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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4

       “그건 알고 있습니다.”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는 레나를 보고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맞다.

        

       다 기억한다고 했지.

        

       기억이 없다가 다시 나타난 사람들과 원래부터 기억하고 있던 나의 격차는 이런 것이다. 인제 와서 이상을 깨달은 사람들과 애초에 이상하다는 감각 자체가 없던 나.

        

       그렇다면 당연히, 레나는 내가 카페에서 시간을 돌려가며 파르페를 종류별로 다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

        

       어, 그러니까…… 그래, 사실 레나가 말해준 것보다는 너무 가벼운 말이긴 했다. 딸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버지가 해주신 선물에 비교하면 달콤한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물릴 수도 없다. 그런 능력은 이미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최대한 말을 길게 늘려서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저는 부모님이 없는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 내가 시간을 돌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시절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나는 얻어맞은 다음에야 시간을 돌리는 법을 깨우쳤기 때문에, 내가 고아원에 있던 그 시절은 내가 이쪽 세상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낸 얼마 안 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온전하게 거짓 없이 말해줄 수 있는 과거이기도 했다.

        

       내 말을 들은 레나가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 불행 자랑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그런데, 그래도 일단은 이 정도라도 해두지 않으면 레나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 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손에 인형을 든 채 발을 옮겨, 레나 방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깨달았을 때는 고아원이었죠. 사실 당연한 일입니다. 저라는 존재가 여신 때문에 생겨났다면, 당연히 친부모라고 할만한 존재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레나도 조심스럽게 내 앞자리에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아원에서 먹는 음식은 빈말로도 맛있다고 할 수 없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에 그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먹었어요.”

        

       반만 맞는 말이다. 음식 자체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별다른 간도 되지 않은 채 차갑게 식은 오트밀은 식감도 맛도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음식이라도 주린 배에 들어가면 먹을만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쓰레기일지 몰라도, 생존을 위해 입 안에 넣으면 그 멀건 국물 안에 작게 들어있는 견과류의 고소함이 조금이나마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나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대부분 나눠주고, 아주 적은 양만 먹었다.

        

       그건 내가 성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앞에서 굶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으니 차마 내가 내 몫을 다 먹을 수 없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미 불행한 미래가 예정되어있는 애들을 굳이 더 힘들게 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포자기였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를 구원할 방법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유기견을 안락사하는 수의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만하게도.

        

       “그러다가 겨우 고아원을 벗어나고, 황녀가 된 이후에야 음식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음식이 맛없다 맛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궁 음식까지 맛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빵과 고기의 조합이 맛없을 수가 없다.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아주 맛있었다.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도 고급으로 분류될만한 음식들이리라.

        

       특히 고아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그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든 음식들은 다름이 아니라,

        

       “저는 특히 달콤한 디저트들이 좋았습니다.”

        

       뭐, 그런 거다.

        

       그 카페에서 먹은 파르페는 특히 맛있었다. 먹고 나서 표정이 흐물흐물 흘러내렸을 만큼.

        

       내가 어째서 이렇게 단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딱히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전생의 나도 단 걸 좋아하긴 했지만, 그냥 남들 좋아하는 정도로만 좋아했으니까. 파르페를 종류별로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마 그 이유도 그런 음식들을 먹지 못하던 시절 때문에 생긴 거겠죠.”

        

       군대에서 훈련소 기간이 끝난 뒤 먹는 단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으려나.

        

       어쩌면 본능적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니 즐겨두자는 마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그런 과거를 한 번 겪었으니까.

        

       “…….”

        

       레나는 잠깐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저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니까요.”

        

       레나가 저런 말투, 저런 행동을 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존재가 결정적이겠지. 억지로 군인으로 키웠다기보다는 군인인 아버지를 동경해서 따라 했을 거다. 솔직히 쌍권총 같은 건 군대에서 쓰기 애매하잖아. 어쩌면 레나의 아버지라는 사람도 제니퍼처럼 특이한 전투법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

        

       “어차피 모든 사람이 살아온 방식은 다 다른 법이니, 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온전히 딸로 받아들여진 클레어. 피가 섞였지만, 아버지에게 등한시된 앨리스. 무척 바쁜 아버지의 딸이었지만, 가정 자체는 분명히 화목했다고 할 수 있는 레나.

        

       누군가가 불행했다고 해서 누군가가 행복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애초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전부 다른 거니까.

        

       ……어떤 하나를 ‘행복’이라고 정해두고 그대로만 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국의 황녀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렇게 빈궁한 것이라니, 조금 놀랍죠?”

        

       “아, 아닙니다.”

        

       내가 다소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하자, 레나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여기에 쐐기를 박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기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앨리스나 클레어는 확실하게 알고 있고, 레오도 들어서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비밀이라는 것은 진심이었다.

        

       샤를로트는 내가 ‘제국산’파르페를 먹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조금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미식의 나라 벨부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그런 보통 수준의 파르페를 먹고 행복해하는 것은 불행해 보였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샤를로트가 나의 과거에 대해서 온전하게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자존심은 있다. 아니, 자존심이 강하니까 지금까지 진짜 성격을 숨겨온 거다.

        

       나는 친구와 동등한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나를 불쌍해하고 내려다보는 친구가 아니라.

        

       “알겠습니다.”

        

       레나가 나의 의사를 어디까지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봐서는 적어도 레나 입에서 이 이야기가 퍼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럼, 저희는 서로 비밀을 공유한 사이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나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솔직히 이번에도 살짝 질투심이 일었다. 내가 아무리 연습하고 시간을 돌려도 이 자연스러움에는 따라갈 수 없을 거다. 애초에 레나의 행동은 연기가 아니니까.

        

       “아……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으로 가더니 서랍을 열고 뭔가 주섬주섬 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작은 물건을 찾아서 내 쪽으로 다가온 레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펼쳐보았다.

        

       ‘디거 더 독’의 작은 버전이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그 인형은 도자기 같은 재질이었다. 머리 부분에 핀 하나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 핀에는 다시 동그란 고리가 달려있었다. 내가 살던 세상의 스테인리스는 아니었다. 아마 철인 것 같은데, 힘으로 구부려서 여닫는 방식의 다소 무식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다만 이건 시대상을 감안해야 한다. 아직 열쇠고리 같은 것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은 아니니까. 재료공학도 막 발전하는 중이고.

        

       나는 말없이 그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레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드리겠습니다.”

        

       레나는 눈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것도 아버지께서 주신 것일 텐데요.”

        

       “그러니까 드리는 겁니다. 황녀님이라면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을 알기에.”

        

       “…….”

        

       나는 잠깐 내 손 위에 올라와 있는 그 작은 강아지 열쇠고리를 바라보다가, 손에 살짝 힘을 주어 쥐었다. 조금 전까지 레나의 손에 있었던 덕분인지 조금 따뜻했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건, 우정의 증표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내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레나는 내 표정을 보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레나의 귀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향에는 또래가 없었던 걸까. 문득 궁금증이 솟아올랐지만, 나는 굳이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정말 친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남의 비밀을 파고드는 것은, 이쯤 하기로 하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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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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