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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4

       수면에 달빛이 드리워진 운치 있는 호숫가.

         

       도경의 시선은 그곳을 향해 있음에도, 그곳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과거 회상으로 전부 사용되고 있기 때문.

         

       “후우….”

         

       혈교의 존재가 밝혀진 순간, 친선 대결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사흑련으로 복귀하기가 무섭게 도경은 내당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비처에 감금되었다.

         

       쓸데없는 행동으로 사파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킬 뻔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비인 흑사패황이 언급한 쓸데없는 행동은 원래 개인전 비무에 참가할 수 없던 백우진을 끌어 올린 제 선택을 말함일 터다.

         

       “나는…, 자신 있었어.”

         

       자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백우진으로부터 승리를 거머쥘 자신이.

         

       그러한 자신감의 근원은 섬서 지역에서 그로부터 씻을 수 없는 모욕과 수치를 당한 뒤 돌아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지옥 같았던 수련의 순간들이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진정 최선을 다했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최선을 다했다.”

         

       자신은 이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노라고.

         

       최소한의 수면 시간만을 제외한 채 남은 시간 전부를 연무장에서 보냈다.

         

       어떤 날은 잠까지 포기해가며 도를 휘둘렀다.

         

       그와의 싸움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흑련의 고수들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비무로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떠안았다.

         

       그뿐만이라면 최선이라는 말에 조금 부족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제 아비인 흑사패황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차라리 아비의 손으로 죽길 바랄 정도로 참혹하고 처절한 나날들.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녀는 확신했다.

         

       더 이상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들 중에 제 적수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감은 백우진을 만난 순간 자만과 오만으로 변질되었다.

         

       “…빌어먹을 자식.”

         

       결승 전날의 밤.

         

       난데없이 사파의 영역을 넘어와 자신을 찾아온 백우진은 자신에게 하루 일찍 혈교의 존재를 밝히며 그야말로 어이없는 제안을 건넸다.

         

       그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연극을 준비했다고, 자신 또한 그 연극에 동참해주길 바란다며 손을 내밀더라.

         

       연극의 중요성은 단숨에 파악했다.

         

       그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는 순간, 이백 년 전의 그때처럼 혈교의 기습에 넋 놓고 당해 수많은 무인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중원을 내어줄 위기에 처하지는 않게 되겠지.

         

       그러나 그것을 수락하는 순간, 결승전은 그대로 끝이 난다.

         

       그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토록 고생해온 이유가 무엇이던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와의 비무 단 한 번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

         

       ‘이대로 허무하게 넘어갈 순 없어.’

         

       그래서 그녀는 연극을 받아들이는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과 전력을 다해 비무를 해준다면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잠시 고민하던 백우진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우거진 숲속에서 비무를 벌였다.

         

       비무가 끝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도경은 첫수부터 전력을 다했고, 백우진 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내보였기에.

         

       결과는 그녀의 패배였다.

         

       초절정의 끝자락에 다다라 자만하고 있던 자신과 달리, 그는 화경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보인 완벽한 형태의 검강 앞에서 그녀가 펼친 절기들은 덧없이 바스라졌다.

         

       그때의 감정이 어땠느냐면….

         

       “후련해.”

         

       그저 속이 후련했다.

         

       그녀는 그날을 위해 온 힘을 다했고, 백우진은 감추고 있던 전력을 제게 보여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가 더 뛰어나고 자신이 모자랐을 뿐인, 그저 그뿐인 패배였기에.

         

       “…거기까지라면 참 좋았을 텐데.”

         

       더없이 진중한 태도로 비무에 임한 백우진을 그녀는 달리 보기 시작했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마냥 그런 몹쓸 인간은 아니었구나.

         

       그리 생각하며 인식을 바꾸어가던 차에, 그 모든 걸 무위로 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패배의 대가를 치르라며 그가 또 한 번 자신에게 치욕을 준 것.

         

       “끄응.”

         

       그녀는 저도 모르게 제 엉덩이를 매만졌다.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여전히 그의 손길이 몸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 한 번 낯부끄럽게 그의 무릎 위에 엎어진 채로 엉덩이를 맞은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더 이상 예전처럼 스스로를 꿋꿋하게 사내라 믿으며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그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문제를 봉착하게 된 상황.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제 아비인 흑사패황 도굉이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

         

       그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아무리 무뚝뚝하고 관심이 없는 듯 보여도 아비는 아비란 것일까.

         

       백우진의 앞에서 덧없이 흐트러졌을지언정,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건만.

         

       도굉은 그러한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음에도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하오문주를 통해 백우진에게 초대장을 전달했을 뿐이다.

         

       정파 제일의 기재에게 사흑련으로 오라는, 말도 안 되는 초대장을 말이다!

         

       “아으으…!”

         

       그녀는 심란한 표정으로 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초대장을 보낸 지도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금 있으면 백우진이 사흑련의 영역 안으로 들어서게 될 터.

         

       그가 제게로 가까워질수록 심장 또한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한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이 들뜬 감정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 * *

         

         

       사흑련주의 초대.

         

       말이 초대장이지, 사실상 강제 소환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파와 사파의 관계 개선이 필요한 지금, 사흑련주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행동은 반드시 피해야만 했기에.

         

       ‘뭐…, 그게 아니더라도 무조건 초대에 응해야 했겠지만.’

         

       위와 같은 표면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백우진은 초대에 무조건 응했을 것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흑련주는 훗날 장인어른으로 모셔야 할 사람이니까.

         

       가족이 될 사람에게 밉보일 짓을 해서야 되겠나.

         

       백우진은 아침이 되기가 무섭게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한 뒤, 조원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곧장 사흑련의 본단이 위치한 귀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북에서 호남, 호남에서 귀주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닷새.

         

       전력을 다해 펼친 경공술이 여정을 크게 앞당겨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백우진은 돌아다니는 곳곳에서 불쾌한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사파의 힘이 강한 곳.

         

       그런 곳에 딱 봐도 정파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어섰으니, 모두가 그를 아니꼽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은 백우진이 순간 좋지 않은 생각을 머리에 담았다.

         

       “확 다 뒤집어버려?”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겨우 참아냈다.

         

       직속 수하는 아니더라도 그들 모두가 사흑련에 적을 두고 있는 사파 또는 흑도인들.

         

       장인어른의 집에서 난동을 부려서야 쓰나.

         

       “…조금 쉬었다 갈까.”

         

       호북에서 귀주까지.

         

       고작 닷새 만의 여정은 백우진조차도 짙은 피로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심한 강행군이었다.

         

       사흑련의 본단이 있는 귀양까지는 신법으로 반나절 정도는 더 가야 하는 상황.

         

       피곤함을 참고 가느니, 여기서 하루쯤 머물다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그는 곧장 인근 객잔으로 향했다.

         

       “방 좀 내어주시오.”

         

       그의 정중한 요청에 객잔주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남은 방이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시오.”

       “…어라.”

         

       백우진이 들어선 곳은 인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객잔이었다.

         

       인근 호남에 여행객을 다 빼앗긴 지역에, 심지어 여행하기 좋은 때도 아닌 이 상황에 남는 방이 없다라….

         

       의도가 뻔히 보여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불쾌한 시선을 참아온 백우진이 희게 웃으며 그를 자극했다.

         

       “있을 것 같은데?”

         

       다분히 도발적인 언행에 객잔주가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게요?”

       “딱 봐도 그래 보이는구먼, 뭘.”

       “하, 나 오랜만에 진상 손님을 만났네.”

         

       객잔주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강렬한 투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배짱이 좋나 했더니, 왕년에 칼질 좀 했던 무인인 모양.

         

       “이보시오, 형씨. 딱 봐도 정파인인 것 같은데…, 이 땅에서 행패부리고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노골적인 협박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정파인을 향한 그의 협박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먹혀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귀주.

         

       주변을 둘러보는 곳마다 사파와 흑도인들이 득실대는 그들의 터전이기에.

         

       제아무리 정파인이라도 제 목숨은 소중한 법.

         

       이곳에서 당당히 그들의 시비에 저항할 간 큰 정파인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지금까지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분이 팍 상해버린 객잔주가 제 옆에 놓인 탁자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빠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버린 탁자.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아니, 이게 무슨 소란이야?”

       “이보시게, 객잔주! 대체 무슨 일인가?”

       “진상이라도 왔나 본데?”

       “흐흐, 그러게나 말이야!”

         

       정파 놈들을 골탕 먹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동료들을 부르기 위한 신호.

         

       구름떼처럼 몰려든 사파와 흑도의 무리가 백우진의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다.

         

       물량을 등에 업은 객잔주가 팔짱을 낀 채로 턱을 들어 올린다.

         

       “여기 진상 손님께서 우리 전부를 상대하시고도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시던데?”

       “호오, 그래?”

       “정파 샌님치곤 기개가 넘치는 양반인 모양이네!”

       “이봐, 정파 따위는 버리고 사파로 전향하는 것은 어때?”

         

       으하하핫!

         

       머릿수만 믿고 한바탕 떠나가라 웃어대는 양떼들 속에서 한 마리 고고한 늑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모든 금전적 보상 청구는 섬서백가에 청구해라.”

         

       일단 거기 있는 돈은 내 재산이 아니거든.

         

       말을 마친 백우진이 몰려든 양떼를 향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무단으로 휴재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최근에 새벽에 글을 쓰다 보니 이따금 밀려오는 수면에 저항하지 못하고 잠이 들 때가 종종 생기네요;

    어떻게든 시간을 좀 바꿔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이게 꼭 주기마다 잘 써지는 시간대가 있는지라…

    봉인된 몬스터를 개봉하여 몰려드는 수면에 잘 저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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