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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5

       미키는 카렌과 재주를 겨룬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하 공간은 그가 미리 조사하고 준비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대등하게 기술을 주고받고 있었다.

         

       모래밭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땅재주꾼이 서로의 몸을 붙들고 넘어뜨리려고 애쓰는 모습은 씨름을 연상케 했다. 실제로 땅에 버티고 서거나 힘을 흘려보내는 땅재주의 기술은 씨름의 그것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미키는 카렌이 120도 뒤로 허리를 굽혔다가 손으로 땅을 짚지도 않고 그대로 상반신을 번개처럼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했다. 몇 분에 걸친 심리전 끝에 겨우 체중의 쏠림을 이용해 균형을 무너뜨렸는데, 설마 그 상태에서 다시 자세를 회복할 줄은 몰랐다. 확실히 땅재주에 한해서라면 그녀의 실력은 찰리나 엘라에게 밀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공략의 틈이 보이지 않자, 미키는 빠르게 승부를 내기 위해 어릴 때 여자애들에게 자주 썼던 수법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상대의 가슴이나 가랑이로 손을 뻗는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나오면 누나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안색을 굳히면서 평정을 잃곤 했었다. 그렇게 잠시의 틈만 만들어져도 그는 상대를 땅에 메다꽂을 자신이 있었다.

         

       미키는 일부러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보란 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카렌의 가슴과 다리 사이를 향해 양손을 뻗었다.

         

       분명 움찔하면서 빈틈을 보이겠지.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카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그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봤다. 그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자신을 향해 뻗은 그의 두 팔을 붙잡아 뒤로 꺾고는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체중을 실음으로써 그대로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래가 들썩였다.

       수준 높은 기술이 오가던 공방치고는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카렌은 미키의 두 팔 뿐만 아니라 두 다리도 마저 뒤로 꺾어서 그가 다시 일어설 여지를 원천 봉쇄해버렸다.

         

       “뭐야. 진짜 끝이냐? 너무 보란 듯이 노려서 함정인 줄 알았는데?”

         

       미키는 그녀가 그의 손과 발을 엉덩이로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젠장, 거기로 누르면 어떡해? 안 부끄러워? 진짜 누나 여자 맞아?”

         

       그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고 카렌은 그제야 그가 방금 공격을 날린 의도를 깨닫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냐? 너 설마 그걸 노린 거였냐? 아나, 이 새끼, 이거 귀엽게 노네. 나 여자 맞거든. 이거 봐, 안 달렸지?”

       “으아악!”

         

       미키는 그녀가 그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팡팡 치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카렌은 그의 반응이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핫, 네가 노리던 거 아냐? 왜 네가 더 호들갑이냐? 그렇게 해서 누굴 놀릴 수 있겠어? 야, 인마. 나는 지금도 우리 서커스단 남자애들과 알몸으로 같이 목욕도 해. 이 정도야 우습지. 쫄쫄이 입은 아저씨들 사이에서 불알 냄새 맡으면서 매트 위에 뒹굴고 지낸 세월이 십 년인데.”

         

       카렌은 마야 앞이라면 절대 꺼내지 않았을 걸쭉한 음담패설을 마구 내뱉으며 낄낄거렸다.

         

       “이런 젠장.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크억!”

         

       카렌은 품에서 리본 한 줌을 꺼내서 그의 팔과 다리를 결박하고는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났다. 그리고 일행들과 헤어졌던 곳으로 다시 향했다.

         

       그녀가 카타콤의 입구로 돌아왔을 때, 반대편 통로에서도 막 누군가 나오던 참이었다. 그녀는 미키를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는 상대를 향해 달려갔다.

         

       “마야아앙! 괜찮아? 세상에나! 우리 마야의 머리카락 왜 이렇게 됐어!”

         

       미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카렌을 바라봤다. 마야 앞에서 헤실거리며 교태를 부리는 그녀의 모습은 방금 저 아래에서 보여준 털털한 아저씨 같은 모습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마야는 자신의 잘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만지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단검에 스쳤나 보네.”

       “우왁! 어떤 년이야? 감히 우리 마야에게 단검을 날려? 내가 가서 확!”

       “됐어. 내가 이겼으니까. 그런데 넌 쟤를 왜 데려온 거야?”

         

       마야의 시선이 미키를 향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신비롭게 하얀빛을 발하는 그녀의 피부와 머리카락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하하, 내가 싸웠던 곳이 모래가 아래로 흐르는 곳이라서 말이지. 혹시나 거기 내버려 뒀다가 빨려 들어가면 어떡해.”

       “단장님을 납치한 녀석들이야. 죽어도 싸.”

         

       그녀의 냉담한 말에 카렌은 조금 겁먹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 서, 설마 너 상대를 죽인 건 아니지?”

       “안 죽였어.”

       “휴, 난 또……혹시 뭐 들은 거 없어? 놈들의 목적이라든가.”

       “없어.”

         

       어떤 말을 해도 표정 변화가 없는 친구를 바라보며 카렌은 심술궂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듯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는 쟤랑 싸우면서 몇 가지 정보를 들었는데, 단장님이 납치되는 동안 마야 너만 찾았다더라.”

         

       지금까지 내내 무표정하던 마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 그녀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친구를 곁눈질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풉, 푸풉, 푸하하하! 메모리 디스크! 메모리 디스크 없어? 방금 네 표정을 영원히 저장해두고 싶은데……푸하핫!”

         

       카렌이 배를 붙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마야는 그녀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다.

         

       “너……거짓말이었단 말이지.”

       “우와앗, 마야, 잘못했어! 내려줘! 나는 땅에서 발을 떼고 있으면 불안하단 말이야!”

         

       염동력 쇠사슬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카렌이 바닥에 다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몇 분 뒤 레이나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마야는 카렌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됐어, 상대는?”

       “저수조 아래로 추락했어. 꽤 높은 것 같았지만……아래가 물이니까 죽지는 않았을 거야.”

       “혹시 단장님에 대해 알아낸 건…….”

         

       그때, 바닥에 떨어진 충격에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던 카렌이 벌떡 일어나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 맞다! 레이나, 아까 내가 싸우면서 쟤한테 들은 게 있는데, 단장님이 납치당하는 동안 레이나 너만 찾았대.”

         

       카렌이 다시 엉뚱한 장난을 시도하자 마야는 한소리를 하려다가 중간에 생각이 바뀌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과연 레이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거 거짓말이지.”

         

       마야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대번에 카렌의 장난을 간파했다. 카렌은 민망한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날름거림으로써 바로 패배를 인정했다.

         

       “아하핫, 드, 들켰네. 그,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상대한 여자가 말해줬어. 단장님은 이들이 엘라를 납치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거야.”

         

       레이나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카렌은 그들이 감히 자신의 은인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납치했다는 것을 알고는 분개해서 욕을 내뱉으며 당장 쫓아가자고 방방 뛰었지만, 마야는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학교 관계자일 확률이 높아.”

       “근거가 있어?”

       “이들이 사고 직후에 즉시 행동에 나선 것이나 학교 지하에 숨겨진 장소를 이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학교를 잘 아는 내부인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학교 관계자가 왜…….”

         

       그때, 통로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그들이 나왔던 곳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곧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루엘로.”

       “아, 맞다! 우리 막내!”

       “내, 내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레이나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납치범 4명 중에 각자 맡은 사람이 누구였지?”

       “나는 저 꼬마.”

       “나는 광대 분장을 한 여자.”

       “나도 여자였는데…….”

         

       납치범들의 면면을 떠올린 카렌은 소거법으로 한 사람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그럼 그 덩치 큰 자식이 루엘로를?”

         

       카렌의 말에 레이나는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만큼이나 안색이 핼쑥해졌다.

         

       “뭐, 뭔가 험한 짓을 당한 건 아니겠지?”

         

       그때,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세 사람은 말을 멈추고 가만히 그곳을 노려봤다. 얼마 안 있어 상대의 모습이 드러났고,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병아리 옷을 입고 있는 작은 여자애였다.

         

       루엘로는 자기 머리만 한 크기의 에그타르트를 한 손에 쥐고 먹으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양 볼이 탱탱해지도록 정신없이 음식을 아귀아귀 집어넣던 그녀는 곧 자신을 바라보는 언니들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제자리에서 굳은 듯 멈춰 섰다. 아마 그녀는 어둠 속을 걸으면서 과자를 먹는 데만 집중하느라 그들이 말하는 소리는 듣지 못한 듯했다.

         

       “꿀꺽……어, 언니들도 좀 먹을래요? 저 많아요.”

         

       다시 만나게 된 네 사람은 짧은 해후를 나누었고, 그들 모두 각자 자기의 전공 분야로 상대를 격파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루엘로의 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갖은 함정들 속에서 자신보다 덩치가 몇 배는 큰 차력사를 제압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루리……? 그것들은 늘 들고 다니는 거야?”

         

       레이나는 얘기를 나누는 내내 루엘로가 자꾸 배낭에서 과자들을 꺼내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이 며칠 내내 먹을 수 있는 양을 고작 몇 분 만에 해치웠다.

         

       루리는 얼굴을 붉히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 그게……배, 배가 고파서요. 힘을 쓴 다음에는 왠지 자꾸자꾸 먹고 싶은 거 있죠?”

         

       루엘로는 원더스타인의 개조 덕분에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힘을 내는 데 드는 에너지는 공짜가 아니었다. 일을 한 만큼 먹어줘야 했다. 그동안 그들이 그녀의 그런 면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큰 힘을 연속으로 쓸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뭉치게 된 네 사람은 다시 원더스타인 추적에 들어갔다. 자신들이 나왔던 통로를 제외한 나머지 통로들을 탐색하던 그들은 곧 바닥에 난 휠체어 바퀴 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렌은 통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포박당한 미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흰 누구지? 레카체프와는 무슨 관계야?”

       “밑에 또 다른 동료가 있냐?”

       “또 다른 함정은 어떻게 되지?”

       “왜 단장님과 엘라를 납치한 거야?”

         

       앞선 질문에는 묵묵부답이던 미키가 마지막 질문에는 입을 열었다.

         

       “우린 엘라의 고향 마을 친구들이야.”

       “고향 친구라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응. 우리 고향에는 서커스 학교가 있었거든.”

       “그런데 왜 엘라를 납치한 거지?”

         

       미키는 1년 전 그날의 일이 떠올라 잠시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복수 때문이야.”

       “복수?”

         

       그때, 커다란 폭음이 통로를 뒤흔들었다.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달리자!”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통로를 빠져나갔다. 혹시나 있을 함정에 대비해 신중하게 이동하던 그들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지체하다간 꼼짝없이 돌무더기에 깔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통로는 그들이 빠져나오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더니 입구를 막아 버렸다.

         

       “헉헉, 방금 뭐지, 그 충격은?”

       “몰라. 갑자기 커다란 힘이 벽을 후려친 것 같았는데…….”

       “이것도 너희가 준비한 함정이냐?”

         

       카렌은 미키의 멱살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냐, 우린 이런 건……아!”

         

       공동을 둘러보며 엘라와 찰리의 행방을 찾던 미키의 눈이 곧 한곳으로 고정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본 그들은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다, 단장님?”

         

       레이나의 입에서 경악이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원더스타인. 그런 그를 향해 엘라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살엔딩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금으로는 원래 일러스트를 뽑기로 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제가 직접 그려보려고 태블릿을 큰 맘 먹고 샀는데 먼지만 쌓이고 있네요. 그림 배우는 건 포기하고 그냥 글이나 열심히 써서 일러스트를 뽑는 게 낫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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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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