눈을 비비시며 요구사항을 재확인했다.

       

       이때 레니냐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이 얼마나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지를.

       

       ‘엘프는 믿기 힘드신 거야. 그러니까 제국인이랑 남은 금안족을 같이 살게 하려고…….’

       

       이대로 전쟁에서 승리하면, 누구만 이득인가?

       

       에테르 선생님은 엘프들이 대륙 중부까지 확장하는 걸 원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간 금안족은 천 년 전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게 뻔했으니.

       

       반면에, 인간이나 수인족은 아니었다.

       

       수인족은 원래부터 그 세가 약했고, 인족은 제국이 패망하면서 금안족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 화계를 다루는 인간들은 이프리트의 죽음 때문에 마도능력이 쇠락해진 상태.

       

       ‘합종(合從)이구나!’

       

       약해진 자들끼리 모여, 강대한 엘프를 상대로 연합하는 책략을 이룬다.

       

       이것이 마왕 이후 금안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역시 연방을 세워야 한다는 삼촌 말씀이 옳았어.’

       

       레니냐는 그리 다짐하며 금안족을 위한 연방국가 건설을 떠올렸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나서도 할 일이 많으리라.

       

       “그럼, 이곳에 서명과 인장을 부탁드립니다.”

       

       한편, 엘프들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각 부처의 장관이 떨리는 손으로 인장을 찍었다. 레너윌 하스펠트를 위시한 제국인들도 급하게 만든 옥새를 준비했다.

       

       총 열여섯 장에 달하는 문서에 무수한 도장이 찍힌다. 어느덧 전신에 문신을 한 것처럼 화려하게 변한 공문서.

       

       레니냐를 포함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에테르는 마지막으로 해당 문서에 서명했다.

       

       “그럼, 저는 지금부터 연구하러 가겠습니다.”

       

       카우렐리아 어느 섬의 이름을 딴 계획.

       

       ‘아이비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병원에 가는 것이에요

    재채기가 멈추질 않는 것이에ㄴㅇ러ㅏㄴㅇ미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