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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5

       ‘아카데미’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긴 하지만, 사실 게임이나 만화, 라이트노벨에서 묘사되는 아카데미는 일반적인 고등학교와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는 아예 일본 고등학교식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수업은 일반적인 고등학교에서 받는 것과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아카데미의 일정은 고등학교와 같다.

        

       물론 올해는 커다란 사건 때문에 그 일정이 많이 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겨울방학을 극단적으로 짧게 만들고, 해를 넘겨서도 우리는 아카데미에 남아있게 되었다.

        

       원래는 10월 말에 있을 예정이었던 문화제도 뒤로 쭉 밀려버렸다. 11월이 되어서야 학교가 정상화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왕 밀린 김에, 학생회에서는 아예 문화제를 12월 말에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나왔다. 어차피 추운 겨울에 할 거, 아예 스케쥴을 1년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념하는 기간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화제 기간은 12월 30일부터 1월 2일까지의 일정이 되었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내용물이 실질적으로는 고등학교라고 하더라도, 세계관 특성상 그 ‘고등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거의 없다. 바꿔말하자면 문화제를 시행할 고등학교는 제도 론다리움에 론다리움을 포함해 몇 곳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나마 학교 비슷하게 있는 곳도 사실 학원이나 과외의 규모가 조금 커진 수준이고.

        

       그렇기에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의 문화제는, 사실상 제도 전체의 축제이기도 했다. 뭐,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는 조건이 있어서 정말로 ‘전부’를 위한 축제는 아니지만, 아카데미 근처의 길거리도 그 분위기에 맞춰서 축제 분위기가 된다고 하고, 학생들도 그사이에 끼어 즐기는 일도 있다니 뭐 아슬아슬하게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작 나나 앨리스는 한 번도 참석해본 적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참석할 수 있었겠지만, 나나 앨리스나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다.

        

       일반적인 일본 서브컬쳐 콘텐츠에서의 문화제는 실제 학교 문화제보다 훨씬 화려하게 표현되긴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하다는 소리다.

        

       게다가 주최자는 귀족가 자식들.

        

       아직 귀족적, 남성적 허세 문화가 남아있는 시대였기에, 이런 축제에 돈 한 푼 내지 않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귀족가가 아직 많다. 귀족 계급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을 아카데미에 보내는 부모라면, 거액의 지원금을 내서 문화제를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막대한 재정을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학생회의 일이기도 했다.

        

       “올해 기부금은 특히 더 많네. 작년이랑 비교하면 거의 40퍼센트 더 많아. 이 정도라면 규모를 더 늘리고도 돈이 한참 남을 것 같은데.”

        

       학생회의 학생 중 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동그란 안경을 낀 여자애였다. 겉보기로는 다소 수수해 보였지만, 쟤도 고위 귀족의 자식이었다. 애초에 학생회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다른 학생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이니까.

        

       “예산을 무조건 전부 쓸 필요는 없어. 아껴뒀다가 다른 쪽으로 돌려도 되니까.”

        

       학생회장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연말 연초랑 겹쳐서 진행하니까, 여유자금으로 두는 쪽이 좋을 거야. 예상치 못한 추가지출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테이블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이 한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

        

       “…….”

        

       “…….”

        

       그리고 나, 앨리스, 샤를로트는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귀족사회’라고는 하지만 그냥 뭉뚱그려서 ‘귀족’이라고 할 뿐이지, 황족과 왕족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단어로는 귀족, 왕족, 황족은 모두 별개의 뜻이 있지만, 사실 황족이나 왕족이 작위를 따로 받아 귀족 분가로 파생되는 일도 있고, 반대로 결혼이나 입양으로 귀족이 왕족, 황족에게 편입되는 일도 있다.

        

       게다가 ‘사회’라는 개념을 두고 보자면 왕족과 황족은 따로 사회라고 하기에는 너무 좁은 틀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사회를 구성하려면 가장 가까운 계급인 귀족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자존심’을 지켜야 할 존재를 꼽으라면, 당연히 황족과 왕족이었다.

        

       제국 황실에서는 막대한 양의 기부금을 냈다. 사실 이미 아카데미 운영 자체를 황실의 돈으로 하고 있는 셈이었지만, 거기서 더 큰 돈을 준 것이다. ‘우리는 돈이 부족해서 올해는 못 주겠다’라는 말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자존심이란,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귀족의 감정이란 수학처럼 계산식이 있다. 완벽하게 수치화된 것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 암묵적인 것이긴 했지만.

        

       그리고 황족과 왕족이 지켜야 할 자존심도 그 안에 포함된다.

        

       황실과 벨부르 왕실 모두 요즘 재정에 나름대로 타격을 입은 참이지만,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매우 큰 지원을 했다.

        

       게다가—

        

       “……혹시, 예산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두신 것이 있으십니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마치고, 그때까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우리를 향해 학생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생회장을 포함한 학생회 학생들의 반응은 요즘 들어 극도로 조심스러워졌다. 이전에도 조심스럽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눈도 함부로 못 마주치는 애들도 있을 정도였다.

        

       뭐, 이제는 그냥 황녀도 아니고 황태녀인데다가, 나도 제국 황위 계승 서열 2위니까. 언젠가 앨리스에게 자식이 생길 때까지는 쭉 그럴 거고.

        

       “……저는 괜찮으니 학생회의 필요에 따라 쓰시면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우리는 침묵을 지킨다.

        

       ‘좀스러워’ 보이면 안되니까.

        

       돈을 턱 내놓은 사람이 그 돈을 쓰는 곳에 관여해버리면 좀스러워 보인다. 차라리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만약 앨리스가 황태녀 신분이 아니라 그냥 ‘황녀’였다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가장이 아니라 그냥 그 지원금을 준 사람의 딸 신분일 테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는 애들과 별다른 차이는 없는 상황일 테고.

        

       하지만 앨리스는 지금 황실의 가장이다. 그 지원금을 책정한 사람도 앨리스 본인이다.

        

       “저는 이 아카데미가 작년에 어떤 문화제를 열었는지 알지 못하니, 여러분께 맡기도록 할게요.”

        

       샤를로트도 그렇게 말했다.

        

       샤를로트는 아직 가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곳에 벨부르를 대표해 와 있는 사람이다. 학생이라는 점, 그리고 그 지원금이 샤를로트 본인이 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몇 마디 할 자격은 있었지만, 스스로 ‘한 나라의 대표’라는 자각이 있으니 말을 아끼려는 거겠지.

        

       “…….”

        

       그리고 나는, 뭐, 애초에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딱히 아무 말도 할 생각 없었고.

        

       원작에서도 축제는 멀쩡하게 열린다. 뭐 대단한 계획 같은 걸 생각해내지 않아도 쟤들이 알아서 ‘만화에나 나올법한’ 계획을 세워내리라.

        

       “그렇다면, 이 계획대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셋이 딴지라도 걸 거라고 생각했는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던 학생회장은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쉴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

        

       “가끔은 이벨리아 식 일 처리가 부러울 때도 있어요.”

        

       “너희들은 비열한 짓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하잖아.”

        

       “그건 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샤를로트가 앨리스의 말에 반박하듯 말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쪽 방법이 효율적으로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네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샤를로트를 따라 앨리스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불이익을 당하면 당당하게 소리치고, 싸움을 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제국과 벨부르와는 다르게, 이벨리아에서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식을 가리지 않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더라도 목적 하나만을 위해 앞만 보고 나아가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모양이다. 제국이나 왕국에서 남성이 독을 이용해 누군가를 죽이면 천하의 찌질이가 되지만, 이벨리아에서는 복수의 대상을 확실하게 죽이기만 한다면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한다.

        

       벤데타라고 하던가.

        

       그리고 그런 문화적인 분위기는 돈에도 적용이 되어서, 자신이 낼 수 없는 기부금을 내는 것은 그냥 멍청한 짓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있는 곳은 제국이니까. 제국에선 제국법을 따라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벨부르에서 벨부르 법을 따르는 걸 반대하고 있나요?”

        

       샤를로트의 말은 아직도 질질 끌며 이어지고 있는 전 황제의 신변문제에 관한 질문이다.

        

       “…….”

        

       앨리스는 가만히 샤를로트의 눈을 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금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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