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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95

        

         

       이제순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는 제목에서부터 불길한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었다.

         

       피로 쓰인 것은 아니다.

       끔찍한 괴물이나 역겨운 식물에서 추출한 것으로 쓴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잉크로 쓰여 있는 글자였다.

         

       하지만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잉크로 쓴, 평범한 단어의 나열이….

         

       왜 이렇게 불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 방법 및 주의사항 』

         

       몇 번을 곱씹어봐도 저 한 줄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마치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수상해 보이는 상자에 붙어있는 부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이제순은 계속해서 망설였다.

         

       자신이 이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지금이라도 생각을 다르게 하고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불길함에 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망설이기는 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가 ‘돌아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같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망주’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고 곤두박질을 쳐버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있었다.

         

       의식을 하기에는 무섭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인생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순은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땅바닥에 버리면서 허비하였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망설였다.

         

       이것을 해야 하는가.

       돌아가야 하는가.

         

       하지만 그렇게 수십, 수백, 수천 번을 고민해본다고 한들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다, 한다, 한다….”

         

       종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냥 불길함과 꺼림칙함이다.

       하지만 요정에게서 ‘선물’을 받지 못한다면 반드시 파멸이 들이닥친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불길한 미래.

       확실하고 끔찍한 파멸의 미래.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분명했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꾸역꾸역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식에 필요한 물건을 구할 때, 망설이면서도 그것을 구매하였고.

       강원도의 오지로 향할 때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결국에는 도달하였고.

       오지 깊숙한 곳에 짐을 짊어지고 도달한 뒤 술을 늘어놓았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해야 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의식.

         

       의식을 해야만 한다.

         

       『 요정 모방체 생성 의식 방법 및 주의사항 』

         

       저 보기만 해도 수상하고 불길한 의식을 말이다.

         

       ‘그래,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다.

         

       불길하다, 꺼림칙하다, 수상하다, 음산하다….

         

       이런 것은 다 그의 주관적인 느낌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인데 거기에 매몰될 것인가.

         

       그저 의식을 하기에 망설여지는 것은 무시해도 되는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 의식을 한다면, 저 의식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인 것이다.

         

       그래.

       객관적으로, 그는 성공할 수 있다.

         

       요정이 준 선물로 다시 정보를 얻으며 승승장구할 수 있으며, 저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수도 있다.

       동료고 윗사람이고 전부 기자로서 능력을 우러러보며 부러워할 것이고, 그의 이름은 업계를 넘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질 수 있게 되리라.

         

       밈(meme) 때문에 유명해진 기자들처럼, 광대로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자의 전설인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만큼이나 유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부와 명예!

       선망과 존경!

         

       그 모든 것이 의식을 제대로 치르기만 한다면 손안에 들어온다.

         

       ‘의식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돼. 주의사항도 다 적혀 있잖아.’

         

       심지어 의식을 하는 방법과 주의사항이 모두 종이에 적혀 있었다.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이것만 보면 절대 실패할 일이 없다는 듯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빼는 건 멍청한 짓이야. 그래, 멍청한 짓이라고. 그냥 종이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대체 뭐가 문제겠어? 나는 멍청한 놈이 아니고, 여기 적힌 것 정도는 완벽하게 실행할 수 있다고. 내가 누구냐, 언론고시도 가볍게 통과한 놈이야. 지금에야 이렇게 어? 잠깐 빌빌 기기는 했지만! 나는 대단한 놈이라고! 이런 것 정도는, 이런 것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는 놈이야!’

         

       이제순은 앞서 그러했던 것처럼 마음을 다잡았다.

         

       물론 다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이번이 의식을 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이런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장고가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법이니까.

         

       ‘그래, 씨발! 한다! 지금 당장! 한다!’

         

       이제순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이 트기 전까지 해야 한다고 했지?’

         

       그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종이를 다시 한번 빠르게 훑어보았다.

         

       이미 안의 내용을 달달 외우기는 했지만, 혹여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 다시 한번 훑어본 것이다.

         

       그렇게 그는 꼼꼼하게 자신이 외우고 있는 것과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행동하기 시작했다.

         

       부스럭.

         

       그는 손에 들린 종이를 둥글게 말고 꾸깃꾸깃 모양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곤 배배 꼬아서 심지처럼 만들고, 바닥에 놓인 라이터를 집어 들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타닥.

         

       그러자 종이의 끝에 불이 붙더니, 서서히 위쪽으로 불이 이동하며 종이를 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의 가장 윗부분까지 불길이 올라왔을 때, 종이를 바람에 실어 보내듯 살포시 놓아주었다.

         

       그러자 종이는 하늘하늘 비행하며 한 줌의 불꽃과 함께 그대로 재가 되었고, 그 재는 밤바람에 실려서 이리저리 휘날리며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종이가 타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재 약간, 그리고 종이가 타면서 난 매캐한 냄새뿐이었다.

         

       ‘후우. 침착하자. 외운 거 잘 기억하고, 그대로 하면 되는 거야.’

         

       그는 눈을 감고 종이에 쓰여있던 글을 떠올렸다.

         

       『 의식의 시작 전 이 종이는 반드시 태워야만 한다. 종이를 잘 말고 꼬아서 새끼줄 모양으로 만든 뒤 불을 붙여야 한다. 단, 주의할 것은 종이가 성공적으로 전부 재로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 의식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중간에 불이 꺼지거나 종이가 다 타지 않았는데도 의식을 시작해선 안 된다. 』

       『 종이가 타고 난 다음 냄새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의식을 시작해야만 한다. 』

       『 원을 그리며 걸으라. 』

       『 원의 모양은 반듯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절대로 직선으로 걸어서는 안 되며, 곡선이 이어져서 원이 되도록 의식하며 걸어야 할 것이다. 원이 아니라 다른 도형이 되는 순간 의식은 실패하거나 변질할 수 있으니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

       『 원을 미리 그려놓거나 물건으로 표시하는 것 역시 해서는 안 된다. 』

       『 그렇게 계속 원을 그리며 걸으라. 』

       『 풀밭에 몇 번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이 눕고 밟히면서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부터는 긴장을 조금 풀어도 괜찮다. 』

         

       ‘누가 보면 사악한 의식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빌어먹을. 시작부터 주의사항이 저따위야.’

         

       이제순은 머릿속에 때려 박다시피 한 내용을 떠올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발을 옮기자 잘 자라고 있던 풀이 밟히고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광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그가 밟은 것이 풀인지, 그냥 풀떼기가 말라비틀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보이지 않네. 제기랄.’

         

       그는 반드시 곡선을 그리며 움직여야 한다는 종이의 내용을 떠올리며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움직였다.

       월광이 얼마 되지 않아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자칫 잘못하면 직선이 될 수 있었기에, 그는 주의사항을 어기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개를 바닥에 처박듯이 숙이며 계속해서 걸었다.

         

       저벅.

       저벅.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자신이 곡선을 그리며, 원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이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저 걷는 것에 불과한 일이었건만 이게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그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오지로 오면서 건넌 개울에 몸을 담그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고, 푹 젖은 옷이 밤바람에 스쳐 지나가며 소름 끼치는 추위를 느끼게 했다.

         

       그 추위가 얼마나 섬찟했는지, 밤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마치 유령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마다 흠칫 놀라면서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순은 그런 생각을 애써 꾹꾹 눌러 담으며 계속해서 걸었다.

         

       걷고, 걷고, 걷고.

         

       고개를 처박고 계속해서 걸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디까지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흐릿하게 윤곽으로만 보이는 풀 누운 자국에 의지한 채, 자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며 걷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마침내 저 멀리서 익숙한 자국이 보였다.

         

       그가 첫 발자국을 뗐던 곳이었다.

         

       그는 그것을 보며 기뻐하면서 그곳으로 향하려다가, 문득 떠오르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며 자기 뺨을 후려쳤다.

         

       쨔악!

         

       그의 뺨이 차갑게 식은땀에 젖어 있었던 탓일까.

       유난히도 큰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따귀 덕분에 제정신이 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저기로 바로 쭉 가면 직선이 된다고.’

         

       그는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순은 눈은 시작점에 두되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자신이 걷는 길이 곡선임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앞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곡선을 그리며 시작점에 도달했다.

         

       ‘완주했다. 원이 그려졌어!’

         

       곡선을 그리며 시작점에 돌아왔다.

         

       성공적으로 첫 번째 원을 그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우. 큰 산 하나는 넘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성공적으로 원을 그렸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 뿌듯함도 잠시.

         

       아직 의식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 그렇게 계속 원을 그리며 걸으라. 』

       『 풀밭에 몇 번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이 눕고 밟히면서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부터는 긴장을 조금 풀어도 괜찮다. 』

         

       그는 종이에 적혀 있던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계속해서 걸었다.

         

       성공적으로 의식을 치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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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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