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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5

       고대 로마에는 ‘독재관’이라는 직위가 있었다.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상황을 타개하고자 만든 임시직.

       

       국가비상사태에서만 설치되는 관직인 만큼 권력도 막강하다. 정국 대소사를 처리할 모든 권능이 주어진다고 보면 된다.

       

       카우렐리아에서 내 지위는 이제 그에 버금가는 정도가 되었다.

       

       “에테르 하이젠버그 교수, 대통령 각하의 추천에 따라 당신을 마도부장관으로 임명합니다.”

       

       마도부장관.

       

       대한민국으로 치면 과기부장관과 기초과학연구원 소장직을 겸하는 직위.

       

       “마법 연구개발에 대한 전권을 당신에게 부여합니다. 경제부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예산을 사용하십시오.”

       “정말 그래도 되나요?”

       “국민께서 허가하실 겁니다.”

       

       믿기질 않는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틸레트 아카데미의 새내기에 불과했는데.

       

       수개월 전부터는 교수가 되더니, 이제는 장관직을 겸할 정도라니.

       

       “그만큼 위급한 상황입니다. 선생님 말고는 인재가 없습니다.”

       

       아렌스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두 국가 중 하나가 멸망하고, 다른 하나는 그에 준하는 위기에 몰렸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온 대륙이 마수에게 먹히게 생겼다. 그런 판단을 한 엘프국 상층부가 나에게 이만한 권력을 내린 것이다.

       

       이제 나는 세실 르네이 총장보다도 높은 자리에 있었다.

       

       “허어.”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높은 자리를 맡아본 적이 있어야지.

       

       “아니, 상천보다는 낮은 자리인가.”

       

       장관직은 40명이 넘어가지만, 사천은 딱 네 명만 임명되니까. 희소성은 그쪽이 더 높겠지.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마도부장관에 임명된 직후부터 일정을 개시했다. 아랫사람과 상의할 시간도 없이 기초적인 과정을 먼저 처리했다.

       

       그리고 그 이후.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이론마도사들을 모아 놓고는 짤막한 회의를 시작했다.

       

       “흑주의 개발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나는 손가락을 펼치며 각 요소를 읊었다.

       

       “물의 끓는점 이상에서도 동작하는 초전도체 개발, 중수소화리튬의 확보, 테라급의 초고출력 극초단 레이저 완성.”

       

       첫째는 기초적인 환경.

       

       둘째는 재료.

       

       셋째는 격발 조건에 해당한다.

       

       “우선 레이저부터 이야기를 해 봅시다. 아카샤, 로즈마리.”

       “네, 언…. 장관님!”

       “화계마도 전공자 2천 명과 지계, 공계 전공자를 각각 5백 명씩 붙여줄 테니 백야 스크롤을 강화하세요. 3개월 내로 완성해야 합니다.”

       

       로즈마리와 아카샤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물러났다.

       

       다음은 중수소화리튬의 확보였다.

       

       “카우렐리아의 명물 중에 리튬이 있다고 하죠. 해양부장관. 국방부의 엄호를 받아 대양에서 리튬 원석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어서 국토부장관은 기존 마석 공정 시설의 증강과 유지보수를 완료해 주십시오. 반드시 올 가을이 지나기 전까지 완료해야 합니다.”

       “저, 시설을 증강하려면 인력이 1만은 필요할 텐데…….”

       “건설직에 있는 지계마도사 3만 명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청사에서 나가실 때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놀라게 된다.

       

       분명히 같은 장관직인데, 다른 장관을 부려 먹고 있는 광경이라니.

       

       이래서야 대통령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럼, 마지막이군요.”

       

       마왕성에서도 끝내 만들지 못했던 초고온 초전도체.

       

       그것이 있어야만 행성의 원하는 부분을 자기화할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제한 시간 내에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잠시 고민한 끝에, 내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클라이스 하스펠트.”

       

       수 년 전부터 함께했던 악연을.

       

       이제는 정리할 시간이다.

       

       

       **

       

       

       에테르가 소집한 회의 자리에는 하스펠트 가문의 식솔들도 있었다.

       

       현 가주 자리에 있는 레너윌 하스펠트와, 그의 두 딸인 클라라와 클라이스 하스펠트.

       

       에테르를 마주 본 레너윌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스펠트 자매에게는 그런 아버지의 웃음이 낯설었다. 제 딸들에게도 항상 엄격 근엄한 표정만 보여주었던 아버지인데. 어떻게 저 아이에겐 온후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클라이스 하스펠트.”

       

       상념에 빠져 있던 도중, 에테르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네, 주, 주인님.”

       

       저도 모르게 그리 대답한 클라이스.

       

       “…윽!”

       

       서둘러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주인님?”

       “방금 제가 잘못 들었나요?”

       

       엘프 관료들이 속닥거리는 소리.

       

       클라이스의 어깨가 옴쭉도 못 할 정도로 쪼그라든다.

       

       모닥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지독한 감기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네, 자, 장관님.”

       “…….”

       

       서둘러 호칭을 변경해 봤지만 영 시원찮다.

       

       아빠와 언니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힌다.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 숨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해서.

       

       상천이었을 시절 에테르에게 개처럼 부려 먹히던 시절과, 거울 치료를 받아 잘못을 뉘우치기 시작한 날과, 그녀에게 사과를 구하던 나날과,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초전도 물질을 연구하던 하루하루가 전부 기억나서.

       

       차마 이 상황을 무마할 한 마디를 꺼낼 수 없었다.

       

       “…하스펠트 교수님, 잠깐 잠꼬대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에테르는 비웃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아주 약간의 주의만 주고 말았다.

       

       “하스펠트 교수님께선 제가 만들 연구단에 소속되어 일을 같이 처리해 주십시오. 참고로 연구단은 총 다섯 개 섹터로 나눕니다. 교수님께선 그중 한 섹터를 맡게 되실 겁니다.”

       “…….”

       “이해하셨나요?”

       “…네, 이해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나머지 네 섹터는….”

       

       그 뒤로 에테르가 나머지 인력을 배분하는 동안, 클라이스는 하얗게 표백된 머릿속을 정리했다.

       

       불과 5년.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만한 시간에, 소녀는 어느새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다음에는 교수가 되어있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엘프국의 장관까지 올라갔구나.

       

       경이로운 것 이상으로 미안했다. 만약, 처음부터 잘 해줬더라면 지금쯤 전쟁은 다 끝났을 텐데.

       

       아니, 시작도 안 했겠지. 제국이 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던 사이에, 회의는 끝나있었다.

       

       “교수님.”

       

       정신을 차려보니 에테르가 코앞까지 와 있었다.

       

       “따라오시지요. 할 일이 많습니다.”

       

       그 말을 들은 클라이스는 유령에 홀린 것처럼 금안족 소녀의 뒤를 따랐다.

       

       

       **

       

       

       정신을 차려보니 일리야드 아카데미 앞이었다.

       

       한창 전쟁 중인데도 아카데미 내부는 평화롭기만 하다. 마치 다른 나라, 다른 세계선에 있는 듯한 느낌.

       

       둥글뾰족한 잎사귀를 따라 회랑을 건너면 과거가 떠오른다. 비록 이곳에 온 적은 없다고 할 지라도 말이다.

       

       교정을 걷고 있노라면 멍이 든 것처럼 시큰거리는 것이다. 주로 가슴이.

       

       “…….”

       

       클라이스는 입을 꾹 닫은 채로 에테르의 뒤를 졸졸 따랐다.

       

       동글동글한 검은색 머리통이 내려다보인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클라이스는 에테르보다 키가 한 뼘 정도 큰 수준이었다.

       

       단순히 에테르의 키가 더 작아서 그런 것일까?

       

       알게 모르게 보호 욕구를 자극한다.

       

       “…다 왔습니다.”

       

       말없이 앞서가던 에테르의 걸음이 어느 건물 앞에서 뚝 멈추었다. 화계마도를 연구하는 학교 건물이었다.

       

       이런 곳에는 왜 왔을까.

       

       이런저런 추론을 하며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여기가 제 연구실이었습니다.”

       

       맞다.

       

       에테르는 장관직에 오르기 전까지 교수라고 했다.

       

       개인 연구실이 있었겠지. 아무래도 개인 물품을 가지러 온 모양이다.

       

       “정리할 게 여간 많아요. 손 좀 빌리겠습니다.”

       “…네.”

       

       클라이스는 큰맘 먹고 연구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에테르의 연구실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사방은 하얀 시멘트로 도배되어 있었고, 가구들도 칙칙한 진회색 계통이었다.

       

       그나마 창가에 화분 서너 개가 놓여 있었는데, 기르고 있는 게 하필이면 죄다 방울토마토였다.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장비를 아이비 섬으로 옮길 겁니다. 더 좋은 게 거기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장비의 대수도 중요해서요.”

       

       클라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부터 해도 좋을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머뭇거리게 된다.

       

       이는 노예 시절의 버릇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그때 클라이스는 질문이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까. 시킨 일을 열심히 하고 방울토마토나 받아먹는 게 고작이었다.

       

       “여기, 이것부터 밖에 내놓아 주세요. 웬만해선 택배로 운송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주인….”

       

       순간, 클라이스는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장관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말실수하다니.

       

       마음 같아선 5층짜리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왜 굳이 5층인가 하냐면, 클라이스의 본가가 5층짜리 대저택이거니와, 그녀의 연구실도 5층에 위치했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거나 고층 건물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으니 그 이상의 높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

       

       잠시간 이어지는 침묵.

       

       에테르는 에테르대로 입을 열지 않았고, 클라이스는 클라이스대로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당연했다.

       

       한때는 자신이 주인이었고, 또 한때는 자신이 노예였는데.

       

       이제는 동등한 연구동료라니.

       

       짧은 시간 동안 관계가 너무 자주 엎치락뒤치락했다. 호칭이고 나발이고 정리되는 게 있을 리가.

       

       “허어.”

       

       어색한 공기를 먼저 깬 것은 상대방이었다.

       

       에테르는 손목을 슬쩍 꺾으며 제안을 건넸다.

       

       “오늘 끝나고 술 한 잔 합시다.”

       “아, 네? 네…….”

       

       얼떨결에 대답하긴 했다.

       

       다만 대답하고 난 다음에 깨달은 문제가 있었는데.

       

       클라이스는 술이 젬병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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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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