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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4

    어스름이 어느덧 어둠으로 변하고, 그림자가 골목을 덮을 무렵.

    한 여성이 벽에 기대어 담배를 빼어물었다.

     

    분명 담배는 끊었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너무나 피곤해서 마력초의 연기라도 들이마시지 않으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푸후우우-.

     

    그녀는 연기를 밤공기에 흘려보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록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편 어딘가에 있을 별들을 상상하며, 자신이 만들어낸 구름이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피우니 몸이 안 받는구나.’

     

    그녀는 꽤 오래 금연을 한 데다가, 현재 피우고 있는 담배도 시중에 파는 일반적인 담배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버티지 못 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고작 이 담배 따위가 아니라, 수많은 ‘인형’들의 죽음이었으니까.

     

    인형사, 메를린.

    그녀는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시체들 사이에서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못난 어미를 두었구나.”

     

    전투가 벌어진 순간,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메를린의 ‘인형’이었다.

    그녀는 이런 일이 있기 아주 오래 전, 이미 조직 내에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줄 ‘인형’을 심어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 덕분에 메를린은 그가 오늘날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도 미리 알 수 있었고, 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리 치밀하게 준비해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낸 숙청자들의 수준은 너무나 뛰어났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모든 인형을 잃는 큰 희생 끝에, 간신히 그들이 물러나게 만들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는 결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메를린은 이 것보다 더 좋은 수를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

    제자들에게 연락을 보냈다면 다들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와 싸워주었을 테지만, 메를린은 그리 할 수는 없었다.

    제자들의 죽음 보다야, ‘인형’의 죽음이 훨씬 낫지 않은가?

     

    ‘그’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므로.

     

    하지만 메를린은 인형사였다.

    인형을 만들고, 극을 꾸미는.

     

    그녀는 살풋 웃으며 담배를 한 입 당겼다.

    주홍빛 불씨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이내 다시 한번 하얀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모습과 꼭 닮은 인형을 향해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튕겼다.

     

    툭, 담배가 ‘메를린’의 얼굴에 튀었다.

     

    그것은, ‘메를린’의 죽음을 추모하는일종의 분향이었다.

     

    “그곳에선 부디 평안하길, 메를린.”

     

    그렇게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은퇴를 할 수 있게 된 그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메를린이 마지막으로 짠 붉은 색 인형 스웨터 하나를 손에 쥐고서.

     

    ————-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루크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릿결을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본 루크는,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마음에 드는 방이야.’

     

    파이리스의 충치 사건으로 한번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이사를 마친 루크는 이미 방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 놓은 상태였다.

     

    인챈트를 걸면서 악령도 깔끔하게 해결했다.

     

    덕분에 현재 이 저택은 웬만한 공성무기의 공격에도 버텨내는 강력한 파괴저항에, 해충이나 야생동물이 기피하도록 하는 피어, 인간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온도로 유지되는 기후조작에 더불어, 자신의 방에는 아공간도 살짝 숨겨뒀다.

     

    하나같이 실용적인 기능들로 꾹꾹 눌러담은 다중인챈트.

     

    만약 이곳이 숲 쪽에 위치한 저택이 아니었다면 미친수준의 마력세 폭탄이 떨어졌겠지만, 다행히 숲의 마나를 끌어올 수 있는 위치인지라, 이번에 루크의 자제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렇게 다량의 인챈트를 걸어 악령의 자리를 빼앗은 루크는 심지어 저택에서 떨어져나온 지박령조차 그냥 소멸시키지 않았다.

     

    인형의 자아를 만들 때 고스트나 밴시 같은 영체형 몬스터의 마나는 좋은 촉매로, 반응성 향상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니까.

    그래서 그 악령은 ‘케이트’의 의식을 만드는 데 살짝 첨가시켰다.

    당연히 악령의 자아는 조금도 섞이지 않도록 충분히 정제하고 분해해서 말이다.

     

    그야말로 돌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은 격, 아니.

    루크에게는 세 마리를 넘어 네 마리를 동시에 잡아버린 엄청난 이득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물론 마찰도 있었다.

     

    —-

     

    밑에서 이삿짐을 옮길 준비를 할 무렵, 루크는 2층에 올라와 악령을 떼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챈트에는 마땅한 재료가 필요했는데, 인챈트의 수준이 높다보니 당연히 그게 맞춰서 재료의 성능도 뛰어나야했다.

    그래서, 루크는 일전에 예르나의 팔을 고치기 위해 만들었던 연고를 살짝 손봐서 인챈트용 마력회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흑마법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원체 다량의 정제를 해 놓은 상태라 마력회로용 인챈트로 재작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래도 용도는 조금 다르지만, 무릇 재료란 것은 본래 제 역할로 사용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루크가 황금매의 깃털로 연고를 잘 찍어서 마력회로를 그리고 있으니, 루크의 인챈트로 인해 더 이상 저택에 숨을 수 없게 된 악령이 튕겨져나와 악에 받힌 목소리로 외쳤다.

     

    “내게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네가 내 집에 있으니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악령이란 것은 꽤 드문 일이었지만, 그래도 루크는 태연했다.

    드물다고 해 봤자, 루크가 그런 악령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대충 보니 악령은 ‘어째서 여기가 네 집이냐는 둥, 이 집은 자신이 샀다는 둥’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나, 결국 뻔한 이야기인 듯 해서 루크는 사실 악령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악령이 집에 깃드는 이유는 대부분 고만고만한 이유다.

    강도에게 살해당했다거나, 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경우는 상당히 일반적인 편에 속하니.

     

    그리고 이 악령의 경우에는 동업자에게 배신당해 자신의 사업을 모조리 빼앗긴 후, 인생을 비관하며 목을 매달았다는 모양이다.

     

    “그래,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인데, 그게 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

     

    루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뭐, 한 두번 정도야 귀를 기울여 들어볼 법도 하다만, 솔직히 악령이 된 사연 따위는 알아봤자 그날 기분만 나쁘지,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애초에 죽은 자는 타인이 더 이상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불쾌할 뿐이다.

    설득되지 않는 난폭한 어린아이가 화를 내면서 중얼거리는 것을 들어주는 격이랄까.

    그래서 사실 루크는 악령의 사연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자아를 가진 걸 보면 원한이 굉장히 깊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지.

    애초에 루크가 옛날 같았으면 대꾸조차 하지 않았을 터다.

    루크의 입장에서는 악령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해줬다는 것 만 해도 굉장히 존중을 해 준 셈이다.

    ————–

     

    그렇게 이제 악령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치워버린 루크는 다시 자신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루크의 방은 연구용 테이블과 이것저것 깔아 놓을 수 있는 작은 책상에 더불어, 다량의 도서를 채워넣을 수 있는 책장, 그리고 컴퓨터를 비롯해 기타 잡동사니들을 정리해 둘 수 있는 상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큰 상자가 나란히 놓여져 있고, 구석엔 옷장이 배치되어 있다.

    벽에는 약초 빻은 것이나 가죽, 머리카락 등등, 이것저것 걸어 둘 수 있는 걸이들이 있었고, 현재는 걸어둘 것이 없어 옷걸이를 걸어두었다.

     

    조금 현대적이긴 하나, 정말로 마법사다운 방이었다.

     

    물론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이런저런 연구를 위한 여러 마법실험 도구들이 상당한 가격대를 요구하는지라 아직 갖춰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향로나 계량컵 같은 작은 도구들은 금방 구할 수 있겠지만, 루크가 원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여러 재료를 한데 섞어낼 커다란 솥도 없었고, 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천체 망원경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날 때마다 차차 채워나가면 될 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구나.’

     

    루크는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밝은 아침 햇살이 루크의 얼굴을 비췄다.

    내부의 마나를 환기시킬 겸, 루크는 이내 커튼을 치우고 창문을 열었다.

     

    -촤륵, 벌컥!

     

    그러자 곧바로 밝은 빛이 루크의 얼굴에 내리쬔다.

    루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눈은 빛에 적응하며 시야를 적당한 밝기로 조정시킨다.

     

    풍경도 루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파리 없이 벌거벗은 나무, 색 바랜 잔디, 드높이 푸르른 하늘.

     

    비록 가을이라 활기넘치는 초록빛은 볼 수 없었으나, 가을 특유의 갈색 빛 감도는 세상도 루크는 아주 좋아했다.

     

    “후아!”

     

    숨을 크게 들이키면 가을 특유의 향취가 가슴 가득히 스미는 것 같다.

    루크 숲과 가까워서 리엔느 숲의 불쾌한 흑마법의 냄새가 나지 않아 아주 신선했다.

    그래, 이 집은 이런 장점도 있었다.

    루크 숲의 숲지기 시설에서부터 3~40분쯤 빠르게 걸으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숲에서 가까웠다.

    보통 루크 숲은 민간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별로 없어서 그리 눈에 띄는 장점은 아니지만, 루크의 가족들에게는 아주 큰 메리트였다.

     

    그렇게 루크가 창 밖으로 몸을 빼내며 크게 기지개를 켜며 가을을 만끽하던 순간,

     

    “아!”

     

    루크는 문득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검은 부리 황금매……!”

     

    집 근처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식사를 하려 했는지, 입에 커다란 애벌레를 물고 있는 검은 부리 황금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크가 반가움을 표시한 이유는 그 황금매가 아주 특별한 황금매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본 모습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긴 했으나, 루크는 한눈에 그 아이가 과거 딜런트의 시설에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던 그 아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챘다.

     

    “반갑구나!”

     

    그렇게 루크가 반가움을 표시하자, 황금매 또한 반갑다는 듯 날개를 몇 번 푸드덕거렸다.

     

    그리고, 황금매는 루크의 창문 근처에 내려앉았다가 순식간에 쌩하니 날아가버린다.

     

    “엇……. 잠깐만……!”

     

     

    그에 당황한 루크가 황금매를 향해 손을 뻗어 보았지만, 황금매의 행동은 굉장히 날렵하고 민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차마 붙잡을 수는 없었다.

     

    “벌써 가버리다니…….”

     

    뭐가 그리 바빴던 걸까?

    루크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중얼거렸다.

     

    물론 황금매와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식의 안부를 묻는 대화를 할 수야 없었겠지만, 그래도 안면이 있으니 뭔가 먹을 거라도 좀 챙겨 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루크는 이내 시선을 내려 창가를 보고는 멈췄다.

     

    못 보던 애벌레 하나가 창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거 풍뎅이 애벌레였다.

     

    “…….”

     

    아마도 아까 전의 황금매가 두고 간 것 같았다.

    설마, 이건 집들이 선물이라는 것일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재미있는 이야기라 루크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하!”

    루크는 호탕하게 웃으며 애벌레를 높이 들어 저 멀리 날아가는 황금매가 볼 수 있도록 흔들며 외쳤다.

     

    “선물 정말 고맙다! 잘 먹으마!”

     

    그러자, 황금매 역시 마치 대답을 하는 듯 울었다.

     

    -퓌요오오오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큰일입니다.
    요즘 하도 새벽까지 쓰다보니 이제는 새벽이 아니면 글이 써지질 않네요…. 생활패턴 조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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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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