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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4

        

         

       요정은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다.

       하지만 친숙함과는 별개로, 인간과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에 요정이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용.

       요괴.

       천사.

       악마.

       요정.

       …

       …

       …

         

       전설에 나오고, 신화에 나오고, 민담에 나오는 수많은 인외(人外)의 존재들.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되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는….

         

       모른다.

         

       적어도 지구에 살아 숨 쉬는 인간 중에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혹자는 이렇게 물으리라.

         

       『 계약자는 초월종을 데리고 다니고, 소환사는 소환수를 데리고 다니고. 마녀는 괴물을 만들고 다니고, 심지어 주술사도 이상한 걸 끌고 다니기도 하는데요? 그럼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에요? 』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은 지구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게 아니었다.

         

       초월종의 실제 몸은 인간이 인식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곳에 있고, 지구에 있는 것은 그들이 힘을 투사해서 만든 홀로그램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소환수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환사에 의해서 불려온 손님과 비슷한 존재이며, 마녀가 만든 괴물은 위치크래프트를 이용해 만든 돌연변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주술사가 만든 것은 마녀가 그러하듯 기존의 생물이나 무생물을 변이시킨 것이거나, 혹은 주술로 어떠한 존재를 정교하게 ‘흉내’를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령? 신체? 그것들 역시 존재하기는 했지만, 살아간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이 지구에 살지 않는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

       인간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초월종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어떤 학자는 저러한 기록 속의 존재들을 보고 ‘초월종들이 지구에서 활동하던 기록이 와전되고 파생되면서 저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어떤 학자는 ‘모종의 사건을 통해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 외의 모든 종족이 학살당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어떤 학자는 대부분 존재가 초월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저런 존재들은 초월종이었고 제 자리를 찾아갔기에 이제는 지구에 남지 않은 것이라고도 했다.

       어떤 사람은 저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으며, 어떤 이들은 저들이 땅속 깊숙한 곳에 봉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중에는 ‘이야기 속의 괴물들은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상상 속의 산물이다.’라며 극단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말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었다.

         

       버젓이 증거가 존재했으니까.

         

       용의 비늘을 이용한 갑옷, 괴물의 박제, 끔찍한 요괴의 가죽 등.

         

       기록 속의 존재들의 사체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물건들이 적은 숫자지만 현대까지 남아있었다.

         

       게다가 소환사도 있었다.

         

       소환사가 소환하는 소환수가 바로 기록 속의 존재에 대한 증거이며, 괴물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임을 증명하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소환수는 소환사에 따라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용을 소환했고, 어떤 이는 슬라임을 소환했고, 어떤 이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거대한 개를 소환했고, 어떤 이는 집 크기까지 자라나는 거대한 뱀을 소환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갈매기 비슷한 새를 소환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성층권에서 떠다니기를 즐기는 해파리 같은 것을 소환하기도 했다.

         

       소환사들이 소환하는 소환수는 지구의 생물이라고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고, 아예 생물인지조차 의심되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는 분명히 기록에 남은 존재들과 흡사한 소환수도 있었다.

         

       용이나 신수, 환수, 괴물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주류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나는 ‘지구에 존재하는 인외의 존재들은 복합적인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다. 극소수의 존재는 초월하였고, 대부분은 다른 세계로 이동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초월종들은 모종의 이유로 살해당하거나 봉인되었을 것이다.’라는 추측.

         

       또 하나는 ‘신화나 설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소환사가 소환한 소환수와 초월종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거기에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와전되거나 살을 붙여가면서 여러 형태로 파생되며 현재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추측이었다.

         

       학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의견을 열정적으로 지지했고, 필요에 따라서는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헛소리다.’라는 의견을 담은 펀치를 서로의 얼굴에 날려가며 다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양 진영의 학자들을 더 미치게 만드는 주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요정’에 대한 것이었다.

         

       요정이라는 것은 폭이 너무 넓은 데다가 온갖 이야기에 나오기도 하고, 게다가 정의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기에 학자들에게 골머리를 싸게 만드는 존재였다. 게다가 ‘요정술사’라고 불리는 주술사들이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이라는 것을 사용해 ‘기록 속의 요정’을 흉내 내서 부리고 있기까지 하니….

         

       학자들이 이 요정이라는 존재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처음부터 존재는 했는지.

       다른 존재가 요정이라고 불린 것은 아닌지.

       그냥 상상 속의 산물에 불과한 것인지.

       소환수로 불려온 것인지.

       초월종 중에 요정이 있는지.

       혹은 주술사가 행하는 주술로 인해 탄생하고, 그 이후 요정이란 이름이 붙은 것인지.

       초창기 연금술사들이 만든 ‘호문쿨루스(Homunculus)’가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와전이 된 것인지.

       마녀들의 실험체가 탈출하면서 사람들에게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인지.

         

       학자들은 이 수많은 가능성에 제대로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과한 정보는 부족한 정보보다도 사람을 더 힘겹게 하는 법.

         

       어떻게 본다면 고고학계에서 미스터리로 불리는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c)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원반이 미스터리로 남은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대입해도 해독이 되기에 그 진의를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요정이라는 존재는 매우 변덕스럽다는 것.

       그리고 그 변덕은 그들의 진의를 제대로 알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느 때에는 사람을 돕는다.

       어떤 때에는 사람을 골탕 먹인다.

         

       어떤 때에는 사람에게 호의적이고.

       어떤 때에는 더없이 적대적이다.

         

       호의적이었다가 적대적으로, 적대적이었다가 호의적으로, 호의적이었다가 무관심으로, 무관심이었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시련을 안겨주기도 한다.

         

       심지어 그 이유조차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고, 그 행동 원리는 상식에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

         

       이러니 요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생김새도, 감정도, 관계도, 성격도.

       그 모든 것이 중구난방인데 말이다.

         

       다만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요정은 모든 것을 가졌다. 다만 단 하나, 양심은 가지지 못했다. 』

         

       동서고금의 이야기에서는 요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요정을 경계하고, 나쁘게 얽히지 말고, 가능한 한 관계되지 말라. 』

       『 그들과 얽히면 평온한 인생을 보낼 수 없게 된다. 좋게도 나쁘게도. 』

         

       하지만 이러한 경고는 시간이 지나며 퇴색이 되고.

       마침내 온갖 미디어와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옛사람들의 허풍 섞인 이야기로만 받아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 * *

         

         

         

       월광(月光)이 극히 적어 새까만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은 밤.

         

       이제순은 강원도에 있는 오지에 와 있었다.

         

       “요정, 요정….”

         

       스마트폰이 제대로 신호조차 잡아내지 못하는 오지에 있는 밭.

       그 위에서 이제순은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와 긴장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그 긴장과 공포는 일반적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어두컴컴한 밤에 오지에 있다면 산짐승이나 귀신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제순은 그런 것에 대한 긴장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벌일 일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다.

         

       “씨발, 씨발, 내가 지금. 잘 하는 거 맞아…?”

         

       아무도 없는 밭 한가운데에서 이제순은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정신병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마약 중독자가 약에 취해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두 눈두덩이는 푹 파이기라도 한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한껏 늘어지다 못해 입술까지 닿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마음고생을 한 것이지, 아니면 쫄쫄 굶기라도 한 것인지 그의 얼굴은 한껏 홀쭉해 있었다.

         

       게다가 그의 눈에는 총기는 온데간데없이 흐릿하기만 했고, 마음속에 있는 공포와 불안 때문에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기까지 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제순의 차림새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숙자도 주워 입지 않을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니, 옷이라기보다는 거적때기나 걸레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게다가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비료 냄새와 퀴퀴한 냄새가 가득 풍기고 있었으며, 군데군데 얼룩이 묻어있어 더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저걸 입고 다닌다면 사흘도 되지 않아 피부병에 걸릴 것 같았다.

         

       그의 근처에는 온갖 종류의 술이 가득 늘어서 있었으며, 바가지 모양의 술잔도 여러 개 굴러다니고 있었다. 술의 양이 어찌나 많은지, 술고래들을 잔뜩 모아놓고 밤새도록 대작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였다.

         

       “씨발, 요정 모방체인지 뭔지, 그거 불러도 되는 거 맞나…?”

         

       이제순은 종이 하나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 종이의 가장 윗부분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 방법 및 주의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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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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